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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봄비가 새 봄을 재촉합니다. 온 세상에 계신 오천만의 로마서를 보신 약 35만 명의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시는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위로가 충만하시기길 기도합니다. 약 10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많은 분들이 제 글을 발표하는 순간 순간 바로 바로 쉬지 않고 읽어 주신 고로 저는 힘을 내어서 열심히 글을 쓰고 만 5년이 되고 6년으로 갑니다. 순식간에 5년의 세월이 흘렀고 1년에 약 200편의 글을 책상에 앉으면 일사천리로 쓴 것 같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이제 13년이 되었는데 저는 이렇게 온 세상에 인터넷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에 집착해서 많은 글을 올렸고 성경을 읽고 정리한 내용도 다 올렸습니다. 다음 카페에도 있고 네이버 블로그에 있으니 좋으신 데로 성경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제게 쉬지 않고 지혜와 열심을 주셔서 너무나 재미있고 쉽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저를 통해서 온 세상에 퍼지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을 이렇게 진행이 된 오천만의 로마서의 가장 최신의 그리고 가장 잘 정리된 로마서의 내용을 모든 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 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온 세상에 대한 뜻을 이해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귀한 일을 감당하시길 빕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가 갈린 것은 모두가 알고 개신교의 등장으로 세계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주도의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고 개신교 국가 미국은 전세계에 4만 명의 선교사를 보내며 세계 최강의 국가이고 한국도 개신교와 천주교가 같이 부흥하고 있으나 개신교인 더 많은데 역시 2만명의 선교사를 온 세상이 보내고 있는 선교 세계 2위의 국가입니다.
이신칭의의 교리는 500년 동안 천주교 학자와 개신교 학자가 서로 다투기도 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같이 연구도 하고 지금까지 평행선으로 오고 있지만 미천한 인생의 과정적인 이신칭의는 제가 성령을 받고 전도하면서 겪는 과정에서 이해된 내용으로 새로운 이신칭의에 대한 접근이 될 것을 믿습니다. 이와 함께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서 이해된 로마서 4장 17-22절의 칭의 되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과 하박국서 2장 4절의 올바른 이해를 통한 로마서 1장 17절과 3장 21-26절의 이해는 지금까지 논의 된 로마서의 논의를 완전히 뒤집고 올바른 성경의 이해로 갈 것으로 믿습니다. 이 자료는 이 하나님 나라 건설과 바울 서신으로 영어로 번역해서 한글, 영어로 같이 카페와 블로그에 올렸고 미국과 영국, 독일, 캐나나 호주 그리고 한국의 주요 신학대 11개 대학의 교수님께 보내려고 주소 작업도 다 해 놓았습니다.
제가 예수님께 1992년 불을 받고 약 30년 동안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서 이해된 과정적인 이신칭의와 로마서와 관련된 성경들을 보면서 이해된 최근의 이신칭의의 이해를 종합해서 보면 이신칭의는 먼저 그 주체가 개개인의 믿는 사람이나 혹은 신학자나 혹은 나를 섬기는 목자가 아니라 분명하게 그 주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믿는 사람을 자신의 때에 너는 의롭구나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도 그냥 오늘 믿는 믿음이 절대로 아니고 네 믿음 나의 믿음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로마서 4장 17-22절 말씀대로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고(약 75세)서 100가 되기 까지 변치 않고 강해지는 믿음에 대한 인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도 그냥 하나님을 막연히 믿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에게 약속하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과 불가능한 일 즉 100세가 되어 아내도 자신도 절대로 자식을 가질 수가 없는 몸이 되어도 이를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며 이 믿음이 세월이 가도 가능성이 점점 불가능 해져도 오히려 더욱 강하게 믿은 믿음을 보시고 비로소 하나님께서 네가 의롭구나 하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만 보고서 믿으면 의롭게 된다는 것은 절대로 틀리지는 않으나 4장에서 이렇게 그 믿음에 대해서 설명한 것을 루터는 분명하게 보고서 이런 믿음이 의롭게 되는 믿음이다라고 설명을 했어야만 했는데 만약에 그가 이 부분을 놓치고 논의를 진행했다면 그리고 500년을 이 분의 말을 맹신하고 그냥 그대로 개신교가 쫓아갔다면 이제는 냉철하게 이 부분을 확인하고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바국서를 만약에 또 루터가 확인도 아니하고 로마서 1장 17절에 모든 정신이 다 쏠려서 그렇게 주장했다면 이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하는데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로마서 1장 17절의 인용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직 3장으로 지금 바로 읽어도 5-1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그 내용은 하바국이 그의 조국이 타락 할 대로 타락을 해서 이제는 자신과 같이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이가 조금도 더 살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 자신의 조국 남유다를 그냥 두지 말고 어떻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자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을 하시겠다고 대답하니 이에 대해서 다시 하박국 선지자가 어떻게 악한 바벨론을 선하신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실 수가 있습니까 하고 여쭈니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바벨론을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하시면서 역시 멸망을 시킬 것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지만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살 것이다라고 하는 대답이 하박국서 2장 4절에 있습니다. 