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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절 예정 조화. VII. L’harmonie préétablie 226.
모나드들 그 자체들 사이를 연결하는 계열의 법칙은 예정 조화(harmonie préétablie)라고 부르다. 이 법칙은 신이 자기의 의지와 지혜에 의해 모나드들의 존재로 이끌었다는 의미에서 이다. 이는 마치 각 모나드의 지각작용들이 매 순간에 서로 응답하면서, 각 지각자용은, 각각의 지각이 우주에 관해 갖는 관점에 의하여, 또는 은유없이 명석함의 정도에 의해서, 다른 지각작용들과 구별된다. 따라서 예정조화는, 신이 각 모나드를 창조하면서, 다른 모든 모나드들을 고려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세계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사건들과 더불어 개별적 세계를 창조할 의지는 원초적 또는 절대적 명령(un décret, 계명)이 아니다. 신에서부터 분리되어 나온 의지는 없다. 그러나 가장 가능한 최상의 세계를 원했기에, 신은 실체들의 각각에게 가능한 모든 완전성을 주었다. 그 결과로 개별적 실체에 또는 실체의 사건을 고려하는 그의 명령은 우주적 질서의 결과로서 항상 가설로서(ex hypothesi) 명령이다. (226)
예정 조화는 (순수하게 이상적인) 어떤 의미에서 모나드가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설명하게 해 준다. 존재 전체가 표상적이 되는 모나드에서, 능동은 명석함의 상위 정도에서 이행을 지칭하며, 수동은 하위 정도에서 이행을 지칭한다. 그런데 조화 덕분에, 하나의 모나드에서 명석함의 증가는 하나의 또는 여러 다른 모나드들에서 명석함의 축소를 필연적 상관관계로 삼는다. 이때에 전자의 능동이 후자의 수동에 작용한다고 사람들은 (이상적으로) 말할 수 있다. 이런 개입의 특별한 경우는 영혼과 신쳉의 통합의 문제에 관하여 명증하게 밝힌다. 영혼과 신체 사이에, 데카르트가 그러길 원했던 대로 실재적인 영향도, 말브랑시가 그러길 바랐던 대로 기회 원인성도 없다. 그러나 예정조화가 있으며, 마치 그거들의 제작에서 아주 잘 맞추어진 두 시계들 사이에서와 마찬가지이다. 그 두 시계는 무한히 서로 서로 동일한 시간을 표시하기를 연속으로 이어간다. 이런 독립성과 이런 자발성은, 이 상적 재료에서 사람들이 어떤 의미에서 개입을 말할 수 있는 것을 막지 못하다. 그 개입이란 하나 속에서 능동이 있는 것에. 다른 하나 속에 수동이 상응하는 것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이다. (227) (57MKB)
9절 자유와 변신론: 낙천주의. VIII. La liberté et la théodicée: l’optimisme 227.
