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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천국표지판 도둑>의 줄거리:
60년대 초 모두가 살기 어려울 때 별의별 좀도둑이 다 있었습니다. 남의 집 철재 대문이며 문패 수도꼭지 맨홀뚜껑 그리고 전선이나 심지어 교통 표지판까지 모든 것이 도둑질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60년대의 가난함 같은 영적 빈곤 속에서 천국을 가리키는 교통표지판을 훔쳐서 엿 바꿔 먹는 도둑들이 교회 안에 여전히 성행하고 있습니다.
천국표지판 도둑
(막8:11-13)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천국표지판 도둑>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천국표지판을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 교회 아니, 전 세계 교회 곳곳에서 이 천국표지판을 도둑질해서 천국으로 가야되는 사람들에게 표지판을 없애버림으로써 전혀 천국으로 갈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계속해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 천국표지판 도둑을 오늘 아침에 잡아야 되겠어요.
적어도 나는 이 도둑의 폐해로부터 벗어나야 되겠습니다.
60년대 우리나라에 좀도둑이 극성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였는가는 이 좀도둑들이 훔쳐간 물건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형편에서는 그런 것을 훔쳐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들을 훔쳐갔다는 거예요.
맨홀뚜껑 훔쳐가는 것은 여사고, 문고리 문패까지 훔쳐가서 문패를 싹 깎아가지고 다시 쓴다든지 또, 새것처럼 팔아먹는다든지.
빨래 널어놓으면 빨래 훔쳐가고, 안 훔쳐가는 게 없었답니다.
그리고 남의 부엌에 들어가서 찬 밥 훔쳐 먹고 배불러서 잠이 들었다가 연탄가스에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둑질 중에 전깃줄, 구리줄을 빼서 팔면 돈이 되니까, 전선을 도둑질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62년도 전국에 민간인 전선, 군대의 전선, 교통부에서 관리하는 전선 포함해서 1월부터 9월까지 도둑맞은 전선의 길이가 560km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히죠?
그런데 이렇게 도둑질할 때 교통표지판도 도둑질을 했다는 거예요.
교통 표지판을 뜯어다가 엿장수에게 주면 엿으로 바꿔주었다는 거예요.
표지판을 많이 뜯으면 그것도 큰돈이 되었지요.
그것을 도둑질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사는 사람이나, 상상이 안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때는 그런 것들이 다 도둑질의 대상이 될 만큼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지요.
자, 교통 표지판을 도둑질해버리면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고 한다, 그런데 교통 표지판을 뜯어버렸어요, 어디로 가야 부산으로 가는지 모르고 얼마를 가야 부산에 도달하는지를 알 수가 없는 거죠, 막막합니다.
더구나 초행길인 사람에게는 국도로 해서 부산에 어떻게 도착하겠습니까?
표지판을 도둑질하는 일이 있었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당신이 하늘로부터 왔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얘기합니다.
표적이라고 하는 말이 영어로는 sign 으로 되어 있는데 이 표적(表迹)이라는 말 그대로 겉으로 드러난 흔적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sign 이라는 말에는 표지판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있어요.
그러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돼야 하느냐?
우선 하늘이 있어야 됩니다.
하늘이 실재하지 않는데 하늘의 표지판이 존재할 수 없어요.
부산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부산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성립하는 겁니다.
둘째, 표지판으로서의 표적이 성립하려면 연결이 되어 있어야 됩니다.
지금 연결이 돼있어야 되요, 지금.
지금 연결이 돼있지 않은데 표지판이라는 건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신촌에서 동교동을 거쳐서 제2한강교 넘어서 영등포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등포로 넘어가는 제2한강교가 만들어지기 전에 신촌에 표지판이 서있었다, 일 년 뒤에 건설될 제2한강교를 염두에 두고 ‘영등포10km’라고 표지판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신촌에다 ‘영등포10km’라는 표지판을 만들려면 지금 제2한강교가 만들어져 있어야만 돼요, 지금.
지금 연결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지금 연결이 되어야 영등포와 신촌 사이에 제2한강교를 통해서 왕래가 이루어질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라는 것은 하늘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되는 것인데, 지금 하늘과 연결되어 있어서 지금 하늘로부터 교통이 왔다갔다 하듯이 오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그 무엇인가가 바로 하늘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바로 그걸 원하는 거예요.
예수님께 하늘과 당신이 지금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를 대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서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이 바리새인들에게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을 하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않으리라 하시고…’ 이 말도 이상하다는 거예요.
왜 이 말이 이상한가 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다,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이 나도 행한다, 내가 하는 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주신 말을 하는 것이다, 나를 믿으라, 나를 못 믿겠거든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계신 것을 믿어라, 그렇지 않거든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내가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않으리라’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일까요?
