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동안 마음을 설레이게했던 구레구행 열차표와 하산길 참샘에서부터 백무동 버스터미날까지의, 지쳐서 무겁던 발길 이끌어서 시간 맞춰 타고온 버스표입니다.
당일종주를 또 할 일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24시간도 지나지않아 다시 등산화 끈 조이고 나서고싶습니다.
중독된겁니다.
체중도 3키로 정도 줄고, 아직 허벅지도, 허리도 당기는데
노고단을 비추는, 전 날 블루 문이었다는 8월 1일의 달빛에 젖어 걷다가 동자꽃을 매개로 뭔가에 접신되었지요.
달빛 사라질때까지 걷는 내내 온산에 세레나데가 울려퍼졌습니다.
새벽 1시 50분쯤 달빛 푸짐한 구례구역에 내리니 성삼재까지 1인당 10,000.원에 올려다(?) 주는 택시가 대기중입니다.
30분정도 롤러코스트 주행(?)으로 달리면 성삼재 주차장.
간단히 몸 풀고 출발한 시간이 2시 40분 - 노고단 산장에 03시에 도착.
03시20분 노고단 고개 통과.
숨가프게 걷는데 헤드렌턴 불빛 받은 말나리가 아름답습니다.
급하게 찍은 사진이어서 촛점이 흐리지요.
05시 삼도봉 통과
05시 15분 화개재에서 토끼봉 오르며 여명에 생각난 시
나 죽도록
사랑했건만,
죽지 않았네
내 사랑 고만큼
모자랐던 것이다
박철(1960 - ) ‘사랑’전문.
07시 연하천 대피소는 공사중 - 물 1리터 보충.
갈길 바쁜 중에 휙 한 번 보고.
07시 20분 삼각봉
이정표 뒤로 말나리가 피어있군요.
당일종주에서 촬영까지 하기엔 무리인줄 알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등에 멘 도시락은 끝내 못먹고 하산했지만...
고요한 형제봉에서의 조망
강물이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속 깊은 상처 아물어
생살 돋을 때까지
제 속에 산 그림자를 껴안고 있기 때문이지
바위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속으로 울음 울어
불길 잡힐 때까지
거인이 앉았던 자리에 가득한 고요 때문이지
김삼환( 1958 -) '거인의 자리' 전문.
08시 형제봉 이정표
미역줄나무
넓지않은 나라에서는 보기 드믄 풍경!
일월비비추
어수리
풀숲에서 야생화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허리가 굽혀진다
그 여린 줄기에
꽃피고 지는 일이 아득해서
작은 꽃잎에 담긴 숭고함에
눈 맞추는 순간
꽃도 제 속을 열고
나를 반긴다
들길에서 만나는 세상에
눈과 마음을 씻고
들길에서 배우는 가벼운 삶에
가만히 욕심 하나를 내려놓는다.
남민옥 ‘들길에서’전문
보라와 흰색의 묶음으로 피어나는 산수국과 오렌지색 동자꽃
여름이면 생각나는 시원한 바람이 늘 불어오는 벽소령 가기 전 숲길!
가야할 천왕봉과 능선에 자리한 벽소령 산장
08시 50분 벽소령
09시40분 선비샘 물 1.5리터 보충.
갑짜기 폰이 비명을질러 일단 끈다음 나중에 확인해보니...
갈 길 바빠, 걸어가며 초코파이 몇 개로 아침, 점심 대신하는데, 새벽부터 야생화는 왜이리 나를 유혹하는지
온통 야생화 천국인 여름지리산에서 유독 동자꽃이 눈에 들어옴니다.
마참내 유혹에 못이겨 배낭 벗어놓고 한컷!
저기니까 거의(?) 와갑니다. 장터목 산장이 보입니다.
여름 지리산 - 흰구름 흘러가는 곳
산오이풀
모싯대
일월비비추가 햇빛에 녹아나던 영신봉서 바라본 세석평전과 촛대봉.
12시 세석산장 통과 - 산장 뒤는 방금 지나온 영신봉.
12시20분 촛대봉
모싯대.
시간은 모자라는데 아름다운 야생화는 자꾸 카메라를 꺼내게하고!
돌양지꽃.
