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어느날,
친구와 후배들이 안산에서 자취하는 후배집에 모여 주말을 이용한 음주파티를 열었다.
빙 둘러 앉아 맥주며 소주 그리고 간단한 양주까지 마셔가며 '부어라 마셔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덫 지친 기색들이 역력하고 더러는 술에 나가 떨어기도 한 상황이다.
파장 분위기에 다음날 근처 올갱이 해장국집을 예약하고 모두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술을 덜 마셨는지 잠이 오질 않는다.
해서, 건너방에 들어가 아남전자 상표가 선명한, cd플레이어가 장착된 오디오 곁으로 갔다.
음악, 특히 팝송을 좋아하는 후배.
늘 차에 카세트 테입을 녹음해서 다양하게 틀어주던 팝송 매니아.
저 한 켠에 국내 가수 음반도 있는 듯 해서 뒤적이다,
하나의 cd를 선택해서 들어보기로 했다.
틀자마자 시작된 놀라운 전주곡에 순간 매료되어 반복 재생버튼을 눌러댄다.
이 곡을 언제 들었던 적이 있던가?
기이한 일이다.
스탕달 증후군은 아니더라도 뭔가 빨려들어가는 힘이 예사롭지 않다.
(대중문화에도 그런 증후군을 언급하는 지는 알 수 없다. 하도 고전예술과 귀족적인 그리고 웅장한 문화예술에만
기이하고 충격적인 체험을 높이 쳐주는 인간사회 주도적 흐름이 있기에...)
*스탕달 증후군(Stendhal syndrome)은 아름다운 그림 같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의식 혼란, 어지러움증, 심하면 환각을 경험하는 현상 ...
밤을 지나 새벽이 오고 먼동이 터오는데도 멈출 수가 없다.
그런데 왜 하필 이 곡만 이런가?
같은 가수의 다른 곡들은 안 그런데 왜 이곡만이 깊은 감동과 마음을 사로잡는 에너지를 방출하는가?
겨울이라는 분위기와 발라드 특유의 부드러운 감성 그리고 혼자 있는 고독감에 아련한 추억이 될 거라는 먼 미래에서
찾아온 시간을 초월한 영감 같은 것이 더해져 그런 것일까?
아침이 되고 뒷산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서야 이 곡의 마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 언젠가는 지인의 집에 일주일정도 머물다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날 들 중 어느 하루, 영화음악 모음집 cd가 있길래 틀어보았다.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또 이전의 그것과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이제는 살짝 눈물도 난다.
무한 반복 재생을 통해서 또 그 곡만 듣는다.
다른 곡은 별 감흥이 없는데, 유달리 그 곡만이 소위 말하는 심금을 울려댄다.
나는 오늘 이곡의 포로가 되었다.
음악시스템이 좋은 것도 아니고, 또 아주 유명해서 누구나 들으면 바로 귀가 열리는 그런
대단한 명곡도 아닐진대, 도대체 왜 이 곡만이 지금 이순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마치 오래전 종교를 가지고 있었을 때,
어떤 분의 몇마디 말에 멍해지고 온통 주변이 정지된 듯한 그런 느낌.
그분은 성직자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슷한 느낌이다.
광적인 헤비메탈로 무아지경에 빠져 주변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손으로
기타를 치는 흉내를 내며 몰입해 있는 청년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날은 서양 클래식 음악이 귀에 들어온다.
가만히 앉아서 하루종일 듣는다.
이런적이 없었는데...
다소 활동적이고 갑갑한 걸 싫어하는 내가 하루종일 꼼짝않고 음악을 듣는다.
그것도 클래식 음악을...
그 다음날도...그 다음날도...그 다음날도...
한달간 내내 그렇게 듣고 나서 나의 귀가 다른 음악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지금은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고 듣는다.
길을 지나다가 술집이나 스마트폰 판매처에서 들려오는 곡 중,
'저 곡은 뭐지?'
찾아보거나 아니면 어느날 우연히 알게 되면
이 곡이 그 곡이었으나 하는 생각에 한 번 씨익 웃어 본다.
