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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천국씨 멸종위기>의 줄거리:
씨뿌리는 비유에서 우리는 언제나 네 밭만을 문제시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씨뿌리는 사람일 경우는 네 밭이 문제인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먼저 믿은 사람이 이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사실 밭을 문제 삼기 전에 먼저 씨 자체를 검증해야 합니다. 정말 천국씨인지 말입니다. 어쩌면 이미 천국씨는 거의 멸종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천국씨 멸종위기
(눅8:11-15)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말씀 중심으로 <천국씨 멸종위기>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여러분, 혹시 세계 10대 멸종위기 동물을 아십니까?
한번 살펴봤더니 우리가 쉽게 들어보지 못한 동물들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염소 같기도 하고 사슴 같기도 한 다마가젤이라는 동물, 또 아이벨리아 시라소니, 오가피,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동물이 있어요, 팬더, 자이언트 팬더, 중국에서 서식하는데 멸종위기에 있다고 그래요.
왜 그러냐 하면 이 팬더들이 입맛이 짧아서 대나무가 아니면 안 먹는답니다.
근데 뭐 대나무서식지가 그렇게 풍부하게 많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 자이언트 팬더가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그래요.
이 10대 동물 중에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동물이 있습니다, 너무너무 안타까워요.
시베리아 호랑이, 한국산 호랑이라고 그러지요.
남한에는 멸종되었잖아요? 없습니다.
백두산에 소수만이 지금 살아있는 이 시베리아 호랑이가 멸종위기에 처한 10대 동물 가운데 1등입니다.
지금, 글쎄요, 서울 남산에 호랑이가 살아있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위험하다는 면에서는 참 안 좋고, 그러나 남산에 호랑이가 살아있다, 가슴이 뛸 만큼 좋은 점도 있어요, 참 안타깝죠.
그러면 식물 중에,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전 세계에서 현재 살아있는 식물 중 가장 작은 나무가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그 나무의 크기가 1~2cm 정도라고 합니다, 나무인데.
주로 한라산에 있는데 돌매화나무라고 합니다.
11절에 보면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천국 씨가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하나님말씀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얘깁니다.
교회가 성립하는 3요소가 말씀, 세례, 성만찬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라고 불리는 모든 곳에서 날마다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비유의 내용에 입각해서 아주 영적인 논리로 살펴볼 때 교인이 19억인(천주교 교인까지 합쳐서, 왜냐하면 그들도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니까) 이 지구 위에서 천국 씨는 이미 멸종위기에 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한번 살펴봅시다.
왜 하나님말씀, 천국 씨가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우린 이 비유를 볼 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언제나 네 밭만을 문제 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인 씨를 받아들인 마음을 밭으로 비유해서 네 밭만을 문제시하는데, 네 밭을 문제시하는 이 태도는 예수님 당시에는 맞는 일입니다.
그리고 양보해서 사도들의 때에도 밭을 문제시하는 게 맞고, 좀 더 양보하면 일곱 집사 때와 초대교회, 안디옥에서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향하여 그리스도인이라고 이름 붙여줄 그때도 네 밭을 문제시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을 한번 살펴보면 밭이 문제가 아니에요.
하나님말씀을 전할 때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를 문제시하기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하나님말씀이라고 전해지는 그 씨가 진짜 천국 씨냐 하는 것이 앞선 문제라는 겁니다.
우리는 설교를 하기도 하고 설교를 듣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리가 여기고 있는 것들이 진짜 천국 씨냐 이겁니다.
종자가 정말로 천국 씨냐 이거에요.
아주 위험한 겁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미 현행하는 전 세계 교회 안에서 천국 씨는 멸종위기에 처해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과 씨 안에는 사과가 들어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들어있는 사과가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씨라고 할 때, 그 씨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천국이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받는 것은 이생이지만 그 말씀 속에는 저세상에 있는 천국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여서 제대로 꽃피우고 열매 맺었다면 천국이 꽃피고 천국이 결실로 맺어지게 돼있습니다.
천국이 결실로 맺어지고 열매가 되었을 때에 그 열매에서 다시금 씨가 나옵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고 사과나무 씨가 땅에 심겨서 사과가 맺혀지듯이 천국 씨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천국이 꽃피고 천국이 내 마음과 내 삶에서 열매 맺혀진 뒤에라야 내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천국 씨일 수 있다는 것이에요.
내가 받은 말씀을 통하여 천국이 꽃피고 열매 맺는 일이 내게서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 그건 천국 씨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면 천국을 꽃피고 천국을 열매 맺는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그래야 천국 씨가 생기니까…
그렇게 천국 열매가 맺혀져서 천국 씨가 생기지 않은 마음이라면, 하나님 말씀이라고 전하지만 실지로는 천국이 들어있어서 천국이 열매 맺게 되는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 다른 내용이 들어있는 모양만 천국 씨라는 것이죠.
