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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은 통영의 천개산(天開山,524m)과 벽방산(碧芳山,650m)으로 두 산을 연결해서
종주하는 통영지맥의 일부분으로 등로의 우측으로는 거제도쪽의 남해안 섬들을 조망하고,
좌측으로는 낙남정맥의 능선들을 조망하는 조망 빼어난 산행지입니다.
저로서는 벌써 4번째 산행이지만 오를 때 마다 힘들었다는 기억 밖에 없는 산입이다.
그러나 이날은 컨디션이 좋았는지 아니면 평소 몸관리가 좋았는지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고, 아쉬웠던 점은 386봉에 있던 천년송이 고사되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통영은 내가 자라난 고향으로 예향의 도시라 불리고 있으며 뛰어난 예술인들이 많이 태어나서
자란 곳으로 음악의 윤이상, 정용주, 문학의 박경리, 유치진,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김용익과
미술의 전혁림 등 많은 분들이 통영을 빛낸 분들입니다.
우리가 걸었던 통영지맥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부산쪽으로 가는 낙남정맥의 대곡산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고성반도 끝으로 가는 산줄기로 고성읍내를 관통하고 고성/통영 일대에서 가장 높은
벽방산을 넘어 통영시가지를 감싸안은 다음 서쪽으로 돌아가 통영시 인평동 목섬 앞의 갈목마을
까지 약 41.6km의 마루금으로, 그 맥을 다하는 반도의 끝으로 가는 맥이라하여 이 지역의
이름을 붙여 통영지맥이라 부릅니다.
벽방산은 벽발산(碧鉢山)이라고도 불리며, 벽발산의 유래는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중 한사람인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벽발(碧鉢:바리때)를 받쳐들고 있는 모습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도 합니다.
정상에는 벽방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안정사 안내판 등에는 벽발산 안정사(碧鉢山 安靜寺)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벽방산은 경남의 통영시와 고성군에 절쳐 있는 산으로, 통영 일대의 한려수도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산이며,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거제도의 노자산, 계룡산이 남쪽으로는 한혀수도의 170여개
섬들이 조망되기도 하고,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천 년 고찰 안정사(대한불교 법화종 최대사찰로 고려 대각국사를
종조로 법화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우리나라 불교 18개 종단 중에 하나임)와 산내 암자인 천개암,
은봉암, 의상암, 가섭암을 품고 있는 육덕을 갖춘 골산이기도 합니다.
산행은 약간이 오르내림과 골산(骨山)과 육산(肉山)의 반복적인 등로가 이어졌지만 전반적으로
힘들지 않고 재미있는 등로가 이어졌으며, 곳곳에 있는 바위 전망대에서 눈을 즐겁게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벽방산 개략)
통영 일대 한려수도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산이 벽방산이다.
정상에서는 동남쪽으로 거제도의 노자산, 계룡산이, 남으로 한려수도의 무수한 섬들이 시야에
가득히 들어온다.
광도면 안정리에 위치한 벽방산은 일명 벽발산(碧鉢山)이라고 불리며 통영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650m이다.
'명산에는 대찰이 있다'는 옛말처럼 벽방산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 안정사와
산내 암자인 가섭암, 의상암, 은봉암, 천개암을 품고 있다.
벽발산은 육덕을 갖춘 골산이다.
거대한 암반이 장엄하게 얽어놓은 산정이 칼끝같은 남부 바위 능선을 거느렸으며 남으로는
천개산, 도덕산, 발암산, 제석봉으로 줄기를 뻗고 있어 가히 통영의 조산(祖山)다운 위용을
지니고 있다.
또 안정사 부근의 적송림과 맑은 계류는 속세를 떠난 경계이고 봄철 산등성이를 분홍 비단으로
휘감는 진달래와 가을을 수놓는 단풍은 이 산이 지닌 또 다른 모습이다.
(천개산 개략)
통영과 고성의 경계지점에 있는 천개산은 계족산이라고도 하며,
안정사에서 벽방산과 연계한 원점산행코스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산이다.
벽방산과 천개산에는 아름다운 8경이 있는데 제3경이 은봉성석이고 제7경이 은봉암에 있는
계족약수이다.
7m 높이의 칼처럼 날렵한 바위인 은봉성석은 천개산 8푼능선에 자리한 은봉암의 극락보전
지붕과 맞대어 서 있다.
옛날 이곳에는 큰 바위 3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첫번째 바위가 넘어지자 혜월선사가,
두 번째 바위가 넘어지자 종열선사가 출현하였으며 지금은 은봉성석 하나만 남아 도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벽방산과는 안정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산행 개요)
1. 산행날짜 : 2017.04.22 날씨 : 맑은 후 소나기
2. 산행시간 : 10:21 ~ 15:47(5시간26분)
3. 이동, 도상거리 : 9.80km, 9.41km
4. 평균속도 휴식포함 : 1.80km/h
휴식제외 : 1.99km/h
5. 고도 : 680m ~ 37m(643m) - 최고 해발고도가 650m이므로 GPS오차 참조
6. 오르막 거리, 속도 : 4.00km, 1.74km/h
7. 내리막 거리, 속도 : 5.66km, 2.19km/h
8. 휴식횟수 , 시간 : 1회, 30분
9. 산행 코스
통영시 광도면 노산마을의 가락종친회관을 들머리로 ~ 220봉(전두마을 갈림길) ~ 매바위 ~
386봉(대촌마을 갈림길) ~ 천개산 ~ 안정재(은봉암 갈림길) ~ 벽방산 정상 ~
의상암/무애암 갈림길 ~ 의상암 ~ 가섭암 ~ 안정사 ~ 안정사 주차장
▼ 벽방산 주변의 위성지형도 전경입니다.
하늘색 선이 낙남정맥이고 통영지맥이란 글자에서 통영지맥이 시작하여 종료 글자 왼쪽
주황색선이 통영지맥 끝자락입니다.
▼ 천개산/벽방산 산행궤적을 위성도에 나타내었습니다.
▼ 등고선지도에 나타낸 산행궤적입니다.
▼ 해발고도표에 나타낸 산행궤적입니다.
제일 높은 곳이 벽방산이고 그 전 높은 곳이 천개산 정상입니다.
천개산을 지나 안정재에서 벽방산 오르막은 급한 목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09:17 아침 8시 부산 서면을 출발한 차량이 1시간 20여분 만에 마창대교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 09:17 마창대교에서 바라본 마산항으로 무학산과 돝섬이 조망되고 있습니다.
▼ 10:16 서면 출발후 2시간 10여분 후에 들머리인 통영시 광도면 노산마을에 도착했습니다.
▼ 10:16 들머리 입구에 있는 가락종친회관 전경입니다.
가락종친회관은 통영에 거주하는 통영에 거주하는 김해김씨, 허씨, 인천이씨들의 모임
장소이며 일년에 한번 김수로왕과 허황후를 기리는 제사를 올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인천 이씨와 가락종친과의 관계는?)
신라 경덕왕 14년(755년) 허황후(許皇后)의 23세손인 아찬(阿飡ㆍ신라 17관등
중 6번째 관등) 허기(許奇)가 신라 사신으로 당(唐)나라에 갔을 때 그해 11月에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발생하여 현종(玄宗)이 756년 촉(蜀)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그때 허기(許奇)는 위험을 무릅쓰고 현종을 호종(扈從)하였으며, 757년 난이 평정되어
현종이 도성으로 돌아와서 이를 가상히 여겨 시서(詩書)와 황제의 성(姓)인 이씨(李氏)를
사성(賜姓)하였다.
758年 허기(許奇)가 신라로 환국하자 신라 경덕왕은 그 공을 기려 소성백(邵城伯)의
작위(爵位)와 식읍(食邑) 1,500호를 봉하여 세습케 하였으며, 이로써 허씨(許氏)에서
이씨(李氏)가 되었으므로 인천 이씨 문중에서는 이허기(李許奇)를 득성조(得姓祖)라 한다.
득성조(得姓祖) 이허기(李許奇)의 10세손으로 고려 현종(顯宗)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낸 이허겸(李許謙)에게는 2남 1녀가 있었는데 그의 딸이 김은부(金殷傅)에게 시집가서
세 딸을 낳았고, 이 세 딸이 모두 현종(顯宗)의 비(妃)가 되었다.
인천 이씨는 허(許)씨에서 갈린 분적종(分籍宗)으로 경원 이씨(慶源李氏) 또는 인주 이씨
(仁州 李氏)로도 불렸다.
▼ 10:16 가락종친회 건물 옆에 산행 들머리가 있습니다.
▼ 10:16 안내도상 좌측 현위치에서 벽방산까지 산행 등로 안내도입니다.
▼ 10:23(00h03m) 들머리 입구에서 잠시 몸을 풀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 10:25(00h05m) 산행 시작 처음 약 7분 정도는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집니다.
▼ 10:26(00h06m) '양지꽃'입니다.
(양지꽃은?)
봄 양지쪽에는 유난히 노란 꽃을 달고 있는 풀들이 많은데, 양지꽃도 그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산과 들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정다운 꽃으로,
특히 토질에 관계없이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이면 어디든 잘 자라서 양지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양지꽃은 종류가 매우 많다.
양지꽃보다 조금 늦게 피는 나도양지꽃, 높은 산 나무 밑에서 자라는 너도양지꽃,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나는 솜양지꽃, 돌이나 바위틈에서 잘 자라는 돌양지꽃,
물가에서 자라는 물양지꽃, 가지가 누워서 기듯 자라는 누운양지꽃 등 20여
종이나 된다.
양지꽃은 이들을 대표하는 야생화로 키는 30~50㎝ 정도 된다.
줄기는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고, 잎은 길이가 1.5~5㎝, 폭은 1~3㎝로 여러 개가
나와 사방으로 퍼진다.
잎의 양끝이 좁고 양면에 털이 있으며 타원형이고, 꽃은 4~6월에 황색으로 핀다.
꽃의 직경은 1.5~2㎝로 꽃받침의 길이보다 1.5~2배 정도 길다.
열매는 6~7월경에 길이가 약 2㎜ 정도로 달리고 털이 없으며 난형이다.
꽃 모양이 뱀딸기 꽃이랑 아주 흡사하다.
사실 봄날 들판에 피는 조그만 꽃 중 노란색 꽃들은 대부분 서로 닮았다.
그래서 키나 잎을 보고 구분하는 것이 좋다.
뱀딸기는 잎은 어긋나고 뿌리에 달린 잎은 3장의 작은 잎이 나온 잎이며 작은 잎은
달걀 모양이거나 달걀 모양 원형이다.
