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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에 발동을 걸어라
화두를 들고 아무리 오랫동안 정진을 해도 화두에 발동이 걸리지 않으면 깨달음을 기대 할 수 가 없다. 화두에 발동이 걸리려면 궤도에 올라서야 되는데 그 길은 면도날처럼 좁은 길이라서 처음 올라서기가 힘들지만 일단 한번 올라서기만 하면 그 길은 탄탄대로坦坦大路이다.
화두가 동력動力이 생기어 힘들여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공부가 나가기 때문에 머지않아 득력得力을 하게 된다.
득력이라 함은 화두를 굳이 들지 않아도 정진이 자동적으로 되어가는 것을 말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한결같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어떠한 행위를 해도 정진은 계속되는 것이다.
공부가 몸을 떠나지 않고 몸이 공부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득력한 수행자 자신이 아무리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용을 쓰고 애를 써도 공부는 항상 여일如一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깊은 잠에 들어 있거나 잠에서 깨어 있으나 정진을 하지 않아도 항상 저절로 정진이 되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이것은 상식과 이론을 초월하는 것이고 참선법에서만 가능한일이다.
그러나 득력하기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업에 종사하거나 어떠한 조직에서 활동을 하려고 해도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주나 직장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모두 힘들지 않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흔한 장사를 하더라도 가게 문을 열어 놓기만 하고 그냥 앉아 있기만 한다고 장사가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고객의 취향과 수준에 맞춰서 물건의 구색을 빠지지 않게 구비해야 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자존심을 낮추고 찾아온 손님에게 친절해야 그나마 장사를 유지할 수가 있다.
더 나아가 그 업종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 잠잘 때 잠안 자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 놀 때 열심히 일해야 성공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생각하기를 “내가 이 장사를 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며 항상 연구하며 자신을 살펴보면서 자기관리에 소홀하지 않아야 크게 성공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운동선수들도 똑같다.
야구선수들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소속팀에서 제일가는 에이스에 속하는 선발선수가 아닌 보통의 선수들이라 할지라도 손바닥을 보면 손에 굳은살이 못 박여 일용직으로 막노동 하는 사람보다 손이 더 거칠다.
매일 방망이를 휘두르며 타격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이 없이는 그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러니 선발선수가 되려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없으면 그 조직에서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사회의 어느 분야이던 피나는 노력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세속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것도 이러할진대 우리는 전생의 무량한 세월로 부터 윤회를 거듭하며 지어온 무명無明과 탐진치貪瞋痴 에 의한 무수한 업장業障들이 우리의 심식心識을 두텁게 감싸고 있는데 별다른 노력 없이 하루아침에 부처의 자리에 오르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조사선의 돈오돈수頓悟頓修 선법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단번에 곧바로 뛰어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금생에 선지식의 말 한마디에 몰록 깨우침을 얻을 정도의 대근기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전생에 뼈를 깎는 수행이 없었다면 금생에 단번의 깨달음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무슨 일이던 힘들이지 않고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힘이 들어도 한번은 꼭 이 참선에서의 득력의 관문을 거쳐야 된다.
여기서 황벽선사의 게송을 소개한다.
逈脫塵勞事非常(형탈진로사비상)
緊把繩頭做一場(긴파승두주일장)
不是一番寒徹骨(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
티끌세상 벗어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다.
마음고삐 단단히 붙잡고 한바탕 일을 치러야 되나니!
한차례 뼈를 깎는 추위를 만나지 않았던들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
참선을 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득력을 해야 된다.
득력을 하지 않고는 평생은 고사하고 수 없는 생을 번복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취생몽사醉生夢死 하며 생사고해를 넘나드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먹고사는 일도 바쁘지만 한번쯤은 깊이 고민해야 될 문제이다.
참선은 오락이나 심심풀이로 하는 레크리에이션 아니다.
참선을 하기위해서는 화두를 들어야 되는데 전장戰場에 나가는 전사戰士와 같은 비장한 각오를 갖고 부처를 믿고 역대 조사를 믿고 이 공부를 하면 나도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굳은 신심이 있어야 된다.
그리고 화두의심을 할 때는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마음이 사무치도록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하여 360골절과 8만4천의 모공毛孔까지 온 몸이 한 덩어리의 의심의 뭉치가 되어야 한다.
