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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08일 KE875 부산(釜山) / 상하이(上海) 08:50 / 09:40, 1,004km, 1시간50분
푸동공항에 도착하여 지하철로 푸둥신취(浦东新区) 화무루짠(花木路站)으로 이동하여,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여행지인 푸젠성(福建省) 우이산(武夷山) 행 야간열차를 예매해준 차선생(车老师)를 만났다. 지난 연말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12월31일 시간을 내어 을왕리에서 2013년의 마지막 해를 보며 조개구이에 소주한잔 했는데,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시간이었다고, 상하이 오면 꼭 식사를 한번 대접 하겠다고 하며 헤어졌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네가 푸동이 발전하며 생긴 신시가지라 내가 좋아하는 뒷골목 식당은 없고, 또한 객인지라 차선생이 안내하는 Kerry Hotel(嘉里大酒店)로 따라 갔다.
부자 동네여서인지 특급호텔 레스토랑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점심시간인데다 저녁에 장거리 이동을 해야 되는 관계로 술을 부르는 요리를 피하고, 스파게티에 야채샐러드, 피자와 맥주를 주문했다.
중국여행에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류의 음식은 맛이 참 애매하다. 그러면서 가격은 비싸다.
차선생이 평일 점심시간에 짬을 낸 것이라 오래 시간을 같이 할 수 없다고, 저녁이라면 좋았겠다고 하나, 나도 여행 시작부터 여기서 하루를 공치고 있을 수는 없어 다음 기회를 약속하며 일어났다.
다시 배낭을 메고 지하철로 상하이난짠(上海南站)으로 이동, 이미 중국은 춘지에(春节) 민족대이동이 시작되었다. 규모나 모양이 축구경기장 같은 기차역에 사람과 짐으로 가득 찼다.
그나마 최근에 인터넷으로 기차표 예매가 가능해져서 예전과 달리 창구부근은 덜 붐빈다.
현지인들은 신분증으로 승인하고 기계에서 승차권 수취가 가능하지만, 외국인은 창구에서만 받아야 된다. 창구에서나 인터넷에서나 열차표를 예매 또는 구매할 때는 신분증을 제시해야 되고, 외국인은 반드시 여권을 제시해야 된다. 승차권에 그 번호가 기입된다.
짐을 엑스레이기에 통과 시켜 검사를 받고 대합실로 들어가니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좁은 틈새를 찾아 배낭을 내려놓고, 거기에 기대어 이럴 때를 대비해 가져온 책을 꺼내어 읽는다. 이제는 신기하게도 이런 환경이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내가 탈 기차는 20시 26분에 출발하는 K197호(硬卧 04车 14号 下铺 174元)이다. 2등 침대칸은 상중하의 3층으로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맨 아래가 가격이 조금 비싸도 편하다. 인터넷으로는 이 층수가 임의로 배정되어, 차선생이 몇 번의 시도 끝에 시아푸(下铺)가 예매됐다고 했다.
1월09일 푸젠성(福建省) 우이산(武夷山) 도착
상하이난짠(上海南站)을 출발한 기차는 683km를 약9시간30분 달려 우이산(武夷山) 역에 새벽 5시 42분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야간 침대열차를 탔을 때, 내릴 역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열차를 타면 승무원이 와서 승차권과 침대권을 교환해 가서, 목적지 바로 전(前)역에서 깨워 다시 승차권으로 바꿔준다. 따라서 승무원이 깨우면 일어나 짐을 챙겨 내릴 준비를 하면 된다.
자료에 의하면 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30분정도 이동하면 우이산 관광지가 나온다고 되어 있었다. 일단 아침도 먹을 겸 해서 문을 연 식당으로 들어가서 쌀국수를 시켰다.
주인에게 물으니 6시부터 시내버스가 다니니 국수 먹고 나가서 1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한다. 30분을 기다려도 1번은 안온다.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고 일단 시내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걷기 시작한 것이 이번 여행기간 내내 지치도록 걷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다.
작은 다리를 하나 지나니 차량이 많이 보인다. 드디어 시내버스 탑승(3路).