이를 바울 사도가 로마서 1장 17절에서 인용을 하신 것이고 이 구절이 마침 루터의 눈에 들어오고 당시의 천주교에 대해서 이 구절로 면죄부 등의 행위에 대해서 95개 조항 반박문이 붙고 이를 도화선으로 개신교가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박국서를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된다 혹은 될 것이다라는 의미는 이런 불의한 남 유다가 그 불의로 멸망하고 그리고 더 악한 바벨론도 멸망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믿음으로 하루 하루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 믿음이 바로 불의한 동족 남 유다와 또 역시 불의한 바벨론을 하나님께 심판을 하실 것이라는 데 대한 믿음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정의를 세워 주실 것이란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살게 되는데 그 삶은 이들과 똑같이 불의의 삶이 절대로 절대로 아니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이런 불의를 심판하시고 정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자신도 정의롭게 살 것이라는 의미를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국어를 아는 사람은 다 알 수가 있는 내용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불의로 망해가는 남 유다의 왕과 고관 대작과 일반 백성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박국과 같이 불의에 대항해서 죽도록 어렵지만 하루 하루 정의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제 이 하박국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믿음을 동시에 보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신칭의는 그 믿음이 일단은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할 정도로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믿음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가든지 정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신칭의를 이렇게 로마서의 이면에 숨겨진 내용과 다른 성경의 이해를 통해서 보면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 믿음이 날이 갈수록 강해져야 하며 세상에 살면서 불의가 만연하더라고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살아야만 되는 믿음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칭의의 때와 그 칭의를 결정하는 주체는 믿는 나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칭의는 시간의 문제이요, 행위의 문제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결정의 문제입니다. 내가 할 수가 있는 것은 아브라함과 같이 변치 않고 믿고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지금의 세상을 살고 그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결정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대로 믿고 마음대로 살면서 정의도 사랑도 버리고 자본주의 논리로 부자가 되고 싶어서 오늘도 부동산, 오늘도 땅 땅땅, 주식 주식, 복권 복권하면서 스스로 나는 로마서 1장 17절에 따라서 예수님을 믿으니 의롭게 되었다 나는 구원을 받았다 나는 천국에 간다 외치고 그리고 그런 사람을 목사가 당신은 의롭게 되었소! 하나님께서 당신을 의롭다 인정을 하셨소! 한다면 제가 볼 때 그 목자와 성도는 반드시 제가 설명하는 구절들을 다시 살펴 보고서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오직 믿으면 의롭게 된다는 간단한 주제가 제가 설명하는 이신칭의와 얼마나 그 내용이 서로 다른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교의 행위를 주장하는 것과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란 내용과도 완전히 일치함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신칭의의 이해와 천주교 개신교의 분리와 깊은 관계가 있지만 모든 믿는 사람에게도 이 교리의 올바른 이해는 죽고 사는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으니 절대로 정신을 차리고 올바로 이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6단으로 된 서랍장이 있습니다. 그 서랍장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스텔스 기능이 있는 초 강력 울트라 영적인 전투복이 서랍 안에 있으니 하나님께 고이 넣어 두시고 믿음으로 모든 성도가 그 전투복을 속히 꺼내어서 입고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서랍장 단 마다 열쇠가 있는데 이 열쇠는 그 번호가 일치합니다. 아시는 분은 제가 설명을 드리는 내용을 아실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3-17절에 있는 말씀으로 그 말씀 중에 의의 흉배를 입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의로 이루어진 가슴에 차는 보호대인데 현대로 보면 방탄쪼끼입니다. 심장과 장기가 있는 가슴부분을 보호하기 위해서 총알도 막는 방탄복을 군인은 입습니다. 그런데 그 방탄복이 불량품이면 어떻게 됩니까? 자신은 총알을 막을 것이라 믿고 입었는데 실제로 총알이 날라와서 바로 뚫어 버리면 그 병사는 죽은 목숨입니다.
