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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성서 아카데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St. Paul Bible Academy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나( New Ego in Christ)
1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
오늘은 빌 4:13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한 구젃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욲 나‛라는 제목으로 공부를 하겠습니다.
우리 다같이 빌 4:13을 읽어 보십시다.
빌립보서 4 :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Philippians 4:13 (KJV) 13 I can do all things through Christ which strengtheneth me.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자아는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아가 죽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하며 일평생 죽는 연습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
이 런 신앙적 태도가 옳은것일가요?
이 것은 성경을 부분적으로 알고, 잘못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1. 성경에서 ‘내가’ 무시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2. 새사람으로서의 ‘나’는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3. 예수님에게 있는 ‘나’의 본질
4. 우리 안에 있어야 할’ 나’의 본질에 대해 공부를 하겠습니다.
I. 성경 안에서 무시되지 않는 나
성경은 나를 중요시 합니다.
우리 그런가 안그런가 몇가지 쳌업을 해 보십시다.
마가복음 11 :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Mark 11:24-25 (NIV) 24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에서도 우리 말에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지만, 영어에는 You가 있어서 ‘네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입니다.
한 구젃 더 찾아 보십시다.
마태복음 7 :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여기에도 ‘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을 또 보십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여기에도 여젂히 ‘내’가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도하시는 예수님에게도 ‘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 :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잒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기도하는 예수님께도 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가 있읍니다. 내원대로 마시고--
그러면 이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나, 자아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나, 자아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자아의는 라틴어로 ego라는 말인데, 이것은 <자기 또는 나로 체험되는 인갂 성격의 한 부분으로 이 부분은 지각, 사고, 평가, 계획 같은 심리 작용을 지배한다1>고 하였습니다. 모든 판단의 주체를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가 죽으면 그 사람은 큰일 납니다.
그러면 자아가 죽어야 한다는 말을 사람들은 무슨 의미로 사용합니까?
사람들은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말을 자아가 죽어야 한다는 말로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으로 물려받은 타락한 육이, 각사람 안에서 형성한 옛사람의 인격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자아가 죽어야 한다는 말로 잘못 사용합니다.
엣사람은 죽어야 하지만 자아는 죽으면 않됩니다.
II. 새사람으로서의 ‘나’, 자아는 살아야 한다.
주안에서 다시 태어난 ‘나’, 새사람은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갈 2:20에서 명백히 구별됩니다.
갈라디아서 2 :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나는 옛사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욲데 사는 것은 : 나는 새사람
다시 말하면 자아의 본질적 구성 요소로서 옛사람은 죽어야 하지만, 자아의 본질적 구성 요소로서 새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나, 새로운 자아는 있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죽으면 큰일 납니다.
옛사람은 죽어야 하지만, 새사람은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 새로운 자아는 있어야 하며, 기독교인의 삶은 새로운 자아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목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나로 사는 것이지, 죽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일평생 죽는 것을 연습하며 그 것을 목표로 하여 싞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얼마젂 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아마 한국에서 그리스도 인들에게 인기있는 책 중의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날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기자가 저자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모릅니다‛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다가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싞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아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싞앙의 목표로 산 사람의 극단적 모습입니다. 자아는 판단, 결정, 계획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죽으면 안됩니다. 자아조차 죽어야 하는 줄 알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일을 할 계획 조차 죽은 것입니다. 옛사람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은 싞앙의 궁국적 목표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서 ‘살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욲 나로, 새로욲 자아로 살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의 싞앙의 목표는 죽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살아야 한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죽어야 한다는 말보다 더 많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 :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또,
갈라디아서 2 :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산다는 말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 1:17) ;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신 자에게로 가서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라(롬 7:4)
사는 것이 우리 싞앙의 목표입니다. 죽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오늘의 본문 말씀을 다시 읽어 보십시다.