장미과에 속하며, 소시랑개비, 큰소시랑개비, 좀양지꽃, 애기양지꽃, 왕양지꽃
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순은 식용,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 사용된다.
북한의 함경도 지방과 중국 북동부, 시베리아,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10:27(00h07m) '구슬붕이'입니다.
용담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봅에 피는 꽃은 구슬붕이이고, 가을에 피는 꽃은 용담이라고
구분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구슬붕이?)
구슬붕이는 매년 5~7월 우리나라 산과 들에 많이 자라는 두해살이풀이다.
양지바른 곳,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잘 자란다.
키는 아주 작아서 10㎝도 안 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잎도 1~4㎝,
폭은 0.5~1㎝ 정도이다.
이렇게 작으니 우리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몸을 최대한 수그리고 봐야 겨우
보인다.
꽃은 연한 보라색으로 크기는 대략 1㎝이다.
한 개의 줄기에 한 송이가 달리는데, 용담 꽃과 거의 흡사하다.
그래서 어린 용담이라고 해서 ‘애기용담’이라고도 부른다.
단지 용담보다는 잎이 좀 더 반짝이는 것이 특징이다.
열매는 8~9월경에 씨방이 여러 개로 나누어지면서 나타나는데,
아주 작은 씨앗이 잔뜩 들어 있다.
용담과에 속하며 인엽용담, 암용담, 자화지정, 구슬봉이라고도 한다.
이중 ‘자화지정’이란 꽃 색깔이 자주색이며, 땅에 꼿꼿이 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제비꽃도 그렇게 부른다.
잎과 뿌리는 약초로 이용되는데, 한국, 일본,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 10:28(00h08m) 가파름이 끝날 즈음에 함안조씨 묘지군을 만납니다.
▼ 10:28(00h08m) '솜방망이'입니다.
(솜방망이?)
솜으로 만든 방망이 같다고 해서 솜방망이다.
식물 전체에 마치 거미줄처럼 하얀 털이 많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 봄 잎이 올라올 때는 잎 전체가 잔털로 덮여 있지만 자라면서 잔털은 많이
없어진다.
양지바른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비교적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지만
부엽질이 많은 양지바른 곳에서 군락을 이룬다. 특히 무덤가에서 잘 자란다.
키는 20~60㎝ 정도로 큰 편이라서 방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잎은 길이가 5~10㎝, 폭은 1.5~2.5㎝이다. 여러 겹으로 되어 개화기까지
남아 있고, 모양은 긴 타원형이다. 잎 양면이 많은 솜털로 덮여 있다.
꽃은 5~6월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지름은 3~4㎝ 정도로 줄기 끝에 3~9개
정도가 달린다.
열매는 7~8월경에 달리며, 길이는 2.5㎜로 모양은 원통형이며 털이 촘촘히 나 있다.
국화과에 속하며, 들솜쟁이, 구설초, 산방망이, 소곰쟁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순은 식용한다. 꽃을 포함한 모든 부분이 약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 10:29(00h09m) '각시붓꽃'입니다.
(각시붓꽃?)
아직 쌀쌀한 봄의 어느 날 뒷동산을 걷다가 풀밭에서 보랏빛 각시붓꽃을 만나면 여간
기쁜 게 아니다. ‘이제는 정말 봄이로구나!’ 하는 기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기쁜 소식’이라는 각시붓꽃의 꽃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붓꽃은 키가 60㎝가 넘지만 각시붓꽃은 10~20㎝밖에 안 된다.
그래서 ‘각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애기붓꽃이라고도 한다.
각시붓꽃은 햇볕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인적 드문 양지쪽에 몇몇이 모여 봄을
속삭이는 듯하다. 마치 수줍은 새색시들이 봄나들이를 나선 것 같다.
각시붓꽃은 우리나라 산 어디에서도 자라는 들꽃이다.
한 해만 피고 마는 일년생이 아니라 여러 해 피었다 지고 또 피는 여러해살이
풀이니 뒷동산에서 각시붓꽃을 만나면 꼭 기억해 두자.
다음 해 봄에도 각시붓꽃은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각시붓꽃은 봄이 가기 전에 꽃을 땅에 떨어뜨린다.
하지만 가늘고 긴 잎은 30㎝ 정도까지 계속 자란다.
꽃의 크기는 3~4㎝, 꽃잎 안쪽에 수술과 암술이 들어 있다.
꽃이 지면 갈색의 열매가 6~7월경에 긴 타원형으로 달리고, 그 속에 약간
반짝거리는 검은색 씨가 들어 있다.
갑자기 꽃샘추위가 찾아오면 뒷동산에 두고 온 각시붓꽃이 걱정되곤 한다.
하지만 이른 봄에 피는 꽃은 그쯤은 각오하고 핀다는 것을 기억하자.
각시붓꽃은 붓꽃과에 속하며, 우리나라와 일본 남부, 중국 북동부 및 북부
등지에 분포한다.
▼ 10:29(00h09m) 산행 시작 10분 만에 통신 중계 설비를 만납니다.
▼ 10:31(00h11m) 통신설비 옆에 작은 돌탑이 몇 개 쌓여 있습니다.
▼ 10:39(00h19m) '골무꽃'입니다.
(골무꽃?)
전국의 숲 가장자리 풀밭, 길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전체에 길고 퍼진 털이 많으며, 원줄기는 둔한 사각형이다.
잎은 마주나고 넓은 심장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부드러운 톱니가 있다.
꽃은 5-6월에 총상꽃차례로 줄기 끝에 한쪽으로 치우쳐서 2줄로 달린다.
어린싹은 나물로 먹으며, 외상성 손상에 약으로 쓴다.
전체에 긴 퍼진 털이 많으며, 줄기는 높이 20-40cm다.
원줄기는 둔한 사각형으로 비스듬히 자라다가 곧추선다.
잎은 마주나고 넓은 심장 모양 또는 둥근 모양으로 길이 1.0-2.5cm,
폭 1.0-2.5cm이며, 가장자리에 부드러운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5-20mm다.
꽃은 자주색으로 총상꽃차례로 줄기 끝에 한쪽으로 치우쳐서 2줄로 달린다.
꽃받침잎은 입술모양, 꽃부리는 긴 통 모양의 입술모양으로 끝이 꼬부라져서
곧추서며 길이 18-22cm다.
윗입술꽃잎은 투구모양, 아랫입술꽃잎은 넓으며 자주색 반점이 있다.
수술은 4개 중 2개가 길다. 열매는 분과로 검은색이다.
▼ 10:45(00h25m) 약간의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 10:48(00h28m) 오르막 우측으로 몇 개의 돌탑이 보입니다.
▼ 10:52(00h32m) 잠시 전망이 열리면서 우측으로 통영 시가지와 미륵산이
조망됩니다.
▼ 10:52(00h32m) 낮은 돌탑이 있는 곳인 220m봉에서 잠시 쉬었다 갑니다.
▼ 10:56(00h36m) 220봉을 지나자 말자 전두마을로 연결하는 삼거리를 지나갑니다.
지나온 노산재 진행방향에서 ↖방향은 진행해야할 안정재, ↗전두마을 연결 방향입니다.
▼ 10:59(00h39m) '각시붓꽃'이 지천에 널렸습니다.
▼ 11:00(00h40m) '다닥냉이꽃'입니다.
▼ 11:02(00h42m) 매바위 직전 전경입니다.
▼ 11:02(00h42m)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형성된 매바위 전경입니다.
오르고 내림은 꽤 높은 철사다리에 의지해야 합니다.
매바위 이름의 유래는 먹이를 바라보고 있는 매의 머리형태를 닮아서라고도 하고,
큰바위 중간에 매가 살던 둥지가 있어서 그렇게 불리웠다고 하는데 정확한 유래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 11:03(00h43m) 철사다리를 통해 매바위 위쪽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 11:04(00h44m) 매바위에서 바라본 통영의 미륵산 방향입니다.
▼ 11:04(00h44m) 매바위에서 바라본 거제의 가조도와 정상 옥녀봉 전경입니다.
(가조도 개략)
가조도(加助島)는 경상남도 거제시의 섬으로 거제도의 서북쪽에 있고,
면적은 5.86 ㎢, 해안선의 길이는 17.5 ㎞, 최고점은 332 m이며,
인구는 2015년 12월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1,280 명이다.
과거에는 가좌도(加佐島)라고도 하였다.
가조도는 행정 구역상 거제시 사등면 창호리로 행정기관으로는 1987년에 설치된
사등면사무소 가조출장소가 있고, 2009년 7월 13일 가조연륙교로 본 섬인 거제에
연결되었다.
거제도 성포에서 북쪽으로 약 1 ㎞에 위치하며, 주변에 서쪽으로 어의도, 수도가 있다.
주민들은 주로 밭농사를 짓거나 수산업에 종사한다.
(가조도의 옥녀봉?) :국제신문 근교산 & 그너머 기사 퍼옴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봄맞이 섬 산행을 위해 경남 거제 가조도를 찾았다.
자고로 가을 산행은 북쪽에서 시작하고 봄 산행은 남도의 섬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거제도를 보좌한다는 뜻을 가진 가조도는 거제도 부속도서 중 칠천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중앙의 좁은 지협부에 의해 남북이 구분된다.
산행은 남쪽의 아담한 백석산(206m·현지 신전산)과 북쪽의 옥녀봉(333.2m·
작은 화산 분화구 모양)을 잇는다.
옥녀봉은 옥황상제의 딸인 옥녀가 약수터에 내려와 목욕한 뒤 사슴과 놀았다 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고 산세가 여성을 닮았거나 주위에 여성 관련 지명이 많을 경우
붙여지기도 한다.
옥녀봉은 전국에 수십 곳이 있고 거제도에도 장승포·칠천도·가조도 등 세 곳에
있으니 가조도를 꼭 기억하자.
산행 코스는 가조도 논골 버스정류장~백석산~도로~'노을이 물드는 언덕' 전망대~
사등면 가조출장소~옥녀봉 들머리~임도 갈림길~옥녀봉~신교마을 버스정류장으로
약 7㎞ 거리에 순수 산행시간은 3시간30분가량 걸린다.
산행은 가조연륙교(길이 680m·2009년 7월 개통)를 건너 약 400m를 직진해
만나는 논골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한다.
논골마을 입구와 동백관광 버스차고지 사이에 있다.
약 200m를 되돌아 우창블루오션 맞은편으로 오른다.
금룡정사 이정표를 따라 100m가량 오르면 백석산 들머리가 나온다.