자유의 문제는 또한 단자론에서 자신의 해결책을 찾는다. 자발적이지도 않고, 그 자체로부터 오지 않는 모나드의 모습변화는 없다. 그러나 전체 질서로 이루어진 모나드들은 현존한다. [전체 질서란] 즉 완전한 소멸 상태에서 우리가 갖는 지각작용들 자체들보다 지각작용들이 더 혼합되어 있는 지각작용들에서부터, 명석 판명한 관념들에 의해 능동작용들이 규정하였던 합리적 모나드들에 이르기까지이다. 자유롭다고 불렸던 것은 이런 류의 작동들(des actes)이며, 따라서 자유란 전혀 아니고, 심지어는 비규정성을 가정하지도 않는다. 모나드의 내적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작동, 마치 그 나머지 모든 것과 같은 파생된 작동은 일종의 추릭적 결정론은 드러낸다. 그러나 아르노는 라이프니츠에게 반박한다. 그러한 자유는 작동의 작자[창조자] 편에서 어떤 책임성도 함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만일 그의 용어일 뿐인 [원]죄와 더불어 아담의 창조가 신적 명령의 대상이라면, 사람들은 신이 죄의 작자[창조자]라고 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플라톤 이래로 모은 신학자들은 따로 떼어놓으려는 것을 반대했다. (227)
라이프니츠는 자신은 보다 긴 작품들 중의 하나인 변신론(1710-14) 속에서 이 문제를 훨씬 더 확대하여 제기했다. 그 작품은 죄진 자[죄]의 보다 일반적으로 잘 못한 자[악]의 창조자이라고 고발당하는 신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이 책은 스토아학자들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유래한 전통적인 교육의 영감을 받은 것이다. 데카르트도 넷째 형이상학적 성찰에서 마찬가지로 이런 교육을 이용했다. 라이프니츠는 형이상학적 잘못(le mal métaphysique), 즉 불완전성, 물리학적 잘못(le mal physique), 즉 고통, 짝의 잘못(le mal de couple), 즉 죄(péché)를 구별하였다. 불완전성은 모든 피조물들에 내속하는 한계들로부터 도출한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신이 전체 속에서 자기 자리를 고려함이 없이 어떠한 존재도 창조하기 않았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그가 최상의 가능한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을 안다면, 사람들은 이로부터 다음을 연역한다: 만일 사람들이 사물들의 일체를 생각한다면, 피조물 전체는 각 순간에 자기에 부여된 완전성을 소유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우리가 따로 그리고 추상적으로만 사물들을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사물은] 우리에게 그것이 완전하게 있을 수 있는 것보다 덜 완전하게 나타난다. 물리학적 잘못 또는 고통은, 마치 불안전함의 귀결처럼(고통은 수동성과 연결되어 있으며)이든지, 또는 마치 죄의 귀결처럼이든지, 신적인 정의에 의해 정립되어 설명된다. 짝의 잘못이 남는다. 아담의 죄는 단순한 불완전함이 아니며, 오히려 그의 주도권으로부터 태어난 적극적 잘못이며, 인류의 숙명을 변형시켰던 적극적 잘못이다. 그는[아담은] 모든 사물들 속에 이런 종류의 불연속성을 도입한다. 라이프니츠는 도처에서 우주에 대한 자기 통찰로부터 이런 불연속성을 추방하고자 원했다. 그러면 어떻게 그가 이 독단과 일치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난점이 그에게 고유하게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 난점은 신학에 전통적이라는 것을 보태야한 한다. 여기서 이 신학은 절대적으로 권능 있고 전체를 아는[전지전능한] 신을 인정하면서, 이 신학은 신이, 아담은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죄를 지었을 것이라는 것을, 오류가능성 없이 미리 인식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해결책이 전통적으로 동일하게 아우구스티누스의 해결책이었다는 것을 안다. 신이 선결정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사건들을 예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라이프니츠는 쉽지 않은 입장에 있다. 그가 신학자들에게 만족을 주는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 자기 체계 속에서, 사람들이 칼뱅의 유명한 절대적 명령(un décret, 계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캘빈에 따르면, 인간이 구원이든 천벌이든 숙명적인 것은, 명령에 의해, 신의 최고이며 임의적인 의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사람들은, 신이 아담의 죄를 원했다고 그리고 신이 그것에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신이 각 인간을 원초적 개별 명령에 의해 창조했다는 것을 함축한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이 개별적 명령은 반대로 전체적 명령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전체적 명령에 의해 신은 가능한 세계들 중의 가장 가능한 것을 창조했다. 