이제 신학자가 목사가 당신은 예수를 믿으니 의롭게 되었소 루터가 그렇게 주장했고 그리고 그 근거가 로마서 1장 17절에 있고 로마서 3장 21-26절에 있소! 500년을 내려온 개신교의 기둥이요! 절대로 흔들면 아니 되는 기둥이요. 당신은 예수를 믿으니 이제는 의롭게 되었소! 그래서 천국은 보장이요! 한 번 의롭게 되면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취소가 없소! 하니 내가 이를 믿고 예수를 믿으니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천국은 간다 하고 산다고 합시다 실제로 한국의 개신교인 99%이렇게 믿고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제가 설명을 드린 내용으로 자신을 보시고 자신의 의에 대해서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자신이 이제는 의의 흉배를 입고 있다고 믿을 수가 있는지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했으니 이 모든 믿는 이가 아브라함과 같이 하박국과 같이 믿는 이에 대한 설명인지 아니면 한국의 모든 예수를 믿는 이인지는 반드시 분석이 필요합니다. 제가 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이는 반드시 하나님으로 인정을 받을 만큼 정의롭게 살아야 하고 그리고 그 믿음이 오랜 시간 변치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이 편지를 쓸 때 처음 믿음 때와 약 20-25년의 세월이 흐른 뒤이고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도 정말로 겸손히 하나님께 맡겨 두었습니다.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정말로 예수를 믿고 올바로 살고 죽을 때가 가까워진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내가 할 만큼 했으니 나는 천국이 당상이다 이렇게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 예수를 믿고 무슨 일을 했다고 벌써 천국은 보장이란 말을 함부로 쓸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바울 사도는 그렇게 하셔도 되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언제 하실지 모르는데 내가 나서서 나는 의롭소! 혹은 목사가 신학자가 나서서 당신은 의롭소! 어찌 이런 말을 감히 할 수가 있습니까? 저는 절대로 절대로 이렇게 어떤 신자도 할 수가 없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의 믿음을 세세토록 알고 그렇게 선포를 할 수가 있습니까? 정말로 정말로 깊이 생각하시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칭의도 되지 않은 분이 스스로 의롭다 믿고 자처하다가 가슴에 총알이 날라왔을 때 그 믿음으로 입은 의의 흉배가 뚫리면 그 때는 어찌 할 것입니까? 저는 성경을 읽고 정리하지 않은 어떤 목사나 신학자도 자신의 목회와 신학에 조심을 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네가 무엇이냐? 하고 제게 덤비면 저는 예수님께 불을 받고 전도 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100%는 아니지만 성경을 약 25년 정도 읽고 정리를 해 보았고 그 모든 증거가 오천만의 로마서 블로그와 카페에 있으니 모든 분이 확인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칭의는 하나님께 맡기시고 오늘 하루 예수님의 뜻에 따라서 사는 것을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천주교, 로마서, 야고보서가 별로 갈등이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그리고 개신교 목사가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저는 개신교인입니다.
반드시 반드시 1장 17절과 3장 21-26절을 이렇게 이해를 해야만 다음 로마서의 이해의 진도가 나가게 됩니다. 그 진도가 바로 율법과 행위와 믿음과의 관계로 이도 천주교 개신교가 공히 깊이 고민을 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앞의 이신칭의의 허술한 이해가 지배하면 율법에 대한 이해도 모호해져서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올바로 설 수가 없고 성도는 그냥 예수를 믿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서 잘 먹고 잘 사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하고 독하게 세상에서 불의를 행하든 무엇을 하든 잘 살려고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고 있는 나라가 대부분의 개신교 국가이고 미국이고 한국입니다. 그렇다고 천주교 국가가 올바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예수를 믿고 살아야만 하는데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무엇이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이 나의 행위의 기준입니까? 대부분의 성도가 말씀이 기준입니다. 정말로 잘 맞는 말입니다. 성경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성경말씀 중에서 무엇으로 내 행동의 기준을 삶습니까?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율법에 대한 말씀과 바울 사도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라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의 기초가 되는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시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롬 6: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위의 말씀은 우리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고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계시고 요한의 주장대로 천지의 창조주의 말씀입니다. 아래의 말씀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는 이를 핍박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감동으로 인간 바울 사도의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신 목적을 말씀하시며 조문 조문도 잘 지키고 그렇게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토록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반드시 그대로 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말씀에 어긋나게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절대로 누구도 그대로 받아 들이면서 로마서의 6장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으로서부터 자유에 대해서 백인 백색의 해석이 등장하게 됩니다. 유튜브를 보시면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통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의 주장도 듣고 배우고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조문을 잘 지키라고 하시고 예수도 믿지 않은 유대인이 2000년동안 율법을 예수를 믿는 성도보다 잘 지키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율법의 묵은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라고 합니다.