이런 거죠,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화를 잘 내고 반항을 하면서 엄마한테 이렇게 얘기하죠.
‘엄마가 나를 사랑하기나 해? 진짜 내 엄마 맞아?’
그러면 엄마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그래 이 자식아, 내가 미쳤냐? 너 같은 놈을 사랑하게? 내가 밥 해먹이고 옷 사 입히고 학교 보내주고 지금까지 너를 키운 게 사랑해서 한 게 아니지, 나중에 네 덕 좀 보려고 투자한 거다, 사랑 좋아하시네!’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는 얘깁니다.
왜 그렇지요?
예수님이 이 땅에 존재하시는 것 자체가 하늘과 연결되어 있어서 천국이 가까이 와있다고 하는 천국을 가리키는 교통 표지판이요 표적입니다.
예수님이 존재하시는 것 자체가 천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행동하시고 말씀하시는 모든 것들이 그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보고 하시는 것이고,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들어와서 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하늘과 연결되어 있고 하늘로부터 오는 힘에 의해서 예수님의 말과 행동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공생애 3년 전체가 표적 아닌 게 없는 거예요.
그런데 와서 표적을 구합니다.
엄마가 자기에게 하는 말과 행동 전체가 잘못 될 수는 있지만, 엄마 딴에는 사랑 아닌 게 없는 겁니다.
그런데 엄마가 언제 사랑했느냐고 반항하듯이 말하는 것처럼,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 아닌 게 아무것도 없는데, 말씀 행위 기적 치유 모든 게 다, 존재 자체도…
그런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니까 주님이 탄식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이 탄식하시도록 하는 이유가 뭘까요?
다시 말해서,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의 모든 행동과 말씀과 그분의 존재 자체가 하늘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가리키는 교통 표지판인데, 왜 이 교통 표지판을 이들은 못보고 있는 걸까요?
안 보고 있는 걸까요?
안 보든지 못 보든지, 왜 이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행동과 존재 자체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걸까요?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유는 단 하나예요.
이들은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과 존재로 표현되고 있는 천국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고 있지 않는데, 이 천국이 얼마 남았다는 교통 표지판을 보고 있지 않는 이유는, 지금 천국을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천국과 연결되기를 소망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런 거예요.
주말이면 서울과 경기권에 있는 많은 분들이 강원도를 찾습니다.
그래서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섭니다.
영동고속도로가 용인 이천 원주 횡성 지나서 강릉 속초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서서 원주까지 가는 사람은 속초가 250km 남았다, 강릉이 100 km 남았다, 원주 이후에 있는 도시들을 가리키는 교통 표지판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눈에 들어올 리가 없는 거예요, 자기가 원주까지만 가기 때문에.
그러나 강릉 속초까지 가는 사람들은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앞으로 몇 킬로 남았지? 얼마나 더 가야 되나?’ 하며 남은 거리를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속초가 얼마 남았다, 강릉이 얼마 남았다고 하는 교통 표지판을 눈여겨보지 않는 이유는 원주까지 가기 때문입니다.
가려는 목적지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모든 행동과 말씀은 예외 없이 다 하늘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하늘이 가까이 와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교통 표지판인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행동을 하늘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 예수님의 행동이 천국을 가리키는 교통표지판인 것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예수님이 가리키는 그 천국을 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금.
그런데 왜 이들은 천국은 가고 싶어 하지 않는데 천국으로부터 오는 표적은, 다시 말해서 천국을 가리키는 교통 표지판은 원하는 걸까요?
그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천국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아요.
다시 말해서, 부산을 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데, 부산까지 얼마 남았다는 그 표지판은 원하는 거예요, 보고 싶어 하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표지판 훔쳐다가 엿 바꿔먹으려고 그런다는 거예요.
부산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아요, 속초를 가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런데 속초 가는 교통 표지판을 원합니다.
왜? 그 표지판 뜯어다가 엿 바꿔먹으려고…
부산 가는 표지판 뜯어다 엿 바꿔먹으려고 그런다는 겁니다.
훔쳐다가 엿 바꿔먹는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십니다.
예를 들어 칠병이어의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이 세상 안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의 어떤 힘이 동원되어도 오병이어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을 수 없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는 없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런 병을 고치신 기적은 천국이 지금 예수님 안에, 지금! 연결되어 있어서 천국의 기운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보고 ‘아, 예수님이라는 사람 안에 천국이 들어온 걸 보니까 천국이 가까이 있구나! 천국이 50km밖에 안 남아 있구나! 그래서 나도 천국과 연결될 수가 있겠구나, 내 마음이 천국과 바로 직통으로 연결되어서 내 마음이 천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이렇게 교통 표지판으로 보지 않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예수님의 기적행위를 보고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 저런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다면 이 세상 안에서 내가 출세할 수 있겠구나, 내가 형통할 수 있겠구나, 내가 성공할 수 있겠구나, 내가 목회를 크게 할 수 있겠구나, 내가 장수할 수 있겠구나, 건강할 수 있겠구나, 돈 많이 벌 수 있겠구나!’ 이렇게 바꿔버린다는 겁니다.