지금이 관광 비수기라 현지인 승객들이 중간 중간 내리고 나니, 차안에 승객은 이제 나 혼자다. 기사가 어디서 내릴거냐고 묻는다. 달리 물어볼 사람도, 아는 것도 없으니 우이산풍경구에 내려 달라고 했다. 조금 더 가서 차가 정차하며 다 왔다고 내려서 다리를 건너면 된다고 알려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우이산풍경구에는 3개의 문이 있다. 북문과 남문 그리고 중간문(兰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은 주로 남문을 이용한다. 중간문은 현지인들이 자유롭게 왕래를 하는 출입구다. 이른 아침이라 다니는 사람도 없다. 조금 걸어가다 안내판이 나와 한참을 들여다보니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된다. 워낙 넓은 곳이라 남문이든 북문이든 우선 그곳에 가서 입장권을 사야 관광지 내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다. 안내판의 그림으로 북문쪽이 가깝다. 그러나 거리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얼마나 걸어야 될지 가늠이 안된다.
여행 시작 단계라 아침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개울을 따라 난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새벽공기가 상쾌하다. 1시간쯤 걸은 것 같은데도 입구는 보이지 않고, 어깨는 배낭의 무게를 점점 느낀다. 처음에 사진을 찍기 위해 손에 카메라를 들고 걸었으나 이제 그것도 힘들다.
처음의 아름답다고 느낀 풍경도 지루해질 때쯤 저만치 입구가 보인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자고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걷다 보니 거의 2시간은 소요된 것 같다.
매표소에 가서 입장권을 사고, 관광객이 몇사람 모여야 셔틀버스가 출발한다고 해서 담배 한 대 피우니 저절로 안도의 한숨으로 연기를 뱉어낼 수 있다.
(우이산풍경구는 크게 수렴동(水帘洞), 대홍포(大红袍), 무이궁(武夷宮), 천유봉(天遊峰), 호소암(虎啸岩), 일선천(一线天) 그리고 별도 비용의 구곡계 대나무 뗏목(竹筏)타기로 구분되어 있다. 입장권이 1일, 2일, 3일권으로 나눠져 있는데, 이틀이면 무리가 없다. 2일권 235위엔에는 셔틀버스비가 포함되어 있다. 대나무 뗏목은 130위엔)
북문에서 버스를 타고 처음 내린 곳은 수렴동, 깔끔하게 돌로 포장된 길을 따라 30분정도 걸어 우측 산위로 조금 올라가면 커다란 암벽이 있다.
커튼처럼 떨어지는 동굴, 그러나 동굴이라 하기엔 좀 그렇고, 또한 겨울 갈수기라 물 한줄기만 가늘게 떨어지고 있어, 땀 흘리며 올라온 보람도 없이 상상만 하며 돌아섰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버스 내린 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수도 있으나 군데군데 차밭이 있는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 유명한 대홍포를 산속에서 만날 수 있다.
대홍포는 이곳 무이산에서 생산되는 무이암차의 한 종류로 비싼 가격으로 인하여 중국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차로 우롱차 계열이다.
대홍포라는 이름은 명나라 때 왕후의 병을 치료한데 대한 보답으로 황제가 차나무에 붉은 비단 옷을 하사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송나라시대부터 무이산 암벽에서 자랐다고 전해지는 여섯그루의 나무가 현재도 살아 있다.
kg에 100만원을 훌쩍 넘어 중국 부자들의 거품의 상징으로 손꼽힌다. <자료출처:위키백과>
여섯그루 대홍포가 있는 암벽 맞은편 개울가에는 찻집이 있다.
이 나무에서 채집한 찻잎으로 만든 것이라 하며 항아리에 담아두고 덜어서 저울에 달아 판다. 마침 중국인 한사람이 125g씩 몇 봉지를 주문했는데, 100위엔 지폐를 한다발 꺼내어 계산하고 있었다.
다시 산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나오면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목적지가 같은 일행이 모이면 차가 출발한다.
