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의 생존전략 그렇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 아버지 태종의 사랑이 동생인 충녕대군에게 기울고 있음을 모를리 없었던 양녕에게는 ... 그야말로 탁질양광이 피할 수 없는 생존전략이었어야 했다. 그의 이러한 처세는 조카인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 .... 그리고 그 이후 세조에 대한 비굴할 정도의 아첨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양녕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왕실을 대표하여 후원하여 주며.... 수양이 왕위에 오르자 ... 단종과 그 복위운동을 계획하다 실패한 금성대군을 죽여야 한다고 몇 번이나 상소를 올린다. 그러면서도 막상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속리산에서 듣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다. 그 만의 생존전략이 아니라면 이러한 상반되는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런지 ? 모르겠다. 속리산문영월흉보 俗離山聞寧越凶報
영월로부터 비보(悲報)를 듣고 용어귀하처 龍御歸何處 아! 임이시여 어디로 가셨나요 수운기월중 愁雲起越中 구름도 시름인냥 영월에서 떠오르네 공산십월야 空山十月夜 쓸쓸한 가을 밤을 지새워가면서 통곡소창궁 痛哭訴蒼穹 하늘을 우러러 목 놓아 통곡하네... 하여튼 그는 아버지 태종 동생인 세종 치하에서 32년 그리고 조카인 세조 밑에서 15년을 .... 수모와 인내 그리고 살아야 한다는 집념으로 한 평생을 보낸 불우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는 동생을 위해 왕위를 스스로 포기한 위인도 태생부터 자유분방한 기인도 아니었다. 즉, 그는 세자 시절 아비에게서 짐승같은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결국 세자의 자리를 동생에 빼앗기고... 동생인 세종의 치하에서는 ... 그를 헐뜯기만 하는 신하들의 모함을 세종의 변치않은 배려 속에 32년 동안이나 버텨냈다. 그리고 조카, 세조에게는 비열할 정도의 아부로 늙은 목숨을 보존하여야 했다. 오죽하였으면 김시양의 자해필담이란 책에서.. 세조가 등극한 뒤에 왕자와 대신이 많이 죽임을 당하였으나 양녕은 능히 지혜로 스스로를 보존하였고... 세조 또한 양녕을 의심하지 않고 높이 대우하였으니... 사람들은 양녕이 임금자리를 사양하여 어진 이에게 밀어준 것을 어려운일이라 칭찬하지 않고 ... 도리어 끝까지 목숨을 보전한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라고 적어 놓았다. 칭찬인지, 조소인지는 몰라도 .... 아리송한 말을 하고 있는데 어찌 되었건 양녕대군은 도인이나 기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8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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