엿 바꿔먹는 거라는 거예요.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을 보고서 ‘아, 천국이 가까이 있네? 천국으로 빨리 가야지!’ 하지 않고,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과 존재에 의미를 가지고 이 땅 안에서 뭔가를 잘해보려고 하는 것은, 천국과 비교할 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되고 큰 성공을 이루어도 강냉이 바꿔먹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엿 바꿔먹는 거라는 겁니다.
부산을 가고 싶어 하지는 않으면서 부산이 몇 킬로 남았다는 교통 표지판을 원하는 이유는 그걸 뜯어 훔쳐다가 엿 바꿔먹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성경말씀 속에서 접하게 되는 예수님의 모든 행위와 모든 말씀들, 그 주님이 지금 왜 그 말씀을 하시고 왜 그 기적을 행하고 계시는가 하면, 천국과 지금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이고, 예수님이 그런 행동을 하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의 예외 없이 천국과 연결되어 있어서 천국을 가리키는 것이고, ‘기적을 보고 듣고 있는 너도 그 천국으로 들어가라, 내가 인간으로 살면서 천국과 지금 연결되어 살고 있는 것처럼 너도 이 세상에서 지금 천국과 연결이 되어라!’ 라고 하는 의도에서 천국 표지판이 되어주시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도 지금 천국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아요.
지금 돈을 벌고 싶어 하고, 지금 건강하고 싶어 하고, 지금 자식이 잘되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지금 천국과 연결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성경 전체가 어떤 얘기가 되는가 하면 표지판 도둑질해서 엿 바꿔먹는 얘기가 돼버린다는 겁니다.
목사님들이 설교하실 때 어떤 본문을 설교하시든 간에 지금 천국과 연결되는 것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이 성경 모든 말씀을 교인들의 마음이 지금 연결되어야 될 천국을 가리키는 표지판으로 설교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성경에서 이러이러한 말씀들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잘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한다고 그러면 교통 표지판을 도둑질해서 엿 바꿔먹는 좀도둑입니다.
그건 목사님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설교는 천국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좀도둑질 하고 있는 행위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주님의 모든 행동은 천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천국을 가려고 할 때 어떻게 갑니까?
주님의 십자가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 줍니다.
세상을 떠나야 천국을 가는 거예요, 세상을 떠나야.
세상에 대해 마음이 죽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전부 이 세상 안에 있어요.
예수님의 모든 행동은 가까이 온 천국으로 들어가라는 교통 표지판인데, 그 교통 표지판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표지판에 쓰인 내용대로 천국을 가려는 게 아니라 표지판 훔쳐다가 이 세상에 있는 돈이라는 엿과 바꿔먹고, 성공이라는 엿과 바꿔먹고, 건강이라는 엿과 바꿔먹으려고… 도둑질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으로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을 보고 그 표지판을 따라서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게 되면 이 세상의 삶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사시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병든 내 몸에 기적을 행하실 수도 있지요.
그러나 내가 기적을 원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으니까 나도 원해야지!’ 내가 원한다는 것은 사이비 이단이라는 거예요.
교통 표지판을 도둑질해 가는 거예요.
병이 났습니까?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셨음을 보고 ‘나도 낫게 해주세요!’ 하기 전에, 내 마음이 십자가를 통해 병든 몸에서 떠나서,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실 때 예수님 안에 들어와 있던 천국을 보고 ‘나도 저렇게 연결되어야지!’ 하고 마음이 천국으로 가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그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내 병든 몸을 기적적으로 치유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하실 것이에요.
예수님께서 자의로 기적을 행하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걸 보고 행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이라는 건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으면 하나님이 행하실 것이지요.
그런데 그 기적을 내가 행할 수 있도록 능력 달라고 하는 것은 교통 표지판 도둑질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천국을 가리키는 교통 표지판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존재, 그분의 행동, 말씀을 도둑질하지 말고, 엿 바꿔먹지 말고 그 표지판의 내용대로 지금 천국과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교통 표지판을 도둑질하지 말고 표지판의 내용대로 지금 천국과 연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예수 이름으로 나타나는 표시판으로 돈만들어 땅사고 대형교회 만들어
고기낛는 그물망을 처있음을 봅니다 천국으로 연결되는 표시판은 뜨기어
천국없는 기독교라서 어떤 종교보다 구원을 ㄹ말할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