3번째로 찾아간 곳은 무이궁, 안쪽으로 들어가니 분재가 있는 공원 같은 길이 나오고, 다시 돌아 나와 입구 쪽의 송가(宋街)로 갔는데 초라하기 짝이 없다. 시간이 많고 체력이 좋다면 모를까 굳이 들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은 아니다.
오후 일정은 무이산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천유봉이다. 무이산은 36개 봉우리, 99개 암석으로 이뤄져 있으며, 돌 하나가 산 하나씩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천유봉은 해발 409.6m에 848개의 돌계단이 있다.
돌계단을 오르다보면 중간에 정자가 있고 정상에는 사원이 있다. 천유봉은 일방통행으로 하산은 사원 뒤편으로 해서 돌아 내려온다.
천유봉을 오르면서 보이는 무이산의 정경과 무엇보다 구곡계를 따라 흘러가는 뗏목의 행렬이 장관이다.
차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다 천유봉 입구 조금 못 미쳐 우측 은평봉(隱屏峰) 산자락 오곡(五曲)에 무이정사(武夷精舍)가 자리하고 있다. 송나라 순희 10년(1183년)에 주희(朱熹)선생이 이곳에서 10년간 머무르며 저술 및 강의 활동을 하여 주자학이 태동되었다.(자료출처:두산백과).
우리나라에는 이 주자학이 성리학이라 부르며 고려말에 들어와서 조선중기 이황(李滉)선생과 이이(李珥)선생에 의해 주자의 사상과 작품들이 완전히 소화 흡수 되었다.(자료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천유봉을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들린 무이정사 안으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황선생과 우리나라 도산서원의 사진과 해설이었다.
이렇게 무이산 1일차 여행을 끝내고 셔틀버스를 타고 남문으로 나왔다.
숙소들이 많이 있는 싼꾸두쟈취(三姑度假区)까지 걷기에는 조금 무리이다. 더욱이 첫날이라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새벽부터 15kg의 배낭을 메고 하루 종일 걸어서 많이 지친 상태이다. 시내버스 타는 곳은 보이지 않고, 택시를 탈까 아니면 헤이처(黑车 : 불법 자가용 영업차량)를 탈까 하며 어슬렁거리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와서 말을 붙인다.
명함을 주는데 차(茶)라고 큰 글씨를 적어 놓았다. 이름은 아이펑잉(哀鵬英)이다. 숙소를 찾고 있냐고, 물으며 자기 아파트에서 자라며, 본인은 다른 곳에 살고 있어 독채라고 권한다.
방이 3칸인데, 숙박료는 100위엔이고, 허베이성(河北省) 스쟈좡(石家庄)에서 온 아가씨가 어제 와서 자고 오늘 떠난다고 그 아가씨도 처음에는 망설이다 방을 보고 결정했다고 한다,
생각 좀 하자고 하는데도 계속 재촉이다. 그러면 어차피 차타고 나갈 것 자기차를 타고 가서 아파트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고, 차비는 안받겠다고 한다.
그래도 망설이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는 정확하게 내 아킬레스건을 파악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방을 정확히 급소에 꽂았다.
그 이쁜 아가씨가 오늘 저녁에 떠난다고 짐도 두고 갔으니 오늘 구경 마치면 집으로 올 것이고, 만약 기차표를 못 구했으면, 하루 더 묵을 수도 있다. 지금 가면 그 아가씨가 아직 안떠나고 있을 거다. 바로 결정했다. 저우바!(走吧:가자) 역시 강호에는 고수가 너무 많다!
집은 생각보다 크고 깨끗했다. 아가씨가 잤던 방에는 꾸려놓은 배낭이 보인다. 나는 침대가 3개 있는 큰방을 사용하면 된다고 해서 방에 들어가 배낭을 내려놓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 아가씨에게 전화를 하더니 지금 들어오는 중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나에게 해준다. 샤워해야 된다고 하니 전기온수기에 전원을 넣고, 포트에 물을 끓여 차를 우린다.
간단하게 내 연락처와 여권번호를 알려주고, 방과 집 열쇠를 주면서 나갔다 올테니 아가씨 들어오면 자기한테 전화해 달라고 전해 주란다.