또한 부처님이나 역대조사들 그리고 많은 선지식들은 고해苦海인 삼계를 벗어나 이고득락離苦得樂하여 고통을 여의었는데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 고통스러운 사바세계에서 이 고생을 하며 어둠속을 헤매고 있는가!
참으로 분통하구나! 하는 큰 분심이 일어나야 된다.
이러한 다짐 속에 긴장을 풀고 마음을 차분히 하여 될 수 있으면 격리된 처소에서 정진을 해야 된다.
처음 공부가 참으로 중요하니 될 수 있으면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화두의심을 들어야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화두의심을 할 때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되어 <간절함>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쇠뿔은 단김에 빼야 된다.”는 말이 있듯이 정진을 할 때 쉬지 말고 용맹정진을 해야 된다.
정진을 하다 말다하면 그 공부는 늘어져서 목적을 달성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너무 의욕意欲을 앞세워 정진하다 보면 도道를 빨리 이루겠다는 쾌속심快速心이 오히려 공부를 더 느리게 할 수 있으니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정진해야 된다.
산승은 처음 좌선할 때 인공위성에 비유를 자주 든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참으로 장관壯觀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빌딩만한 높고 큰 쇳덩이를 하늘높이 쏘아 올리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TV에서 볼 때는 그냥 땅위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발사대 밑에는 아주 커다란 지하벙커가 있다.
인공위성을 발사할 때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화염과 열기 그리고 가스를 그 지하벙커에서 흡수하여 처리하는 것이다.
만일 땅위에서 그대로 인공위성을 발사한다면 인공위성은 그 뜨거운 열기로 녹아 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빌딩처럼 크고 무거운 쇳덩어리를 저 높은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리려면 엄청난 추진력이 필요한 것이다.
인공위성이 발사되면 한참 상공으로 무시무시한 추진력으로 올라가고 또 올라 가다보면 인공위성 본체 옆에 붙어있는 보조추진 로켓에 점화되어 더 힘차게 한참 올라간다.
조금이라도 힘이 모자라면 궤도에 진입하기 전에 밑으로 추락해버리니 계속 올라 가야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쉬지 않고 올라가 마침내 대기권에 진입하게 되면 추진 로켓은 본체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고 궁극에는 본체만 대기권 밖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보조 추진로켓 장치가 없다면 힘이 떨어져 지상이던 해상이던 밑으로 떨어져 추락 할 것이다.
일단대기권으로 진입하면 힘들이지 않고 우주여행을 할 수가 있다.
우리 좌선도 이와 똑같은 것이다.
처음 공부해서 본궤도에 진입할 때 까지는 쉬지 말고 꾸준히 용맹정진을 해야 된다.
이때에 공부를 중단하거나 하다말다하면 추진력이 떨어져서 화두의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
본궤도에 진입하게 되면 이것을 득력得力이라고 하며 더 이상 뒤로 후퇴하지 않는다 하여 불퇴전不退轉자리라고 한다.
득력하여 한번 불퇴전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어떠한 경우에도 더 이상 뒤로는 후퇴하지 않는다.
한 가지 비유를 든다면,
그것은 마치 우리가 설 때가 되면 떡국을 만들기 위해서 떡 방앗간에 가서 흰 떡가래를 빼는데 떡가래를 빼려면 흰쌀을 물에 불린 다음 분쇄하여 뜨거운 증기로 쪄야된다.
그 뜨거운 떡쌀을 떡가래 빼는 기계입구에다 집어넣고 굵고 긴 둥근 나무로 사정없이 구멍에다 밀어 넣으면 밑의 동그란 구멍에서는 기다랗게 흰떡가래가 되어 나온다.
한번 기계에 들어간 떡살은 밑으로만 내려갈 갈지언정 절대로 방향을 바꾸어 따른 데로 나갈 수 가 없다.
그렇듯이 화두가 발동이 걸리어 득력하여 한번 불퇴전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절대로 후퇴하거나 다른 데로 방향을 바꿀 수 가 없다.
잠을 자던 밥을 먹던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일용처日用處와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진이 되어 오로지 깨달음 의 길로만 나가서 궁극에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화두에 발동이 걸리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동안은 도량 내를 벗어나지 않고 정진해야 된다.
도량 내에서라도 과도 하게 움직이지 말고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 정도는 도거와 혼침을 극복하면서 맑은 정신으로 정진을 해야 된다.
