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난로
아침저녁 쌀쌀한 날씨에 겨울옷을 꺼내 입었지만 한 낮의 따스한 햇살에 겨울옷은 조금 이른 것 같다. 농촌의 시계는 더디게 간다고 누가 말했는지 나에게는 허튼소리 같다. 꽃피는 봄인가 했더니 금세 낙엽이지고, 일주일 전 농장을 둘러 싼 잡목들이 단풍으로 아름답더니 언제 잎들을 떨어뜨렸는지 옷을 벗은 가지들이 또 다른 그림을 그린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산도 아름답지만 낙엽이 쌓이고 인적이 끊어진 고요한 겨울산도 조용해서 좋다.
요즈음 깊어가는 가을과 초겨울의 두 계절이 공존하는 참 좋은 날씨다. 농막이 자리 잡은 야산의 언덕배기에 겨울 추위가 오기 전에 서둘러 화목火木난로를 올해도 농막 안에 들여 놓았다. 6평도 안 되는 좁은 방에 식탁과 이불장, 냉장고, 찬장이 있고 화목난로까지 자리 잡으니 좁은 방이 더 좁아 보인다.
이곳의 겨울은 산이라 그런지 평지보다 기온이 평균 1~2도 낮고 찬바람과 추위가 혹독하다. 수돗가 대야에 물이 얼면 봄이 올 때까지 잘 녹지 않는다.
겨울철은 농한기이지만 날씨가 좋으면 과수나무에 가지치기, 거름주기 등 할일이 있다. 주중에 한두 번 농막에 와서 방문을 열면 방안이 바깥보다 더 춥고 방바닥은 얼음장 같이 차가와 실내화를 신고 있다. 방바닥에 전기판넬이 깔려있지만 차가운 냉기와 외풍이 심하여 전기판넬은 있으나마나다. 궁리 끝에 좁은 방안에 조그만 화목난로를 설치 하고나니 뿌듯하고 흡족함이 온종일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나무는 지천으로 널려있어 땔감 걱정은 없다. 여름내 틈틈이 엔진 톱으로 나무를 켜고 도끼질하여 겨울양식 비축하는 다람쥐처럼 잘 건조되게 쌓아놓았다. 해를 거듭하다 보니 나름 숙련되어 나무의 결도 알고 힘의 요령도 알아 무리하지 않으면 할 만 하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줄기도 젖어 운동하는 맛도 난다.
난로에 불쏘시게 나무를 넣고 토치로 불을 붙이면 장작 몇 개비에 작은 농막 안은 금세 냉기는 사라지고 온기가 방안 가득해 진다. 불 냄새와 함께 웅크렸던 몸이 풀리고 두툼한 외투를 벗는다. 난로의 조그만 창으로 따닥따닥 번지는 불꽃에 매료되어 한 동안 넋을 놓고, 세상의 모든 것도 다 내려놓고 나만의 작은 멍을 누리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각양각색의 모양을 보면 때론 보잘 것 없는 인간 같지만,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이용하여 차가운 공간을 데우는 지혜가 있기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이렇게 스스로 몸을 보호하고 살아가는 것도 편리하게 살기위한 작은 몸부림이다.
난로에 불을 피우면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쉽게 섞이며 방안에 온기가 가득하다. 한 솥밥 먹고 같이 생활하면서도 평생 냉기류가 흐르는 가정이나, 같은 공간에서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자신의 소신은 없고 만나면 싸우는 한심한 사람들에게 난로를 하나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생긴다.
남자들은 나뿐만 아니라 불 피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불을 피우면 손자도 재미있게 갖고 놀던 장난감도 내팽개치고 조그만 나무 조각을 아궁이에 던지며 불장난을 재미있어 한다.
욕지도에 캠핑을 함께 갔던 절친 이형도 조그만 화목난로를 캠핑카에 싣고 다니며 퇴근 후엔 쉴만한 장소 찾아 불 멍을 하는 게 취미라고 했다. 기차모형의 장난감 같이 보이는 난로를 25만원이나 주고 구입했단다. 크기가 작고 나지막하여 땅에 엎드려 눈물 콧물 훌쩍이며 불씨를 살려 끝내 고구마를 구워주었다.
