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이 생은 오로지 법을 나타내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다네 (此生專爲表演來)
이수원李修遠
하련거노거사께서는 일찍이 “오탁악세에는 염불처럼 좋은 것이 없으며, 이번 생은 오로지 대경을 위해 왔다.”(濁世無如念佛好, 此生專爲大經來.)고 말씀하셨습니다. 해현노화상의 평생의 사적을 학습한 후, 이 말씀은 바로 노화상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느꼈으며, 노화상께서는 진정으로 “오탁악세에는 염불처럼 좋은 것이 없으며, 이번 생은 오로지 법을 나타내시기 위해 오셨을 뿐입니다.”(濁世無如念佛好,此生專爲表演來)
2011년에 어떤 한 선지식께서 저에게 해현노화상의 일상생활과 수행에 관한 동영상 중 일부분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참으로 업장이 대단히 깊고 무거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때에는 의외로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다만 노화상은 지극히 평범하신 분이시고, 아주 오래 사신 장수하신 분이시고, 몸이 매우 건강하신 분이라는 느낌 이외에는 그다지 거론할만한 무슨 특별한 것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그 어르신의 일생 사적을 기록한 비디오와 문자로 기록된 자료들을 학습한 후, 특히 정공노법사께서 여러 차례 현공 어르신에 대해 극력 찬탄하시는 말씀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그 어르신께서는 정말로 결코 제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평범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어르신은 이번 생에 성불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전의 발원을 타고서 중생을 위해 법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다시 이 세간에 오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공노법사께서 경전을 강설하실 때, 송나라 때의 형가瑩珂법사, 근대의 체한諦閑노화상의 제자인 땜장이(鍋漏匠), 현대의 황충창黃忠昌거사의 사적을 자주 말씀하시곤 하십니다. 이들은 모두 이 세간의 사람들을 위해 “염불하여 성불하는”(念佛成佛) 것은 진실하여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사람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땜장이처럼 3년을 하루 같이 “염불하다가 피곤하면 쉬고, 다 쉬었으면 다시 이어서 염불할”(念累了就休息, 休息好了再接著念) 수 없으며, 또한 황중창거사처럼 거의 3년에 가까운 2년 10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폐관閉關하고 염불할 수도 없으며, 형가법사처럼 지극히 강한 원력으로 3일 낮과 밤 동안 정진하여 성취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우리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이 세 분의 대덕처럼 그렇게 수행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우리 대중들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의 길은 응당 어떠한 것입니까? 불보살님은 자비하십니다. 현공노화상께서는 92년 동안 직접 몸소 모범을 보여 우리를 위해 가장 훌륭한 본보기를 행하셨습니다. 어르신의 이러한 본보기는 바로 우리에게 “불법은 세간의 법을 무너뜨리지 않는다.”(佛法不壞世間法)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규칙적으로 항상 하는 업무와 생활 속에서 오로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왕생할 수 있는 자량資糧을 쌓아두고, 한 마디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꽉 붙잡고서 염불하길 끊어지지 않게 오랫동안 할 수 있기만 하면, 일체가 모두 물이 흘러가는 곳에 도랑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치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생활 속에서 현공노화상은 어떻게 끊임없이 왕생의 자량을 쌓으신 것입니까? 현공에 대한 학습을 통해서 저는 두 가지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되는 근본을 확실하게 닦으신 것이며, 둘째는 부처님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으신 것입니다.
현공노화상은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효도하셨으며, 출가하신 후에는 대중들에게 부모님께 효도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좋은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일생 동안 바른 행실을 남김없이 다 드러내어 우리를 위해 온화(溫), 선량(良), 공손(恭), 검소(儉), 겸양(讓)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전부 사람이 되는 근본이며, 또한 왕생을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조건입니다.
노화상께서는 90 여 년 동안 언제나 끊임없이 “아미타불”의 성스러운 명호를 마음속으로 부르셨으며, 일과 염불 두 가지 다 지장이 없게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비록 염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어르신께서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셨습니다.
