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자 한국엔지오 신문에 난 내용입니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이거나 인류사회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교과서에서는 우리식 민주주의도 거론해야 합니다.
널리 퍼뜨립시다.
<보낸 원고>
[국사교과서, 올해 이것만은 꼭 바꿔라!] 〈22〉
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제대로 기술하라!
박정학/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민주주의에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왕정민주주의 등 서로 다른 여러 유형이 있다. 우리 역사에도 백성의 추대, 화백제도, 세계 최초의 비밀투표 등 우리식의 민주사상과 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현재 교과서에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4.19혁명으로 시작된 것처럼 기술하여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만을 민주주의로 보는 시각이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극단적 양극화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음을 감안하면,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로써는 미래 인류사회를 주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근래에 필자를 비롯하여 이홍범, 이근창, 박상림 등이 홍익인간 사상에 바탕한 ‘홍익민주주의’가 미래 인류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자기 정체성 정립을 목표로 하는 역사 교과서에는 이러한 우리 민주사상을 살려서 게재해야 한다.
교육부와 교과서는 4.19를 우리 민주주의의 토대로 기술
교육부에서는 2015년 교육과정 사회과 분야 및 중‧고등학교 역사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이라는 주제 속에 ‘우리나라의 자유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통해 시민의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기 위해 ‘자유 민주주의가 발전해 온 역사적 과정과 시민의 정치 참여 과정을 탐구’한다고 과목 설정 이유를 밝히고, 그 학습요소를 4․19 혁명, 5․16 군사정변, 10월 유신,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으로 하여 자유민주주의 발전 과정의 역사를 가르치라고 지침을 내리고 있다.
이런 지침에 따라 만들어진 초등학교 사회 5-2를 비롯하여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공통적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4.19 혁명으로 시작하여,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항쟁 등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다행히도 사회 5-1에서는 ‘왕건이 호족과 백성의 지지를 얻어 궁예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는 ‘마한의 소국인 목지국의 군장이 왕(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을 대표하였다’ ‘박혁거세가 여러 촌장의 추대를 받아 나라를 세웠다’ ‘태봉의 신하들은 궁예를 내쫓고 왕건을 국왕으로 추대하였다’(고교 한국사도 동일) ‘신라의 귀족들은 상대등이 주관하는 화백회의에 모여 국가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고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고 하여, 우리 고대사에서 한국적인 민주주의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들을 기술하고 있으나 현대 민주주의와 연결을 시키지는 않는다.
외면당하고 있는 더 많은 우리 민주제도와 사상들
문제는 이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서양식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여러 가지 뛰어난 민주적 제도가 있었는데, 모든 교과서에서 불교ㆍ도교ㆍ유교 문화를 자세히 소개하면서도 이런 우리 고유의 민주사상과 제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전무하다는 데 있다. 아예 우리 민주주의는 없었다고 보는 인식이다.
윤내현, 김상일, 민영현 등 우리나라 정신을 연구한 학자들은 『삼국유사』의 단군사화를 하늘사람 환웅(天人=神)과 지상의 동물인 곰(웅녀), 그리고 사람인 단군왕검이 어떤 강제도 없이 어우러지는 우주적 민주ㆍ자유ㆍ평등사상을 담고 있는 설화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겨레의 얼이라고 할 수 있는 ‘홍익인간’ 사상은 세계 어떤 민주사상보다 앞선, 아니 ‘민주’를 뛰어넘는 이념이 담겨져 있다. 우리 민족은 출발 시점에서부터 이런 철저한 민주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역사의 전 기간에 걸쳐 그것이 구체적 제도화되어 구현되었다는 것을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이 『한국 민주사상의 탐구』라는 책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본다.
고려, 조선에서는 왕권을 견제한 서경(書經)제도가 있었으며, 고구려에서는 모본왕, 차대왕, 봉상왕 등 3명의 임금을 백성들이 갈아치우고 새로운 왕은 군공회의에서 백성들의 총의를 모아 선출, 추대하는 반정(反正)사상이 있었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박혁거세와 왕건 외에도 단군이 국인들의 ‘추대’로 왕이 된 것을 시작으로 고구려도 초기의 국왕은 5부족장 회의에서 ‘추대’되었다. 『삼국유사』에는 백제에서 국상(國相)을 정사암제도라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선출했다고 하는 세계 최초(?)의 무기명 비밀투표 기록도 있다. 화백회의는 소수의견도 표결에 붙여서 전원일치로 의결을 함으로써 본인이 수긍을 하게 하는, 현대의 다수결보다 훨씬 철저한 민주제도였다. 지도자를 법적 뒷받침된 권력행사자로서의 리더와 달리 어우름을 중시하는 ‘어른’이라 부른 문화도 있고, 제천행사를 통해 모든 백성이 함께 가무화락(歌舞和樂)했던 평등사상도 있었다. 신문고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신문의 효시인 조선왕조 때의 조지(朝紙) 등 언로가 열려 있었고, 고려 때부터 일반백성, 농만, 천민 계층에도 민주의식이 활발하게 전파되어 농민반란과 민란이 자주 발생하는 등 사회분위기도 민주적이었다.
이처럼 우리에게 서구적 민주주의를 앞서는 문화와 사상의 바탕이 있었으므로 광복 후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랐다고 연결시켜 기술해야 이해의 속도도 빠르고 자긍심을 갖게 된다. 통일조국과 미래 인류사회를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보고, ‘우리가’ 미래 인류사회를 위해 공헌해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지혜를 갖도록 교과서에 이런 내용을 보완하여 가르쳐야 한다.
<보도 지면>

첫댓글 수고와 희생에 머리 숙여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