자, 뭐가 천국을 꽃피우고 천국을 열매 맺게 하는 겁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게 믿음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십자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십자가에서 출발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할 때 죄 사함이 이루어지면서 이 세상에 대해 죽습니다.
사도바울의 말처럼 세상에 대해서 장사지냅니다.
그리고 부활할 때 같이 부활해서 승천할 때 같이 승천하고,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 안에 우리 마음이 가있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것이에요, 이게 믿음입니다.
이생에 있는데, 저세상으로 마음은 예수님 따라서 가버리는 거예요.
이 일이 가능한 것이 바로 성령께서 역사해주심으로 가능해집니다.
이때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주님에게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그 느낌을 나도 받고, 주님이 하나님과 교제할 때에 내가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열매에요.
그 하나님을 느끼고 그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주님처럼 나도 기뻐하고, 그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것처럼 나도 행복하고 (내 몸은 이생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바로 천국이 꽃피고 천국이 열매 맺혀지는 겁니다.
우리가 언젠가 함께 말씀을 나눴습니다마는, 이항복과 권율장군의 이야기를 생각해봅니다.
두 사람이 장인 사위였다고 합니다.
이항복이 병조판서를 지낼 때 권율장군의 사위였다고 말합니다.
이 이항복의 집에 감나무 가지가 담장 너머 권율장군 집으로 넘어가버렸습니다.
감이 열리니까 권율장군 하인들이 감을 따먹습니다.
이항복의 집 하인들이 아무리 못하게 해도 말을 안 들으니까 이항복이 가서 창호지문에 팔을 쑥 집어넣지 않습니까?
‘어르신 이 팔이 누구의 팔입니까?’
‘아 이놈아, 네 팔이지!’
‘아, 방으로 들어갔는데 어떻게 내 팔입니까?’
‘아, 네 몸에 달려있으니까 네 팔이지.’
‘그러면 우리 마당에 심긴 감나무에 달린 감을 장군님 집에서 따먹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제가 그때 말씀드리기를 감나무 밑을 파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뿌리가 담 밑으로 해서 권율장군의 집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일부분만큼이라도 따먹어도 되지 않겠느냐? 이런 얘기했어요.
우리 몸은 이생에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이제 이생을 떠나서 저세상에 있는 천국으로 마음이 갑니다.
마음이 그곳에 뿌리를 두고 이 세상에서 천국을 느끼고 천국 때문에 행복해하는 것, 이게 바로 천국의 열매고 천국 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천국 때문에 이생에서 행복해하고 기뻐하고 있는 동안에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주님과 의논해서 결정된 일들이 성령님을 통해서 내 마음에 전달되고 내가 행동하면 살아가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이생에서 기쁠 일을 찾고 이생에서 행복의 근거를 찾고, 이생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해 들어갈 때, 하나님나라에 뿌리를 둔 믿음의 사람들은 이생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쁨과 행복과 행동의 동기를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게 바로 천국을 열매 맺는 것이고 천국을 꽃피우는 것이에요.
이렇게 천국을 꽃피우고 열매 맺게 된 사람이 하나님말씀을 전할 때 천국 씨가 되는데, 과연 이런 식으로 천국을 꽃피우고 열매 맺어서 그 씨를 전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미 옥토를 제외한 세 밭의 상태에서 천국의 씨라고 뿌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받아들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천국 씨를 우리가 또 뿌려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서 뿌려지는 천국 씨라는 게 진짜 천국 씨이겠느냐 하는 얘기에요.
천국 씨가 정말로 꽃피운 사람은 현실의 우선순위가 다릅니다.
현실의 우선순위가 달라져야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지요.
삼성이 특허소송에서 미국에서 졌습니다.
배심원들이 전문가가 아니니까 문제가 많아요.
그런데 그 뉴스를 접하면서 이상하게 속이 안 좋아요.
삼성으로부터 제가 단돈 천 원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기업 삼성이 우리나라 끼리 얘기할 때는 삼성의 문제점도 얘기할 수 있고 그런데, 미국에 가서 그렇게 당했다고 하니까 속이 상해요.
다시 번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삼성이 패소했다고 하는 것이 현실로 느껴지니까 내 마음이 상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순위에 있어서 1등은 아니에요.
독도 문제가 이야기 될 때면 더 속이 상해요.