화두에 대한 의심이 돈독해지면 잡념 망상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머리에 화두의 기운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은 상기병이 아니니 개의치 말고 계속 의심을 해야 된다.
정진을 열심히 하다보면 자연적으로 온몸의 기운氣運이 머리로 올라오게 되는데 혹자或者는 이 기운을 상기병이라고 하여 고약한 선병禪病이라고 치부置簿하기도 한다.
물론 이 경계에서 공부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것이 당연한 처사處事이기도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모르고 잘못 쓰면 독이 되고 공부법을 잘 알아서 선용善用하면 보약이 되는 것이다.
정법의 바르고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이 고비를 잘 넘겨야 된다.
이 기운을 밑으로 내리기 위해서 단전丹田으로 화두를 든다던가. 호흡법呼吸法을 병행하여 화두를 들기도 하는데 그 방법은 올바른 조사선이 아니다.
이 경계에서 화두의 기운을 운용運用하는 방법은 요중공부를 하면서 해결되는데 다음기회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정진에 탄력彈力이 붙기 시작하면 머리가 불같이 뜨겁게 되었다가 갑자기 차가운 알코올을 머리위에 쏟아 부은 듯 차가워지기도 하는 데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니 개의치 말고 계속 정진을 해야 된다.
온몸의 힘을 다하여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생명을 걸고 밀어야 된다.
온몸의 힘을 다하여 민다는 말은 순수한 정신력으로 정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억지로 육체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순수한 정신력으로 정진한다 하여도 자연스럽게 육체의 힘도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기력은 점점 쇠진될 수밖에 없다.
화두에 대한 의심을 간절하게 들다보면 온몸과 마음이 하나의 의심 덩어리가 되며 침식寢食을 잊어버릴 정도로 밀어야 의정疑情이 생긴다.
간절하게 의심하다보면 의심이 끊어지지 않게 되는 데 화두의 기운이 앞으로 밀려 나가는 현상으로 느끼게 되는데 이것을 의정이라고 한다.
화두의심이 자연적으로 스스로 일어나게 되며 순풍에 돛단배처럼 흐르는 물과 같아서 구태여 애써가며 화두를 들지 않아도 된다.
의식적으로 의심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의심이 되고 화두를 들지 않아도 화두가 자연히 들리는 경지가 한참 지속되다 보면 의정이 하나의 순수한 의심의 덩어리로 단단하게 뭉치게 되는 데 이것을 의단疑團이라고한다.
이것이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동안 순풍에 돛단배와 같이 순일하게 밀려 나가던 화두의 기운이 밀려 나가지 않고 딱딱하게 뭉쳐서 굳어 버리는데 이 의심의 덩어리가 홀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을 의단독로疑團獨露라고 한다.
이때가 되면 의식이 차별상差別相을 여의게 되어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며 즉 능能과 소所가 하나가 된다하여 능소를 올렸다고 하며 우리가 말하는 득력을 했다는 불퇴전의 자리인데 대근기의 수행자는 이 경계에서 몰록 깨달을 수 도 있다.
무정물無情物 과 같이 뜻의 길인 의로意路와 이치의 길인 이로理路가 모두 차단되고 사량분별이 끊어져 심행처멸心行處滅이 되어야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나 득력을 하게 되면 돌아다니면서도 정진할 수 가있다.
생업에 종사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 자체가 정진이기 때문에 손쉽게 참선 수행을 할 수 있다.
그 때까지만 어느 일정기간 동안 시간을 내어 정진하게 된다면 부처님의 혜명을 이을 수 있으니 깊이 고민해 볼만한 중대사인 것이다.
불교는 체험이다. 특히 참선은 스스로 수행을 하여 직접 체득體得해야 되기 때문에 이론으로 안다고 하여도 그것은 도道가 아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을 40여 년을 시봉 했는데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허구한 날 이론으로만 공부하여 바다와 같이 많은 팔만사천대장경을 모두 외운다 해도 하루 동안 참선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셨으니,
참선 공부가 아니면 결국엔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 기나긴 여정旅程 인 듯 하지만, 인생이 길어봤자 80-90이다.
모든 것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고 전광석화처럼 빠른 것 이 세월이니 청춘도 일순간에 지나가는 법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언제인가는 한번은 장례식장 병원냉동실에 들어갔다가 화장터에서 화장해 버리면 한줌의 재가 되어 들판에 뿌려지는 신세이다.