큰 집에 혼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첫 여행지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조금은 황당한 느낌이 들면서도 귀는 현관문으로 쏠려있다. 갑자기 어떤 아가씨일까 궁금해진다.
거의 차를 다 마셨을 즈음 달그락 소리가 난다.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20대 후반의 귀여운 아가씨다. 나를 보고 크게 놀라지는 않고, 아주머니의 행방을 묻는다. 전화해 달라고 했다고 전해 주고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차 한잔 마시라고 부르니 배낭을 들고 나와 맞은편에 앉는다. 서로 소개도 없이 핵심을 물었다. “기차표는 구했나?” “다행히 구했다” “어디로 가냐?“ ”루산“ ”루산?“ 내 머릿속에 루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 ”루산 갔다가 다음 행선지는?“ ”아마 항저우로 갈 것 같다“
“너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거냐?” “나도 내일 저녁에는 난창으로 갈 계획이다” “그럼 내일 저녁에 만약 루산으로 오면 다시 만날 수 있겠다. 루산에 먼저 가 있을테니까 오면 연락해라”
외국에서는 여행 중에 이런 것이 참 좋다. 나이나 성별을 따지지 않고 길 위에서 친구가 된다. 그런데 왜 이 아가씨는 내가 난창으로 간다는데도 자꾸 루산으로 오라는 걸까......
루산편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이렇게 인연이 된 루산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들어오면서 우리 대화는 여기서 끊어졌다. 간단하게 아주머니가 우리 둘을 소개시킨다. 그러고 보니 우린 서로에 대해 개인적인 소개는 없었다.
아주머니가 이쪽은 한국에서 오늘 온 분이고......라고 소개를 하니까. 이 아가씨 나를 돌아다보며 “넌 왜 한국사람이라고 말 안했냐?” “네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못믿겠다” “허허 여권을 보여주지! 여기 Republic of Korea라고 씌여 있지, 이 정도 영어는 알잖아!”
“네가 어제 왔다면 오늘 혼자 걷지 않고 같이 무이산 여행을 했을텐데, 아쉽지만 나는 지금 떠나야 된다. 루산으로 와서 다시 만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이렇게 이 아가씨와는 채 1시간이 못되는 짧은 인연이 전부가 되었다. 이 친구도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나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있겠지.
아주머니가 본인 집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차 가게를 하는데 남편이 있으니까, 차 마시고 저녁 먹고 그리고 다시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또 다시 짧은 갈등이 일어난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중국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친절은 받은 적이 없었다. 혼란스럽다.
내가 나쁜 행동을 한 것이 없으니 그래 가보자! 라고 결정을 하고 따라 나섰다.
5분정도 차를 타고 가니 아파트 단지가 나오고 그곳에 작은 찻집이 있다. 미리 연락받은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주거하는 공간이 딸린 차 도소매를 하는 곳이다. 아주머니는 시장에 갔다 올테니 차한잔하고 있으라고 말하고 집을 나갔다.
시장 다녀와서 저녁상이 차려질 때까지 무이암차와 무이홍차를 종류별로 우려서 1시간 넘게 설명과 시음이 이어졌다. 10여명의 인부를 데리고 차 농장을 하고 있어 차를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찻잎이 고르고 맛과 향이 부드러웠다. 직접 큰 통에서 덜어내어 바구니에 담아 보여주는데 시중에서 파는 것처럼 줄기나 이물질도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
드디어 저녁상이 차려진 소박한 테이블에 앉았다. 술을 마시냐고 묻는다. 오늘 많이 걸어서 피곤하니까 맥주를 마시겠다고 하니까 집에 술이 없다고 남편보고 사오라고 한다. 괜히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며 미안하다. 그러나 이미 남편은 문밖으로 사라지고 없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만약 좋은 차를 보게 되면 대홍포는 살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터라, 저녁 밥값 겸 5통을 샀다.
이렇게 새벽 5시반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여행의 기나긴 첫날 여정이 끝났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