거제시는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길이라는 뜻으로 '노을길'을 만들어
이정표에도 새겼다.
기분 좋게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초기 어미와 새끼 노루 두 마리와 마주쳤다.
먼 거리였지만 순식간에 모자 노루는 사라졌다. 섬에 들어서니 공기가 상쾌하다.
이래서 봄이 되면 섬산을 찾나 싶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외부에서도 많이 찾을 것 같은데 리본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자체에서 노을길 조성을 위해 붙인 것 같은 빨간 띠만 간간이 보인다.
아기자기한 봉우리를 몇 차례 오르고 내리지만 크게 힘들진 않다. 어느새 백석산
정상이다.
정상석도 없고 별다른 조망도 없어 서둘러 하산길로 접어든다.
저 멀리 이날의 최고봉인 옥녀봉이 보인다. 정상 부근의 경사가 가팔라 보인다.
백석산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걸으면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 맞은편 112m 봉
능선을 따르면 된다.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겼다. 들머리가 나뭇가지로 막혀 있고 옥녀봉 이정표에
'폐쇄'라고 쓴 종이가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개인적으로 산행에 나섰다면 무시하고 진입했을 텐데 독자들이 뒤따를 것을
생rkr하니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다.
확인 결과 '폐쇄'라는 글을 써 붙인 주체는 믿기 어렵지만 거제시였다.
벌이 많은 데다 산주가 최근에 집을 지으면서 노을길을 폐쇄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란다.
이해되지 않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
벌이 많아 길을 폐쇄할 정도라면 노을길 조성 때는 이런 사실을 확인도 하지
않았던 것인지, 산주를 설득해 길을 열 노력은 해봤는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폐쇄'라고만 붙여놓을 게 아니라 대체 노을길을 안내라도 해주든지. 어떤 것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취재팀은 이런 내용을 확인하는 데 1시간을, 또한 대체 산행로를 찾느라 1시간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우려했던 대로 도로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무책임한 행정에 화가 치밀었다.
애초에 백석산 입구에 이런 사실을 공지했다면 다른 산을 택할 수도 있었고 폐쇄
구간에 접어들었더라도 대체 노을길을 안내했다면 이런 불편함을 겪지 않았을 것
아닌가.
취재팀은 아예 다른 산을 올라야 하나 심히 고민했지만 되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도로에 내려선 뒤 울며 겨자 먹기로 길을 따라 왼쪽으로 이동한다.
백석산에서 제대로 된 조망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아스팔트 길을 걷는데
뜻밖에 해안선 조망이 괜찮다. 30분가량을 걸으면 '노을이 물드는 언덕'을 만난다.
화장실과 2층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해안을 조망한 뒤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다 실전마을 삼거리에서
사등면 가조출장소 오른쪽으로 빠진다.
가조보건진료소, 119와 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약 300m를 직진하면 옥녀봉
들머리다. 옥녀봉까지 1㎞임을 알려주는 이정표도 서 있다.
절반인 500m까지는 어렵지 않게 나아간다.
임도 갈림길이 나오고 간단한 운동기구와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직진해 전망대로 오른다.
밑에서 볼 땐 별 전망이 있겠는가 싶었는데 불과 5~6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니 시선이
나무 높이를 살짝 넘으면서 멋진 경치가 펼쳐진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500m인데 이제부터 된비알이다.
괜스레 다리가 뻑뻑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500m가 높이가 아니라 거리라는 점이다.
숨이 가빠지려고 할 무렵 이정표가 나타난다.
정상을 지나면 신교마을(1.2㎞)과 계도마을(1.3㎞)로 갈 수 있단다.
30m 앞이 옥녀봉이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작은 문이 달린 팔각정이 마련돼 있다.
하산길은 신교마을과 계도마을 두 곳이 있는데 내려서는 곳은 다르다.
취재팀은 신교마을로 하산한다.
팔각정 너머 하산길에서는 쥐가 파먹은 듯 보이는 취도(떠나기 전에 참조)와 멀리
동쪽에 보이는 쌍봉인 앵산을 바라본다.
절묘한 각도로 세워진 흔들바위도 보인다.
약 900m를 내려가면 신교마을(0.3㎞) 이정표가 나오며 이어 갈림길에서는
왼쪽을 택한다. 신교마을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선다.
신교마을 쪽에는 옥녀봉 들머리를 알리는 어떤 표지도 없다.
정상 팔각정에 문 달지 말고 적재적소에 이정표를 세워주면 어떨까 생각하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 11:05(00h45m) 매바위에서 바라본 공룡바위전경입니다.
이름이 그럴듯해 보입니다.
▼ 11:06(00h46m) 매바위에서 올라왔던 반대쪽의 철게단으로 내려갑니다.
이 방향은 천개산/안정재로 가는 방향입니다.
▼ 11:08(00h48m) '산괴불주머니'입니다.
(산괴불주머니?)
2년생 초본으로 종자로 번식한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곧추서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높이 30~60cm 정도이며 전체에
분록색이 돌고 속이 비어 있다.
어긋나는 잎의 잎몸은 길이 10~15cm 정도로서 난상 삼각형이고 2~3회
우상으로 갈라진다.
4~6월에 개화하며 총상꽃차례에 피는 꽃은 황색이다.
삭과는 길이 2~3cm 정도의 선형으로 염주같이 잘록잘록하며 종자는 흑색이고
둥글며 오목하게 파인 점이 있다.
‘괴불주머니’와 비슷하지만 종자 표면에 오목점이 많고 ‘염주괴불주머니’와
달리 개화기까지 남는 근생엽과 경생엽은 난형으로 우상복생한다.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괴불주머니 종류는 모두 독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된다.
연한 잎을 데쳐서 우려내고 먹는 곳도 있다.
▼ 11:11(00h51m) '흰제비꽃'입니다.
▼ 11:11(00h51m) 매바위를 지나 다시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 11:15(00h55m) 제법 가파른 오르막입니다.
▼ 11:17(00h57m) 조그마한 바위로 이루어진 암릉길이 이어집니다.
▼ 11:17(00h57m) 암릉 능선을 넘어섭니다. 전망바위입니다.
▼ 11:18(00h58m) 작은 암릉을 넘어서 돌탑길로 이동합니다.
▼ 11:22(01h02m) 평탄한 힐링 산길이 이어집니다.
▼ 11:23(01h03m) '반디지치꽃'입니다.
(반디지치?)
우리의 들꽃 중에는 외국에서 들어온 식물이 아닐까 하는 것들이 꽤 있다.
반디지치도 그중 하나로 이름이 외래어처럼 느껴진다.
일본어로 된 것을 번역한 것이지만 순우리말로, 꽃은 반디, 뿌리는 지치의 색과 같은 데서
붙여졌다.
반디지치는 제주도와 영호남 지방의 산이나 들, 건조한 풀밭 혹은 모래땅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이나 반음지에서 자란다.
특히 토양이 비옥하거나 모래 혹은 황토가 많은 땅에서 잘 자란다.
키는 15~25㎝ 정도이고, 잎은 양면에 거센 털이 나 있어 껄끄럽다.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이며, 잎의 길이는 2.5~6㎝, 폭은 1~2㎝이다.
원줄기에 퍼진 털이 있고 다른 부분에는 비스듬히 선 털이 있다.
5~6월에 꽃이 핀 후 옆으로 뻗는 가지가 자라서 뿌리가 내리고 다음 해에
싹이 돋는다.
꽃은 줄기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에서 벽자색으로 핀다.
길이 0.5~0.6㎝ 정도로 1개씩 달리고, 꽃잎 중앙부에는 꽃잎보다 높게
돌출된 백색선이 있다.
열매는 7~8월경에 백색으로, 지름이 약 0.3㎝가량 되게 달린다.
지치과에 속하며, 센털개지치, 깔깔이풀이라고도 한다.
지치는 뿌리가 굵고 자주색인 것이 특징인데, 서양에서는 ‘보리지’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부터 술 등에 넣어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서 ‘
쾌활초’라고도 한다.
오늘날에는 꽃과 잎이 허브차로 이용되며, 요리용 오일로도 사용된다.
또 약재로도 쓰이는데, 약재로 쓰일 때는 지선도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 11:25(01h05m) '괭이밥'입니다.
(괭이밥?)
꽃들은 다 저마다의 이름과 모양을 가지고 있고 향기도 다르고 자라는 과정도 다
특색이 있다.
마치 사람들이 개성을 갖고 살아가듯 꽃도 나름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 같다.
괭이밥은 고양이 밥이라는 뜻이다.
고양이가 소화가 잘되지 않을 때 이 풀을 뜯어먹는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에는 어린이들이 이 잎을 먹기도 했는데, 신맛이 있어서 ‘시금초’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땐 먹을 것이 귀해서 먹었지만 요즘은 웰빙식품으로 먹기도 한다.
괭이밥이 새싹요리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또 흥미로운 건 봉숭아물을 손톱에
들일 때 이 잎을 함께 썼으며, 황동 같은 것을 씻을 때에도 사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녹이 잘 닦여서 황동그릇은 반짝반짝하게 닦였다.
괭이밥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꽃 중 하나이다.
들이나 밭, 혹은 주택가 주변의 공터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가 있다.
키는 10~30㎝로 작은 편이다. 그래서 멀리에서 보면 노란 꽃이 점을 찍은 듯
작아 보인다.
꽃은 잎겨드랑이에서 올라와 피는데, 1㎝도 안 된다.
하지만 오래 피는 게 괭이밥의 특징으로, 여름에도 여전히 노란 꽃을 볼 수가 있다.
잎은 마주나는데 겉에서 보면 세 쪽으로 되어 있어 꼭 클로버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잎 가장자리에 홈이 파여 있다.
그 파인 홈과 잎이 이루는 곡선이 참 멋지다.
잎의 길이나 폭은 1~2.5㎝이며, 가장자리와 뒷면에는 털이 약간 나 있고 햇볕이
부족할 때는 오그라든다.
열매는 9월경에 길이 1.5~2.5㎝가량으로 달리는데, 안에는 종자가 많이 들어 있다.
괭이밥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초장초, 괴싱이, 시금초라고도 한다.
외국에서는 괭이밥을 개량한 종류가 많은데, 꽃집에서 ‘사랑초’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 11:33(01h13m) '골무꽃'입니다.
▼ 11:37(01h17m) 잠시 열린 조망터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와 좌측 거제 가조도 옥녀봉 전경입니다.
▼ 11:38(01h18m) 철게단을 통해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갑니다.
