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 알면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26> 증시랑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④-1
[본문] 보내온 편지를 자세히 읽고 나서 행주좌와 사위의(四威儀) 중에 끊어지지도 아니하고, 또한 번잡한 공무에 시달리지도 아니하고, 급하게 흐르는 일상에서 항상 스스로 용맹하게 살펴서 절대 방일하지도 아니하고, 도에 대한 마음이 더욱 오래가고 더욱 견고함을 잘 알았습니다. 실로 못난 사람의 마음에 매우 흡족합니다.
그러나 세간의 진로는 불과 같이 활활 타오르는데 어느 때에 끝나겠습니까? 한창 시끄러운 가운데 있으면서 좌복 위에서 좌선하는 일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평소에 마음을 고요한 곳에 머물러서 공부를 하는 것은 곧바로 시끄러움 속에서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만약 시끄러움 속에서 힘을 얻지 못하면 고요한 곳에서 전혀 공부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어디서나 자신의 주체 잃지 않는다면
경계 넘어선 흔들리지 않는 도리 있어
[강설] 대혜 선사가 증시랑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다. 증시랑의 편지를 받고 공부를 하는 자세가 훌륭하여 매우 흡족하다는 칭찬을 하고나서 반드시 주의를 요하는 한 가지를 지적하여 말씀하였다. 즉 고요한데서 공부를 하는 것과 시끄러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모든 참선인들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꼭 지켜서 명심해야할 일이다. 선원에 고요히 앉아 정진을 하면서 주위에 조금이라도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만약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그 시끄러운 소리야말로 자신의 공부를 더욱 전진하게 하는 좋은 방편이며 채찍이며 시험무대라고 여겨야 한다.
평소에 고요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은 실로 시끄럽고 번잡한 환경에서 활용하자는 것이다. 만약 고요한데서만 공부가 되고 시끄러운 데서는 공부가 안 된다면 그것은 고요한데서 공부를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쓸모없는 공부가 되고 만다. 이 편지의 큰 뜻이 시끄러운 것과 고요한 것을 하나로 여겨 활구(活句)를 깊이 참구하라는 내용이다.
[본문] 편지를 받아보니 “전생의 인연들이 매우 복잡해서 금생에 이러한 과보를 받았다”라고 하였는데 감히 이 말 만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러한 생각을 한다면 도를 장애할 것입니다. 고덕(古德)이 말하였습니다. “흐름을 따라가더라도 본성을 알면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강설] 증시랑의 편지 내용 중에 전생의 인연으로 금생에 세속의 일들에 끌려 다니느라 공부가 순일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점을 들어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고덕의 말씀을 들어 가르치는 글이다. 고덕은 제22조사 마라나존자(摩羅那尊者)다. 그의 제자 학륵나(鶴勒那)존자에게 5백 마리의 학이 따라다녔다.
그 인연을 물어서 학의 업보에서 벗어나는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그 법문의 내용이다. 전문은 이렇다. “마음은 온갖 경계에 따라다니지만 따르는 곳마다 모두 깊고 깊어라(心隨萬境轉 轉處悉能幽). 흐름을 따라가더라도 본성을 알면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隨流認得性 無喜亦無憂)”라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누군들 시끄럽고 복잡하지 않겠는가. 왜 혼자만 전생의 과보를 탓하는가. 아무리 복잡한 삶을 살더라도 어디서나 자신의 주체를 잃지 않는다면(隨處作主) 결코 경계에 끌려 다니지도 아니하고 기쁨과 슬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도리가 있다는 점을 예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다. 불교의 많은 명언 중에서 손꼽는 명언이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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