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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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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가 꾸미는 술 모노가다리
제 36편: 참이슬 vs 처음처럼: 불꽃 튀는 ‘소주 전쟁’은 계속된다!
퍼온 글
(신동아 2013년 2월호 )
http://shindonga.donga.com/3/all/13/111795/1
어떤 술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릴까. 디아지오나 페르노리카 같은 세계적 주류회사의 위스키나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의 전통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지난해 6월 주류전문지 ‘드링크스 인터내셔널(Drinks Inter-national)’의 통계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1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술은 진로소주로 한 해 동안 무려 6138만 상자가 팔렸다. 보드카 ‘스미노프’가 2470만 상자로 2위를 차지했고 롯데주류의 소주 ‘처음처럼’은 2390만 상자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과도한 음주가 빚은 ‘부끄러운 1등’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이미 소주는 세계 주당(酒黨)들에게 낯설지 않은 술이다.
진로, 43년째 소주시장 1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인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국내 시장에서도 부동의 강자다. 한국주류산업협회와 주류업계에 따르면 참이슬은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489만1000상자가 출고돼 전체 소주시장 점유율 50.5%를 기록했다. 2011년 2월 이후 19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50% 고지를 다시 밟은 것이다. 참이슬과 참이슬의 전신인 ‘진로(眞露)’가 국내 소주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지는 이미 오래다. 진로는 1970년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이래 43년째 한 차례도 정상을 내주지 않고 있다.
진로의 역사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眞泉)양조상회’에서 비롯했다. 진로라는 이름은 생산지와 제조공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생산지인 진지(眞池)의 ‘진(眞)’과 순곡(純穀)으로 소주를 증류할 때 술 방울이 이슬처럼 맺힌다는 데서 ‘로(露)’를 따왔다. 당시 진로는 알코올 도수가 무려 35도에 달하는 독주였다.
그 무렵만 해도 진로의 상표는 우리에게 친숙한 두꺼비가 아니라 원숭이였다. 서북지방에서는 원숭이가 복을 상징하는 영특한 동물로 통한 까닭에 이를 심벌로 썼다. 이 상표는 진로가 본사를 서울로 옮기며 전국으로 영업망을 확대하기 이전까지 쓰였다. 진로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는 부산에서 ‘금련(金蓮)’이라는 이름으로, 이듬해에는 ‘낙동강’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기도 했다.
진로가 두꺼비 상표를 사용하며 소주의 대명사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54년 6월 본사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새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두꺼비 진로는 30년간 탄탄히 다져온 우수한 품질과 기민한 영업 수완을 바탕으로 판매량을 늘려나가며 전국구 소주로 성장했다.
두꺼비, 소주의 대명사 되다
주류업계에서 진로가 선두주자로 떠오른 데는 선진적인 광고판촉 활동이 주효했다. 진로는 1959년 말 국내 최초의 CM송인 ‘진로파라다이스’를 선보였다.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국내 광고 분야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물론 소비자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라디오와 TV를 통해 선보인 이 CM송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군부대나 직장의 체육대회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다.
당초 증류주를 만들던 진로가 희석 방식으로 소주를 만든 것은 1965년부터다. 알코올 함량이 95% 이상인 주정에 물을 섞어 만든 소주는 싼 가격 덕분에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진로는 소주시장에서 전국의 여러 업체 중 하나일 뿐이었다. 1967년까지 국내 소주시장은 호남에 터 잡은 삼학이 주도했다.
진로가 삼학을 제친 결정적 계기는 ‘왕관 회수작전’이라는 이벤트 마케팅이었다. 소주를 판매하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왕관처럼 생긴 진로 소주의 병뚜껑을 모아오면 보상을 해준 것이다. 이는 전국의 식당, 술집 주인들을 진로의 자발적인 판촉사원으로 끌어들이며 큰 성공을 거뒀다.
일반 소비자 대상 이벤트도 함께 벌였다. 두꺼비가 안쪽에 그려진 병뚜껑을 가져온 소비자에게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물건이던 재봉틀과 금두꺼비 등의 상품을 걸고 경품행사를 연 것이다. 주당들은 진로소주 뚜껑에서 두꺼비를 찾는 보물찾기에 열광했다. 진로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시장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쓴맛이 강한 진로는 단맛이 특징이던 삼학소주를 제치고 국내 소주시장을 기세 좋게 집어삼켰다.
나이 지긋한 세대에게 소주가 몇 도짜리 술이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25도’다. 진로는 1965년 희석 소주를 내놓으며 알코올 도수를 30도로 낮춘 데 이어 1974년 이를 다시 25도로 낮췄다. 이때부터 오랫동안 ‘소주 알코올 도수는 25도’에 맞춰졌다. 초창기 소주보다 알코올 도수를 10도나 낮췄지만 소주는 여성이나 술을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쓰고 독해서’ 부담스러운 술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정치 민주화의 영향으로, 학교나 직장의 술자리 문화도 독한 소주를 강권하지 않는 쪽으로 차츰 바뀌어갔다.