요컨대, 그 어르신의 일생의 행지行持는 삼귀三歸, 오계五戒, 삼복三福, 육화六和, 삼학三學, 육도六度, 십대원왕十大願王에 계합되셨으며, 《무량수경》제6품의 “발대서원發大誓願”(제18원, 제19원, 제20원)에 완전히 계합되셨으며, 그리고 제24품의 “삼배왕생三輩往生”, 제25품의 “왕생정인往生正因”에서 강설하고 있는 왕생조건에도 계합되셨습니다.
이를 통해 현공노화상께서는 정종의 염불법문은 간단하여 행하기 쉬우며, 또 세간의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수승한 점을 깊이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는 전제 아래, 90년을 하루 같이 일하는 생활 속에서 언제나 극락에 왕생하고 아미타불을 친근하겠다는 목표를 잊지 않으셨으며, 또한 “보리심을 내어 일심으로 오로지 염불하여”(發菩提心, 一向專念), 결국 마지막에는 태어남을 마치고 죽음에서 벗어나는 대사大事를 원만하게 해결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르신께서 우리를 위해 나타내 보여주신 수행방법은 더없이 훌륭한 보편적인 교육적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사람에 대해 말한다 해도 모두가 실천할 수 있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련거노거사께서는 《무량수경》회집본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것이며, 황념조노거사께서는 《무량수경》회집본을 주해하기 위해 오신 것이며, 정공노법사께서는 《무량수경》회집본을 강설하기 위해 오신 것이며, 해현노법사는 《무량수경》회집본을 자신의 행으로 직접 나타내 보여주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분들을 지금 우리들은 전부 다 만났으니, 이는 정말로 희유하며 만나기 어려운 성대한 모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데, 우리는 이번 생에 무엇 때문에 이 세간에 온 것입니까? ― 참괴慙愧한 말학은 저보다 정토법문을 학습한 지 오래되신 전 세계의 학장學長들과 더불어 불보살님의 자비하신 호념護念을 저버리지 않고, 이 희유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하련거노거사의 《무량수경》회집본을 독송하고, 황념조노거사의 《무량수경》회집본주해를 깊이 연구하고, 정공노법사의 《무량수경》회집본주해를 공경히 듣고, 해현노화상께서 행하신 것과 똑같이 그렇게 《무량수경》회집본에 의거하여 성실하게 수행하기를 원합니다. 믿음과 발원을 확고하게 하여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서원하며, 이번 생은 오로지 《무량수경》회집본의 믿음(信)과 이해(解)와 실천(行)을 증명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아미타불!
(주) 학장學長 :일반적으로 同學에 대한 존칭이며, 대부분 자신보다 배운 년도가 많은 사람을 가리킨다.
(인연생거사)
나무아미타불! 육조 혜능대사의 게송에서 말하길,
불법은 세간 속에 있나니, (佛法在世間)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구하지 말라. (不離世間覺)
세간을 떠나서 보리를 찾는다면, (離世覓菩提)
마치 토끼의 뿔을 찾는 것과 같다. (猶如尋兔角)
진실로 이수원거사가 말씀하신 것처럼, 현공의 가장 훌륭하신 점은 모든 사람들에게 “불법을 떠나지 않고 세간의 법을 행하셨으며, 세간의 법을 없애지 않고서 불법을 증명하신”(不離佛法行世法, 不廢世法證佛法) 본보기를 행하여 보여주신 일이십니다. 따라서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학불學佛하는 사람들에게 오로지 염불에만 전념할 시간이 없다고 해서 더 이상 번뇌하지 않도록 하셨으며, 동시에 학불하는 사람들에게 “염불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믿음과 발원을 확고하게 하도록 해주셨으며, 다시는 극락왕생이 아득히 멀어 도달할 수 없는 물속의 달이나 허공의 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불교에 대해 사회대중이 정확한 인식을 가지도록 해주셨으며, 원래 불교는 소극적으로 세상을 은둔하게 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출세간의 지혜로서 세간에 들어가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현공의 표법表法은 지금이 바로 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공사부상인은 현공의 사적은 말법시대 9천 년 동안의 중생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 말씀하셨으며, 이는 분명히 조금도 과장이 없는 진실한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말학이 이 글을 이곳에 수록한 것은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