▼ 11:40(01h20m) '넝쿨딸기꽃'입니다.
▼ 11:47(01h27m) 소사나무가 많아서인지 봄의 빛깔인 연두색으로 칠해놓은 것 같습니다.
▼ 11:48(01h28m) 조그마한 암봉에 설치된 벤치에서 잠시 휴식입니다.
▼ 11:48(01h28m) 통영시 광도면 관덕마을의 관덕저수지가 조망됩니다.
▼ 11:50(01h30m) '물푸레나무'입니다.
(물푸레나무?)
우리의 식물 이름 중에는 직설적인 이름이 많다.
예를 들어 제주도에서 자라는 중대가리나무는 열매가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풀 종류인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홀아비꽃대 등은 함부로 이름을 부르기도
민망하다.
반면에 ‘나를 잊지 마세요’란 영어 이름에서 따온 물망초(勿忘草), ‘알프스에서
자라는 고귀한 흰빛’이란 뜻의 에델바이스 같은 이름은 어쩐지 낭만적이고
멋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수수꽃다리, 다정큼나무, 실거리나무, 자작나무 등 우리 식물도 찾아보면
아름다운 이름이 여럿 있다.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란 뜻의 아름다운 우리 이름의 대표 주자다.
실제로 어린가지의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보면 파란 물이 우러난다.
물푸레나무의 껍질을 ‘진피(秦皮)’라 하는데, 《동의보감》에는 “우려내어 눈을
씻으면 정기를 보하고 눈을 밝게 한다.
두 눈에 핏발이 서고 부으면서 아픈 것과 바람을 맞으면 눈물이 계속 흐르는 것을
낫게 한다”라고 했다.
나도 가끔 눈에 핏발이 서는 증상이 있어서 《동의보감》의 처방대로 직접
물푸레나무 가지를 꺾어다 여러 번 실험을 해보았지만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내 몸이 현대의약품에 찌들어 버린 탓인지, 아니면 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조금은
혼란스럽다. 효과야 어쨌든 옛사람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물푸레나무는 껍질 벗김의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서민의 안약으로 우리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나무였다.
물푸레나무의 쓰임은 이렇게 안약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라면서 어린가지는 옛 서당 어린이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회초리로 변신했다.
낭창낭창하고 질겨서 훈장님이 아무리 살살 매질을 하여도 아픔은 곱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훈장님에게 물푸레나무 회초리를 한 아름 선물하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다.
그 외에 도리깨 등의 농사용 도구를 비롯하여 눈이 많이 오는 강원도 산간지방에서는
눈 속에 빠지지 않게 신는 덧신 설피의 재료로 빠질 수 없었다.
▼ 11:50(01h30m) '산조팝나무꽃'입니다.
(산조팝나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 바위지대에 자라는 낙엽 떨기나무로 중국과 일본에도 분포한다.
줄기는 모여나며, 높이 1.0-1.5cm다. 잎은 어긋나며, 난형 또는 둥근 모양,
위쪽 가장자리는 3-5갈래로 얕게 갈라진다.
잎 앞면은 진한 녹색이고, 뒷면은 연한 녹색, 양면에 털이 없다.
꽃은 4-5월에 가지 끝의 산형꽃차례에 15-20개씩 달리며, 흰색이다.
수술은 많고, 암술은 5개다. 열매는 골돌이며, 털이 거의 없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 11:52(01h32m) 암봉인 335봉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좌측으로 우회길이 있었지만 조망을 위해 암봉으로 오르기로 했습니다.
▼ 11:53(01h33m) 암봉인 335봉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와 멀리 거제도 전경입니다.
▼ 11:53(01h33m) 335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봉우리와 능선 전경입니다.
▼ 11:55(01h35m) 암봉인 335봉에서 철계단을 내려서서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 11:57(01h37m) '흰민들레꽃'입니다.
(흰민들레?)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한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들이나 길가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없다.
모여 나는 근생엽은 비스듬히 자라고 길이 8~25cm, 너비 1.5~6cm 정도의
도피침형으로 밑부분이 점차 좁아지며 가장자리는 9~13개의 열편으로
갈라지고 톱니가 있다.
4~6월에 피는 두상화는 지름 4~6cm 정도로 백색이다.
수과는 타원형으로 관모는 갈색이 도는 백색이다.
‘민들레’와 달리 꽃이 백색 또는 황백색이고 총포는 길이 15~18mm 정도로
담녹색이며 외편은 내편의 중부 이상까지 닿고 장타원상 피침형이다.
어릴 때에는 나물로 식용한다. 밀원용이나 사료용으로 이용한다.
식용으로 재배하며 연한 잎으로 쌈을 싸 먹거나 데쳐서 된장국을 끓여 먹고
생즙을 내어 마시며 꽃은 튀김이나 초무침으로, 뿌리는 기름에 튀겨 먹는다.
전초로 김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적용증상 및 효능으로는
각기, 강장보호, 건위, 경중양통, 기관지염, 대하증, 만성간염, 부종, 소감우독,
소아해열, 식중독, 악창, 오풍, 온신, 옹종, 완화, 요독증, 위궤양, 위무력증,
위산과소증, 위장염, 유방염, 유방왜소증, 유선염, 유즙결핍, 이습통림, 인후염,
인후통증, 일체안병, 임파선염, 자궁내막염, 자상, 정종, 정창, 진정, 창종,
청열해독, 충혈, 탈피기급, 해독, 해열, 황달 등이다.
▼ 11:58(01h38m) 대촌마을로 이어지는 삼거리입니다.
광명선원 농장이 대촌마을로 하산하는 길에 있는 것 같습니다.
▼ 11:58(01h38m) 대촌마을 삼거리에서 우리는 벽방산 방향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 11:59(01h39m) '애기별꽃'입니다.
(별꽃?)
키는 약 10~30㎝이다.
줄기에는 한 줄로 길게 털이 나고 줄기 밑에서 가지가 많이 나와 옆으로 뻗으며 자란다.
작고 난형인 잎은 마주나며 길이 1~2㎝, 너비 8~15㎜ 정도이다.
잎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잎자루는 없다.
5~6월에 흰 꽃이 가지 끝에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하얗게 무리져 핀다.
꽃잎과 꽃받침잎은 모두 5장이고 꽃잎의 끝은 2갈래로 나누어지며, 꽃받침잎에는
선모가 달려 있다.
열매는 삭과인데 씨 겉에 조그만 돌기들이 나 있다.
산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며, 나물이나 국으로 끓여 먹으면 산모의 유즙분비가
원활해진다고 전해진다.
▼ 12:04(01h44m) 386봉을 오르면서 뒤돌아본 지나온 335봉 암봉 전경입니다.
지나온 능선이 아득하게 조망됩니다.
▼ 12:05(01h45m) 386봉으로 오르는 암릉길이 이어집니다.
▼ 12:07(01h47m) '골무꽃'입니다.
▼ 12:09(01h49m) 386봉 바로 아래에 있는 이정표입니다.
노산재 진행방향에서, ↖ 진행해야할 안정재 방향, ↗ 386봉 및 천년송 암봉방향이고
천년송 암봉 방향으로 계속 이어가면 천개마을과 우동저수지 방향으로 하산하게 됩니다.
우리는 일단 10여m떨어진 386봉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야 합니다.
▼ 12:10(01h50m) 386봉에서 바라본 천년송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천년송은 고사되고 고사목만 옛영화를 알리고 있습니다.
▼ 2011.09월에 찍어 두었던 천년송 전경입니다. 이 때도 이미 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 12:10(01h50m) 386봉 돌탑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335봉과 능선길입니다.
▼ 12:13(01h53m) 386봉을 떠나서 다음 목적지로 향해 이동합니다.
386봉 바로 옆의 암봉으로 이동하여 넘어 갑니다.
▼ 12:14(01h54m) 386봉에서 안부쪽으로 나 있는 목계단 전경입니다.
▼ 12:16(01h56m) '화살나무'입니다.
(화살나무?)
화살이 날아갈 때 곧바로 가거나 곡선을 그리거나, 빠르고 느린 것을 좌우하는 것은
모두 화살대에 매다는 ‘전우(箭羽)’라는 깃털에 달려 있다고 한다.
깃털의 재료로는 수리나 매가 가장 좋으며, 여의치 않으면 다른 새들의 깃털을 사용했다.
화살나무는 나뭇가지에 화살 깃털을 닮은 회갈색의 코르크 날개를 달고 있다.
이 특별한 모양새를 두고 귀신의 화살 깃이란 뜻으로 예전에는 귀전우(鬼箭羽)라 했다.
너비 5밀리미터에 얇은 깃이 세로로 2~4줄씩 붙어 있어서 다른 나무들과 금방 구별해낼
수 있다.
가끔 혹느릅나무에도 코르크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화살나무처럼 확실하지 않고 모양새도
다르다.
이렇게 다른 나무가 갖고 있지 않은 특별한 모습을 공들여서 만들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좀 더 크게 보여 새싹을 먹어치우는 초식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화살나무 종류는 이른 봄에 약간 쌉쌀한 맛이 나는 보드라운 새싹이 돋아난다.
사람들도 나물을 해 먹을 정도이니 초식동물에게는 이 이상 좋은 먹을거리가 없다.
그래서 나름의 대책이 필요했다.
원래 굵기에 날개의 폭을 합치면 3~4배 더 굵어 보이는 데다가, 날카로운 코르크 날개를
무시하고 함부로 덤벼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김새가 특별한 나무는 흔히 약으로 쓰이기 마련인데, 화살나무도 예외가 아니다.
《동의보감》에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한 배 아픈 것을 낫게 한다.
요사스런 귀신에 홀리고 가위 눌리는 것을 낫게 하며 뱃속에 있는 충을 죽인다.
월경을 잘 통하게 하며 산후의 여러 좋지 않은 증상을 멎게 한다”라고 했다.
또 코르크 날개는 “태워서 좋지 못한 기운을 없애는 데 썼다”고 한다.
《동의보감》에 적힌 우리말 이름은 ‘보대회나무’, 《물명고》에는 ‘횟닙나무’라고 표기했다.
어원은 알 수 없으나 ‘회’가 본래의 이름으로 생각되며, 화살나무는 근세에 들어와 분류체계에
따라 식물 이름을 정비할 때 새로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화살나무는 사람 키 남짓한 작은 나무이며 전국 어디에서나 자란다.
숲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정원수로 더 흔히 볼 수 있다.
봄에 손톱만 한 연한 녹색의 꽃이 핀다.