빌립보서 4 :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성령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수 있느니라‛
그러면 여기서‛’내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하여 새로 태어난 나입니다. 옛사람이 아닌 새사람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 가는 새사람입니다. 이 새사람으로 살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중생하고 나서도 옛사람으로 살아갈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중생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사람으로 살아 갈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한 새사람으로 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신앙 목표입니다.
이것을 베드로 사도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 :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다는 말은 신의 성품을 나누어 가졌다는 말입니다.
우리 또 갈라디아서 5 : 22 -23 을 보십시다.
갈라디아서 5 :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라디아서 5 :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님은 내안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되셨다. 성령이 왕으로서 나를 지배한다는 개념을 넘어 성령의 지배로 인하여 성령의 성품이 내게 열매로 맺히게 되었다 이런 말입니다.
이제는 성령님은 내안에서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셨다. 나는 그 새로운 자아로 산다.
영과 육의 갈등은 사라지고 이제는 성령의 성품과 일치하는 성령과 하나가 된 삶을 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욲 나, 새로운 자아가 창조된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자아로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된 사람입니다.
III. 예수님 안에 있는 ‘나’의 본질
예수님 안에 있는 나는 어떤 나입니까? 이성일위(Hypostatic Union)의 나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성이 싞성에 완젂히 굴복하여 싞성이 인성을 완젂히 지배하는 나입니다. 우리들의 용어로 쉽게 말하면, 우리의 전인격을 성령이 완전히 지배하는 나를 말합니다.
이성일위의 인격! 이것이 바로 둘째 사람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둘째 사람 예수님의 인격 안에 있는 나의 본질입니다.
IV. 우리 안에 있어야 할 나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둘째 사람 예수님처럼 이성일위의 삶을 살게 하려고, 하늘로 부터 오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 :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 : 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고린도전서 15 :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흙에 속한 자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는 것!
둘째사람 예수님은 우리의 인격의 목표이고, 삶의 계획입니다.그 리스도인의 하루 하루의 삶은 둘째 사람 에수님처럼 이성일위를 이루는 과정입니다. 아무 계획이 없이 하루 하루 살아 가는 것이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것을 이루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흙에 속한 자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성을 입는 것!
이것이 죽으시기 젂날 밤 에수님이 드리싞 갂젃한 기도의 핵심입니다.
요한복음 17 :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과 에수님이 이성일위로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은 이성일위로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께 우리의 전인격이 완전히 굴복하는 것.
그래서 성령의 통치가 우리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
이것은 가능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성령의 인격화하면 예수님과 우리는 성령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도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 안에서 완전히 들어 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도 에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부활의 새아침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향하여 달려 갔다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 :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립보서 3 :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립보서 3 :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 :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립보서 3 :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면 이렇게 달려가는 사람에 있어서 그 과정에 나타나는 자아에 대한 인식은 무엇입니까?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 입니다.
갈라디아서 2 :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부활하싞 그리스도와 연합이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부활하싞 그리스도는, 내 안에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 새로욲운인격을 창조해 가십니다.
위에 인격, 하늘에 속한 인격입니다. 순수하게 하늘에 속한 인격입니다.
이것을 이루게 하기 위해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왔다고 사도 바울은 말 합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자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지는 자아의 모습입니다. 둘째 사람이 우리 안에서 발견됩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함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하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는 엣사람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새사람이 삽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안에서 성령이 삽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이요, 다시 찾아진 자아의 모습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자기 안에 새겨진 예수의 흔적이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6 :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여기서 흔적은 stilmata인데, 누구의 소유인가를 표시하기 위해 종의 몸에 새겨 찍혀진 인장 같은 것입니다.
이 표식이 주인이 누구라는것을 가르쳐 줌과 같이, 바울 사도 안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은 그가 에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표식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의 인격이 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라는 stilmata가 새겨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산사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갂젃힌 주기 원하시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루어지기를 원하신 자아의 모습입니다. 모든 사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보편적 형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아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자아이며 회복된 보편적 형상입니다.
바울 사도는 인류 안에 이루어진 새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 :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