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달성공원에는 정일권장군 공적비가 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찾으나마나 모른다고들 할게 뻔하니까 찾지도 않겠다.
그래도 보존이라도 했으면 이역시 볼거리도 되어서 하나의 관광자원이 되었을텐데~~
그위치는 공원입구 들어서면서 왼쪽, 지금 관리사무소가 서있는 그 자리다.
여기서 잠깐 혹시 정일권장군이 누구인지 모르실 분이 계실까해서 소개 간단히 드리면,
대한민국에서 관운이 제일 좋은 사람이다.
육군 참모총장(대장),주미대사,외무부 장관 ,국회의장,민주 공화당 총재,국무총리 등
대통령 빼놓고는 다 했지. 골치 아픈 (노무현식 못해먹겠다는) 대통령보다 실속있는~~
6.25사변시 육군 참모총장을 했기에, 당시 육군본부가 대구에 있었고, 또 대구 방어를 성공적
으로 해서 대반전의 발판을 마련한 공로로 본다.
당시 대구 방어선이 무너졌으면 부산까지는, 북한이 파죽지세로 밀어 부쳐 그들이 말하는
적화통일이 이루어 졌을텐데, 그리 되었으면 맥아더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이 아니고 부산 상륙작전이 이루어 졌을 것이다.
대구야말로 대한민국의 구세주나 다름없다.난 60평생 이를 자부심으로 삼았고,
서울 거주할때도 누가 고향을 물으면 자랑스럽게 "대구"라고 목에 힘주었다.
여기서 정일권장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말들도 많고, 우유부단하며 기회주의
라는 말이 많았는데,내가 보기에도 인상은 장군이라기는 좀 어울리지 않는 동안이며 좀 물렁한
스타일 이다. 그래서 출세 했는지?
6.25전사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북한의 기습 남침에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정부에서는 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미국에 유학중인
정장군을 귀국토록 조치하여,군용기로 귀국하는데 3일 걸려 수원 비행장에 도착하였다.
한강 이남으로 후퇴한 국군은 시흥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당시 참모총장은 총참모장이라 호칭되었고,일본 육사 출신 병기 병과 채병덕 소장이었다.
창군 당시 인적 자원도 모자라고 엄격한 일본식 서열을 중시하니까 병과나 경력 고려없이 최고참을
총참모장으로 발탁한것 같았다.그기다가 일요일날 북한으로 부터 기습을 당하니 밀릴수밖에~~
그러니 자연적으로 책임론이 거론되고, 총참모장은 해임되고 신임 총참모장에 정일권소장이
임명되었다. 그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통이고 정소장이 미국에 유학중이였으니~~
정소장이 특명을 받고 시흥에 도착하니 채병덕 소장은 정신없이 좌충우돌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채소장은 몸집이 비대하고 아마 체중이 100kg이상 나가는 거구에다 얼굴이 얼마나 큰지
미군 철모가 오히려 작아 보였다. 나도 그분을 기록 영화를 통해 본것 뿐이고~~ 그러니 눈치가
좀 없었다. 벌써 미국에 있는 정소장이 급거 귀국해 찾아왔으면 눈치를 채야 되는데, 이러니
정소장은 '내가 후임이니 인계하시오', 소리도 못하고, 나라의 운명이 걸리고 막중한 책임이 있는
그 순간에도 4일동안 채소장 뒤를 화장실 빼놓고는 졸졸 따라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 4일지난 후에야 채소장이 인식을하고,인계를하고 백의종군 하다가 경남 하동 전투에서
전사하여 초기 패전의 책임을 다했다고본다. 한국전쟁 최초의 장성급 전사자이다.
전쟁 초기 4일을 이런식으로 흘려 보냈다니 우유부단 하다고 볼수있고 또 이러니 관운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공적비 얘기가 엉뚱한데로 흘러가 중요한 시간을 허비했네요. 이 비석에도 에피소드가 있다.
어릴적 6.25전에 그쪽 자리에 비석이 4~5개 있었다. 일제때 있던 비석이라 우리의 막대 일자혛이
아니고 탑(다보탑)형태의 작고 (2m정도 높이) 아담하며 화강암을 매끈하게 연마한 조형물이였다.그중에
눈에 띄는 게 있어서 형님께 무슨 비냐 물었더니 일제때 순직 소방관의 비석이라했다.
소방관의 순직이라면 화재 진압하다 당한 아까운 죽음이라, 어린 마음에도 그 비석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나고 ,어느날 공원에 올라 그 비석을 보니 비석 모양은 그대로 인데
탑 상부 새긴 글이 "정일권 장군 공적비"라고 둔갑되어 있는 것이다. 처음엔 내눈을 의심했는데 다시
봐도 틀림없는 정장군 공적비라! 어릴적 소견에도 이건 아니다! 이건 오히려 욕 보이는거다! 그랬다.
언제 제막식을 했는지? 불청객이지만 항상 제일 중요한 엑스트라인 나한테 제막식 초청이 왜 없었는지~~
기술도 좋았다. 탑 상단부 음각으로 새긴 글씨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탑 상단부를 바꾸어 놓은것도
아닌것 같고, 지금 까지도 풀리지 않고 아마 영원히 않풀릴것같다. 그 기술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테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당시 그만큼 대구시 재정도 없고, 생각 조차도 원시적
이었으니~~ 제막식때 정장군이 왔었는지? 정장군이 국무총리 하실때 이실직고 고자질해서 나도
점수 좀 딸걸!
이 사실은 나밖에 모르거던!!! 이런 사연이 있기에 이 비석은 보존하지 않았을것이다.
ps)정일권장군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것은 이글이 다른 불로그에도 올라가기에 젊은 층이나 여성분 들도 읽을수 있기때문
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