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둥이
수능을 치르고 온 막내둥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시험 잘 봤니? 응... 얼버무리곤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에 따라 들어가 살살 달래어 몇 등급이나 맞았는지 물어보았다. 제가 원하는 수도권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학이 예상보다 한 등급 낮게 나와 침울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예상보다는 전체적으로 높게 나왔다.
막내둥이는 정말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항상 낙천적이어서 '태평성대'라는 별명을 우리가 지어 주었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장난끼 넘치는 개구장이 얼굴이다. 항상 명랑하고 감기도 별로 안 걸리고 방에 모기가 있어도 쿨쿨 잘 자는 아이는 늘 우리 집안의 귀염둥이였다.
그렇게 쾌활하던 아이도 고등학생이 되자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었다. 고1때 아이는 연극반 활동을 했다. 축제 기간에 공연한 연극을 보러갔는데 한국 교육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아이는 가출한 딸을 둔 아버지 역이었다. 경찰을 상대로 우리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며 어른들의 타락상을 질타하는 모습에서 가슴이 찡하는 감동을 받았다. 우리 막내둥이가 저런 생각을 다 하다니. 훌쩍 큰 아이가 마냥 대견스러웠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막내둥이도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이었다. 어떡하나? 모의 고사 등급이 6- 7 등급 나오는데 어느 대학을 가야 한단 말인가? 학교 성적도 완전히 바닥이었다. 그래도 아이는 태평했다. 시간만 나면 게임을 했다. 아이 엄마가 담임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수업 시간엔 잠만 잔다는 것이었다. 다 큰 아이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타이르고 달래도 아이의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쯍아(막내둥이 이름 지웅이를 우리는 항상 줄여서 불렀다.), 너 커서 뭐할 거야? 아이는 없다고 했다. 그럼, 유아교육과 나와서 유치원 원장하는 건 어때? 바로 유치원 원장 할 수 있어? 아니, 유치원 선생님 하다가 해야지. 아이는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이를 가르치는 건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거였다. 조그만 어린애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우리 막내둥이는 공부해서는 못 먹고 살겠어. 어떡해야 하지. 제과점은 어떨까. 전문대 요리과 보낼까. 우리는 아이 성적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고3이 되어 학교 성적이 중상위권으로 올라가고 모의고사 점수도 3- 4 등급이 나왔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아이가 갈만한 대학을 물색했다. ‘쯍이 학대 보내기’라는 파일을 만들어 모든 정보를 저장했다. 아이 적성 검사도 해보았다. 역시 수학에 가장 높은 적성이 나왔다. 전국 대학의 수학과를 다 알아보았다. 아이는 어릴 적부터 수에 관심이 많았다. 문방구점에서 학용품을 사면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을 했다. 수학 학원 강사를 시켜야겠다.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쯍아, 대학 수학과 가는 게 어때? 졸업하고 수학 학원 강사하면 좋을 것 같은데. 보습 학원? 응, 나중엔 큰 학원 강사도 할 수 있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수능 점수가 나오고 대학 입학 원서를 썼다. 담임선생님과 상담하여 안정권 두 군데 상향 지원 한 군데를 썼다. 나중에 산업대 수학과도 쓰고, 혹시나 해서 취직이 잘된다는 전문대 안경학과와 물리치료과에도 몇 군데 원서를 냈다. 발표를 할 때쯤 우리 부부는 녹초가 되었다. 시험이라는 게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데... 그랬다. 뭔가 불안했다.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4 년제 대학은 다 떨어졌다. 학교 내신 성적 때문인 것 같았다. 1, 2 학년 내신이 6- 7 등급이었으니.
참담했다. 위로하러 간 내게 아이는 '아빠 때문에 재수하게 생겼잖아.' 가슴에 못을 박았다. 전문대는 다 합격했는데 싫다고 했다. 아, 어떡하나? 공부하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지방대도 썼어야 하나.
아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아마 네 살 때였지. 과자를 계속 먹고 있는 아이에게 쯍아, 과자 너무 많이 먹지마 하자. 아이는 과자를 가리키며 이건 빱이야, 이건 빱이야 하며 계속 먹었지. 나는 감동을 받아 쯍아, 안고 마구 웃었지. 과자를 밥이라고 이름을 붙여 먹는 쯍이, 천재 쯍이.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참지 않았다. 달 달 둥근 달 쟁반 같이 둥근 달 노래하며 배고픔을 이겨냈다. 우리 아이도 그 오랜 기호놀이를 통해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천재성이 있다. 문제는 학교 공부가 모든 것을 획일화시켜 평범한 아이로 만들어 버린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빨리 선진국처럼 다양한 교육체계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아이의 타고난 능력들을 계발해 주고 그 능력대로 살 수 있는 세상. 그런 체계가 되어 있었다면 우리 아이도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어쩔 수 없이 재수를 하겠다고 했다. 재수 종합반에 처음 보내던 날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잘 지내고 있을까. 밤 이슥해서 아이가 돌아 왔을 때 아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아이를 따라 방에 들어가자 아이는 침대에 앉아 허공을 쳐다보았다. '사람을 가둬 놓고...' 붉게 충혈된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도 가슴이 메었다. 쯍아, 세상 살려면 공부할 수밖에 없어...
다음 날 아침 달래고 달래 학원에 보냈다. 인터넷을 하다가 대학들이 추가모집 한다는 글을 읽었다. 응? 추가 모집? 등록 안 한 빈자리만큼 뽑는다는 것이었다. 추가 모집 대학들을 알아보고 수도권 대학 수학과 세 군데에 원서를 냈다. 수능성적으로만 본다고 했다.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에 돌아온 아이에게 얘기했는데, 아이는 응, 그래? 하곤 잠시 웃는 듯 했지만 다시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가슴이 쓰라렸다. 막내둥이에게 재수는 너무나 큰 짐이구나.
며칠 후 발표가 났다. 두 군데 합격이었다. 아이에게 전화를 해서 집으로 오게 했다. 쯍아, 축하해. 아이는 헤벌쭉 웃었다. 굳은 표정이 풀리고 평상시의 표정이 되는데 며칠이 걸렸다.
오늘 막내둥이가 과 엠티를 다녀왔다. 한결 성숙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