그리고 삼성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또 독도 문제가 그렇게 속상하게 하지만 태풍 때문에 우리 집 유리창이 깨져버린다면 독도 문제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우리 집 베란다의 유리가 깨진 문제가 더 압도적인 현실로 내 마음을 지배해버립니다.
그러나 유리창 깨진 것, 아무것도 아니에요.
혹시 내 자식이 아프기라도 한다거나 내 몸이 아프다고 그러면 이건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돼버립니다.
이처럼 내 마음이 폭 빠져버리는 현실, 이 현실도 가지가지가 있어서 1등 2등 3등 순위가 매겨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믿고 산다는 게 뭡니까?
저세상에 있는 천국, 그 천국이 이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실보다도 1등인 현실이 되는 것, 이게 바로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천국이 꽃피고 있는 것이고 천국이 열매 맺고 있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이 세상에서 건강문제 있을 수 있고, 돈 문제, 가정문제, 직장문제, 국가문제, 민족문제, 모든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저세상에 있는 천국이 첫 번째 문제요, 첫 번째 현실이 되는 그런 마음이 하나님나라를 전할 때 그 씨가 천국 씨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제 씨를 문제 삼아야 되요, 씨를.
씨를 전하는 자들의 마음이 길가 밭이고 돌밭이고 가시밭이에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천국 씨라고 전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옥토인 거예요.
독도 문제가 온 마음을 다 지배해버렸다, 그 독도 문제라는 게 말씀으로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무성하게 자라고 열매를 맺는 거예요.
화가 나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게 다 열매 맺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문제를 당할 때마다 뉴스를 통해 나라의 문제를 당하든지 내 오감을 통해서 내 가정문제를 당하든지 간에 그 문제에 압도된다는 것은 내 마음이 이생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옥토라 이 말입니다.
목사님들도 ‘목회를 잘해야지!’ 하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옥토가 된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오건 안 오건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는 내가 지금 뿌리를 주님의 십자가 길을 따라 쭉 뻗어서 하늘의 기운을 빨아들이면서 내 마음 안에서 하늘이 꽃피고 있고 천국이 열매 맺고 있는가를 문제시하고 확인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말씀을 전합니까?
또, 이게 되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서 듣는 말씀이 어떻게 하나님말씀이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이생에서 우리가 좋다고 여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좋게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 마음을 빼앗아 갈 많은 관심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왜 십자가를 붙잡습니까?
그 많은 좋은 것, 그 많은 관심거리에 대해서 죽어서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겠다는 결심이 십자가를 붙잡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 사랑이고 하나님이 날 선택해주신 것처럼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는 길 아니겠습니까?
그런 선택을 통해서 천국이 꽃피워질 때라야 열매가 맺혀지고 그 열매 맺힌 마음으로부터 천국에 대한 이야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그것이 진정으로 천국 씨가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천국 씨가 된 다음에 그 씨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밭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저세상에 있는 천국이 꽃피고 열매 맺는 인격을 찾으려고 볼 때, 목사님들에게서 장로님들에게서 권사님 집사님, 교인들에게서 그런 천국이 꽃피고 열매 맺는 마음을 찾을 수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천국 씨는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죠.
기독교가 힘을 상실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씨가 문제입니다.
내게서 씨가 나갈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려면 꽃이 피고 열매 맺혀져야 되요.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지려면 뿌리를 점검해야 됩니다.
오늘도 내 마음을 빼앗아가는, 내 마음에 뿌려져서 열매 맺기를 원하는 이생의 많은 사건들이 내 앞에 등장할 것입니다.
이때마다 여기에 빠져서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열매 맺고 꽃피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붙잡고 우리 마음의 뿌리를 주님 따라서 하나님 우편까지 도달해서 천국을 빨아들이고 천국의 기운과 천국의 뜻과 천국의 분위기를 빨아들여서, 내 마음이 천국을 꽃피고 열매 맺어서 내 행동과 내 말을 통하여 천국의 씨가 뿌려질 수 있는… 아,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죠,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돈이 아니고 사업이 아니고 건강장수가 아니라 그게 우리의 소망이지요.
우리가 주님 십자가 길 따라 우리 마음을 하늘에 뿌리내리고 이생에서 저세상에 있는 천국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그 열매에서 씨를 받아 씨를 뿌리고 사는 것, 이게 바로 우리 소망 아니겠습니까?
이 소망이 오늘 하루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복된 하루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 마음이 이생에 대해서 옥토인 바람에 천국 씨가 멸종위기에 있음을 우리가 깨닫습니다.
이제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마음의 뿌리를 천국에 내리게 하시고, 천국의 꽃 천국의 열매가 맺혀지므로 우리의 말과 행동과 삶이 온통 천국 씨를 뿌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