왜 불을 피우는가? 물음에 여름에는 모기를 쫒기 위한 모깃불로 피우고, 겨울에는 추워서 피우고, 봄과 여름은 가끔 고기도 굽지만 그냥 불 피우는 것이 좋아서란다.
난로에 불을 피우면 불 피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있는 나를 발견한다. 장작 타는 냄새와 새빨간 불꽃으로 피어나 자신을 태워서 나를 데워주고 재로 남아 허허롭다.
농장 마당의 장독 옆에 백 솥이 걸려있다. 여기서 가끔 친구들과 닭백숙이나 고기를 삶는 날이면 불을 피우는 것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가 한번 씩 아궁이 앞에 앉아 나무를 넣고 불을 지핀다. 불이 붙으면 가끔 소용돌이치는 연기가 맵지만 장작이타는 새빨간 불꽃 속으로 빠져든다.
그런데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나에게 이상한 징조가 있었다. 문제는 바깥 날씨가 따뜻하여 불을 피우지 않아도 되는 날씨지만 괜스레 아궁이를 청소하고 자연스럽게 불을 지핀다. 불을 피우려고 기다렸다는 듯이 일하던 손을 놓고 불을 피우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데 불을 피운다는 아내에게 핀잔을 한두 번 듣고 열정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불 피우기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로의 불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집착, 음식에 대한집착, 물건에 대한집착 등, 건전한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집착은 버려야 생활전선에 이상이 없다. 올해부터는 추운 날씨가 아니면 불을 피우는 것을 자재하여야 한다.
난로에 불을 피우면 화재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강원도 산불이나 외국의 산불을 보면서 여러 날 지속적으로 불타 막대한 산림피해와 인명피해에 항상 긴장하며 무시무시한 화재에 대비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화재예방 차원에서 난로의 연통도 일부러 길게 연결하였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날씨에는 바깥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난로에 장작이 불타고 있는 방안은 따뜻하고 아늑하다. 난로 위의 주전자에 물 끓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 난로 곁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 아내의 모습도 여유가 있다. 가끔 난로의 포켓에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한다. 즉석에서 먹는 군고구마는 맛도 있지만 구수한 냄새도 좋다. 가족들에게 이 달콤한 맛을 보여주기 위해 난로 앞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고구마를 구울 때가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나 방안에서 불을 피우니 한두 시간 마다 땔나무를 넣어야 하는데 이때 약간의 연기와 미세 먼지가 나와 하루가 지나면 먼지가 쌓여 식탁 위와 방안을 청소하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런 번거로움도 행복한 시간이다. 겨울동안 따뜻하게 방안을 데워주던 난로도 꽃피는 봄이 오면 방안에서 철거를 해야 한다. 한 계절 동안 춥지 않게 난로가 나에게 내준 따뜻함을 주었기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내년에는 붉게 산화된 연통을 버리고 새것으로 교체해야 될 것 같다.
사다리를 놓고 연통을 분해 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긴 연통을 혼자서 철거하기가 힘들지만 자칫 잘못하면 겨울동안 덕지덕지 쌓였던 검은 재가 쏟아져 버리면 바람에 춤을 추며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나무가 탄 재는 토양에 좋은 거름이 되지만 매번 불을 피울 때마다 재를 비워야하는 일은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난로에 불을 붙이고 방안이 따뜻해지면 귀찮은 것도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생각해보면 최근에 농장에서 한 일중에 제일 잘한 것은 150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와 물탱크에 연결하여 방안의 싱크대에서 편안하게 물을 사용하는 것이 첫 번째요, 두 번째는 겨울추위를 사냥하기 위해 방안에 화목난로를 설치한 것이라고 자화자찬하며 만족하였다.
첫댓글 겨울 준비하는 농장에서 화목난로 피우며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정말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카페지기님 감사합니다.
어릴때 아궁이와 연탄 불을 함께 사용해서 불때는것은 자신이 있지만
행복까지 느낄 수 있는 추억이 아닙니다.
지금은 불때는 아궁이도 보기 힘들고 주위에 나무는 흔하지만 장작으로
만들기도 어려워서 추억의 한 장면 같은데요.
번거러움보다 즐거움이 크면 행복일것입니다.
재를 치우고 불을 피울 때는 약간 번거롭지만
추운 겨울 날 몸을 녹여주고 활동하기가 좋아
난로가 꼭 필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