지리산서 제일 멋있는 삼신봉서 연하봉 구간
13시30분 장터목산장
장터목 지나 제석봉에 흔한 보라색 며느리밥풀꽃과 막 피어난 구절초
재석봉서 본, 아직 발자욱 식지않은 지나온 능선
산처럼
사랑도 오르는 일보다
내리막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죽은 나무들 사이로
당신이 떠난 후 깨닫는다
엎질러진 물처럼
사랑은 발아래 스며든다
땀 흘리며 묵묵히 오르던
늦가을 벽소령,
당신에게 건네던 물과
함께 쏟아진 마음을
다시 담을 수 없었다
물 한모금으로
더운 가슴 적시며,
무거운 짐 지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사랑했다
하지만, 좁은 외길
함께 걸을 수 없었다
어째서
모든 뒷모습은
눈앞에서 사라지는지
알 수 없었다
- 박후기 (1968 - ) 제석봉에서 이별하다
참취꽃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나무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들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 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전문
14시 10분
다 왔지요!
14시 30분.
사진 우측 상단 2/3쯤의 젖꼭지처럼 봉긋한, 새벽에 시작한 노고단부터 그 옆의 엉덩이 같은 반야봉을 비롯해 지나온 능선이 선명합니다.
인파로 붐비는 정상석 대신 표지판 .
행여 견딜만 하면 제발 오지마시라는 지라산을
이제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갑니다.
18시 30분 출발 버스.
시간 안에 백무동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할 시간 (여기서부터 주력이 눈에 띄게 줄어듬.)
내려서는 길에 장터목 샘에서 물 보충하려다, 몇 십 미터 돌아 내려가는것도 힘들어 그냥 통과했는데, 참샘까지 오는동안 목말라 고생.-참샘서 1리터는 마신것 같음.- 오랫만에 느낀 물의 참맛!
차가운 계곡물에 불 날것 같던 발 식히는 쾌락(?)도 누리고!
삼십 몇 키로의 아름다운 산길과 열다섯 시간의 산행!
냉방 잘 된 버스에 타자마자 스스르 잠!
버스는 정확히 4 시간만에 남부터미널에 도착.
버스에 앉아 잠시 조는 사이
소나기 한줄기 지났나보다
차가 갑자기 분 물이 무서워
머뭇거리는 동구 앞
혀연 허벅지를 내놓은 젊은 아낙
철벙대며 물을 건너고
산뜻하게 머리를 감은 버드나무가
비릿한 살냄새를 풍기고 있다.
신경림(1936 - ) '여름날 마천에서' 전문.
첫댓글 하고 싶은일 하는것이
제일 행복하지요~
미쿡 잘 다녀오시길!
대단하세요
8월 1일 0240-1800. 천국과 적당한(?)고통이 함께하는 보람있는 하루였지요.
그 나이에 무박 종주 !
누구(?) 말대로 엔진이 좋아야 ~
일단 나서야지요!
해보긴 했냐는...
요즘 지리산 산장들 예약하기 쉽지 않지요 !
이젠 예약 필요없이 논스톱으로
덩달아 나도 종주한 느낌 ^^
별 다섯개..ㅎㅎ
ㅎ
감사!
계속 자료 보충 중
블루문을 보면 행복해 진다는...더 행복해질 수 없을 듯....쩝
동감! 31일 한강서 같이 즐긴 블루문의 행운이 이어지는듯
Wa!
대단하십니다^^
저는 보기만해도 힘듭니다 ㅎㅎㅎ
아직까지는 싱싱한 젊음을 확인하며 걸었던 즐거웠던 시간!
대단하시네요 지리산 천왕봉 새로운 루트가 되겠네요
전과 달리 길이 잘 정비되어 걸을만합니다.
산티아고에 비할까요?
좋은 날 같이?
불 날것 같은 발바닥!
더운 여름날 중등산화 신고 열 시간 넘게 쉬지않고 걸으면 발바닥 뜨거워집니다.
정말, 발바닥 불 납니다 !!
아시는 분은 아시는...
슈베르트의 선율이 솜사탕처럼 마음을 녹여줍니다
대성동 골짜기가 짠하고요! 제석봉이 피워 올리는 구름은 정신을 혼미하게 합니다
“이슬의 눈으로
겸허하게
온 몸을 불사르며 오라는~
어찌 견딜 만하면 제발 오지 마시라“ 는
시인의 말이 더 잔인한 유혹입니다
덕분에 눈이 맑아졌습니다^^
좋은글 그림 감사 합니다!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마시라는 말씀을 이해하시는 분들!
방금 KBS 1TV 사람과 사람들을 우연히 보니 이원규 시인 이야기입니다.
J일보 교열기자도 했었군요,
최백호의 나레이션이 어울립니다,
그 이시인!
장면에 어울리는 시가 좋습니다
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