따라서 신은 아담의 죄를 허락했다. 왜냐하면 아담은 세계들 중의 최상의 세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그것을 원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여, 왜냐하면 그의 의지는 아담을 대상으로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가설에 의해 신이 아담 혼자만을 창조했다면, 신은 아담을 죄짓는 자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때에 가능한 세계들의 최상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라이프니츠는 아담에게 죄를 전가하기 위하여 절대적 법령을 신이 회피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지을 것이라는 것은 필연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던 것은, 그리고 그가 지녔던 이법의 덕분에 그는 자기 범했던 최를 이해했다는 것은, 형이상학적으로 가능한 채(말하자면 모순 없이) 남아있을 것이다. (229)
그의 낙천적 자연[관]에 의하여, 라이프니츠는 세계들 중의 최상의 세계는, 소수의 선택된자들의 독단들과 같은 독단[교리]들과 합의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가 변신론 속에서 영원한 천벌을, 끝없는 고통들을, - 우주의 아름다움을 다시 세우고자하는 숙명적 대조처럼 있는 이 고통들 - 다루었던 것과 같은 문장을 그 어떠한 문장에서도 그의 무한주의의 의미를 더 잘 느껴질 수 없다. 거기에 비극적 감정은 전혀 없으며, 신적인 정의는 거기서 기하학의 정리와 같은 방식으로 엄격하다. 이런 이유로 비극은, 의지의 주제자 덕분에 어느 정도로는 우주로부터 분리되어있으면서 인간의 숙명을 마치 일종의 전체처럼 고려하는 자를 위해서만이, 현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개별적 실체들만이 현존하는 체계속에서, 또한 모든 것이 실체들의 자발성에서 흘러나오는 체계 속에서, 인간은 우주 전체로부터 기능하지 않는 어떠한 것에도 최소한의 일부를 이루지 못한다. 이러한 것은 이런 실체들이 이미 우주들이라는 것이고, 또한 인간은 실체들이 최소한 잠재적으로 포함하는 어떠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실체들의 각각은 내부로부터(dedans) 전체인 것으로 나타나며, 다른 모든 것들과 연관들에 의해서만이, 그리고 천사들과 선출 받은 자들 만큼이나 많이 천벌 받은 자들을 포함하는 위계질서 속에서 고정된 장소에 의해서만이, 한정된(définie, 정의된) 실체로 있다. (229) (57MKD)
10절 살아있는 존재 – X. L’être vivant
단자론은 라이프니츠에게 그래도 생명의 자연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인다. 어떤 의미에서, 그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하는 살아있는 존재의 문제는 그의 모나드들의 이론의 근원들 중에 하나였다. 1671년, 그 당시 그는 연금술사들과 장미십자들과 관계 맺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들과 더불어, 그것은[생명있는 존재가] 마치 신체의 핵처럼 현존한다고 자기의 확신을 가지고 표현하는데, 게다가 볼 수 없을 지라도(invisible) 부활에까지 존속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그의 주의가, 레븐후크(Leeuwenhoek, 1632-1723), 스밤메르담(Swammerdam, 1637-1680), 말피기(Malpighi, 1628-1694)의 현미경의 작업들로 이끌려졌던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이 과학자들은 대략 1670년에서 1690년 사이에 동물들 또는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살아있는 요소들에 관한 매우 중요한 발견들을 했다. 현미경은 살아있는 존재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전통에 따르면 기관들 각각은 동질적이며 직물로 형성된 기관들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관들의 부분들이 그 자체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방식으로 된 기관들로 되었다는 것을, 보게 해 주었다. 