난감하지 않습니까? 이제 가운데 있는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어디를 쫓아가야 합니까? 여기에 대한 이해가 지금 중동과 이스라엘과 하바스간에 벌어지는 전쟁과 또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이해가 로마서에 대한 이해에 달렸습니다.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의 문제에 대한 바울 사도의 설명인데 율법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게 되어야 이 부분도 이해가 되고 성경 전체가 잘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바울 사도가 이렇게 설명하고 그리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놓고 백명의 신학자와 백명의 목사가 다 다르게 설명하니 가운데 있는 성도는 그냥 아무것도 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바울 사도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아! 이제 신약의 시대는 율법을 그냥 두고 율법대로 살지 않아도 되는 구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은 무시하게 되고 모두가 천국에 가더라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토록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도 되는 분은 그렇게 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상급을 더 받고 싶은 영적으로 갈급 하신 분은 좀더 연구를 해 보아야 합니다.
반드시 중심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두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최근에 이해를 하나님의 은혜로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존중하려고 했는데 율법은 이미 알지도 배우지도 않았기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의 기독교인이 다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게 성령의 불을 받게 하셨으니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축복을 없습니다. 모든 성령을 받은 분은 그렇게 놀랍고 크신 축복을 받은 분이라 세상에 모든 것이 실패해도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쉬지 않고 전도하게 하시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게 하시고 그리고 모든 일에 실패하게 하시고 그리고 다른 생각도 못하게 살게 40년을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분은 제가 여러 번 설명을 드렸습니다. 국세청 자료로 20년 동안 소득이 총액 8천 몇 백만원이었습니다. 그러니 평균 20년을 한달에 약 40만원의 수입으로 견딘 것입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가정도 꾸리고 신학도 하고 목사도 되고 직장에서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성령을 받은 후 약 32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6년 전부터 이렇게 온 세상에 제가 받은 은혜와 성경을 읽고 정리한 자료를 나누는데 이렇게 나누는데 하나님께서 제가 또 크고 놀라운 은혜를 주셔서 많은 성경의 이해가 왔고 이를 모두 여러분과 나누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전에는 자신이 낡았다고 생각하던 율법을 지상 최고의 귀한 것으로 알고 온 목숨을 다 바쳐서 율법이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최상이요, 최선이었습니다. 지금의 헌법을 최고로 알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되고 변호사가 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이들은 헌법을 중심으로 하위 법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법대로 재판을 합니다. 이 법을 잘 만들고 이 법이 지배하면 좋은 세상이 옵니다. 저도 한 때 행정고시를 죽도록 공부할 때 예수님을 믿었지만 행시에 합격해서 헌법하에서 나라를 다스리고 싶었던 꿈이 있었고 거의 목표에 갔는데 행시 2차 시험에서 1점차 낙방하고 그리고 이제 목사가 되려고 성경을 공부하게 시작했습니다. 1992년 성령을 받을 때 낙방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부분에 유대인 중에서도 1인자 였습니다. 율법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고 이상이었고 생명과 같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가두는 일을 적극적으로 행했습니다. 놀라운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사람 바울이 쓴 글이 위의 로마서 6장입니다. 너무나 변하지 않았습니까? 이 변화를 이해해야 위의 구절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변화가 됩니까?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만납니다. 당시 율법학자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제가 달리 설명도 필요없이 세 버전을 보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모든 대학생은 영어를 합니다. 한국의 희망입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조금 풀리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 온 지구의 리더가 됩니다. 정말입니다. 이제 한국에서 모든 세상을 구할 지도자가 나올 것입니다.
