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
-해설
가장 특별한 시집
조대한(문학평론가)
지난 계절이나 최근에 발간된 시집이 아니라, 시기와 무관하게 가장 쓰고 싶었던 시집 하나를 골라 리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꽤 기꺼운 마음이었다. 그런 기회가 흔치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시집을 택해 즐겁고 손쉽게 원고를 작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한 권을 선택하고자 하니 배제되는 수많은 시집들의 목록들이 눈에 밟혔다. 우열이 아닌 개인적 호오를 가르는 와중에도 각 시집들의 매력과 특색은 천차만별이었다. 고민 끝에 결국 미학적으로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시집보다는, ‘시집’으로서 이야기할 거리가 가장 많은 시집을 골라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수월하게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 문학사를 돌이켜보면 아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집들이 각자의 사연을 담고 세상 바깥으로 나왔을 테지만, 윤동주의 이 시집만큼 가파른 운명의 등락을 겪었던 시집도 드물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1941년 겨울에 묶은 시집이다. 윤동주는 자필로 세 권의 필사본을 만들어 하나는 자기의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스승 이양하와 친우 정병욱에게 선물하였다. 다행히 정병욱에게 주었던 한 권이 남아 있어, 윤동주의 시집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정병욱의 누이동생 정덕희의 증언에 따르면, 그 시집은 오빠가 학병으로 끌려가 있는 동안 귀중품을 숨겨놓던 마루 밑 비밀 공간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시집의 생명을 이어준 것이 정병욱이라면, 그것을 처음 세상에 알린 것은 강처중의 공이었다. 강처중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경향신문에서 기자 일을 하고 있었다. 윤동주의 사후 그는 경향신문 지면에 친구의 유고시를 소개하였다. 그 작품에는 당시 신문의 주필이었던 정지용의 글이 함께 실렸다. 1948년 1월 윤동주의 3주기에 맞추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정식으로 출간되었는데, 정음사에서 발간된 이 시집의 서문과 발문을 맡은 이가 바로 정지용과 강처중이다. 다만 이 시집은 윤동주가 직접 묶었던 자필 시집보다 좀 더 확장된 것이라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정음사에서 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 실린 시편들이 윤동주가 직접 만들었던 시집의 작품들이다. 2부는 일본 유학 시절 윤동주가 강처중에게 편지로 써서 보냈던 작품들이고, 3부는 간, 참회록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윤동주의 유고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윤동주의 창작물이 분명하고 편편이 뛰어난 작품들로 이뤄져 있어, 시집으로 함께 묶이는 일에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초판본 시집이 윤동주가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던 시집과 완전히 일치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후 증보되어 출간된 또 다른 시집이다. 1955년 2월, 윤동주 10주기를 기념하여 많은 작품들이 새로이 더해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재판본이 다시 정음사에서 출간된다. 이 시집은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서 발간된 초판본의 작품에 더해 윤동주의 습작 노트, 산문 등이 추가로 삽입되어 있다.
시인이 작품을 발표하는 일에는 선택과 배제의 의사가 개입된다. 따라서 발표의 의사가 있었던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은 세밀히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나 습작 노트에 남겨진 작품들은 윤동주 시의 원형적 형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자료이자 텍스트이지만, 윤동주의 시 세계를 평가하는 자료로 사용하기엔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정작 시인은 퇴고와 정제를 거치지 않은 그 원고들이 세상 바깥으로 나오기를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어떤 작품들이 모두 작가 본인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의 시집으로 묶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또 별개의 것이다. 특히나 윤동주처럼 작품들 간의 배열, 상응, 흐름까지 섬세하게 고려한 시인의 시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조금 보수적으로 판단해본다면, 윤동주의 의사가 반영된 ‘시집’으로서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가 직접 선택하고 묶었던 19편의 작품에만 붙여주어야 하는 이름이 아닐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위 시편은 「서시」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의 작품이다. 정음사에서 출간된 초판본과 윤동주가 원고지에 정서했던 자필본은 일부 맞춤법의 차이가 있긴 하나 내용은 같다. 다만 초판 시집에는 ‘서시’라는 표기가 달려 있는 반면, 자필 시집에는 아무런 표시도 되어 있지 않다. 이 작품엔 본래 어떠한 제목도 달려 있지 않았으나, 초판본 출간 당시 맨 앞에 있는 시라는 의미에서 기재된 ‘서시’라는 표기가 이후 마치 제목처럼 통용되어 버렸다. 어쨌든 윤동주가 제일 앞에 놓아둔 이 작품은 여러모로 시집의 서두를 장식할 만한 작품인 듯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부끄러움’, ‘괴로움’, ‘별을 노래하는 마음’, ‘죽어가는 것에 대한 사랑’ 등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시편은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부러 한 줄 여백을 둔 시의 마지막 문장은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표현으로 끝을 맺는다. ‘별’은 이 시집 내내 일관되게 나타나는 어떤 이상, 아름다움, 꿈 등으로 선명히 읽히고, ‘바람’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서도 알 수 있듯 그 꿈을 좌절시키는 힘이자 유한한 실존적 존재의 한계 등으로 읽힌다. 그러니까 이 시는 희망적인 다짐이나 경건한 의지 표명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여전히 내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이상과 그것을 좌절시키는 현실의 풍경 하나를 보여주는 것으로 종결되는 셈이다. 이 같은 시적 긴장은 해당 작품뿐만 아니라 시집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는 듯싶다.