라이프니츠에게서 그것은 간접수단(le biais)이었다. 그 간접수단을 통해서 그는 생물학 속에 자기의 무한주의적 관념들을 도입했다. 간접수단은, 플로티노스가 이미 그걸 했듯이, 그에게 생명의 개념을 보편화하게 했다. 물질은 무한히 조직화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러한 것 때문에 충분하였다. 말하자면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그 자체로 조직화되지 않은 것은 없다. 우리가 하나의 동물에 대하여 그것이 태어나고 소멸한다는 것을 엄밀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이로부터 무매개적으로 나온다. 동물이 볼 수 있게 되는데 까지 자란다고 단지 말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동물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되기까지 축소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존재의 배아는 파괴들 수 없다. 게다가 무한히 계속되는 조직화는 “배들의 차곡차곡 쟁여짐”을 인정하게 해준다. 쟁여짐에 따라서 아담의 후일 전체는 그보다 선현존하며, 배아들은 무한히 작은 것에 까지 축소될 수 있는 조직체들일 뿐이다. 각 조직체는, 그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무한한 부분들로 조성[혼성]되어 있다. “중심 노나드” 속에 있는 이것들의 연결의 법칙을 필요로 한다. 중심모나드의 재현들은 물체와 물질적 우주의 나머지들 사이의 연관에 의해 이상적으로 상응한다. 모나드와 유기체의 관계는 마치 우리 영혼과 우리 신체의 관계와 같다. 이 신체의 증가에, 즉 우리가 탄생과 어른의 상태라 부르는 것에, 중심모나드 속에서 지각작용들의 명석함의 증가에 상응한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아르노와 편지 교환에서(1686), 인간 영혼들은 탄생의 찰나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영혼들의 선현존에 매우 우호적이며, 영혼은 신체의 탄생에서부터 높은 정도의 명석함으로 고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론적 영혼들은 죽음 후에도 실체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마치 원초적 혼돈의 상태에 떨어지는 짐승의 영혼들처럼), 진실한 불멸성을 소유한다. 말하자면 신의 특별한 명령[계시]에 의해 추론적 영혼은 자기들의 이법[이유]를 보존하고, 자기들의 신체와는 독립적으로 자기들의 인격성을 보존한다. (230)
사람들은 라이프니츠의 생물학적이고 유기체적인 이론이 그에게 물체[신체]들에서 통일성[단위]를 말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안다. 이런 단위는, 사람들이 이미 여러 번 보았듯이, 그 자체로 풍화되는 외연(l’extension)에 기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단위를 모나드들의 모둠에 속성을 부여하는데 어려움이 없는가? 결국 우리가 보았듯이, 우주는 전체 또는 단위[통일성]를 형성하지 못한, 모나드들의 모둠으로 형성되었고, 물체에 상응하는 모나드들의 모둠은 더 이상 단위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결과로 데 보스(Des Bosses, 1668–1738)와 편지교환에서,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항상 그의 동일한 원리에 적용하는 모나드들 사이의 실체적 연결(un lien substantiel, vinculum substantiale)을 인정하는데 이끈다. 원리란, 항들의 무한한 계열 바깥에서(여기서는 유일한 물체에 상대적인 모나드들의 무한성) 이런 계열의 법칙을 실현하는 것이다. (231) (57MKD)
11절 타고난 관념들: 라이프니츠와 로크 – XI. Les idées inées: Leibniz et Locke 231
단자론은 라이프니츠에게 타고난 관념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었다. 그가 말하기를 “이 문제 속에서 충분히 애매함이 있다.” 특히 그는 로크(Locke 1632–1704)가 난제로서 다루었던 방식에서, 그가 새로운 시론의 전문과 제1권에서 자기 방식으로 검토한 것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첫째 애매함은 태고 난 관념들을 반박하려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항상 그것들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때에 관념들이 타고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거기에 우리 사유를 적용하자마자, 그 관념들이 우리에게 인식되었었다는 것으로 충분할 때이다. 