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상공단
부산직할시에서 공장 용지의 필요성을 충당하기 위해 낙동강 동안의 저습지를 개발한 것으로 1968년에 착공하여 1975년에 준공했다. 총면적은 8.50㎢이며, 경부선, 남해고속도로에 인접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단지 내에 총 2,600여 개의 공장들이 입주하고 있으며, 주로 조립금속 및 기계장비업체, 화학·석유·플라스틱 업체, 섬유·의복 업체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공업용수, 전력, 하수·폐수처리 등 공단기반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몇 차례의 침수사태를 겪었다. 부산시는 다각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입주업체의 이전수용을 위하여 공단 남쪽에 신평장림공업단지를 조성했고, 낙동강 서안에 녹산 신호 공업단지도 조성했다..
출처 : 다음백과
그러나 실지로 이 지역은 낙동강하구의 풍경이 수려한 지역으로 주택지로 개발하여야 함이 좋았으나
당시 시급한 공엽용지난 해결을 위하여 도심에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고 공엽용수 획득이 용이하고
저렴한 토지가격 때문에 이 지역을 선정 공업단지를 조성했다고 보지만 고향을 잃은 우리 입장에서는
한스러울 뿐이다. 하긴 그 시절엔 집 보다도 호구지책이 우선 이었으니까?..하면서 위안해 본다.
1947년도 사상지역 모습(항공사진),1968년 공단조성 시작 전까지 이 모습이 거의 변함이 없었다.
1966년 사상지역(감전,주례,학장)모습 경부선외에 도로라고는 사상로, 대동로(1964년 설치)만 보인다.
1968년 사상공단 조성 초기 모습
1973년 사상공단 조성중인 모습
'80년대 사싱공단 조성후 모습
2018 구글어스로 본 사상구 전경
2. 부산환경공단 위생사업소 (분뇨처리장 감전,엄궁 경계 지점)
부산광역시 전 지역의 분뇨를 처리한다.
1973년 4월 위생처리장관리소로 감전동 509-11 번지에 개소하였다.
1993년 6월 전량 해양 투기를 실시하였다. 1996년 7월 해양 투기를 위한 이송 관로를 설치하였다. 2000년 1월 부산광역시환경시설공단 발족 이후 부산광역시환경시설공단 위생사업소로 개칭되었다. 2005년 7월 분뇨·하수 연계 처리를 실시하였다. 2010년 부산환경공단 위생사업소로 개칭되었다.
출처 : 부산역사 문화대전
요즘 같으면 난리 났을 텐데..사상공단 조성에 발 맞추어 아무런 저항없이 이 지역에 정착..
신경 쓸 여유도 없었지만 ..별 소문도 없이 들어섰지..
'2010년대 감전동 위생사업소 전경
'70년대 엄궁 낙동강변 모습, 아래 중앙에 위생사업소와 연결된 분뇨 배수관과 분뇨처리선박이 보인다.
3. 부산구치소 (주례,학장 경계지역)
1906년 10월 21일 부산감옥으로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2가에 개청하였다. 1923년 5월 5일 부산감옥에서 부산형무소로 개칭하였다. 1961년 12월 23일 부산형무소에서 부산교도소로 변경하였고, 1973년 12월 23일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2가에서 사상구 주례동 666번지로 이전하였다. 1986년 5월 31일 부산교도소에서 부산구치소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 부산역사 문화대전
'73년 처음 이전해 왔을 때는 학장교도소라 했었는데 그 뒤 주례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사상공단 조성에 발 맞추어 아무런 저항없이 이 지역에 정착..요즘 같으면 시끄러웠을 텐데..
부산구치소 전경
4. 형재복지원 (주례)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社會福祉法人兄弟福祉院)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주례동 산 18번지(현재 부산광역시 사상구 백양대로 372) 일대에 위치했던 부랑자 강제수용소로, 3,146명이 수용 가능한 대한민국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1987년3월22일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이에 35명이 탈출함으로써 그 내부에서 일어난 인권유린이 드러나게 되었다. 1975년 내무부훈령 제410호, 그리고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선 것이 형제복지원 설립의 배경이었다.
형제복지원은 폐쇄 이후,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졌지만, 이후 빠르게 잊혔다. 27년 뒤, 1984년 입소하여, 1987년 폐쇄당시 전원조치된 피해자인 한종선이 2012년 5월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통해 세상에 알리고, 전규찬과의 공저 <살아남은 아이>(한종선, 전규찬, 박래군)의 책을 통해 형제복지원에서의 실상을 글과 그림으로 증언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형제복지원진상규명을위한 대책위원회,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이 결성되었다.
2014년 3월 22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홀로코스트 그리고 27년:형제복지원의 진실'에서는 27년 간 감춰져 온 이 사건의 의혹과 진실이 방영되었는데, 이 복지원에서는 수용자들의 중노동은 물론 수용자들에 대한 구타와 감금 그리고 성폭행까지 자행됐으며, 12년 동안 500명이 넘는 인원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사실 이 시설이 설치될때 동네 사람들 뭔지도 잘 몰랐다고 한다. 그냥 거지 부랑아 보호 수용시설
정도로 알고 있었다네요. 난 그땐 군대 생활 중 이었으니 더욱 알 턱이 없고...
'70년대 형재복지원 모습
'80년대 형제복지원 모습
'60년대 중반까지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던 고향 사상이 이때부터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60년대 후반 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되어 각종 악취에 파리 모기가 들끓는 세월을 보냈었다.
'70년대 초중반애는 소방도로 조성과 저지대 매립 및 공장설립 공사로 소음과 먼지에 시달렸다.
'70년대 후반부터'공장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니 고무공장 매연으로 하늘에 검은 눈이 내려 빨래도 못 널고 사료공장의 꼬리한 썩는 냄새, 주물공장의 메케한 연기 내음으로 숨쉬기도 힘들었다.
하수시설 미비로 몇 차례의 물 난리에 공장과 주택들은 침수되어 많은 피해를 보고 거기다 재래식 변소 물이 넘처 사방에 똥이 둥둥 떠다니고 공장 가동과 생산에만 급급하여 공단 기반시설이 취약하고 환경인식이 부족했던 사상공단의 실태였다.
'90년대 들어 감전1배수장 증설, 감전2배수장을 비롯한 배수장 신설과 도로 및 하수도 정비로 물
난리 사태가 거의 없어지고 환경인식 변화에 따른 각종 매연과 오염 물질 단속으로 공장들이 환경
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하여 매연과 오염물질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주변 환경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90년대 부터 산기슭에 고층 아파트단지 들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2010년대 들어서는 학장천 삼락천
물도 예전보다 많이 맑아졌지만 들판에 고만 고만하게 꽉들어찬 각종 공장들을 바라보면 답답하고
삭막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특히 내가 태어 난 고향마을이 들판 이기 때문이다.
저렇게 험하게 변해 버린 고향 모습을 보니 너무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에 아무 소용 없지만 장황하게
넋두리라도 하여 속을 좀 풀어 봅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험한 그 곳 에 살면서 살기좋은 고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선후배 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