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블레어"(Herbert E. Blair 한국명: 邦惠法 1879-1945.2.20) 선교사는
1879년 미국에서 출생하여, 1904년 11월 20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했다.
그의 첫 부임지는 평안북도 선천(宣川) 지역이었다.
그는 거기서 1907년까지 용천(龍川)구역 담당 선교사로 일했다.
1908년 강계(江界)지역이 개설되면서 북부 지역을 단독으로 책임 맡아
그 후 몇 달 동안 중국과 경계지역인 후창(厚昌), 자성(慈城)등을 답사하였다.
이때는 평양대부흥운동의 영향이 전국에 확산될 무렵이라 그의 兄인
"윌리엄 블레어"(William N. Blair : 방위량)선교사와 함께 겨울 사경회(査經會)집회를 인도하였다.
1914년 대구지역으로 전임한 그는 그 후 대구 서부 교회를 담임하면서 "상주" 구역 교회들을 순행하며 관리하였다.
1941년까지 대구에서 활동하다가 그 해 11월 17일 일제에 의해 강제 출국당해 대구를 떠난 "허버트 블레어"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사역하다가 1945년 2월 20일 필리핀에서 소천하였다.
1905년 10월 선교사로 내한한 그의 부인 "수잔 질레트"(Susan Gillette) 역시 남편과 함께
선교사로 종사하다가 1945년 은퇴하여 귀국하였다.
양화진에는 "블레어" 선교사의 딸(Blair, Honora McClure) 묘가 있다.
1910년 한국에서 출생하고 1919년 8월 2일 서울에서 사망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또 다른 딸(Antoinette Blair)은 1914년 7월 26일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오른쪽의 묘가 선교사의 딸 "호노라"의 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