더군다나, 타고난 이란 단어는 애매하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이라는 모나드들 안에서, 타고난 것이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깊이[심층]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한 우리는 외부의 어떠한 작용도 감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에 관한 신체의 영향을 인정하는 “공통의 체계 속에” 사람들은 감각적 인식으로부터 오지 않는 것을 타고난(iné)이라 부른다. 이것은 태생주의(l’innéisme, 천성주의)를 부정하는 유명한 격언에 의해 함축된 의미이다. “감관 속에서 먼저 있지 않다면 예지 속에 어떠한 것도 없다(Nihil est in intellectu quod non prius fuerit in sensu)” 라이프니츠가 이것[단어]을 다룬 것은 이런 의미작업에서이다. 천성(l’innéité)의 표시, 이법의 원초적 진리들에, 즉 동일성의 공리에, 충분이유율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나든지, 또는 사람들이 그것에[천성에] 환원할 수 있는, 말하자면 선천적인 증거들을 갖는(라이프니츠에게서 선천적이란 단어는 오직 이런 종류의 증거로 쓰인다), 파생된 진리들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나든지 간에, 필연성이다. 타고난 관념들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 관념들 없이 사람들은 진리를 사유할 구 없을 것이다. 존재의, 가능성의, 동일자의, 동일성의 관념들은 타고난 진리 속에 들어가며, 한 사물이 동시에 있다고 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이, 이것들[위의 관념들]도 마찬가지이다. 타고난 관념들의 일체, 그것은 오성 자체이며, 사람들은 오성과 더불어 사유한다. 따라서 라이프니츠는 스콜라의 격언을 받아들이지만 제한적이다. “감관 속에서 먼저 있지 않다면 예지 속에 어떠한 것도 없다, 오성자체를 제외하고서는(nisi ipse intellectus).” 그러나 필연성과 선천성(l’apriorité)은 태생성(l’innéité, 천성)의 표시들일 뿐이다. 타고난 이란 단어는 소위 말해서 우리들 속에 외적 경험 전체로부터 독립적으로 있는 것에, 다시 말하면 내적인 순수경험의 대상일 뿐인 것에, 관련 있다. “왜냐하면 감관들과 귀납추론들은 전적으로 보편적인 진리들을 결코 배울 수도 없고,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것도 배울 수 없고, 단지 있는 것만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것의 부분적인 진리들을 끌어낸다는 귀결에 이른다.” 만일 모든 관념들이 “알 수 있는 것”에게, 내적 경험 속에 주어진 “순수 오성의 대상”에게, 귀착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자아에 대해, 나의 사유들에 대해, 따라서 존재에 대해, 실체에 대해, 행동에 대해, 동일성에 대해 내가 갖는 용어는 내적 경험으로부터”, “반성적 작동들로부터” 온다고 라이프니츠는 다른 곳에서(단자론, 30) 말할 것이다. 소피 공주(Sophie-Charlotte (1668-1705)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스콜라철학의 격언에 자신의 제한을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오성 자체를 또는 이해하는 자를 제외하고”. (232)
그러나 내적 경험은 이때에 이법의 자연적 빛보다 넓은 어떤 것을 지칭한다. 경험은 자연적으로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의 통찰이 신체에서 오는 의 필요들와 경향들에 의해 모호해 질 때 사람들이 거기서 보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법이외에도 본능이 있으며, 본능은 혼동된 그렇지만 타고난 인식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마치 다음과 같다: “즐거움을 따르고 슬픔을 피해야만 한다”는 것과 같이, 이법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자연적 감정들과 같다. 그리고 “그런 것이 매우 자주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습관들과 …뒤섞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관념의 태생성은, 마치 데카르트에게서처럼, 관념의 혼동을 배제하지 못한다. (232) (57MKE)
12절 물체들의 현존 – XII. L’existence des corps 232