코르크 날개가 달린다는 것 외에 별다른 특징 없이 여름을 넘기고 가을에 들어섰을 때야
비로소 화살나무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열매와 단풍이 특별해서다.
꽃자리에 달렸던 열매는 껍질이 벌어지면서 주홍빛의 동그란 씨가 쏙 나온다.
표면이 매끄러워 마치 루비 알 같은 빛을 내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아울러서 달걀 크기의 잎사귀도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가을이 짙어지면서 화살나무 단풍은 천천히 거의 동시에 빨갛게 물든다.
화살나무 단풍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나무도 흔치 않다.
일본인들은 화살나무와 단풍나무, 그리고 은방울꽃나무를 ‘세계 3대 단풍나무’라고 부른다.
▼ 12:16(01h56m) '청미래덩굴'입니다. 일명 '망개나무'라고도 합니다.
(청미래 덩굴?)
청미래덩굴은 사람들이 잘 다니는 산속 오솔길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하디흔한
우리 산의 덩굴나무다.
청미래덩굴은 공식적인 이름이고, 경상도에서는 망개나무, 전라도에서는 맹감나무,
혹은 명감나무라 불린다.
이 중에서도 망개나무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충북 및 경북 일부 지방에서 자라는
희귀수종인 진짜 망개나무와 혼동하기 쉽다.
청미래덩굴의 잎은 젖살 오른 돌잡이 아이의 얼굴처럼 둥글납작하고, 표면에는 윤기가
자르르하다.
기다란 잎자루의 가운데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한 쌍의 덩굴손은 손끝에 닿는 대로
나무며 풀이며 닥치는 대로 붙잡고 ‘성님! 나도 같이 좀 삽시다’ 하고 달라붙는다.
잡을 것이 없으면 끝이 도르르 말린다.
덩굴줄기를 이리저리 뻗기 시작하면 고약한 버릇이 생긴다.
갈고리 같은 작은 가시를 여기저기 내밀어 자기 옆으로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다니는 것을
훼방 놓는다.
나무꾼의 바짓가랑이를 찢어놓고 그도 모자라 속살에 생채기를 만들어놓는가 하면,
친정나들이를 하는 아낙의 치맛자락을 갈기갈기 벌려 놓는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화가 난 사람들이 낫으로 싹둑싹둑 잘라 놓아도 되돌아서면 ‘약 오르지?’를 외치듯
새 덩굴을 잔뜩 펼쳐놓는다.
청미래덩굴의 가시는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산속의 날쌘돌이 원숭이도 꼼짝 못한다는 뜻으로 일본인들은 아예 ‘원숭이 잡는 덩굴’
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미래덩굴은 이처럼 몹쓸 식물만은 아니다. 여러 가지 좋은 일도 많이 한다.
어린잎을 따다가 나물로 먹기도 하며, 다 펼쳐진 잎은 특별한 용도가 있다.
잎으로 떡을 싸서 찌면 서로 달라붙지 않고, 오랫동안 쉬지 않으며, 잎의 향기가 배어 독특한
맛이 난다.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시골장터에서 흔히 듣던 떡장수의 ‘망개~ 떠억’ 하는
외침은 지나간 세대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망개떡은 청미래덩굴의 잎으로 싼 떡을 말한다.
줄기는 땅에 닿는 곳에서 바로 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처럼 땅속을 이리저리 뻗쳐
나가는 땅속줄기(地下莖)를 갖는다.
땅속줄기는 굵고 울퉁불퉁하며 오래되면 목질화된다. 마디마다 달려 있는 수염 같은 것이
진짜 뿌리다.
뿌리 부분에는 어떤 원인인지 명확치 않으나 가끔 굵다란 혹이 생기는데, 이것을 ‘토복령
(土茯岺)’이라고 한다.
속에는 흰 가루 같은 전분이 들어 있어서 흉년에 대용식으로 먹기도 했다.
그 외에 주요 쓰임새는 약재다.
옛사람들이 문란한 성생활로 매독에 걸리면 먼저 토복령 처방부터 시작했다.
또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피를 맑게 하며 해독작용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봄의 끝자락에 이르면 잎겨드랑이에 있는 덩굴손 옆에 긴 꽃대가 올라와 우산모양의
꽃차례를 펼친다.
노란빛이 들어간 풀색 꽃이 모여 피고 나면 초록색의 동그란 열매가 열렸다가 가을에는
빨갛게 익는다.
다 익은 열매는 속에 황갈색의 씨앗과 주위에 퍼석퍼석하게 말라버린 약간 달콤한 육질이
들어 있다.
먹을 것이 없던 옛 시골 아이들은 ‘망개 열매’가 시고 떫은 초록일 때부터 눈독을 들인다.
익은 열매는 달콤한 맛을 보려고 오가며 가끔 입속에 넣어보곤 한다.
항상 조금 더 맛있고 씹히는 부분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유년을 보낸 기억이
새롭다.
육질이 거의 메말라 버린 열매는 덩굴에 매달린 채로 겨울을 넘겨 다음해 봄이 되어도
그대로 달려 있다.
줄기의 뻗음이 멋스러워 꽃꽂이 재료로 우리 주변에서 만나기도 한다.
▼ 12:47(02h07m) 이곳에서 약 3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음 코스로 이동합니다.
▼ 12:47(02h07m) 걷기 좋은 힐링길이 이어집니다.
▼ 12:51(02h11m) 위치표시목 1-31번 목을 지나갑니다.
위치표시목이 두 가지 종류(높은 종류, 낮은 종류)로 설치되어 있는데 헷갈리기 쉽습니다.
해당 관공서에서 정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 12:51(02h11m) 능선길 이동 중 좌측 관덕저수지 방향의 한퇴골 농원 삼거리를 지나갑니다.
우리는 직진방향으로.....
▼ 12:51(02h11m) 계속 힐링산길이 이어집니다.
▼ 12:57(02h17m) 마치 두꺼비가 한 마리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12:57(02h17m) 반대방향에서 보니 거북이 형상 같기도 하고....
▼ 12:58(02h18m) 정면 오른쪽으로 천개산에서 안정마을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됩니다.
▼ 13:00(02h40m) '부처손'입니다.
(부처손?)
부처손은 부처님의 손이라는 뜻이다.
잎이 오므라졌을 때, 그 모습이 주먹을 쥔 손 모양과 비슷해서 붙여졌다.
그런데 왜 하필 부처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 식물이 약재로 쓰이면 나쁜 것을 없애고 좋은 것을 북돋워 주는 작용을 한다는데,
그래서 붙여진 걸까?
그게 아니라 부처손이란 한자명인 ‘보처수(補處手)’에서 온 이름이다.
호랑이 발처럼 생겼다고 하여 한자로 ‘표족’이라고도 한다.
부처손은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겨울철에는 성장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꼭 얼어 죽은 듯
보인다.
그러나 봄에 기온이 점점 올라가면 새파랗게 바뀐다.
그래서 만년초, 불사초, 장생불사초, 회양초라고도 한다.
또 잎이 붙은 모양이 주먹을 쥔 것 같고 잣나무잎 같다고 권백(卷柏)이라고도 한다.
부처손은 제주도와 울릉도, 남부, 중부, 북부 지방의 돌 틈에서 자라며, 키는 약 20㎝
정도이고, 잎은 길이가 1.5~2㎜이다.
잎 끝이 실 같은 돌기로 되어 있고 4줄로 빽빽하게 있으며 달걀형이다.
가지는 평면으로 갈라져 퍼지고,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은 흰빛이 도는 녹색이다.
습기가 많을 때는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건조할 때는 안으로 말려서 공처럼 되는 것이
특징이다. 포자는 길이가 0.5~1.5㎝, 직경이 2㎜로 잔가지 끝에 1개씩 달리며 네모지다.
바위손이라고도 하나 바위손은 따로 있다.
사실 이 두 식물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식물도감마다 조금씩 다르다.
바위손은 부처손보다 뿌리가 적어 엉키지 않고 원줄기라 해서 뿌리에서 나온 줄기가
곧게 뻗으면서 양 옆 잔가지가 뻗는다.
그러나 부처손은 뿌리가 엉키고, 곧게 뻗는 원줄기가 없이 뿌리에서 바로 잔가지처럼
나와 잎들이 속생하는 것처럼 빽빽하게 난다.
부처손과에 속하며, 바위손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잎과 줄기,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타이완, 필리핀, 북인도 등지에 분포하며, 꽃말은 ‘비련’, ‘슬픈 사랑’
이다.
주로 산부인과 계통의 질병과 통증을 다스린다.
관련질병: 변혈증, 복통, 비뉵혈, 빈혈증, 요혈, 월경불순(월경부지, 월경통), 월경불통, 천식,
출혈, 탈항, 토혈, 통경, 행혈
▼ 13:06(02h46m) 도덕산 갈림길인 403봉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 13:06(02h46m) 403봉은 시루봉을 거쳐 도덕산으로 연결되는 삼거리입니다.
▼ 13:06(02h46m) 희,준님이 설치한 통영지맥 403봉 정상 표식입니다.
▼ 13:07(02h47m) 403봉에서 바라본 시루봉 전경입니다.
진행방향에서 ↖시루봉 방향, ↗우리가 진행해야할 안정재 방향입니다.
▼ 13:07(02h47m) '병꽃나무'입니다.
(병꽃나무?)
꽃 모양은 길쭉한 깔때기 모양으로 손가락 길이 정도이고 아래로 매달려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백자 병이나 청자 병처럼 생겼다고 하여 병꽃나무란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꽃이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는 영락없는 병모양이다.
꽃은 전체적으로 보드라운 털로 덮여 있다.
그래서 《물명고》에 실린 옛 이름은 비단을 두른 것처럼 아름다운 꽃이란 뜻의
금대화(錦帶花)이며 중국 이름도 같다.
일제 초기 학명을 붙이고 식물 이름을 정비하면서 병꽃나무란 새로운 이름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꽃은 잎이 난 다음에 피는데, 꽃송이가 많고 독특한 모양새에 처음에는 황록색을 띤다.
꽃잎의 앞면과 뒷면이 색깔이 다른 경우가 많고 오래되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꽃마다 피는 시기가 약간씩 다르므로 한 나무에 두 가지 색깔의 꽃을 같이 볼 수 있다.
또 꽃이 적어도 2주 이상 오래 피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다만 아직은 산속의 수줍은 미인일 뿐 정원수 미인대회에서는 한 번도 뽑힌 적이 없다.
외국 수입 정원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병꽃나무와 같은 우리 나무들을 몰라 주지만
언젠가는 각광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거기다 병꽃나무는 우리나라 특산 꽃나무다.