율법학자야 율법학자야 제발 내게 배워라 나는 천국에서 왔노라 천국에 대해서 가장 잘아는 자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구약에서 말씀을 찾아서 필요한 때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신약에서 또 말씀을 찾아서 성도에게 나누는 것과 같이 될 수가 있다. 베드로가 어부 베드로가 그렇게 못한다. 반드시 율법에 정통해서 그렇게 되니 율법학자야 제발 내게 천국에 대해서 배우거란 말씀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인 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그렇게 한 사람이 있습니까? 도리어 십자가에 메단 사람들이 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가 꼭 필요했습니다. 왜 그렇습니다. 구약의 말씀이 자신에 대한 예언인데 구약을 잘 알아야 비로소 예수님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고 이스라엘의 구세주! 약속된 메시야가 예수님 임을 성경을 통해서 설명을 해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자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땅에 또 오셔서 바울 사도를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가 다메섹 도상이었으니 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으려 다 혈안이 되어 날뛰던 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예수님의 참모습 앞에 완전히 꼬꾸라졌습니다. 과거의 자신의 일이 다 잘못이 되었음을 순식간에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된 인물이 바로 욥입니다. 자신의 의에 대해서 너무나 강하게 믿어 모든 것이 다 날라가도 그 의를 굽히지 않다가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심문을 하니 바울 사도와 같이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지구상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정신을 올바로 차릴 인간은 한 명도 없으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는 경우는 성경을 통해서도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서도 귀하고 귀한 일입니다. 혹 그런 경험을 하신 분은 그를 자랑치 말고 세계적인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나니야를 만나서 회개하고 성령을 받습니다. 이 부분의 이해가 없이 절대로 위의 구절의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체험이 없이 로마서를 신학적으로 풀면 성령의 체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들립니다. 신학의 한계를 늘 인정을 해야 합니다. 진실로 바울 사도와 같이 성령을 받고 구약도 잘 알고 신약도 잘 알면 최고입니다. 저는 율법을 잘 배우지 못했고 배우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 로마서를 쓸 때까지 약 20년 25년의 복음전파의 삶을 또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마음이 부드럽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과 함께 예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의 삶 그대로입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이방에 복음을 전하게 되고 교회를 세웁니다. 그리고 구약과 예수님을 잘 살피면 구약의 약속 하나 하나가 모두가 예수님과 관련이 있고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옛 것이 아니라 옛 보물과 새 보물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예수님께 교육을 받은 서기관 1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게 되면 놀라운 권능이 임하게 됩니다. 다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입니다. 방언과 통변, 병 고침, 예언, 영 분별, 지식과 지혜의 은사 등 옛 사람 바울이 최고로 알고 누리던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새로운 삶이 자신에게 일어났습니다. 사람을 만지니 낫고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으니 잠잠한 하나님만 믿다가 이제는 성령께서 자신의 마음에서 늘 위로와 소망을 주시고 말씀을 들을 수가 있게 하십니다. 가라 말라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며 격려 하시고 기적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천국에 직접 가서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놀랍고 위대한 세계를 실큰 맛을 보았습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보라 옛 사람 바울은 사라졌다 새 사람 새 창조물 바울이 있다. 나는 삼위 일체 하나님의 작품이다 나는 성령으로 낙관이 찍힌 새 사람이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과거에 율법으로 의롭게 되고 율법으로 행하던 것을 다 버리고 성령으로 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율법을 어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을 버리라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은 그대로 글자 한자 흠 내지 말고 그대로 두고 악을 분별하고 예수님을 이해하는데 사용하고 성령을 따라서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선을 행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하면 성령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율법의 일점 일획 어긋나지 않게 다 완성을 시켜주신 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다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라는 표현에는 이렇게 바울 사도의 성령의 인도를 받은 20-25년의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도 없이 성령의 경험도 없이 어찌 이 구절이 이해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100인 100색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흔들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절대로 율법을 무시하고 어기라는 말이 0.0001 %도 없는 말입니다. 