모나드들은 우주 속에 현존하는 오직 실체적 실재성들이다. 사람들은 라이프니츠가 외적 세계에서 실체적 현존을 제거했었는지를, 마치 데카르트주의자가 세계를 도형으로 그리듯이, 보았다. 그럼에도 라이프니츠는 현존의 양태 전체를 끌어내는가? 우선 생각해보자: 바깥을 향해 “창이 없는” 정신은 그럼에도 합법적인 확실성을 갖는다. 데카르트의 증거에 의한 복잡한 기계장치를 사용하지 않고서, 정신은 자기 바깥에 어떤 사물이 현존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나는 사유한다. 나의 사유들 속에서 거대한 진리가 있다”에서, 데카르트는 전자를 알고 있고, 그런데 후자는 “우리들의 겉모습들에 대한 진리의 원인인 우리들과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동일한 사물은 [사물] 자체 속에 있는 변화들의 원인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상[재현]된 외적 세계는 나를 위하여 “잘 토대가 이루어진 현상”이며, 우리들 바깥에서 모나드들의 실체적 다양성의 현존 위에 토대가 이루어진 현상이다. 그러나 또한 내적 특성들에 의해, “실재적 현상들”은 꿈의 “상상적 현상들”로부터 구별된다. 우선 만일 우리가 현상을 현상 그 자체 속에서 그것[현상]의 생생함과 그것의 다양성을(실재적 현상은 하나의 성질로서가 아니라 감각적 다수의 성질로 부과되었기에) 고려한다면, 현상의 영속성 또는 시간 속에서 현상자체와 그것의 일치를 고려한다면. 그리고 만일 우리가 앞선 현상들과 그것의 일치에 의해, 그것들 사이에 정신들의 일치에 의해, 결국에는 현상들의 예언에서 성공에 의해, 다른 현상들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목하듯이, 데카르트에 의해 지적된 기준들이다. 기준들은 고대에서 아카데미학파와 회의주의 학파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아주 잘 이것들의 가치을 분명하게 했는데, 그때는 그가 말하기를, 이 기준들이 도덕적 확신을 부여하지만 형이상학적 확신을 부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233)
만일 우리가 사물들이 공현존하고 있으며 또한 사물들이 계속되고 있는 질서를 사물들과 따로 고려한다면,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얻는다. 뉴턴주의자들이 질서를 믿는 것처럼, 사물들에 앞선 실재성들이, 즉 사물들을 포함하는 수용자들 있다는 것과 거리가 멀고, 공간과 시간은 단순히 가능적인 이상적 사물들이고 또한 공간은 존재들의 질서이라는 그 존재들에게 상대적인 이상적 사물들이다. 라이프니츠가 클라크(Samuel Clarke, 1675–1729)에게 편지를 쓰기를, “나는 순수하게 상대적인 어떤 것을 위하여 공간을 지니고 있으며, 공현존의 질서를 위하여 마치 시간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으며, 마치 시간은 계속들이라는 질서와 같다. 왜냐하면 현존한다는 사물들의 방식들 속에 들어가지 않고, 사물들이 일체 현존하는 한에서, 공간은 동일한 시간에 현존하는 사물들의 질서를 가능성의 항들로서 표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여러 사물들을 함께 볼 때, 사람들은 사물들의 그 자체 사이에 이런 질서를 깨닫는다.” (233)
13절 도덕론 – XIII. La morale 234
그의 신학과 그의 단자론으로부터, 라이프니츠는 도덕론을 끌어낸다. 그가 콘링(Conring, 1606–1681)에게 편지 쓰기를, “나는 1670년부터 고백하건데, 사람들이 신의 현존과 영혼의 불멸명이 그럴듯하고 또는 적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 도덕 과학으로 충분하다.” 왜? 그는 카르네아데스(Carnéade, 전219경-128)와 더불어 가정하기를, 알맞은 유용성이 없는 정의는 현재이든 미래이든 멍청한 짓들 중에 가장 멍청한 짓이라 한다. 다른 한편 정의는 일반적 선을, 또는 우리가 부분을 이루고 있는 사회의 선을 탐색한다. 섭리주의자의 신학은 단지 덕목과 유용성의 일치의 문제를, 즉 의무론(De officiis)에서 키케로가 문제였던 일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인간이 정의로운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공적인 이익의 영속적인(복수, 징계)것을, 다시 말하면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이번 생애에서 항상 그것에 대한 복수가 있지 않지만, 다른 생애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234)