「서시」와 여러모로 짝을 이루는 시는 시집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별 헤는 밤」일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나는 여전히 어두운 하늘의 별을 헤며 꿈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별이 아스라이 멀 듯, 아름다운 것들은 아직 내게 멀기만 하다. 그 별빛 아래에서 나는 자신의 이름을 흙 위에 끼적거려보고는 어딘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이내 그것을 덮어버린다.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자신의 이름을 슬퍼하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적는다. 최초의 육필 원고는 이 문장들 다음에 ‘1941년 11월 5일’이라는 탈고 일자를 적은 후 완결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별 헤는 밤」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추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이 구절에 얽힌 사연은 정병욱의 증언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최초의 「별 헤는 밤」 원고를 보고 어딘지 마무리가 허한 느낌이 든다는 감상을 윤동주에게 전했다. 윤동주는 그 감상을 듣고 난 후 정병욱에게 선물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마지막 네 줄을 추가하였다고 한다. 확실히 위의 문장들이 추가된 이후 시는 조금 더 희망차게 완결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다. 별빛 아래에서 자신의 이름을 희미하게 적어보는 모습만으로도, 또한 그것이 부끄러워 금세 흙을 덮어버리는 풍경만으로도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충분히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지 않았을까. 희망찬 다짐만으로 쉬이 종료되지 않았던 「서시」처럼 「별 헤는 밤」도 그렇게 끝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윤동주의 모습이 그러한 쓸쓸함, 부끄러움, 조심스러움 등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시편 내내 ‘-ㅂ니다’로 조심스레 종결되던 어미가, 갑작스레 자신감에 찬 듯한 ‘-게외다’로 끝나는 것도 그 이질적인 느낌에 한몫을 했던 듯싶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상일 뿐, 시집 전체적으로 본다면 정서적 성장을 이룬 마무리라는 점에서 좋은 완결인 듯싶다.
이 같은 점층적 과정과 흐름을 보여주는 시편들은 시집 내에서 더러 발견된다. 가령 차례차례 실려 있는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 「무서운 시간」, 「십자가」는 모두 윤동주의 신앙과 관련된 시편들이다. 문익환과 윤일주의 증언에 따르면,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3학년 시절, 신앙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한다. 꾸준히 습작을 이어오던 그는 그해 말까지 1년이 넘도록 시를 쓰지 못했다. 그러다 이듬해 초 2월부터 5월 사이, 「태초의 아침」을 포함한 5편의 종교 시편들을 연달아 써낸다. 이 연이은 작품들 속에는 어린 꽃으로 피어난 윤동주에서부터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리겠다고 다짐하는 윤동주에 이르기까지, 그의 신앙의 탄생, 고민, 다짐의 흐름들이 뚜렷이 담겨 있다.
몇 년 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복간 시집이 커다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윤동주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의 개봉 시기가 맞물려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 덕분에 해당 년도 한국 시집의 전체 판매량은 전년 대비 500% 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그의 시가 이처럼 오래도록 사랑받는 까닭은, 친일 혹은 반공 이데올로기 등에 휘말리기도 전에 사라져 영원한 청년으로 남아버린 그의 비극적인 생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름다움을 꿈꾸고 현실에 고뇌하며 부끄러워했던 한 인간의 삶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의 시의 투명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토록 자신의 삶과 시를 밀접하게 일치시키며 성장해나간 시인의 사례는 이제 다시는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한국 시사에서 미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시집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가장 특별하게 빛났던 순간의 시집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