율법을 잘 배웠고 이를 누구 보다도 잘 지키려고 했던 바울이 이제는 율법의 묵은 조문이 아니라 새로운 영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결국은 율법의 완성으로 결과를 맺습니다. 성령의 인도가 결국은 율법을 다 잘 지키고 행하는 쪽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율법을 조문 조문 다 지키라는 말씀도 결국 순종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왜 인간이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하게 됩니까? 그것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기에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무슨 의미입니까?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서 새롭게 된 창조물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로 가능하게 되는 일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율법을 인간이 혹은 자신의 백성이 지키는 것은 절대로 포기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 정의가 실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실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뢰가 넘치는 세상도 율법의 준수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께서 그 백성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절대로 원하십니다. 그런데 구약은 인간의 능력과 방법으로 합니다. 그래서 실패합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새롭게 창조된 피조물이 영의 새로운 것으로 즉 성령의 인도로 성령의 충만으로 합니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렇게 해서 도리어 율법을 완성하게 되고 이는 결국은 예수님의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라는 명령도 순종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점수를 잘 맞기 위해서 공부를 죽도록 하는 경우와 그냥 공부가 좋아서 하다보니 점수가 잘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율법의 가치를 알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율법의 위대함을 알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도는 율법을 세상의 모든 법 보다 사랑하게 되고 율법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전의 억지의 마음이 아니라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가령 5천만이 사는데 누가 남한의 땅과 집을 독차지 하려고 과도 하게 가지게 되는 경우 성령께서 야 너가 그렇게 많이 가지면 집도 땅도 없는 불쌍한 네 이웃이 생기잖아 그래도 그렇게 욕심을 부릴래 하면 예수도 모르고 성령도 모르면 이런 이야기도 알지 못하고 오직 땅과 집을 끝도 없이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마음이 부드럽게 되면 이제 성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예 맞아요 제가 너무나 이 좁은 땅에게 집과 땅을 많이 가지면 문제가 많네요 저는 꼭 적당하게 집과 땅을 가지고 더 이상 이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집과 땅을 과도하게 가지는 것은 큰 죄에 해당한다고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이렇게 율법을 쉽게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알지도 못하면 이에 대해서 혼란이 일게 되고 그냥 자본주의 논리로 부자가 되려는 마음에 죄를 짓는 쪽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한국은 이미 가용국토의 약 50%를 국민의 1%에 해당하는 50만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50%는 1600만이 소유하고 있고 국민의 약 70%에 해당하는 국민이 땅이 한평도 없고 집이 없는 국민이 국민의 절반이 되니 율법으로 죄를 논할 때 이미 너무나 국가적으로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동참한 믿는 이 믿지 않는 이 모두가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성취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 비밀을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이 알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이 비밀을 지금의 유대인에게 전해야 되는 사명이 모든 크리스천에게 있습니다. 저의 삶도 바울 사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부족했지만 이렇게 이해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았지만 바울 사도와 같이 홀로 산 것이 아니고 결혼도 두 번이나 하고 죄도 큰 죄를 지었던 너무나 부족하고 부끄러운 사람에 불과합니다. 이런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성경을 이해하는 은혜를 주셨으니 저보다 순결 하신 모든 성도가 다 이렇게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제겐 제 흉악하고 큰 죄를 보고서 직접 멸하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베드로와 같이 늘 회개하고 충성하라는 뜻으로 옵니다. 이를 믿고 늘 겸손하고 충성을 다하려고 하니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의 복음 전파와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저도 모든 분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 즉 창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작품이 되고 성령의 낙관이 찍힌 바울 사도, 이방인의 사도로 이방인의 선교의 선봉이 된 바울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충성한 바울, 그 바울 사도의 충성스러운 경험들이 다 바울의 서신에 녹아 있으니 바울의 서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바울과 같이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입니다. 피겨를 대학 대학원에서 이론으로 공부하고 태권도도 그렇게 공부해서 교수가 되었습니다.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진작 피겨는 별로 경험도 없고 못합니다. 그런데 피겨를 가르치고 태권도를 가르치려 합니다. 김연아가 그런 교수를 볼 때 태권도 금메달 리스트가 그런 교수를 볼 때 얼마나 허술하고 부족하겠습니까?
