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누가복음 2장 “고요한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누가복음 2:6-7)
가이사 아구스도(옥타비아누스)가 칙령을 내렸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 명령을 따라 호적하기 위해 각자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요셉은 임신한 마리아와 함께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했습니다. 120Km 정도 이동해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해산할 날이 찬 마리아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마리아는 예수님을 출산하여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일찍이 미가 선지자는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의 예언을 말씀 그대로 성취하였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가 5:2)
많은 사람들이 베들레헴에 모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묵을 곳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친척들을 만난 사람들은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메시아의 탄생은 그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합니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세금, 바로 돈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세금징수를 위해 이 인구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관심만 팽배할 뿐,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대답은 오고가지 않습니다. 예수님 탄생 이후, 2000여 년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흥은 노아가 배에 들어가는 날까지만 허용됩니다. 홍수가 났고 그들은 모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방주를 짓는 노아를 무시했습니다. 세상은 아기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복음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롱합니다. 그러니 조금도 요동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비록 눈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교회는 이 비밀을 파수하고 증거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야만 합니다. 곧 끝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여관의 건축 구조는 아래층은 축사나 종들의 숙소가 있었고, 위층은 주인이나 손님의 숙소가 있었다. 이층으로 된 여관의 위층은 로마에 충성된 행정 관료인 구레뇨의 신하들로 가득 찼겠지만 주님은 가축을 먹이거나 종들이 거하는 아래층에서 나셨다. 로마의 정책을 신뢰하는 충성된 관료들은 위에서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팍스 로마나’를 외치며 축배를 들었겠지만 하나님은 아래에서 조용히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를 계획하셨다.[송영목, 『문법적·역사적·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신약주석』 (서울: 쿰란출판사, 2011), 265.]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시고 원수들을 잠잠하게 하십니다(시 8:2).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허다한 천군과 목자들, 동방의 박사들과 안나, 시므온이 경배하지 않습니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칠천 인이 남겨져 있으니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십시다. 죽어도 순교요, 망해도 하나님께 영광이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고요히 이 땅에 오신 겸손의 왕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