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민호는 수아의 유리 천사 인형을 깨트린다. 민호의 마음이 무겁다. 그런 민호에게 생긴 빨강 연필 한 자루는 마법을 부린다. 글쓰기가 매끄럽게 이어지고 어른들의 칭찬을 받고 상도 받게 된다.
민호에게는 일기장이 2개이다. 하나는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고 하나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비밀일기다. 비밀일기에는 솔직한 마음을 다 쓴다. 비밀일기에는 빨강 연필을 쓰지 않는다.
학교 글쓰기 시간에 ‘우리 집’에 대한 주제는 민호를 힘들게 만든다. 엄마와 아빠의 갈등은 깊어져 아빠는 집을 나간 상황인데 거짓으로 쓴 글쓰기. 그대로는 낼 수 없는 민호의 마음, 지우개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글씨들…….
민호의 내적 갈등이 심하다. 거짓으로 쓴 글에 대한 양심이 자신을 못 견디게 괴롭힌다. 일기도 안 쓰고 전학을 가고 싶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다. 아빠의 부재가 가지고 온 상황으로 스스로 불행으로 만든다.
‘정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가족’의 정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민호가 당당해지면 좋겠다. 가족이 함께 살아야만 행복한 가족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펼쳐가길 바란다.
민호와 민호엄마는 스스로 조금씩 변하고 있다. 민호의 글을 통해 민호의 욕망과 결핍을 마주한 엄마는 민호에게 쿠키를 구워 주려한다. 민호 또한 글쓰기에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노력은 억지로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다보면 생기는 세심함, 구체적인 묘사를 위한 관찰력이 향상되는 과정이다. 작가는 이러한 글쓰기의 매력과 힘을 에피소드로 잘 풀어놓았다. 또한 비밀일기를 꾸준히 써 나가는 것은 글쓰는 기술 뿐 아니라 생각의 확장을 가져온다.
민호는 이제 빨강연필의 마법이 아닌 자기의 힘으로 글을 완성해가고 있다. 독자는 민호의 글쓰기 과정을 지켜보며 글쓰기가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 알 수 있다.
민호는 빨간 연필을 만나기 전과 후가 다르다. 민호의 성장이 눈부시다. 마음의 변화가 깊이 느껴진다. 빨간 연필의 유혹을 물리치는 대목이 인상적으로 잘 그려졌다. 유혹에 대해 굽히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를 백일장에서 제목과 다른 글쓰기, 유리 천사의 실수에 대해,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는 부분으로 에피소드가 전개되면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는 모습에 응원한다. 마지막에 효주 이야기를 통해 빨간 연필은 또 다른 아이에게 새로운 서사가 전개될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군더더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소한 것이지만 제목은 ‘빨강 연필’인데 내용에서는 어느 순간 ‘빨간 연필’이 되었다.
특별한 문장으로 다음의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어둠을 할퀸 것처럼 물방울들이 유리창에 죽죽 그어져 있었다’, ‘힘없는 가을 잎들이 툭툭 떨어져 나갔다’, ‘빨간 연필이 머릿속을 갉아먹는 것만 같았다’는 표현들에 시선이 간다. 동화에서는 좀처럼 쓰기 힘든 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