전도의 경험도 성령의 선물도 없이 목사가 되고 신학자가 얼마든지 될 수가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전도자는 공부가 부족합니다. 이들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대 법대를 나온 법대생이 성령을 받아서 겸손이 늘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한다면 이분께서 로마서를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를 하게 될 것이지만 이도 20년 25년을 바울과 같이 살아 보아야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저는 서울대로 아니요, 교회를 세운 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선택이 되어서 이렇게 살아야만 했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를 자유 하게 하셨습니다. 저를 기다려 주셨습니다. 흔히 예수님을 따라가면 종이 되어 이것 하라 하면 하고 저것 하라 하면 해야 되는 줄로 알고 또 자신의 욕구 대로 꼼짝도 못하고 얽매이게 되는 줄로 아는 사람이 있으나 저를 38년쯤에 부르신 하나님은 늘 인내 해 주셨고 늘 기다려 주셨고 늘 격려해 주셨고 저는 정말로 자유로웠습니다. 예수님께 제 모든 짐을 대부분 맡겼습니다. 사는 문제도 맡겼습니다. 그리고 늘 평화로웠습니다. 제가 인격이 능력이 있어서가 절대로 아닙니다. 제 첫 처는 제게 말도 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살기가 힘이 들었는지 제가 죽어도 살수가 없는 사람이었는지 지금도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정말로 못된 사람인 줄 점점 더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도 제게 100%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못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시고 은혜가 넘치시는 하나님께서 제게 쉬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힘을 내거나 걱정 말라 그리고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제게 쉬지 않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모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를 그렇게 사랑하실 줄 굳게 믿습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십자가 대속의 사랑과 그리고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 그리고 내주하심으로 이렇게 온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이를 밝혀서 저도 이렇게 이해가 됨을 밝히는 것입니다. 저는 자유로웠고 평화로운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있고 온 세상에 전하고 있고 제 부활 전도지로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온 세상에서 예수를 믿게 될 줄로 굳게 믿습니다. 제게도 얼마나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까?
진실로 모든 분께 하나님께서는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에 달하는 달란트를 다 주셨습니다. 한 분 한 분이 다 그렇게 귀중 하신 분들이십니다. 믿는 분 믿지 않는 분 다 그렇게 중요하고 귀하신 분들이십니다. 악을 행하고 죄를 짓고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하고 모든 죄인이 다 그렇게 중 하신 분들이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분께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으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해서 진실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가 가진 수십억 수백억 하찮은 돈과 비교가 되지 않는 놀라운 열매를 거두게 하실 계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축복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기초가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가장 먼저 외치신 부분이 회개입니다. 바울 사도가 서울대 법대생이 그대로 있으면 절대로 사용이 불가합니다. 회개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면 놀라운 온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성령께서 오십니다. 이 약속은 모든 하나님께서 부르신 모든 분께 있습니다. 베드로도 베드로가 설교해서 회개한 3천명 5천명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이 성령을 이미 받고 올바로 사셨던 선배 크리스천이 있었고 그리고 지금의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모든 믿는 이의 기초가 됩니다. 이 기초가 흔들리며 나중에 믿는 사람도 흔들리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믿음으로 기초가 되신 분이십니다. 일반 믿는 분이 절대로 될 수가 없는 믿음의 조상입니다. 선교사로 가시는 분들은 그 지역의 믿음의 조상이 되고 가족 중에 처음 믿는 분들은 그 가족의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이의 조상이 되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회개도 그렇습니다. 회개가 없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가 없으면 죄 사함의 문제에도 걸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의 선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 잘 배운 성도도 성령을 받고 움직입니다. 그분들과 같이 우리는 잘 배우기 힘이 듭니다. 그런데 성령없이 움직이면 어떻게 됩니까? 급해도 회개를 분명하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죄의 용서 그리고 성령 선물이 차례로 옵니다. 물론 말씀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 베드로 사도께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릅니다. 그리고 모든 예수님의 사역을 다 보십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예수님도 보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보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기다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고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대로 그대로 기록을 했습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아무리 신학이 급하고 목회가 급하고 장로가 세워지는 일이 급해도 성도는 성령을 받는 일이 가장 시급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렇게 하면 주신다고 했으니 이렇게 하셔서 받으시면 됩니다.
