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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회복
제목 : 엘벧엘로 올라가자!
성경 : 창 35:1-7
찬송 : 338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180805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 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창 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창 35: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창 35: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 35: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창 35: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동영상:다니엘 웹스터 휘틀/아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은 믿음의 족장들 가운데 야곱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에게 고통의 시작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형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빼앗기고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보내기로 작정합니다. 사실은 에서의 분노가 풀리면 다시 데려올 생각이었습니다. 몇 날 동안만 피신하여 있으라는 것입니다. 형 에서의 분노가 풀려 지난 일을 잊어버리면 곧 사람을 보내어 불러 오겠다고 약속합니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합니다. “에서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했기 때문에 야곱마저도 그렇게 하면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그래서 야곱을 불러 축복하고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외삼촌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는 명분으로 그를 밧단 아람으로 보냅니다.
벧엘에서 놀라운 경험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갑니다. 그런데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졌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노숙을 하게 됩니다. 그가 그곳에서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잠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꿈을 꿉니다.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 뭐라고 말합니까?
창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창 28: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벧엘’은 ‘베이트 엘’입니다. 여기에서 ‘베이트’는 ‘집’이라는 뜻이고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이 놀라운 경험을 한 후에 아주 여러 해 동안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결혼을 위해서 14년 동안 머슴 생활을 해야 했고 품삯을 받기 위하여 6년 넘게 고생해야 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은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야곱과 약속한 품삯을 주지 않고 열 번이나 번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라반의 탐욕도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는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야곱에게 나타났습니다.
창 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야곱은 그동안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은 까마득하게 잊고 재산을 불리고 가정을 꾸리는 데만 급급하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란에서 생활을 청산하고 브엘세바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형 에서입니다. 형 에서를 어떻게 만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예물로 형 에서의 마음을 푸는 것이었습니다.
창 32: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창 32: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창 32: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이렇게 많은 예물을 준비하여 형 에서의 마음을 풀어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에서가 사백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분명히 야곱을 치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야곱은 라반에게서 도망 왔을 뿐만 아니라 그와 언약을 맺어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야곱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여기에서 나타납니다. 그는 하나님께 배수진을 치는 기도를 얍복 강가에서 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그의 기도 제목을 듣고 뚜렷한 응답도 없이 가려하자 야곱은 그를 끝까지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천사는 그의 넓적다리 관절을 치면서까지 뿌리치려 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붙들면서 이렇게 요구합니다.
창 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의 위대함은 속이고 쟁취하려는 태도에 있지 않고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확신에 있습니다. 이것은 네게브에서 아버지 이삭의 삶을 보고 배운 네게브 정신이었습니다. 그는 형에게 보호를 요청하지도 않았거니와 그보다 더 강한 힘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축복이면 다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고 장자의 축복도 추구했고, 벧엘의 축복도 붙잡았으며 지금은 가나안 입성 전 축복의 확신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정신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했습니다.
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감히 하나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져주시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 외에는 다른 구원자가 없음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은 도우십니다. 야곱은 여기에서 축복을 받습니다. 야곱은 이 응답의 장소를 ‘브니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얼마 후에 야곱은 에서를 만나게 되었는데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창 33:10)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부하는 말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신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에서의 부드러워진 얼굴을 통해서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다고 한 것입니다. 기도의 확신 후 그 일이 성취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 브니엘을 볼 수 있습니다.
엘벧엘로 올라가라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난 후 요단강 계곡에 위치한 텔(언덕)에 머물면서 초막을 칩니다. ‘초막들’이란 히브리 단어가 ‘숙곳’이라고 하는데 후일에 그곳의 지명이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잠시 머물다가 요단강을 건너 세겜으로 들어옵니다. 야곱 가족은 금 100을 주고 산 세겜 부근 땅에서 한동안 거주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장소는 아브라함이 첫 제단을 쌓았던 곳으로 추정됩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랬던 것처럼 야곱에게도 세겜은 매력적이었고 가나안의 첫 예배처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는 이곳을 ‘수가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세겜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사건입니다. 세겜의 족장인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한 것입니다. 전개되는 이야기로 보면 세겜의 지도자들은 주변 지역을 확실히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를 받고 고통당하고 있던 세겜의 모든 남자들을 다 죽이고 다른 아들들은 시체가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질까지 해 옵니다. 이 사건은 야곱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수가 적고 세겜 인근 사람들이 연합해서 쳐들어온다면 꼼짝 못하고 당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벧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동안 정리하지 못한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정결하게 한 후에 벧엘로 올라가게 됩니다.
창 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창 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창 35: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창 35: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은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의 순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먼저 하나님을 찾고 인간적인 노력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벧엘의 환상, 에서와의 재회, 디나의 강간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먼저 인간적인 노력을 하여 한계 상황에 부딪치고 나서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창 35: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창 35: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야곱은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드디어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엘벧엘’이라고 부릅니다. ‘엘벧엘’이란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언제나 벧엘로 불렸던 그곳이지만, 하나님을 경배하는 야곱의 마음속에서는 영원히 엘벧엘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름이 바뀐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집(베이트)’을 강조했던 그가 ‘그곳에서 만난 분’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의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되신 것입니다. 야곱의 눈길이 장소에서 하나님에게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복된 방향 전환이 아니겠습니까!
벧엘에 멈춰선 그리스도인들
벧엘에서 끝나고 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생각 안에 계시지만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하십니다. 첫 번째 관심사와 두 번째 관심사를 가르는 하이픈(-)이 있다면 이들에게 그분의 이름은 언제나 하이픈 뒤에 놓입니다. 즉, 집이 먼저이고 그분은 두 번째가 되십니다(벧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교파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교파를 앞에 놓습니다. 물론 그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 줄 압니다. 순진한 교파주의자는 교파를 하나님보다 우선한다는 말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거기에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충성하는 것은 좋은 일지만, 그렇게 하느라고 하나님을 하이픈 뒤에 놓으면 나쁜 일이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첫 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믿습니까?
요즘 대형 교회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건물이나 자신들의 목회자가 더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점차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교회마다 ‘엘벧엘’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균형이 제대로 잡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첫 번째 관심사로, 그분의 집을 두 번째 관심사로 삼는 것입니다.
모든 은혜의 전달 수단은 ‘집’ 즉 장소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그곳이 의미를 가지려면 하나님이 그곳에 계셔야 합니다. 은혜의 전달 수단이 그분에게서 나뉘면 올무가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 전달 수단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것 앞에 ‘엘’이 붙을 때 비로소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엘벧엘, 엘엘로해 이스라엘’
인간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 최고의 자리를 드릴 때 비로소 인간도 자기의 진정한 자리를 찾게 됩니다. 그분이 먼저이십니다. 하이픈의 앞에 계셔야 합니다. 우리의 강조점 전체가 어디에 놓였는지를 보면, 우리를 영적 성장을 아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첫 번째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벧엘입니까? 엘벧엘입니까? 내 교회입니까? 아니면 주님이십니까? 집에 관심을 가지면 육신적인 것이고 ‘집의 하나님’께 관심이 집중되면 영적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벧엘에서 엘벧엘로 나아가야 합니다. 야곱의 영적 여정이 벧엘에서 시작되어 20여년 후에 엘벧엘에서 끝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마음의 변화를 체험하며 우선순위를 재정립하여 그리스도께 최고의 자리를 드리기까지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과정이 여러분의 믿음 여정 가운데 있었습니까? 이제 벧엘이 아닌 엘벧엘로 올라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