내 주변에는 음악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성악가, 음악교사 등을 비롯해서 아까 말한 팝송 매니아,
그리고 생활속에서 음악을 듣고 즐기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취미로 듣는 음악...
국내 가요만 듣는 사람.
클래식만 듣는 사람.
팝송만 듣는 사람.
국악과 같은 전통음악에 몰입하는 사람.
직업적 특성에 따라 특정분야의 음악을 하거나 심취한 사람
미세한 청각적 섬세함으로 오디오 시스템에 대해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
지식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와 역사를 동반해야 음악을 듣는 참맛이 난다고 하는 사람.
음악을 전공하느라 음악이라면 자신있다는 생각에 노출된 사람.(취미는 없을 수 있다.)
클래식을 전공하거나 전통국악에 종사하거나 아니면 고전음악에 빠져 드는 사람의 결례 중 하나가
대중음악을 값싼 저급한 음악이나 수준이 낮은 사람이나 듣는 음악이란 인식을 가진 양반 상놈 지휘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고전이라고 하는 음악장르도 당대에는 대중음악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시대가 변해서 고급음악이나 고전으로 대접을 받지만...
하지만 역으로 보면 당시의 대중음악 수준이 그정도로 높았거나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의식수준이나
문화를 향유하는 능력이 위대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요즘은 내 감정의 상태에 따라서 다양한 음악을 듣고 즐긴다.
아직도 버릇은 누가 누군지 명확한 구분을 하지 않고 창작자나 가수등의 정보를 누락시키고 듣는다.
머리가 나쁜 탓도 있지만, 인터넷에 이름만 치면 쏟아지는 정보와 접할 수 있는 음악들 덕에
안 그래도 귀차니즘을 장착하고 살아하는 나에게는 새새하게 머리에 입력할 필요 없다는 판단이다.
음악적 편식이 심한 사람.
가장 대하기 힘든 부류다.
아예 자신이 추종하는 음악 외에는 음악도 아니라는 관념을 가진 듯 하기도 하다.
등급에 따라서 음악을 분류하기도 하고...(이건 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도 선호하는 음악적 장르가 있기는 하니까...)
또 어느 친구는 아예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신이 들어서 좋은 것은 정말로 좋은 것이다라는 것.
이 무슨 근본(근거) 없는 자신감일까?-급식체로 근자감?
유투브를 들어가서 좋은 곡 모아 놓았다고 들어보면 서너곡 외에는 분명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하나 하나 나의 기호에 맞는 음악을 선택해서 컴퓨터나 테블릿pc 그리고
스마트폰에 담아, 갑자기 '그 곡'이 생각이 나면 한 번이나 서너번 정도 조용히 감상하곤 한다.
또 오랜 동안 특정 분야에 지식이 쌓이고 음악에 조예가 깊어진 사람이
나머지 사라들을 햇병아리 취급을 하며 자신이 듣는 경지에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로를 지시해 준다.
고두심이 말한다.
"잘났어 정말~"
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모두가 음악을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닌란
것쯤은 알았으면 좋겠건만....
전문가가 된다는 것의 우려.
클래식음악쪽으로 작곡 전문가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속하지 않은 분야에는 소위 말하는 '전문가 바보'란 사실을 망각하며
사는 듯 하다.
직업병인 듯 한 생각도 한 몫하는 듯 하다.
오랜 레슨으로 다져진 기질로 인해서 타 분야도 자꾸 코치를 하거나 가르치려는 성향.
친한 친구였는데 말하면 자존심 상할까 해서 그냥 넘어갔다.
음악의 문외한.
잡식성雜食性. 술을 가리지 않고 먹으면 잡음성雜飮性이라고 한다.
학교음악이 다 고전적인 것이기에 다들 알아서 대중음악을 들으며 균형을 마추는 것일까?
학교 다니면서 제일 싫었던 것 중의 하나가 정해진 곡을 학우들 앞에서 불러야 하는 것.
학창시절 중창단을 하고 종교활동으로 성가대를 했지만 독창으로 소화해야 하는
나의 기질에 맞지 않는 불편함을 감수하느라 애를 먹었다.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이다.
해박한 음악적 지식이나 잡학박사처럼 대중음악지도를 그리고 다니는 걸 부러워 해본적이 없다.
