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에 대한 모색
- 전재완
시란, 고래(자고이래) 죽은 자의 일대기(삶)를 밝히는 축문이다. 그러니까 원래 시란, 태생이 죽은자의 일대기를
찬양하는 노래이자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여 알리는 글쓰기다.
그러하니 제정일치의 시대에 시의 막강한 권한은 이른바 천명이다. 천지신명의 말씀을
시인은 옮겨 번역하는(필사하는) 자이다.
시의 막강한 지위가 어찌하여 바닥으로 추락하였는가?
사회가 분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며 제정이 분리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문명의 이기를 통하여 시가 가진 매력을 상실한 것이 문명이 개화를 하면서부터다.
그러니까 시가 풍습에서 도태되기 시작한 시기를 들자면 텔레비전(보여주며 말하기)이 유행하기 시작한 그 시기이다.
역설적이게도 텔레비전이란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까지는 시가 말하자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다.
세상이 분화하고 문명이 발전하며 더 이상 세인들이 초자연적인 의구심을 떨쳐버리는 - 건방진 도시화된 문화인(텔레비전)-
그 시대가 되자 시는 그야말로 시대에 뒤떨어진 장르가 되었다.
그러나 이 기막힌- 물질의 시대, 필자는 다시 정신주의 시의 시대가 부흥하리라 장담한다.
시는 어쩔 수 없이 초자연적이다.
시인은 시대를 앞서 나가 초자연적 무당이다.
결국, 시란 초월적이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 시대를 파괴하기 때문에 비관습적이다.
시가 가진 폭발적인 에너지란 되풀이되는 습관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시대, 다시 시가 세상을 깨울 것임은 자명하다.
유독 문학에 있어 오직 시라는 장르만이 고전적이되 현대적이다.
보수적이되 급진적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