훨씬 나중에, 그가 자기 단자론을 발견했을 때, 그가 정신들이 가장 높은 정도의 모나드들이라는 것을, “사유하는 실체들 또한 필연적 진리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실체들”이라는 것을, 제시했을 때, 그는 스토아학자들의 고대 전통에 따라, 그의 우주를 “성령들(Esprits)의 보편적 공화국”으로 변환시켰고, 신은 그 공화국의 제왕이며, 모든 종류의 성령들은 (천사에서 인간에까지) 공화국의 신하들이다. 정의는 이런 도시의 법칙이며, 정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것을 세계에게 제공하는데 있다. 그러한 것은 모든 사물들을 지배하는 섭리가 있었다고 가정되어,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오류불가능하다.” 정식들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의 의미를 잘 침투하게 하기 위하여, 단자론의 언어로 정식들을 번역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각각 정신이 매 순간에 우주 속에서 획득하는 것은 신의 의지로부터 도출된 자연적 법칙이며, 전체와 더불어 양립할 수 있는 완전성의 최대치이다. 신은 그것을 단지 의식을 가지고 행한다. 반면에 벌거벗은 모나드는 감정으로부터 박탈되어 있다. 유용성을 향해 우리를 밀고 있는 의지는 우리 자연의 인식에 의해 밝혀진다. 그래서 덕목은 효과적으로 “내적 권능이다. 내적 권능을 인간이 소유하는 것은, 자기 영혼의 정념들에 의해 지복을 향한 똑바른 길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크리스트교의 운명(fatum christianum)이며, 파툼은 “양식 속에서” 섭리의 명령(le décret)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적 완전성의 인식에 의하여 거기에 복종하는 자들은 - 신의 사랑은 이런 인식의 연속인데 – 이방인의 철학자들처럼 참을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이 가장 좋은 것을 위하여 전체를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 신이 배열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신의 명령들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마호메트교의 운명(fatum mahometanum)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이나 마찬가지로 정적주의에도 “게으른 논증”에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에게서는 인식이 행동을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235)
보편적 공화국에 대한 이런 생각[관념]은 라이프니츠를 일종의 보편적 종교로, 즉 실증적 종교보다 우월한 인간주의로 이끌어나가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이론적으로, 그는 크리스트교 신앙의 독단[교리]들이, 이 독단들이 실증적이었다라는 의미에서, 이법에 전혀 반대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시도했다. 실천적으로 그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듯이, 지상(la terre)에서 종교의 조직화를 생각했다. 지상에서 크리스트교 인민들은 하나의 동일한 교회에서 정치적으로 화해되고 종합되어, 전세계에 크리스트교의 문명에 기여할 것이다. 마치 그가 자기의 천재성에 알맞듯이, 그의 보편주의는 스토아학파의 추상적 보편주의가 아니며, 오히려 그 보편주의는 가장 구체적인 형상들을 다루고, 그 보편주의는 특이한 정치적 실재성들의 무한 속에 개입된다. (235)
초기저술들 중의 하나는 삼위일체 옹호론(Defensio trinitatis, 1665년경)[열아홉]이었으며, 이는 소치니학자들(les sociniens)에 반대하여 쓰였다. 그 책에서 그는 “가장 심오한 철학을” 이미 발견했다고 자기 자랑을 하였다. “그 심오한 철학은, 물리학에서서 만큼이나 성스런 사물들의 성찰 속에서도 그리고 시민의 공적 업무들 속에서, 조용한 삶의 이끌도록 해주는 교육을 그에게 제공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세 가지 대상들, 종교, 물리학, 시민 생활에서 결코 분리되지 않았다. 그는 우주에 대한 크리스트교의 통찰의 불연속성 과 우주의 고유한 연속성 사이에 겉보기에 매우 큰 분화들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것을 행했다. 우리는 그의 [원]죄의 이론에서 그것의 한 예를 보았다. 크리스트교의 신앙의 다른 요소들, 즉 기적, 실체이전[화체설, 성령의 육화] 등은 또한 자연 과정의 연속성에서 여러 종류의 정지들을 구성하였다. 포르 르와얄 학자인 아르노는, 그의 모나드론이 기적을 배제했다고 라이프니츠에게 반대했다. 제수이트 신부인 데 보스는 모나드론을 육화론과 화해할 수 없다고 믿었다. 기적(le miracle)에 관하여, 라이프니츠는 그의 무한주의에서 다음과 같은 응답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안다. 사람들은 표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시된 여러 점들을 가정하며, 이 점들을 포함하고, 점들의 위치들을 근거(raison 이유)있게 하는 곡선의 방정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이 주어지며, 우리가 어떤 사건들이 자연의 법칙들에 복종하는 사사건들의 무한정한 계열들을 가정해보자. 