직업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거나 아니면 매니아적 기질로 인해서 한 분야를 씹어먹어야 성미가 차는
-과거 영어 사전을 통째로 외우고 하나씩 씹어서 먹어버리는 것 같은- 인간파쇄기가 아니니 더욱 그렇다.
음악을 듣는 귀는 누구나 다 있다.
배워서 듣는 것도 있겠으나 내 성격상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혀 배우지 않고 뭔가를 얻겠다는 공짜심보는 아니다.
하지만 그 균형이 깨지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상실되는 것 같아서 조심할 뿐이다.
오래전 아이가 좋아서 유치원 교사가 된 선배가 있었는데,
당연히 직업으로 택한 보육교사, 하지만 더이상 직업적으로 대하는 아이는 자신이 전에
느끼던 아이가 아린 사실을 알고 그 일을 그만 두고 불행해지는 것을 보기도 했다.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음악을 한다는 것은 자칫 음악에서 멀어지는 아이러니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질이 바탕으로 깔리지 않으면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없다.
시대가 변해서 고성능 카메라, 고화질 tv, 동영상도 초고화질을 찾는가 하면,
기술의 발달으로 이루어낸 업적들을 만끽하기에 여념이 없다.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이란 선명도에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시대.
컴퓨터 조립을 좀 해보니 다양한 등급에 따라 cpu 그리고 그에 맞는 보드에 그래픽 카드 장착...
돈만 주면 하이엔드 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
게임 마니아들의 천국이 눈 앞에서 바로 실현되는 세상.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일변도의 세상 아닌가.
오디오 시스템에 목매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이라도 좋은 음질과 사운드로 음악을 듣기 위해 고가의 장비를 구매해가며
다달이 퀄리티를 상승시킨다.
어찌보면 오래된 분들은 남들에게 '나 이정도'다 라는 과시용으로 장만한 듯 하기도 하다.
상류사회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시기에 서로 정보를 교환해가며 구비하는 경쟁이 붙기도 한.
이런 경우 '내게 맞는' 이란 개념 자체가 아예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 소리의 즐거움이나 감동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사운드의 저급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과연 아무문제가 없는 것일까?
방송영상이나 라디오음악 송출시간도 아닌데...
국내 음악방송이나 kpop 해외공연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영상과는 대비되는 음질을 지적하기도 한다.
기술이 발달하고 음악은 이제 시각적인 것까지도 그 영역을 넓혀 가는 듯 하다.
오페라나 뮤지컬 같은 공연장르도 있지만 유투브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발달로
보여주는 음악이 주를 이루는 시대가 된 듯 하다.
그리고 그에 맞는 사운드의 발달은 보통 사람들이 듣는 수준 이상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이전에 느끼는 그런 음악적 감흥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사운드와 오디오 시스템을 가져다 준다해도...
소리는 마약과 같다?
카드를 긁어서라도 고가의 스피커를 장만하던 분이 생각난다.
멈출 수 없는 행진...
조금더 정밀하고 다양한 소리를 요구하는 단계를 계속 거쳐야 하는, 그래서
금방 질려버리고 다시 다른 음질과 고급품을 선택해야 하는...
스티븐 킹이 한 말처럼 '문명사회의 병은 광적인 집착의 취미'.
이것이 다행히도 직업이 되면 천운이라고 하는...
아니면?
직업이란 안전장치가 없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별로 여의치 않으면, 고소득자가 아니라면,
성공한 덕후가 되지 않으면...
또 하나의 안전장치가 있다면?
음악을 즐기는 문화가 보기에 따라서 질병같은? 왜곡된 현상을 막아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음악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는가의 문제이긴 한데,
위에서 열거한 다양한 것들 중 하나라고 한다면 그렇게 추구하며 살면 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사람들도 없다.
집단의 암믁적 용인에 의해서 벌어진 사태이기에...
그러나 음악자체의 즐거움이 배제된 외형적 비대함이 과연 옳은 길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점이 생기기는 한다.
음악의 편식과 편견의 위험성은 말할 것도 없고.
편식과 편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강요하지는 말기...음악을 취미로 듣는자에게 규칙정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