병꽃나무 종류는 우리나라에 다섯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한 것은 병꽃나무와 붉은병꽃나무다.
이 둘은 꽃 색깔에 차이가 있으며 병꽃나무는 꽃받침이 아래까지 세로로 완전히 갈라지고,
붉은병꽃나무는 꽃받침의 중간까지만 갈라진다.
흔하지는 않지만 삼색병꽃나무도 있다.
이름 그대로 한 나무에 세 가지 꽃 색깔이 나타나는데, 같은 꽃이 피어 있는 기간 동안 삼단계로
색의 변화가 나타난다.
꽃이 처음 필 때는 새하얗다가 며칠 지나면 분홍빛으로 변한다.
꽃이 질 무렵이 되면 붉은색으로 마감한다.
같은 나무에 다른 색깔의 꽃이 피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여 관상수로 흔히 심는다.
▼ 13:10(02h50m) '철쭉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다.
▼ 13:10(02h50m) 소나무 숲 우거진 길이 곳곳에 이어집니다.
▼ 13:15(02h55m) '대당산'이란 산명은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403봉과 천개산 사이에 있는 낮은 봉우리입니다.
▼ 13:17(02h57m) 철쭉꽃이 멋지게 피어 있습니다.
▼ 13:17(02h57m) 천개산 등산로 1-32번 위치표시목을 지나갑니다.
▼ 13:25(03h05m) 약간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갑니다.
위쪽에 송전 철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13:27(03h07m) '비목나무'입니다.
(비목나무?)
〈비목〉은 〈선구자〉, 〈반달〉 등과 함께 우리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가곡이다.
1964년, 백암산 비무장지대에서 육군 소위로 근무하던 한명희 씨는 어느 맑은 밤에 순찰을
돌다가 양지바른 산모퉁이에서 녹슨 철모와 이끼 낀 돌무더기 하나를 발견한다.
한국동란 때 처참하게 죽어간 이름 없는 젊은이의 초라한 무덤이었다.
그는 무엇인가 사연을 간직한 것 같은 이 현장을 기억해두었다가 훗날 가사로 엮고
장일남 씨가 곡을 붙여 가곡 〈비목〉이 탄생한다.
6월이면 비목의 가사처럼 가슴이 저며 오는, 지나간 우리의 아픈 상처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비목나무는 가곡의 비목과 발음이 같아 사람들은 초연 속에 사라져버린 비극의 주인공들을
상징하는 나무로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잘 알려진 나무가 아니므로 구부정하고, 어둠침침하며, 곧 썩어 넘어질 것 같은
나무로 상상한다.
그러나 ‘보얀목’이라고도 불리는 비목나무는 황해도 이남의 산이라면 어디에서나 건강하게
자라는 흔한 나무의 하나일 뿐이다.
비목나무는 겨울에 잎이 떨어지는 갈잎나무이며, 키 10여 미터, 지름이 거의 한 아름까지
자란다고 하나 대체로 지름 한 뼘 정도다.
나무껍질은 어릴 때는 황갈색이고, 오래되면 얇고 커다란 비늘조각으로 떨어진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거꾸로 세운 피뢰침 모양이다.
꽃은 암수 다른 나무로 한창 봄이 무르익을 때 핀다.
연한 노란빛으로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작은 우산모양의 꽃차례에 달린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깔끔한 꽃 모양이 품위가 있다.
열매는 작은 콩알 크기 정도로 처음에는 초록색이었다가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차츰
붉은빛으로 익는다.
황색으로 차츰 물들어 가는 비목나무의 단풍과 함께 작은 루비 구슬 같은 열매가 다소곳이
열려 있는 모습은 가을 숲의 정취를 돋운다.
▼ 13:27(03h07m) 송전 철탑 아래를 통과합니다.
▼ 13:28(03h08m) 철탑을 지나자 유순한 길로 연결됩니다.
▼ 13:29(03h09m) '노랑제비꽃'입니다.
(노랑제비꽃?)
줄기에서 꽃대가 나와 노란색 꽃이 피는 점이 아주 독특하다.
햇빛이 잘 드는 산 속 풀밭에서 자라며 키는 10~20㎝쯤이고 땅속줄기는 밑으로 곧바로
뻗는다.
잎을 빼고는 식물 전체에 털이 거의 없다.
잎은 2가지가 달리는데 그중 뿌리에서 나오는 잎[根生葉]은 심장처럼 잎 밑이 약간 들어가
있으며 잎가장자리에는 파도처럼 생긴 잔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잎보다 3~5배 정도 길다.
줄기에 달리는 잎[莖生葉]에는 잎자루가 없거나 매우 짧으며 마주보며 달린 것처럼 나온다.
꽃은 이른봄에 줄기 끝에 노란색으로 피며 노랑제비꽃이 무리져 자라기 때문에 꽃이 무리져
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의 뒤쪽에는 볼록 나온 것이 있는데, 이 곳에 꿀샘이 들어 있다.
꽃잎은 5장으로 제일 아래쪽에 있는 꽃잎에는 몇 개의 황갈색무늬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나머지 꽃잎의 밑쪽에도 황갈색 줄무늬가 있다.
이 줄무늬는 꽃을 찾아온 벌이나 곤충들이 꿀을 빨아먹기 위해 들어가는 통로로 여겨진다.
꽃이 필 때는 강한 햇빛이 필요하나 피고 나면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며 무리져 자라기 때문에
땅을 덮는 지피식물로 쓰이기도 한다.
▼ 13:32(03h12m) 삼거리를 만납니다.
↖ 방향은 안정재로 직진하는 길이고, ↗방향은 천개산을 거쳐 안정재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방향 천개산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 13:33(03h13m) 천개산 정상의 사각 정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 13:34(03h14m) 천개산 정상 표식입니다.
거창한 정상석 없이 통신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초라한 정상입니다.
(천개산(天開山)?)
높이는 524m이다. 계족산이라고도 부른다. 통영시에서 가장 높은 산인 벽방산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함께 오르는 등산 코스가 있다.
벽방산과 천개산에는 아름다운 8경이 있는데, 그 중 제3경이 은봉성석이고,
제7경이 은봉암에 있는 계족약수이다.
7m 높이의 칼같이 날렵한 바위인 은봉성석은 천개산 8부 능선 에 자리한 은봉암의 극락보전
지붕과 맞대어 서 있다.
옛날 이곳에 자연석 3개가 있었는데, 첫번째 바위가 넘어지자 혜월선사가, 두번째 바위가
넘어지자 종열선사가 출현하였고, 지금은 은봉성석 하나만 남아 도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벽방산과의 사이에는 동쪽 안정리에서 서쪽 완산리를 잇는 안정치고개가 있는데, 지금은
임도가 뚫려 있다.
정상에 서면 푸른 남해를 배경으로 거제도와 통영시가 가깝게 보인다.
▼ 13:44(03h24m) 천개산에서 안정재 방향으로 내려오다 만나는 삼거리입니다.
우리는 안정재 방향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 13:45(03h25m) 천개산에서 안정재 방향에 설치된 헬기장 전경입니다.
▼ 13:44(03h24m) '각시붓꽃'입니다.
▼ 13:49(03h29m) 진행방향에서 ↖안정재 방향으로 우리가 이동할 방향이고,
↗은봉암 방향입니다.
(은봉암?)
통영의 은봉암(隱鳳庵)은 안정사(安靜寺)의 부속 암자이다.
안정사는 654년(태종무열왕 1)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했다고 하지만 확인하기 어렵다.
그 뒤 1309년(충선왕 1)에 회월선사(會月禪師)가 중건하였고, 1626년(인조 4)과 1733년
(영조 9), 1841년(헌종 7), 1880년(고종 17)에 각각 중건되었다.
안정사의 암자인 은봉암은 634년(선덕여왕 3)에 징파화상(澄波和尙)이 세웠다거나 658년
(태종무열왕 5)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이를 고증할만한 문헌이 없다.
본사인 안정사에 비해 은봉암이 먼저 세워졌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효대사 창건설이 좀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창건 이후 내력에 관한 기록은 없으며, 조선 후기인 1855년(철종 6)에 수일선사(秀一禪師)가
중창했다고 한다.
사찰의 건물로는 법당과 요사가 있다.
암자 주변에 있는 은봉성석(隱鳳聖石)이라 불리는 바위에 관한 설화가 전한다.
옛날 이곳에는 세 개의 바위가 있었는데, 그중의 한 개가 넘어진 뒤 해월(海月)이라는 스님이
왔고, 또 한 개가 넘어진 뒤 종열(宗悅)이라는 스님이 와서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은 이 돌들을 성인의 돌이라는 의미에서 ‘성석(聖石)’이라고 불렀고, 마지막 남아
있는 돌이 넘어지면 깨달음을 이룰 새로운 도인(道人)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 13:49(03h29m) 안정재 방향으로 위치표시목 1-33번을 통과합니다.
▼ 13:55(03h35m) 은봉암 삼거리를 지나서는 힐링 산길의 연속입니다.
▼ 13:57(03h37m) 위치표시목 1-34번 목을 지나갑니다.
▼ 14:00(03h40m) 안정재 직전 숲길 전경입니다.
▼ 14:01(03h41m) 안정재에서 바라본 바위로 이루어진 벽방산의 만리창벽(萬里蒼碧)위용입니다.
▼ 14:02(03h42m) 안정재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입니다.
진행방향인 천개산 방향에서 ← 사계마을, ↑ 벽방산, → 은봉암 방향입니다.
▼ 14:02(03h42m) 산길이 우리가 내려온 천개산 방향이고 포장길이 은봉암 방향입니다.
▼ 14:02(03h42m) 안정재에 설치된 임도길 이정표로 ← 원산리, ↑ 안정리, → 은봉암 방향
임도길 이정표입니다.
▼ 14:02(03h42m) 앞에 보이는 임도길이 안정리 방향이고, 좌측길이 벽방산 방향입니다.
▼ 14:03(03h43m) 현위치 안정치(재)에서 벽방산으로 올랐다가 의상암, 가섭암, 안정사,
안정사 주차장 코스로 산행이 이어집니다.
▼ 14:03(03h43m) 현위치번호 1-10번 위치목을 지나갑니다.
▼ 14:03(03h43m) 벽방산 정상까지는 700m가 남은 이정표입니다.
▼ 14:05(03h45m) 벽방산 오르는 게단이 시작되어 연이어 코가 땅에 닿을 듯한 계단이
시작됩니다.
