대승수행보살행문제경요집 하권
35. 법집경(法集經)
실천해야 할 두 가지 조목을 드러내어 설명했다.
수행하는 보살은 열 가지 계행을 닦아야 한다. 다시 별도로 열 가지 계행이 있음을 설하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소발(無所發)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것이 수행하는 보살의 진실한 말인가?
보살이 만약 보리심(菩提心)을 내고 나면,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보리는 버리지 않느니라.
모든 중생들에게 법이 아닌 것을 행하지 않으면,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니라.
만약 수행하는 보살이 위없는 보리심을 내고 나서 뒤에 앞의 뜻을 어기거나 말을 어기어 속인다면, 곧 이것이 수행하는 보살이 보리에서 물러나 잃어버리는 것이니라.
다시 수행하는 보살은 어떻게 계율을 지켜 염행(念行)해야 하는가?
첫째, 부처님의 법 듣기를 좋아하면 이것이 계율이니, 성취함이 원만하면 4무량심(無量心)을 얻느니라.
둘째, 만약 뜻으로 부처님의 법을 구하면 이것이 계율이니, 성취함이 원만하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하는 마음을 얻느니라.
셋째, 선지식에 공양을 올리는 까닭에 이것이 계율이니, 성취함이 원만하면 기예(伎藝)에 결함이 없느니라.
넷째, 만약 바라밀행을 닦으면 이것이 계율이니, 성취함이 원만하면 부처님의 지혜를 얻느니라.
다섯째, 만약 경전을 듣고 다른 이를 위해 말해 주면 이것이 계율이니, 성취함이 원만하면 대승의 경전을 널리 말할 수 있느니라.
여섯째, 만약 항상 부처님의 법을 생각하면 이것이 계율이니, 성취함이 원만하면 총지(摠持)의 위력을 분명하게 아느니라.
일곱째, 만약 전념으로 보리를 닦으면 이것이 계율이니, 성취함이 원만하면 모든 죄의 장애가 없어지느니라.
여덟째, 중생들을 질투하지 않으면 이것이 계율이니, 이런 까닭에 보리를 잃지 않느니라.
아홉째,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이것이 계율을 잃지 않는 것이니, 삼보(三寶)가 앞에 나느니라.
열째, 여여(如如)하게 계율을 생각하고 일체를 관찰해야 결함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수행하는 보살은 응당 항상 마음으로 이와 같은 좋은 계율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다시 수행하는 보살에게 열 가지 보리심의 계율이 있느니라.
첫째는 일체 중생들의 이익을 구하는 까닭에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닦은 도업(道業)을 되돌려 중생들에게 베풀고 속히 부처가 되기를 서원하되 전심(專心)으로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닌 것이며,
셋째는 견고한 수행으로써 다른 이의 세업(世業)을 이롭게 하고 자기만을 위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계행이 청정하고 보리를 증장시키며 겁을 지나도록 인욕을 해도 피곤하거나 게으름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보시(布施)로써 계율을 삼고 더 나아가 머리와 눈과 골수를 버릴 수 있으며 중생들을 유익하게 하는 까닭이다.
여섯째는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써 계율을 삼나니 보살은 계율이 없는 중생이라도 버리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인욕으로써 계율을 삼나니 보살은 일체 마군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여덟째는 정진(精進)으로 계율을 삼나니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에 불도(佛道)를 쌓고 모으되 피곤해 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일이 없는 것이며,
아홉째는 선정으로 계율을 삼나니 보살은 소리가 요란하여도 정심(定心)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열째는 지혜로 계율을 삼나니 보살은 모든 세간의 법을 보고 보리와 같다고 생각하고, 공(空)한 모양으로 계율을 삼는 것이니라.
보살은 세간에 물들지 않고 자비로써 계율을 삼으며 열반에 들어가지 않나니, 이것을 법집(法集)이라고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