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팔일 축제 제7일
2024년 갑진년(甲辰年) 용 띠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대학 교수들의 연례 행사 중 하나가 올해의 四字成語(사자성어)를 선정하는 것입니다. 전국의 대학 교수1,086명이 선정한 해의 사자성어는 450명(41.4%)이 ‘도량발호’(跳梁跋扈)’, 즉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입니다. 즉 “권력자(‘윤석열 대통령’)가 자신의 권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주변 사람들(‘국민들’)을 함부로 짓밟고, 자기 잘못은 성찰하지 않으면서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날뛴다.”는 의미입니다. 2위로는 307명(28.3%)이 ‘후안무치’(厚顔無恥), 즉 “얼굴(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말을 교묘히 꾸미면서도 끝내 수치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3위는 201명(18.5%)이 ‘석서위려’(碩鼠危旅), 즉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말로 온 나라가 자신이 똑똑하다고 굳건히 믿고 있는 지도자들 때문에 끊임없는 논란과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는 안타까움과 좌절감이 배어 있는 표현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한처음’과 ‘마지막 때’라는 대조적인 단어가 동시에 등장합니다. 오늘의 독서는 마지막 때에 대해, 복음은 ‘한처음’에 대해 말합니다.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ἐσχάτη ὥρα’)입니다. ‘그리스도의 적’(‘ἀντίχριστος’)이 온다고 여러분이 들은 그대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1요한 2,18) “한처음(‘Ἐν ἀρχῇ’)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1-3)
창세기와 요한복음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한처음’이라는 말은, ‘창조 이전의 시간’, 또는 ‘시간 이전의 시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시간은, 인간은 알 수 없는 ‘영원 속의 시간’입니다. 인간은 그 시간을 믿음 속에서 묵상할 수는 있지만, 그 시간에 대해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코헬렛’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코헬 3,11)
‘한처음’의 반대쪽에는 ‘마지막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 때’는 ‘시간의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의 시작’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허무한 존재인 우리 인간들에게 당신의 ‘영원’을 선물로 주시는 때가 바로 ‘마지막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 때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느님과 함께 ‘영원’이라는 시간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보면, 인간은 잠시 동안 이 세상에 머물다가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존재하다’, ‘있다’, ‘~이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하야의 미완료형을 하느님께 적용하고(‘야훼’), 인간에게는 완료형을 적용합니다(‘하와’). 우리의 신앙생활은 세상에 존재하는 ‘허무’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영원’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리고 ‘영원한 것’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제 1 독서에서 사도 요한이 말씀하듯이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기”(1요한 2,17)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영성체 후 기도를 통해 교회는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의 백성을 온갖 은혜로 다스리시니, 오늘도 내일도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덧없는 현세에서도 위안을 받고,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더욱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고은 시인의 ‘하루’란 시를 읽으며 떠나가는 한 해를 뒤돌아봅니다.
저물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루가 저물어 떠나간 사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오! 하잘 것 없는 이별이 구원일 줄이야
저녁 어둑발 자옥한데 떠나갔던 사람
이미 왔고 이제부터 신(神)이 오리라
저벅저벅 발소리 없이
신이란 그 모습도 소리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하루 남은 2024년 용띠 갑진년(甲辰年) 잘 마무리 하시고, 2025년 뱀띠 을사년(乙巳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