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은 한국 가요계에 있어 암흑기였다. 아니 1975년 대마초파동으로부터 1984년 들국화의 데뷔까지 한국 대중음악은 권위주의 정권 아래 압살당하고 있었다.
대마초파동과 뒤이은 가요계정화운동의 여파로 많은 음악인들이 자의 혹은 타의로 음악을 등지게 되었다. 신중현은 활동을 금지당하고, 이장희는 이민을 떠나고, 그나마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음악인들조차 활력을 잃고 위축되어 있었다.
그 여파는 특히 언더그라운드에서 더 컸다. 막 락이 주류무대로 올라오려던 시점이었다. 밤무대를 떠돌던 락이 신중현을 필두로 점차 대중들에 알려지며 주류무대로, 포크와 더불어 한국 대중음악의 전면에 나서려던 딱 그 무렵이었다. 그만한 역량이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축적되어 있었다. 참고로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조동익으로부터였다. 당시는 그냥 밤무대였다. 무명가수였고.
아무튼 가요계정화라는 미명 아래 권력에 의한 간섭과 검열이 심해지자 특히 대마초라고 하는 낙인이 찍혀 버린 락음악인들은 더욱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다른 대안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원히 무명으로 밤무대를 떠돌 것이 아니라면 성공을 향한 다른 길을 찾아야만 했다.
히식스와 검은나비를 거치며 흑인음악의 정서가 강한 브라스락으로 인기를 모으던 최헌이 그 첫 테이프를 끊었다. 예전 최헌더러 몇 년 째 히트곡 하나로 욹워먹는다며 놀리곤 하던 그의 초히트곡 "오동잎"이었다.
"오동잎"은 전형적인 성인가요였다. 한 마디로 흔히 말하는 뽕삘 짙은 트로트였다. 흑인음악의 소울이 짙게 느껴지던 최헌의 목소리는 트로트와 어우러지며 강한 호소력으로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10만 장 이상의 앨범이 판매되는 일약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가요계가 그러하듯 한 번의 성공이 있으면 그것을 답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게 되었다. 최병걸도 그런 한 예였다.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밤무대에서 활동하던 밴드보컬 출신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트로트라는 것이었고, 그러면서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스타일의 트로트였다. 고고리듬에 실려 밴드스타일의 연주로 들려지는. 실제 조용필의 경우 "위대한 탄생"이라고 하는, 윤수일의 경우는 윤수일밴도 이전 "윤수일과 솜사탕"이라고 하는 밴드와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밴드와 트로트의 만남. 들고양이는 그 정점에 있었다. 1970년대 후반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당시의 음악을 특정하여 부르던 이름이 트로트고고였다. 젊은 층에서 즐겨 듣던 락과 고고리듬과 기성세대가 여전히 즐겨 듣고 부르던 트로트가 더해진 장르란 뜻이다. 당장 듣기에도 끊임없이 둥둥거리며 울리는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중간의 멜로디컬한 기타의 애드립은 밴드의 그것이다. 단지 밴드음악에 트로트가 덧씌워졌달까? 춤곡의 흥겨움과 더불어. 트로트의 새로운 작은 혁명이었다.
아마 일본에서 엔카가 쇠퇴하는 사이 한국에서 여전히 트로트가 주류음악의 한 장르로서 발전해 올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젊은 층에서도 트로트를 듣기 시작했다. 젊은 층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트로트 문화의 시작이었다. 80년대로부터 지금으로 이어지는 트로트의 양식화와 기교화는 바로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해도 좋았다.
아무튼 참 어렵던 시절이었다. 참 힘들던 시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밴드는 벌이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주류무대로 진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던 75년 이전과는 달리 대마초파동은 그 길 자체를 막아버렸다.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밤무대라는 공간 자체가 성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트로트에 익숙해 있었다는 점이랄까.
하지만 그런 어려운 여건은 음악인들로 하여금 기존의 성인음악을 수용하면서도 그들이 그동안 구축한 음악세계를 그 안에 담아내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끔 만들었다. 사양세를 걷던 트로트도 그렇게 살아나게 되었고, 아예 고사해버리는가 싶던 락은 조용필과 윤수일을 통해 보다 대중적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이어지는 8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암흑시대인 중세의 끝에 르네상스가 있었듯 1980년대 중반은 70년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시대상황에 해외 팝의 영향까지 더해지며 일대 폭발을 일으킨 한국 대중음악의 전기였다.
사실 오동잎을 이야기해야 했는데. 그러나 나는 오동잎의 경우는 가사도 다 외우지 못한다. 내 노래가 아닌 까닭이다. 말했듯 나는 너무 어렸고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부터나 겨우 듣고 기억할 수 있었다. 최헌과 오동잎은... 더구나 오랜만에 최병걸과 그의 노래가 떠오르기도 했고.
어쨌거나 70년대의 최헌과 윤수일과 조용필, 최병걸 등에 이어, 80년대에는 현철, 김정수, 그리고 유현상... 락과 트로트의 10년이 넘는 교류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할 수 있겠다. 대개는 먹고 살기 힘들어진 락음악인들이 살 길을 찾아 일방적으로 트로트로 넘어가는 것이었지만.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억에 새롭다. 아버지도 나 만큼이나 그리 노래를 잘 하지 못하시는데. 익숙한 노래가 정겹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이 흘러가도,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