사람이 죽으면 동전한 잎 가져가지 못하고 살아서 아끼던 이 몸뚱이도 곧 공중분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것이 중생사衆生事인데 무엇이 더 급한 일이 있어 금쪽같은 시간을 헛되이 보낸단 말인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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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큰 스님 법문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안하십시요...
참선 수행은 승속을 막론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부처님 법중에 가장 수승한 수행법입니다.
세속에서 바쁜 중이지만 생사고해를 여의는 일이 화급火急하니 꼭 열심히 수행하시길 빕니다.
큰스님 진심으로 감사3배 드립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지만 간절히 문의드립니다.
저의 직장업무가 예민하다보니 항상 정신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선지식께 점지받은 것도 아니고 그 와중에 무턱대고 나혼자 "이뭣고?"화두를 들고 있는데
참으로 요원한것 같습니다. 집에서건 직장에서건 시간만 나면 눈치안보고 앉아 화두들고는 있지만
머리만 아프고 자꾸 몸은 쇠약해지는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날이선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주변에서는 확연히 느낄 정도라고 얘기합니다.
그래도 이 길밖에 없다라는걸 알고 있으니 안할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합니다.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 직장 일에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직장일 하면서 동시에 화두를 들수는 없습니다.
물론 불자님이 공부가 깊어서 요중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정에 들어오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그것이 道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도의 경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으니 남는 시간이라도 아껴서 정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화두를 들면 당연히 신경이 날카로워 집니다.
그러나 직장과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화두를 들기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몸이 쇠약해진다면 우선 건강을 돌봐야 됩니다.
처음 반야심경을 접했을때 너무 놀라 솜이 물을 빨아드리듯 만사 젖혀놓고 불교에 빠져들었습니다.
그가운데 "조견오온개공도일체고액" 이란 글귀를 보고 약1년동안은 텅비운 맘이 되니 누구를 만나도
부담이 없어지고 편해지니 만나는 사람마다 저와 가까이 할려고 하는 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다 "空"에 빠지면 심신이 안락할지라도 깨달을수 없다는 송담스님법문을 듣고(라디오) 무턱대고
혼자 "이뭣고?"화두들다보니 온갖 마장같은게 생기는것 같고 희한한 일들이 정신을 흐리게 합니다.
가족들은 참 화목(아직까지도)한데 다치고하는 일들이 발생하니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이 가르침이
완전한 진리란걸 심신에 녹아들어버리니
"공"이라는 것은 생각으로 조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은 부단한 수행의 결과로써 몸으로 체득해야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의 “空”은 무기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속에서 생활하면서 정진해서는 절대로 “空”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무기공"이 아닌 순수한" 공"이라면 "공"속에는 "유"가 있는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말고 정진하시면 됩니다.
참선한다고 마장이 찾아와 가정의 화합이 깨지는 것은 아닙니다.
역행보살逆行菩薩이 일부러 공부 경계를 도와주기 위해서 시련을 주는 경우는 있습니다.
물러설수도 없는 지경입니다. 근데 이상한게 분명히 언젠가 이걸 맛봣다는 느낌,해봤다는 느낌이
줄금줄금 와 닿습니다.
큰스님.
이럴땐 어떻게 밀고 나가야 하는지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화두를 순일하게 드는 방법에 대해
간절히 법문을 구하고자 합니다.
참으로 송구스럽고 부끄럽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것,
둘째, 직장과 가정에 충실할 것,
셋째.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화두를 들고 열심히 정진할 것.
이상과 같이 하면 마음도 편해지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될 것입니다.
생활이 정진이고 정진이 생활이 될때까지 열심히 하십시오.
자신의 하는 모든 일이 공부로 합일되면 그때 부터는 참선하는 것이 세수하다 코 만지는 것 보다 더 쉽습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온 몸으로 감사드립니다.
꼭 지금 저의 맘상태를 꿔뚫어 보시는 것 같아 황망합니다.
부디 부디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동안거 결재일인 보름입니다~^^
귀감이되는 법문을 보게되는 행운의 날이기도 합니다
모든분들이 다함께 이 법문을 보고 열심히 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12.05 09:52
다시한번 화두 들어 봅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