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육필, 그리고 아름다움-마지막 육필시전에 부쳐
김상환
시가 아름다운 이유
예술을 어떻게 체험하고 사유하며 향유할 수 있는가? 문학작품을 향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을 넘어, 작품 속 세계와 인물을 통해 깊은 감동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재구성하는 미적·정신적 경험을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예술작품의 본질은 시작(詩作, Dichtung)에 있습니다. 시는 존재의 언어를 청종(聽從)하는 일이며, 사물의 응시에 대한 인간의 대답입니다. 말이 아니라 말함, 즉 참말(die Sage)은 새로운 진리가 현시되는 순간입니다.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도 위험한 존재로서 언어 가운데 시의 아름다움은 존재 사건이 일으킨 빛의 파문입니다. 변화 속에서 차이를 생성하는 최고의 방식이‘포이에시스(Poiesis)’라면, 영원한 변화에 의해 새로워지는 우주의 이성이라면 시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포이에시스로서 우주의 이성으로서 시는 지상의 인간이 고안해 낸 최상의 언어이자 마음의 무늬와 결입니다. 시는 이 변화와 운행에 깊이 관여할 때 진정성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아름다운 것은 어렵다 Chalepa ta kala.”시의 아름다움은 몸과 마음, 신체와 영혼이 교감하지 않으면, 자연과 인(간)사, 이치와 흥취가 서로 씨줄과 날줄로 이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느낌, 느낌이라는 실재에 있습니다.
육필시
육필/육성/육체의‘육(肉)’은 액추얼actual한 것, 살아있음의 홀황(惚恍)입니다. 그리고 숫자 육(六)은 하늘(1), 땅(2), 인간(3)의 삼극이 합일된 태극의 수입니다. 이런 육필시는 무엇보다 천지인의 온기와 숨결이 담긴 인간의, 대지의 예술입니다. 인간적인 고뇌와 울림,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는 육필 원고 말고 인쇄된 시에는 이러한 면을찾기 어렵습니다. 고쳐 쓴 흔적, 줄을 긋고 새로 써 넣은 단어나 여백에 남긴 단어 등에서 우리는 생생한 창작의 순간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는 클릭 한 번으로 복사하고 뿌릴 수 있는 디지털 텍스트와는 분명 궤를 달리합니다. 인쇄된 폰트가 주는 서먹함 대신 육필시의 문체는 독자에게 훨씬 더 가깝고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육필은 유일한 판본으로 희소성이 있습니다. 육필시는 몸시로서 Why에 응답하며, 시인의 손과 감정이 손끝을 통해 절로 흘러나오거나, 지석(紙石, 종이돌)에 돋을새김한 영혼의 흔적입니다. 시어 하나 하나가 갖는 질량과 리듬을 중시한 미국의 시인 A.R.Ammons처럼 육필시를 마주하고 있으면 독자와의 깊은 정서적 공감과 유대감을 갖게 되며, 시인과 일대일로 만나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육필은 사이의 예술입니다. 이시영의 시「사이」(“가로수들이 촉촉이 비에 젖는다/ 지우산을 쓰고 옛날처럼 길을 건너는 한 노인이 있었다/ 적막하다”)에서 보듯이, 생사(生死)와 고현(古現), 그리고 물심(物心) 사이의 깊은 적막을 봅니다. 적막의 적(寂)과 육필에는 그 사이로 바라보는 사물의 아름다움과 비밀이 있습니다. 사역(四域, Four-fold)의 세계와 시가 있습니다.
육필시-전
육필시전은 시인이 직접 손으로 쓴 시를 모아서 선보이는 문학 전시회로서 디지털 인쇄나 키보드 글꼴이 아닌, 시인의 호흡과 손글씨의 결을 통해 깊은 감정과 개성을 전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이탈리아어‘전시하다Mostrare’라는 단어는 라틴어‘Mōnstrō’에서 유래했는데, 이는‘보여주다’,‘안내하다’,‘생각하게 하다’,‘시각화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여러 시각에서 물체(Objet)를 인식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전시는 우리의 발길을 멈춰 오래 바라보고 사유하게 하는 진리의 장이자,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새로운 경험입니다. 다양한 시의 필체와 필적을 통해 우리는 살아있는 마음과 마음의 향기를 생각하고 간직합니다. 육필시전의 진의(眞意)는 하나의‘것thing’이 아니라‘과정process’에 있습니다.
보존
하이데거에게 시작(Anfang)과 보존(Bewahrung)은 존재의 진리가 예술 작품을 통해 일어나고 유지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시작은 존재의 진리가 숨겨져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열어 밝히는 근원적 발생, 혹은 새로운 세계의 건립을 뜻합니다. 이에 반해 보존(Bewahrung)은 작품 속 진리에 자신을 내맡기고 이해하며 머무를 때 비로소‘보존’을 통해 참된 작품으로 현성합니다. 이렇게 보면 시인의 말과 뜻,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나 있는 육필을 오래 보존하고 이해하며 충분히 음미할 때, 그것은 단순한 글씨 보관을 넘어 작가의 숨결과 시대정신을 오롯이 이어가는 문화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첫댓글 대구시인협회 육필시 전시회 아름답게 마무리했습니다. 고문님 자문님 이사님 회원님들 덕분입니다. - 육필은 영원한 체온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회장님 이하 임원진들께서 무척 애쓰신 결과라
여기며 시인협회 발전을 더욱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