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놀라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5월 18일자 가디안 등 여러 해외 언론 보도에 의하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으로 강제 합병된 우크라이나 소속 ‘군인’ 돌고래들이 러시아 해군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며 단식 투쟁을 하다가 결국 조국을 위해 애국적으로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돌고래와 조국, 군사훈련, 단식투쟁, 자살 같은 생경한 단어들의 조합이라니... 가짜 뉴스가 아닐까 의심하며 이 내용을 좀 더 파고들어보기로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미국은 돌고래와 바다사자 등을 훈련시켜 군사작전에 동원해오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동물을 군사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었지만 강대국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돌고래가 가진 뛰어난 수중 음파탐지 능력을 활용해 바다 속의 기뢰 또는 폭발물 탐지를 담당하도록 조련하는 해군특수부대를 운영한다. 바다사자 역시 수중 제한구역 안으로 침입하는 물체 등을 탐지하는 임무를 부여받아 매일 작전에 동원된다고 한다. 심지어 원격조종장치가 달린 폭탄을 부착한 돌고래가 이상 물체에 접근하여 이를 폭파시키는 공격 훈련까지 받고 있음이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폭로되기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해군기지와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 위치한 흑해함대 해군기지에서 해양동물 비밀병기 훈련이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소련이 운영해온 크림반도 해군기지는 1991년 구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해군에 편입된 다음에도 돌고래부대를 계속 운영하였다. 그런데 이곳이 2014년 러시아 해군기지로 강제 합병되면서 돌고래들 역시 새로 부임한 러시아 조련관들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군사 비밀이라서 이 군인 돌고래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당시 러시아의 국영 통신사 리아 노보스티의 보도에 의하면 러시아는 보다 효율적이고 새로운 수조 운영 프로그램을 마련해 흑해 돌고래부대를 계속 유지할 계획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최근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정부 대표자 보리스 바빈은 병합 4년이 지난 후 이 군인 돌고래들은 대부분 죽어버렸는데 그 이유는 돌고래들이 러시아 해군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채 단식을 결행했고, 결국 우크라이나를 위한 애국적 자살로 이어졌다고 발표하여 떠들썩한 기사거리를 제공하였다.
과거 남한과 북한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 가시 돋친 이데올로기 설전을 벌여온 것처럼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놓고 극도의 군사적 갈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심지 돌고래까지 체제선전을 위한 이념 공세에 활용되고 있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수조에 갇힌 사육 돌고래가 인간과 교감하며 특히 조련사와 감정적 유대를 맺는 경우는 자주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서적 유대관계가 외부의 상황에 의해 폭력적으로 깨지고 말았을 때 돌고래들 역시 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서울대공원에 홀로 남은 큰돌고래 태지가 계속 고개를 흔드는 정형행동을 보이고 있다. 출처 서울대공원 동영상
2013년 대법원 몰수 판결을 받고도 2년간 바다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던 남방큰돌고래 태산과 복순이도 역시 먹이를 제대로 먹지 않았던 것이나, 친하게 지내던 다른 돌고래들이 갑자기 떠나고 서울대공원 돌고래관에 홀로 남은 큰돌고래 태지가 물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등의 자해행동을 보인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강제로 빼앗긴 자국의 돌고래들이 러시아에 맞서 죽음으로 저항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 국민을 선동하고 싶었겠지만, 실은 단식투쟁이나 자살은 감금 상태의 돌고래들이 자주 보이는 우울증 증상인 것이다. 그러기에 돌고래들이 조국을 위해 죽었다는 우크라이나 정부 관료의 말은 신뢰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에 놓였을 이 돌고래들이 대부분 죽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군사목적의 돌고래 활용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크림반도 해군기지 인근 흑해는 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처이기 때문에 충분히 새로운 ‘징용’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승절(Victory Day) 72주년을 맞아 공개된 바다표범 훈련 영상.
미국 역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5년 3월 29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의하면 미 해군은 샌디에고 해군기지에서 수중 군사작전에 사용되는 돌고래 90마리와 바다사자 50마리를 매일 훈련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미국 정부가 지출하는 한 해 예산이 약 280억 원이다. 전쟁준비를 위한 군사훈련 자체가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인 일이지만, 특히 동물을 군사목적에 사용한다는 것은 더욱 비인도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알려진 자료에 의하면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미국 해군이 군사작전에 사용하는 해양동물을 모두 합하면 총 140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동물실험과 함께 동물의 군사적 이용도 점차 금지시켜야 한다. 멕시코만에서 태어난 큰돌고래 ‘푸나니’는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위치한 미 해군기지로 이송되어 기지 안에 마련된 수조에 살며 군사훈련을 받는다. 해양동물이 국경 없는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