그러한 법칙들을 우리가 알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건들은 자연의 법칙에 복종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기적들이다. 사람들은 신적인 무한성 속에서 서로서로들이 동시에 포한하는 것과 같은 계열의 법칙을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가 자연 질서라고 부르는 것을 흔들어 놓는 기적적 사건들은 반대로 우주의 질서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사건들이 거기에 다시 들어가지 않는 것은 반대로 신적인 속성들이다. 화체설(transsubstantiation, 빵과 포도주)에 관하여, 사람들은 라이프니츠가 데 보스에게 대답하면서 어떻게 물체들의 통일성을 고려하기 위하여 실체적 연결(le lien substantiel)을 상상했는지를 보았다. 화체설 속에서, 빵에 응답하는 모나드들은 존속하며, 빵은 “잘 기초된” 현상으로 남는다. 그러나 기적에 의해서, 빵의 물체를 바꾸어지는 것은 크리스트의 물체의 실체적 연결이다. (236)
실천적으로 라이프니츠의 거의 전적인 활동성은 크리스트교의 승리로 향하여 방향 잡혀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 생각했기로, 이 승리가, 루터파들과 캘빈파들 통합에 의해 시작해서 그리고 독일 프로테스탄트들과 카톨릭교회와 재통합에 의해 이루어져야할, 통일의 회귀 없이는 보증할 수 없었다. 1673년[스물일곱]부터 그는 이 통일에 대해 뻴리송(Pellisson, 1624-1693)에게 말하고, 그를 통해서 보쉬에(Bossuet, 1627-1704)에 다가가고자 했으며, 1686년에는 화해의 정식을 제한하는 신학 체계(Syntema theologicum, 1686)를 썼다. 뻴리송은 1693년에 세상을 떴다. 그러나 1701년에도 그는 모든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브리뇽 부인(Madame de Brinon, 1631-1701)에게 편지를 썼다. “마담, 당신이 나에게 심정 속에 카톨릭으로 판단하는 것이 이유가 있습니다[타당하다]‥… 카톨릭 교리의 본질은 로마와 더불어 외적으로 영성체[연대감]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부당하게 교회로부터 축출당한 자들은, 그들에 의사와 관계없이 그리고 그들의 착오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가톨릭신자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우리가 예수-크리스트의 신체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라는 진실하고 본질적인 영성체[연대성]은 무상보시(la charité)입니다.” 이러한 정신에서 그는 보쉬에가까이에서 신앙고백들을 분리하고 있는 여러 가지로 분화[불일치]하는 독단들[교리들]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려고 애썼다. 불일치들은 트렌토 공의회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가? 그 공의회의 전원일치의 특성은 프랑스에서 조차 인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불일치들은 신의 사랑과 은총에 관하여 끊임없는 논쟁들보다 더 넓은 범위를 갖는가? 그런데 그 논쟁들은 로마 공동체의 내부에서 교회의 통일을 단절하고 못하고 있다. “독단들[교리들]보다 더 재통합을 막는 것은 로마교회의 실천들이다.” 그리고 이런 기교(아마도 신중하지 못한 기교)를 가지고 그가, 보쉬에가 보기에, 프랑스를 생기 있게 하는 골지방의 정신을,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교황들과 다른 성직자들의 권위에게 부여하는 한계들을” 돋보이게 한다. 보쉬에도 또한 통일을 원하지만, 프로테스탄트들이 순수하고 단순하게 교회로 되돌아오는 조건에서 그리고 교회의 모든 결단들을 인정하는 조건에서 이다. 통일은 라이프니츠가 저장하고 원했던 다양성들과 색채들을 허용하지 않는다.(237) (31:06, 57M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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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로디-르위스(Geneviève Rodis-Lewis 1918-2004)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 전공.
1920 나에르뜨(Emilienne Valentine Naert, 1920-2001), 프랑스 여성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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