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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등록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7호 | 1984-04-01 | ||
명칭 | 한글 | 동죽서원 | ||
한문 | 東竹書院 | |||
관련 | 인물 | 덕촌공(德村公) 휘 희정(希汀) | 1484~1529 | |
가문 | 문성공계 | 문성공 9세손(중랑장공파, 고부종회) | ||
요약 | 덕촌공과 스승 조광조(趙光祖)를 배향한 서원. | |||
소재지 | 전북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 산13-1번지. |
덕촌공의 자는 정지(汀之), 호는 덕촌(德村)이시다. 1484년(성종 15) 선천부사공 휘 명손(命孫)의 둘째아들로 태어나시었다. 조광조의 제자로 1510년(중종 5) 무과에 급제하시어 벼슬에 나갔는데 중시(重試)를 치르려고 하실 때 여진족 속고내(速古乃)가 함경도 종성에 침입하여 이극일(李克一)이 전사하였다. 위기를 해결할 장수를 찾을 때 조광조가 덕촌공을 추천하여 통정대부 종성 판관으로 임명되시었다.
덕촌공은 현지에서 징집한 부대로 여진족을 대파하시어 국경을 회복하시고 방비를 튼튼하게 하시어 여진족이 다시는 침략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여 비로소 변방이 안정되었다.
조정에서는 덕촌공을 치하하여 품계를 올리고 민전(民田)을 하사하였으나 쳐들어온 적을 몰아내는 것은 신하된 자로서 당연한 도리인데 어찌 따로 상을 받을 수 있는가? 하시면서 사양하시었다. 조정에서는 동죽산 일원 10 리의 땅을 특별히 하사(特賜)하였는데, 그 땅에 동죽서원을 세워서 스승 조광조와 함께 배향하였으며, 돌아가신 다음 가선대부 병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로 증직되시었다. 동죽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2월 16일에 서원제를 올리고 있다. 추가 정보는 110쪽 등록문화재 제366호 정읍상학마을옛담장을 참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