▼ 14:12(03h52m) 현위치 나무 계단 위로 1-21번 위치 표시목을 지나갑니다.
위치 표시목이 2종류로 되어 있어서 헷갈리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 14:15(03h55m) 약3분만에 다음 위치표시목 1-20인 나무돌탑 100m아래를 지나갑니다.
▼ 14:17(03h57m) 벽방산 오르막 중간에서 바라본 지나온 천개산과 우측능선입니다.
좌측 능선은 천개산에서 안정마을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입니다.
▼ 14:17(03h57m) 오르막 중간에서 바라본 안정리 전경과 통영만, 거제도 전경입니다.
▼ 14:17(03h57m) 돌탑옆 1-3번 위치 표시입니다.
위치표시목은 키가 큰 표시목과 키가 적은 표시목 등 2가지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 14:18(03h58m) 나무 수풀사이로 돌탑 들이 조망됩니다.
▼ 14:19(03h59m) 급한 경사길 중간부터 산죽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14:22(04h02m) 산죽길 중간에 설치된 산불 감시초소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빼어나고 천개산 방향이 전부 한눈에 보입니다.
▼ 14:22(04h02m) 오르막 중간 전망대에서 바라본 안정리의 성동조선과 LNG저장 시설입니다.
▼ 14:23(04h03m) 정상전 100m에 있는 위치표시목 1-19입니다.
▼ 14:24(04h04m) 安靜寺 제1경인 만리창벽(萬里蒼碧) 전경입니다.
▼ 14:24(04h04m) 벽방산 급경사 계단을 한차례 지나면 나타나는 산죽밭입니다.
이곳에는 만리암이란 암자가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 14:27(04h07m) 급경사 계단을 올라온 후 뒤돌아본 전경입니다.
▼ 14:29(04h09m) 벽방산 정상 직전에 바위 위에 자라는 멋진 소나무들이 즐비합니다.
▼ 14:30(04h10m) 올라온 안정재를 기준으로 ↙홍류마을 방향, ↑ 정상 방향 삼거리입니다.
▼ 14:30(04h10m) 이것도 천년송이 아닌지?
바위 위에 고고하게 자라는 노송의 전경입니다.
▼ 14:32(04h12m) 정상으로 올라가는 정상 직전 암릉능선입니다.
▼ 14:33(04h13m) 벽방산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조망 안내도입니다.
▼ 14:33(04h13m) 정상에 위치한 위치안내목 1-18번입니다.
▼ 14:34(04h14m) 정상에는 정상석이 2개 설치되어 있는데 그 중 적은 정상석입니다.
▼ 14:34(04h14m)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바라본 거제 방향 조망 안내도입니다.
▼ 14:34(04h14m) 정상에서 남서쪽 방향의 통영쪽 전경입니다.
▼ 14:34(04h14m) 정상석 전경입니다.
▼ 14:37(04h17m) 정상석 뒷면의 글입니다.
▼ 14:38(04h18m) 정상을 떠나 의상선대에서 바라본 정상아래의 절벽 전경입니다.
▼ 14:38(04h18m) 의상선대에서 바라본 통영시 광도면 안정리 성동조선과 LNG비축기지
전경입니다.
▼ 14:42(04h22m) 의상선대를 지나 통영 1-17번 위치표시목을 지나갑니다.
▼ 14:46(04h26m) 약 4분만에 위치표시목 1-16번을 지나갑니다.
▼ 14:47(04h27m) 정상에서 하산하는 능선길은 온화합니다.
▼ 14:49(04h29m) 내리막길에 있는 위치표시목 1-15번입니다.
▼ 14:51(04h31m) 내리막 약 2분 간격으로 위치표시목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14:51(04h31m) 무애암 삼거리 직전의 목계단이 나타납니다.
▼ 14:52(04h32m) 의상암 위 삼거리 위치표시목입니다.
느닷없이 위치표시목 1-1번이 나타납니다. 웬지 헷갈립니다.
▼ 14:52(04h32m) 벽방산 정상에서 700m를 하산하여 만나는 삼거리입니다.
이동 방향에서 ← 무애암방향, → 의상암 방향으로 우리는 의상암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무애암 방향은 통상 천개산~벽방산~무애암~거류산~구절산까지를 연결 종주하는 산꾼들이
이용하는 코스입니다.
▼ 14:55(04h35m) 의상암 바로 위 위치표시목 1-13번을 통과합니다.
▼ 14:55(04h35m) 의상암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14:56(04h36m) 의상암 전경입니다.
의상암은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암자라고 합니다.
상세 내용 의상암 유래 안내문 참조바랍니다.
▼ 14:55(04h35m) 의상암 내의 산신각 전경입니다.
▼ 14:57(04h37m) 의상암 아래로 내려와 바라본 의상암 전경입니다.
▼ 14:59(04h39m) '개별꽃'입니다.
(개별꽃?)
별과 꽃은 비슷한 아름다움을 주는 것 같다.
별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한다면 꽃은 땅을 아름답게 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품은 꽃이 별꽃들이다.
꽃이 마치 별처럼 생겼다고 해서 별꽃인데, 개별꽃도 그중 한 종류이다.
10㎝ 내외로 키는 작지만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날, 산과 들에 마치 별이
솟은 것처럼 앙증맞다.
흔히 꽃에 ‘개’ 자가 붙으면 본래의 꽃보다 못할 때 붙여지곤 하는데,
개별꽃은 별꽃에 그다지 뒤지지 않는다.
단지 다섯 장으로 된 꽃잎은 같지만 별꽃의 꽃잎은 V자로 갈라져 모두 10장으로
보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특히 자줏빛에 가까운 5개의 꽃술이 하얀 꽃잎에 하나씩 놓이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곤 한다.
개별꽃은 산과 들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라는데, 흔히 신갈나무가 무리지어 있는 근처에
많이 분포한다.
잎은 마주나고, 길이는 1~4㎝, 폭은 0.2~0.4㎝이다. 꽃이 피는 시기는 4~5월이며,
열매는 6~7월에 둥글게 달린다.
비록 ‘개’ 자가 붙어 있지만 동삼이나 태자삼이라는 멋진 이름도 있다.
동삼은 이 식물의 뿌리가 어린 인삼의 뿌리와 비슷해서 붙여졌으며, 태자삼이라는
이름은 옛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태자 묘에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봄꽃은 대부분 어린순을 먹을 수 있듯 이 식물도 나물로 먹을 수 있고,
뿌리는 약재로도 사용된다. 석죽과에 속하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 15:01(04h41m) '금창초'입니다.
(금창초?)
봄의 들녘에서 몸을 낮추면 들꽃 세상이 보인다.
무심히 지나치면 평범한 들판이나 산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금창초를 보려면 특히 몸을 더 낮춰야 한다.
크기가 겨우 5~8㎝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서서 지나가다간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꽃이 아주 작아 아예 땅바닥에 붙어 사는
들꽃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금창초는 습기가 많은 곳이나 양지에서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잎은 끝이 뾰족하게 갈라진 형태로 작은 톱니가 있고, 녹색 바탕에 자줏빛이 약간 섞여 있다.
줄기와 잎에는 작은 솜털이 많이 나 있고, 줄기는 누워 있다.
보랏빛 꽃은 5~6월에 피는데, 꿀풀과 꽃들이 그렇듯이 마치 입술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꽃은 잎 옆에 몇 개씩 달리는데, 흥미로운 것은 꽃이 제법 오래간다는 것이다.
철쭉이 필 때쯤부터 여름이 시작될 때까지 핀다.
열매는 8~10월경에 달리는데, 그물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것이 독특하다.
금창초는 꿀풀과에 속하며 섬자란초, 금란초, 가지조개나물이라고도 한다.
비슷한 것으로 조개나물이 있는데 조개나물은 키가 훨씬 커서 30㎝ 정도 된다.
어린순은 나물로 무쳐 먹는데, 약간 쓴맛이 나면 물에 헹구어 먹는다.
식물 전체는 약재로 쓰인다.
금창초라는 이름 자체가 약초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 제주도와 전남 지방, 울릉도 등지와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 15:02(04h42m) '미나리냉이'입니다.
▼ 15:03(04h45m) 의상암에서 내려와 안정사 방향 지름길로 이동합니다.
▼ 15:03(04h45m) 안정사 방향의 지름길입니다. 이길은 가섭암을 이어주는 길입니다.
▼ 15:06(04h46m) 지름길 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목장승입니다.
(장승(長丞)?)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며, 사찰이나 지역간의 경계표·이정표
구실도 한다.
대부분 남녀 1쌍을 세우고, 5방위 또는 경계 표시마다 11곳이나 12곳에 세운다.
동제의 주신(主神)이 되기도 한다. 솟대·돌무더기·서낭당·신목(神木)·선돌[立石] 등과
함께 동제 복합문화를 이룬다.
장승의 기원은 고대의 남근숭배설(男根崇拜說)과 사찰의 토지경계 표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솟대·선돌·서낭당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으나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다.
명칭은 장승·장성·장신·벅수·벅시·돌하루방·수살이·수살목이라고도 불리며,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전승되고 있다.
사용된 재료에 따라서 목장승·석장승·복합장승으로 분류된다.
보통 남녀 1쌍을 이루고 있고, 목장승은 주로 소나무나 밤나무를 사용하는데,
그 형태는 솟대형·목주형(木柱形)·신장조상형(神將彫像形)이 있다.
석장승의 형태로는 선돌형·석적형(石蹟形)·석비형(石碑形)·돌무더기형이 있고,
복합장승은 돌무더기나 흙무더기에 솟대와 석인(石人)의 복합형태를 이룬다.
장승에 쓰는 장군명에는 민속적 신명(神名)이 등장하는데,
동쪽에 있는 장승에는 동방청제축귀장군(東方靑帝逐鬼將軍),
서쪽에는 서방백제축귀장군(西方白帝逐鬼將軍),
남쪽에는 남방적제축귀장군(南方赤帝逐鬼將軍),
북쪽에는 북방흑제축귀장군(北方黑帝逐鬼將軍)이라는 신명을 써서 잡귀를 쫓는다.
장승은 서낭당·산신당·솟대와 동등한 것으로 인정된다.
액운이 들었을 때나 질병이 전염될 때 장승에 제사지내는 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경계표나 이정표의 구실과 함께 잡귀나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마을 수호신으로서,
또는 개인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대상으로서 신앙적인 성격과 깊은 관련이 있다.
▼ 15:06(04h46m) 지름길로 가섭암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15:08(04h48m)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지름길로 이동합니다.
