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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팸투어 포스팅(후기) 스크랩 [전남/진도] 한베인 진도땅의 예술혼, 운림산방(雲林山房)
길손旅客 추천 0 조회 75 09.07.02 09:1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한서린 진도, 그 땅에 예술의 꽃을 피우다.

운림산방(雲林山房)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64 / 061-543-0088

 

운림산방은 한국 남종화의 요람이며 성지다.

200년을 이어온 4대의 화맥이 이어온 진도예술의 산실로 조선 후기 남종화를 시작으로 운무산수화까지 이어져 온다.

19세기 한국 예술의 꽃이라 불리는 운림산방을 둘러 본다.

 

운림산방 전경

 

나갈수 있는 땅이 없는 섬, 진도

그 자리에는 이 땅의 어머니들의 한숨과 넋두리가 베어 나온다.

보이는 것 뒤에는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들이 존재 하듯, 진도에는 숨결 거친 우리 어머니들의 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한 회한 많은 땅에 한국 예술의 꽃이 있으니 소치 허련 선생과 운림산방이다.

진도의 빛과 색, 보이는 이들의 삶을 예술가는 노래를 하고 시를 쓰며, 그림으로 살려내 화폭에 담는다.

1982년 3대가인 남강선생이 안채(살림채)와 사랑채(산방)를 중수하였고, 진도군청이 유물 보존각과 기념관을 지어 지금에 이른다.

 

림산방은 세계유일의 일가직계 4대의 화맥이 200년을 이어오는 대화맥의 산실이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였던 소치 허련(小痴 許鍊)선생의 당호로 소허암(小許庵) 또는 운림각(雲林閣)으로 불린다.

운림산방의 출발은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8~1893)선생이 당대 최고의 예술적 심미안을 갖추고 고향인 진도에 돌아와

첨찰산 아래에 초가를 짖고 기거하며 시작된다. 선생의 나이 49세로 1857년(철종8년)의 일이다.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선생의 사후 1년 뒤의 일이었으니

추사가 제주도에서의 9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다시 북청으로 2년의 유배를 떠나고 돌아와 예산의 고택에서 세상을 등지니,

당시 목숨을 걸어야할 정도의 제주 바닷길을 건너 3번이나 스승을 ?은 소치다. 그러한 소치선생이 스승에 대한 죽음이 선생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만든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도 해본다.

 

치 허련선생

어려서부터 그림과 글씨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소치는 고서화가 많던 녹우당을 ?았으며 그곳에서 공재 윤두서를 비롯하여 아들 연옹 윤덕희, 손자인 청고 윤용으로 이어지는 윤씨 집안 3대 화가의 필적과 그림들을 직접 접하며 그림에 대한 다양한 화법을 익히게 된다. 27세에 해남 대둔사를 ?아 승려였던 초의선사에게 학문하며 시문을 배우고 인격을 수양하였으며, 이후 초의선사의 40년 지기인 추사선생의 제자로 들어가니 소치의 나이 32세때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서화 공부를 했으며, 그의 나이 42세에 헌종의 앞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소치라는 호는 스승인 추사가 내려준 것으로 중국의 4대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대치 황공망이라는 화가가 있는데 추사가 평소에 그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였는데 그에 비할 만한 인물이 되라는 의미에서 소치라는 호를 주었던 것으로 추사 역시 소치에 대한 각별함이 묻어난다.

참고로 지금의 운림산방이라는 이름은 소치선생이 좋아하던 인물이었던 중국 4대화가의 한 사람인 운림예찬이라는 인물로 그의 호인 ‘운림’을 따다가 당호로 지어진 것이다.

 

릴적부터 ?던 녹우당의 영향 때문일까?

녹우당이 3대에 걸친 명화첩과 고서롸를 ?직한다면 운람각에는 4대에 걸친 5인의 명화가들이 탄생한다.

4대에 걸쳐 5명의 대화가를 배출하고 지금도 그 대화가의 내력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운림산방의 초대가 소치 허련 선생이고,

2대는 소치의 마내아들인 미산 허형(米山 許瀅 1861~1938)이다, 미산은 구한말 격동기를 산 가난한 화가로

생계를 위한 그림을 그림으로 뚜렷한 작품의 세계에 입문하지 못했다.

3대는 남농 허건(南農 許? 1908~1987)으로 남종화를 “신남화”라는 화풍을 일구어낸 화가다. 37세때 병으로 인한 장애가 있었음에도

강한 필선으로 그려지는 남농의 화풍은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

또 한분의 3대화가가 있으니 임인 허림(林人 許林)1917~1942)이다.

18세부터 두각을 나타낸 천재화가로 남농과는 형제 화가로 알려져 있으나 독학과 유학생활로 이어진 과로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다. 그러나 임인에게는 독자가 한명 있으니 그가 4대를 이어가게 된다.

4대는 임전 허문(林田 許文 1941~ )으로 구름과 안개의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가문의 필법에 수묵의 농담을 채워 넣은 그림으로 갈필법에 이어 ‘운무산수화‘라는 독창적인 화풍을 일구어 낸다.

 

림산방의 길을 거닐어 본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을 지나고 나면 운림지을 만나고 그 앞에서면 그림과 같은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운림지의 가운데에는 소치선생이 직접 심은 백일홍이 자리한다. 운림지의 물빛속에는 첨찰산의 능선이 고스란히 담기고,

물위에는 수련이 가득 피어있으며 아래로는 이엉들의 한가로운 유영이 잘 어울리는 그림 한폭이다.

운림지와 첨찰산의 사이로 운림산방이 점잖게 앉아있다. 산방의 뒤로 돌면 소치선생이 기거하던 사랑채와 안채가 있다.

뒤로 사당이 자리하는데 그 영정의 옆으로 추사의 세한도가 걸려져 조각되어 걸려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스승에 대항 애정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념관에서의 명화감상과 운림각과 잘 어룰리는 운림지의 앞에서 잠시 쉬며 당대를 가늠해보고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여유있게 걷기에 좋은 곳이다.

 

 

 

 

 

 

 

 

 

 

 

 

 

 

 

 

 

 

 

 

 

[여행 메모]

>운림산방 :  061-543-0088  /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64

  - 입장료 : 성인 2000, 청소년 1000, 소인 800

  - 주차료 : 없음

  - 가는길 :

  

 

 

by 박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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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7.02 14:46

    첫댓글 역시 여행작가교육을 받으신분이라 내용이 다르구만유..^^* 낙관도 쥑이고..ㅋ

  • 09.07.02 15:23

    다음 블로그 가서 댓글 남겼습니다.....완젼 프로~!!!!! 옴매~ 기 죽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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