저는 이도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38년 전에 전도자가 전해 주신 성경책을 통해서 회개를 했습니다. 가만히 방에 있는데 두려움이 임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이리 저리 보는데 성경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펴니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이 제 눈으로 들어오는데 제 마음을 거울과 같이 비추면서 들어왔습니다. 당시 저는 중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 있을 정도로 불교에 심취했던 상태였는데 그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고 무릎이 꿇리고 저를 도구로 써주세요 하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약 5년을 과거의 저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너무나 강하게 제 잘못된 모습을 보았기에 절대로 과거의 저로 돌아가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5월 19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행시 2차 준비를 하던 1992년 2월경에 예수님께 불을 받고 방언, 방언 통변, 병 고침 등의 은사를 다양하게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0년경 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교회 성장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위의 구절을 보게 되었고 제게도 똑같은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고 저는 이렇게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유대인을 보시고 로마서 9-11장의 이해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유대인에 대해서 어떻게 대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유대인은 절대로 선교와 전도의 대상이지 말살의 대상이나 시기의 대상이나 미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구약을 전해준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2500년간 나라도 없이 온 세계를 헤맨 불쌍한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구약을 잘 보존하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이들을 전하고자 할 때 오직 믿음이니 율법은 아니다 너희들 율법을 그렇게 잘 지키면 뭐하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는 길이 있어! 이렇게 전하면 유대인의 전도는 참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럴 때 정말로 위의 이해를 바탕으로 전도를 하면 이렇게 됩니다.
야 유대인 친구야! 나는 너를 존경해 그리고 너무나 고맙다. 네 덕분에 구약을 잘 배우고 있다. 내가 구약을 조금 보니 율법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공평하고 좋은 법이더라. 너희가 그렇게 잘 배우고 지키는 것이 부럽다. 그런데 친구야 과거에 바울이라고 너희의 조상이 있는데 그분께서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로마서를 썼단다. 그런데 로마서에는 놀랍고 신비롭게 너희가 그렇게 어렵게 지키는 율법을 조문 조문 잘 지키는 비결이 있단다. 그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게 되고 성령께서 오시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정말로 율법을 조문 조문 예수님의 말씀대로 잘 지키게 되는 길이 있어! 우리가 믿는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도 절대로 율법을 없애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셨어! 도리어 조문 조문 잘 지키라고 하셨어! 그래서 율법을 잘 지키는 너희를 존중한단다. 그리고 너희가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비결이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께 복을 주셔서 그렇게 된 것을 인정한단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가 없고 의롭게 되지도 못해.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정말로 율법을 완성시킬 수가 있어! 그렇게 성공적인 삶을 사시고 로마서를 쓰신 분이 바로 너희의 조상이신 바울 사도야! 우리도 절대로 율법을 예수님의 말씀대로 존중하고 지키려고 해. 그렇지만 너희가 같이 그렇게 말고 성령을 받고 모든 조문을 다 지키려고 해! 이렇게 놀라운 일이 있어 예수님을 믿어야 가능한 일이야 친구야 예수님을 믿고 바울 사도와 같이 되고 율법을 잘 지킴으로 너와 내가 하나가 되고 온 세상이 그렇게 되도록 하자! 그렇게 되는 것이 곧 이 지구상에서 모든 인류가 전쟁도 없이 형제로 지내게 될 것이야.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천국에 계시다가 2000년 전에 너희 민족에게 오신 것이야. 이제 예수를 믿고 그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를 같이 건설하자 이렇게 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하바스의 전쟁에 대해서도 내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 문제가 풀리기 될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9-11장도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를 확증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겔 서의 내용입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와 함께 로마서는 모든 세상의 죄인을 다 대상으로 합니다. 모든 인류가 죄인이고 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있던 시대, 없던 시대를 총망라 합니다.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아니 이방 민족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율법이 있는 시대를 모든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과 같이 율법이 없는 시대의 분들 그리고 복음을 듣지 못하던 분들도 로마서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양심의 법에 의해서 최후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서는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사람을 다 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를 다 품고 설명합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이웃과 이방의 나라와 이스라엘과 그리고 북한과 이슬람 모든 민족을 품고 사랑하고 전하는 복되고 복된 민족이 우리 민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힘을 냅시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미천하고 못난 인생을 택하시고 오래 참아 주시면서 이렇게 성경을 이해하게 하시고 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이렇게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쉬지 않고 잘 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가셨던 고난의 길을 잊지 말고 주님을 따라서 묵묵히 하루 하루 복음을 전하며 나아갈 수 있게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모든 세상에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오니 성령을 받게 하시고 어렵고 힘든 자리에서 힘을 내게 하소서! 그들을 위해서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하시고 이 땅에 올바른 성경의 이해로 주님의 나라가 굳게 서게 하소서! 주님의 뜻대로 주안에서 율법이 지켜지는 나라가 속히 한국에 서게 하시고 온 세상에 서게 하소서 모든 성도가 올바른 진리로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