▼ 15:13(04h53m) 가섭암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 15:14(04h54m) 가섭암 전경입니다.
▼ 15:15(04h55m) 약수터 부근에 설치된 가섭암 연혁입니다.
▼ 15:15(04h55m) 가섭암에 대한 설명입니다.
가섭암이란 가섭존자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가섭존자(迦葉尊者)?)
마하가섭(摩訶迦葉, 산스크리트어: Mahākāśyapa)은 고타마 붓다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이다.
가섭 또는 대가섭(大迦葉)이라고도 하며, 의역하여 대음광(大飮光) 또는 대구씨(大龜氏)
라고도 한다.
인도의 왕사성 마하바드라의 거부였던 브라만 니그루다칼파의 아들로서 태어났다.
비팔라 나무 밑에서 탄생하였으므로 비팔라야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는 청결한 인물로서 고타마 붓다의 신임을 받아 제자들 중에서
상위를 차지하였다.
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에 든 후 비탄에 빠지거나 동요하는 제자들을 통솔하여 교단의
분열을 막았으며, 제1회 불전 결집을 지휘하였다.
영취산(靈鷲山)에서 고타마 붓다가 꽃을 꺾어 보였을 때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미소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고사(故事)가 전해진다.
선종에서는 마하가섭을 선법(禪法)을 받아 이어준 제1조로 높이 받들고 있다.
▼ 15:17(04h57m) '미나리냉이'입니다.
(미나리 냉이?)
꽃 중에 꽃잎 네 개가 십자 모양으로 피는 종류를 십자화라고 한다.
꽃다지와 냉이류, 갈래꽃이 십자과에 속하는 식물들이며 미나리냉이도 이에 속한다.
미나리도, 냉이도 모두 나물로 먹는 것인데, 두 가지 이름이 함께 붙었으니 당연히
이 식물도 식용이다. 이른 봄에 새순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
냉이라는 이름이 뒤에 붙은 것을 보면 확실히 냉이 쪽에 더 가깝다.
말냉이, 다닥냉이, 콩다닥냉이, 싸리냉이, 황새냉이, 좁쌀냉이, 는쟁이냉이, 나도냉이,
개갓냉이 등처럼 냉이가 뒤에 붙은 것들은 대부분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미나리냉이는 잎이 미나리와 비슷하지만 꽃은 냉이를 닮아서 미나리냉이라고 부른다.
미나리와 달리 속이 차 있고 줄기도 그렇게 연약하지 않다.
또 미나리냉이는 냉이 친구들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
키도 어른 무릎까지 올라오고, 하얀 꽃들이 무리지어 핀 것이 나물이 아니라 감상하는
꽃으로도 충분하다.
미나리냉이는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그늘진 골짜기의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며, 키는 약 50㎝ 내외이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털이 있다.
잎은 길이가 약 15㎝ 정도이고, 5~7장의 작은 잎으로 된 새의 날개와 같은 모양이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꽃은 비교적 늦봄인 5~7월에 백색으로 핀다.
괭이밥이나 제비꽃식구들은 이미 열매를 맺을 때다. 꽃은 지름이 0.5~0.8㎝인데,
원줄기 끝과 가지 끝에 뭉쳐 달린다.
열매는 8~9월경에 달리고 길이는 2~3㎝, 폭은 1~1.5㎜이며 옆으로 약간 퍼져 있다.
종자는 암갈색이고 난형으로 길이는 2㎜가량이다.
승마냉이, 미나리황새냉이라고도 한다.
어린순은 식용으로 쓰이며, 뿌리는 채자칠이라는 약재로도 사용된다.
한국과 일본, 중국 북부, 시베리아 동부 등지에 분포한다.
▼ 15:18(04h58m) 가섭암을 지나 산행 막바지인 안정사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지름길을 이용한다고 대나무 밭으로 이동하였으나 길이 불분명하여
겨우 길을 찾아서 안정사 주차장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 15:27(05h07m) 대나무 밭으로 들어가 길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 15:30(05h10m) 안정사 제8경 중 8경인 '한산무송'(寒山舞松)에 대한 설명입니다.
▼ 15:30(05h10m) 안정사 8경인 한산무송을 만들어낸 노고송(老故松) 전경입니다.
▼ 15:30(05h10m) 안정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 15:32(05h12m) 안정사 주차장에 설치된 숲길 안내도입니다.
▼ 15:33(05h13m) 우측길은 주차장에서 나오는 길이고 아랫길은 안정사로 들어가는 길로
일방통행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 15:35(05h15m) 벽발산 안정사(安靜寺)란 사명석(寺名石)이 입구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산문(山門)을 나오면서 오늘의 산행을 종료합니다.
(통영 벽발산 안정사?)
경남 통영시 광도면 안정리 벽방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태종무열왕 원년 갑인년
(서기 654)에 우리나라의 해동 화엄종 초조이며 세계적 성현으로 추앙받는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현재까지 1400여년 동안을 면면히 그 법맥을 이어가고 있다.
층정과 예향, 대선문과 진지한 삶의 색채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있는 것을 보면 고찰이
사적지임을 금방 알수가 있다고 한다.
1309년(충선왕1년)에 회월선사가 중건한 뒤 1626년(인조 4년)과 1733년 (영조 9년),
1841년(헌종7년), 1880년(고종 17년)에 중수가 중건되었다.
지금의 김덕진 스님은 가람 수호 정진 중에 있다.
현존하는 국보급 보존가치가 있는 지방유형 문화재 80호 포립형식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나한전, 칠성각, 음향각, 만세루, 광화문, 범종루, 천왕문, 묘사채, 괘불, 한국 대종
등이 있다.
산내 암자로는 절에서 보이는 은봉, 바위 밑에서 보이는 숲 속에 묻혀 있는 은봉암이 있다.
이 은봉암은 634년(선덕 여왕3년) 징파화상이 창건하였으며 약수가 유명하다.
또한 의상암은 663년 (문무왕 3년)에 창건한 것으로 의상 대사가 천공을 받으며 좌선했다는
의상선대가 있고 칠성도량으로 민족의 애환을 같이 한 기도 도량이기도 하여 각처에 이름이
알려져 있다.
신비하게도 현재 구성된 신도들 중 70명이 기도하여 자식을 얻었다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아래 가섭암이 있는데 가섭암은 669년 봉진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에서 출발하여 중수가 되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혜위등광불이 모셔져 있는
천개암이 있다.
또한 은봉암에 있는 성석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괴석으로 높이가 6m 되는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있었는데 바위 한개가 넘어지면서 해월선사라는 도인이 나타났고,
그 후에도 또 한 개가 넘어졌을 때 종렬선사라는 도인이 나타났다고 하여 성석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한 개가 남아있어 새로 한 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암자마다 제각기 다른 전설과 고서들이 있고 불타의 가르침으로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어 기도처로서는 좋은 곳이다.
또 원효암, 운필암, 만리암, 백련암, 소월암 등의 빼어난 사적지가 산내에 두루 산재했는데
임진왜란 및 한국전쟁 등으로 소실하여 지금껏 복원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암자의 소실에 대하는 복원이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은 정신 문화고갈과 부재에서 오는
것으로 빨리 재현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현주지 김덕진 스님이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찰 수호의 정신으로
복원 불사를 계획하고 그 실천 단계가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도래하여 신심에 찬 환희로운
고대 불사 문화도량의 제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벽방산에서는 꼭 봐야할 아름다운 8경이 있다.
1경 만리창벽(萬里蒼壁), 2경 옥지응암(玉池鷹岩), 3경 은봉성석(隱鳳聖石),
4경 인암망월(印岩望月), 5경 가섭모종(迦葉暮鐘), 6경 의상선대(義湘禪臺),
7경 계족약수(鷄足藥水), 8경 한산무송(寒山舞松)이 그것이다.
가섭암 방향으로 등산코스를 잡으면 제일 먼저 5경인 가섭모종을 만날 수 있다.
가섭암 바로 앞에 매달린 작은 종이다. 날이 저무는 저녁 무렵이면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다음 만날 수 있는게 6경인 의상선대. 의상암에서 암봉을 오르다보면 의상대사가 참선을
했던 곳인 의상선대를 만나게 된다.
이어서 볼 수 있는 게 2경인 옥지응암. 의상선대를 지나 정상을 오르기전 정상과는 반대편에
보이는 게 암봉이다. 갖가지 돌기둥을 이룬 암봉을 옥지응암이라고 부른다.
정상을 거쳐 하산을 하다 안정치에서 바라보면 정상 바로 아래에 마치 병풍바위처럼 생긴게
웅장한 자태로 놓여있는 게 있다. 그게 바로 1경인 만리창벽이다.
은봉암을 찾으면 3경인 은봉성석과 7경인 계족약수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고요한 은봉암에는 7m 정도 높이의 칼 같이 날렵한 바위가 극락보전 지붕과 맞대어 서 있다.
그것이 3경인 은봉성석인데 은봉성석에는 이색적인 전설이 따라붙어 있다.
옛날에 자연석 3개가 있었는데, 첫 번째 것이 넘어지면서 해월선사가, 두 번째 것이 넘어지면서
종렬선사가 도를 통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 자연석을 성석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은봉성석이 도를 통할
인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은봉암을 떠나기전 은봉암에 있는 약수 한 모금을 꼭 마셔야 한다.
은봉암에 있는 약수가 바로 7경인 계족약수이기 때문이다.
천개산이 계족산(鷄足山)이라고 불리는데서 계족약수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머리 끝까지 시원해지는 약수 한 모금에 힘이 절로 솟는다.
벽방산 기슭 안정사 주변에는 솔숲이 유명하다.
소나무가 겨울바람에 춤을 추는 듯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데 사람들은 이를 8경인 한산무송
이라고 이름지었다.
이 솔숲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조선 광무 4년인 1900년 선희궁(조선 영조 후궁 영빈이씨 위패사당)
에서 숲을 보호하기 위해 안정사에 금송패(禁松牌)를 내렸다.
금송패는 소나무 벌목을 단속하고 감시하는 권한을 부여한 조선왕실의 신분증으로 안정사에만
3개가 남아 있다.
동시에 ‘송화봉산’도 함께 내려졌는데 소나무만 보호한게 아니라 송홧가루도 보호했다는 의미다.
송홧가루는 왕실로 가져 갔다.
제4경 인암망월(印岩望月)은 벽방산 정상 동쪽 능선의 도장처럼 생긴 바위에서 동해에 비춰지는
달빛을 즐기며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풍류의 멋으로 정상에서 의상암으로 내려오는 암릉 구간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