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도시락 / 김화연

[이정림]

양은 도시락

김화연

내 등에선 지금도

빈양은 도시락이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어쩌다 끼니를 놓친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딸그락거리며 등이 고프다

언니의 도시락을 전해주러

풀밭 구절초 옆을 지나다가

그때도 등이 고팠을까

아껴먹은 계란 덮인 풀밭식사 허겁지겁 끝나고

교실 문 열고 건네 준 빈 양은도시락

등 뒤의 빈 소리들이

내 목덜미를 잡아챌까 싶어

빠른 걸음으로 뛰던

지금도 맛있게 떠오르는 그 기억

남이섬 나무 의자에 앉아

양은 도시락을 사서 먹었다

연탄에 눌린 밥알을 젓가락으로 뜯어보니

도시락을 먹고 도망가며 뛰는

한 아이 보인다.

찌그러진 귀퉁이에 새던

시큼한 김치 국물 묻은 옷자락도 보인다

눌러 붙은 옛일, 누룽지 같은

구수한 회고록을 천천히 읽는다

누구나 기억이 배고플 때 있다

그때는 어김없이 등에서

딸그락딸그락 빈 양은도시락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