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바라보며 스트레스를 날리다
누구나 자유로움을 꿈꾼다. 결혼을 했건 안 했건 마찬가지이다. 주부라면 생활 제약에 따른 일탈을 원한다. 결혼을 안 한 홀로서기 인이라면 삶이 자유롭지만 생계면은 치열하다. 누구에게 기댈 수도 없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에 실패해 쓴맛을 보고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주위에 흔하다. 직장인이라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몸이 고되도 출근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만 보는 자신을 느낄 것이다.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생활 수단으로, 욕망과 열정에 반하는 현실의 여러 이유들로 복잡한 심정을 리모컨을 돌리듯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기도 한다.
2016년 12월 경 대학 방송국 동기 모임이 있었다. 제작부였던 글 잘 쓰던 친구 동신이가 몇 달 전에 세종시에 카페를 열었고, 카페를 구경한다고 친구들이 모였다. 삶이 각자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 만에 모인 것이다. 그 카페가 모임의 구심점이 된 셈이다. 서울, 용인, 대전, 세종시, 전주, 군산 등 물리적 시공간은 멀지만 마음만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에서 학습지 국장으로 있는 경식이, 인터넷 강의로 문화 자격증을 따 서울의 초등학교 방과 후 역사 선생님을 2년째 하는 현이... 모두 반가웠다.
"이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 만나게 할 수도 있고, 카페가 그런 의미로 뜻깊은 것 같아." 카페지기 동신이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가정에 큰 일을 겪고 부동산 매매업을 하는 친구 삼중이가 차로 마중 나와 딸과 나를 세종 터미널에서 카페까지 태워다 주었다. 터미널에서 카페까지 거리가 꽤 되어 지리에 약해 잘 헤매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군산에 사는 1년 후배 순우도 차를 몰고 왔다. 비행장에서 군무원을 하는 후배가 계룡시까지 찾아오니 반가웠다.
2017년 4월 초에 두 번째 대학 방송국 동기 모임이 계룡 시청 근처 동신이 카페에서 있었다. 다음 날이 시어머니 2박 3일 여행이어서 갈까 말까 고민하였다. 꼭 가야 하냐 묻는 시어머니와 달리, 다녀오라는 남편의 지지로 용기를 내어 세종시에 다녀왔다.
근무이었지만 세종시 터미널에서 계룡 시청 근처에 있는 동신이 카페까지 이번에도 삼중이가 차로 태워 주었다. 오랜만에 한 친구가 나왔다. 1995년 kbs 기자 시험에 합격해 지금은 차장으로 9시 뉴스에도 가끔 나오는 친구 해평이다. " 방송국 초에 폭력 서클에도 모르고 가입했어?." "난 모르고 선배의 추천으로 가입했지? 빠져나올 때 화장실서 문 잠그고 12명에게 대 자루로 몇 대 맞았지." "그랬어?" "난 처음 알았어." 모두들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전주에서 온 경식이,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온 현이, 카페지기 대전에 사는 동신이, 용인에서 온 은희, 세종시에서 부동산을 동업하는 차로 태워준 삼중이 모두 반가웠다.
반갑게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 "내가 예전에 그랬어?"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아쉬웠지만 하나둘 작별을 고했다. 카페까지 차를 태워주었던 친구도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한 친구가 오랜만에 만났다며 차 값과 밥 값을 모두 계산하였다. 부모님이 계시는 대전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한다고 하였다.
자리를 옮겨 저녁을 먹었다. 충남 계룡 시청 근처에서 카페를 하는 동신이가 쇠고기 샤부 샤부를 사주었다. 음식을 워낙 천천히 늦게 먹는 내가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현이를 기차역에 태워다 주고 동신이가 돌아왔다.
식당 항아리에 심은 들꽃들이 참 예뻤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보냐며 동신이가 무척 아쉬워 하였다. 식당에서 파는 작은 꽃무늬가 그려진 노랗고 분홍 손수건을 세 개 사주었다. 지금도 서랍에서 그 손수건을 볼 때마다 정 많고 다정하였던, 명쾌해 펀드 매니저도 하였던 그 친구의 미소가 떠오른다.
오늘밤은 자유롭다. 남편이 장남이라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내게 해방감이 더 크게 와 닿았다. "아싸! 토요일!" 환호를 질렀다. 딸 아이는 손담비의 ' 토요일밤에...'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겨워하였다. 후배 차를 타고 대전에서 한 시간 남짓 차로 달려 군산에 사는 후배 집을 갔다. 마침 아들, 딸을 논산 할머니 댁에 데려다 주어 집이 비었다고 하였다. 좋아하는 과자와 딸기를 사주니 둘째 딸이 즐거워 하였다. 군산 후배집에 도착해 욕조에 물을 받아 딸아이가 좋아라 수영 목욕을 하였다. 후배가 얼마전 외국에 갔을 때 섬에서 사온 망고 젤리와 맥주, 딸기, 과자 등 자유로움이 한 상 차려졌다. 피곤했지만 자유로웠다.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다음날 군산에서 맛있다는 바지락죽을 후배가 한 상 푸짐하게 사주었다. 새만금 방조제가 보이는 바닷가 도로 길을 달렸다. 후배 차를 타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이 뻥 뚫리듯 시원하였다. 일상의 모든 스트레스가 바람에 날라가듯 상쾌하였다. 고군산 군도, 새만금 방조제, 하섬 ..바닷 길을 달렸다. 풍경이 멋진 곳에 내려 주상절리 등 바다를 배경으로 셋이 사진도 찍었다. 변산반도 국립 공원, 채석강을 지났다. 군산 터미널을 갈 때 채석강 민박을 지나쳤다. '아! 근 25년 만에 이 곳을 다시 왔구나!' 대학교 때 방송국 수련회로 변산 바다에 왔던 생각에 반가움이 앞섰다. 그때는 이십 대였고 지금은 사십 대이다. 감회가 새록새록 하였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늙고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가 멀어 평소에 보지 못하던 그토록 보고 싶던 친구들도 보고, 바다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하였다.
군산 터미널에서 용인행 시외 버스표를 끊었다. 후배와 아쉽게 작별하며 또 만날 것을 기약하였다. 후배는 내게 폰 이어폰을 사주고 지원에게는 비추는 불빛을 사주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지원이 그 불빛을 비추며 차 안 구석 구석을 비추던 생각이 난다. 마치 아쉬움을 토로하듯 말이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내 일상의 스트레스가 훌훌 바람 따라 떨어져 날아가는 듯 상쾌하였다. 이번 대학 방송국 모임이 자유로움을 추구하던 일탈의 조각은 될 수 있겠지만, 응어리진 마음이 다 풀릴 수는 없다. 또 다른 여행과 자유로움을 꿈꾸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삶에 만족을 할 때까지 우리는 삶의 표류를 할 것이다. 이런 삶도 기웃대고 저런 삶도 기웃대며... 단지 각자가 정해놓은 삶의 경계선은 있을 뿐이다. 그 선에 맞추어 오늘도 발버둥치며 스트레스와 처절히 싸운다.
첫댓글 신은희씨 따뜻한 글 카페에 올려줘서 고마워요
매일 제가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반갑네요
지금 코로나19 시기인데 잘 이겨 내시고 파이팅 합시다
수복씨 넘 고마워요. 글 가끔 올리지만 댓글 못 보아 반갑네요. 동백역서 함께배움 장애인야학 글쓰기수업 숙제가 글 수정하는 거예요. 이 문장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 등 조언이나 세심한 관심과 배려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