이 같은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낸 소주가 바로 ‘참이슬’이다. 진로는 1998년 참이슬을 내놓으면서 알코올 도수를 23도로 낮췄다. 2004년에는 아예 약한 술을 원하는 이들 겨냥해 알코올 도수 21도인 ‘참이슬 후레쉬’를 선보였고 이후 알코올 도수를 19.5도까지 낮췄다. 참이슬도 그사이 알코올 도수를 20.1도로 2.9도 내렸다.
부드러운 소주 ‘참이슬’
참이슬은 소주의 이미지를 ‘부드럽고 깨끗하게’ 바꿔놓았다. 참이슬의 제조과정에 도입된 대나무 숯 여과공법은 ‘죽탄과 죽탄수를 이용한 주류의 제조방법’으로 기술특허를 취득하며 제조방법상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대나무 활성 숯은 숙취원인 물질을 없애고 잡냄새를 제거하는 데도 우수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한국산업식품공학회지 연구논문을 통해 입증됐다.
진로는 2006년 8월 천연 대나무 숯 정제공법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BCA공법과 메링(Marrying) 시스템을 도입했다. BCA공법은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도는 이른바 ‘와류 작용’을 이용해 물과 대나무 숯의 접촉 공간을 극대화해 대나무 숯에 함유된 칼륨이온 등 미네랄 성분이 소주 안에 효과적으로 녹아들도록 한 것이다.
또 대나무 숯 정제과정을 거쳐 제조한 소주의 모든 성분에 미세한 운동 작용을 지속적으로 가해 각각의 성분을 안정화, 균질화하는 메링 시스템은 참이슬이 첫맛부터 끝맛까지 깨끗하고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요인이다.
알칼리 환원수 대박 ‘처음처럼’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 굳건하게 지켜온 소주시장에서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은 혜성처럼 등장한 도전자다. 처음처럼은 소주 제조에 세계 최초로 알칼리 환원수를 사용해 기존 제품과 차별화를 시도한 제품으로 2006년 처음 발매됐을 때부터 주당들의 큰 성원을 받았다. 알칼리 환원수를 사용해 부드러운 맛을 내면서도 숙취를 줄여준다는 점을 강조한 처음처럼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전반을 휩쓴 참살이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
처음처럼이 등장하기 전까지 소주업체들은 물과 알코올, 첨가물로 구성된 소주에서 비중이 채 1%도 안 되는 첨가물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오랜 기간 기존 소주 맛에 길든 주당들에게 그다지 어필하지 못했다.
롯데주류가 처음처럼을 론칭하면서 소주 전체 성분에서 80%를 차지하는 물을 바꾸기로 한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롯데주류는 치열한 물 연구를 통해 약알칼리성일 때 물분자가 치밀한 육각수에 가까워진다는 점에 착안해 항산화 기능이 있는 알칼리 환원수를 소주 제조용수로 선택했다.
‘깨끗함에 건강까지 생각한 소주’를 표방한 처음처럼은 제조 용수로 미네랄이 풍부한 강원도 지역의 천연 암반수를 선택했다. 이를 알칼리 환원공법으로 분해해 물 입자가 작고 유해한 성분이 제거돼 활성수소가 풍부한 알칼리 환원수로 만들어 소주를 만드는 데 쓴 것이다. 알칼리 환원수는 물 입자가 작아서 알코올과도 잘 결합하는 까닭에 처음처럼은 깨끗하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러운 소주로 소비자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현재 두산중공업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한기선 사장은 처음처럼의 성공과 관련해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서울대 사범대 출신인 한 사장은 대우중공업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해 1992년 진로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진로 부사장과 진로발렌타인스 부사장을 거친 ‘진로맨’이다. 참이슬이 출시된 1998년에는 진로의 영업본부장으로 참이슬 돌풍을 일으킨 1등 공신이다. 한 사장은 2003년 오비맥주로 이직해 부사장을 맡았지만 1년 만에 대장암 2기 판정을 받고 회사를 그만뒀다. 힘겨운 항암 투병생활을 마치고 완쾌 판정을 받았을 때 한 사장에게 손을 내민 곳이 롯데주류의 전신인 두산주류BG다.
1억 원 장학금 기탁하고 얻은 이름
두산에서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만 해도 한 사장은 소주시장의 ‘철옹성’인 참이슬과 맞서긴 쉽지 않을 것 같아 한동안 승낙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랬던 그의 마음이 돌아선 것은 ‘암 투병과정에서 알게 된 알칼리수의 효능을 소주에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였다. 알칼리수로 암도 고쳤는데 이를 소주로 만들면 웰빙을 원하는 소비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출시 8개월 만에 두산주류BG의 소주시장 점유율은 2배 넘게 상승했고 처음처럼은 1억 병 넘게 팔려나갔다. 소주업계 순위 6위에 불과했던 두산이 처음처럼의 대히트로 진로에 대항할 유력한 도전자로 부상한 것이다.
제품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이름이 촌스럽다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처음처럼의 성공은 그런 점에서 성공적인 네이밍(이름 짓기)의 대표 사례로 꼽힐 만하다. 한 사장은 새 소주를 만든 뒤 한동안 이름을 짓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브랜드 네이밍 전문회사를 3곳이나 접촉했지만 마음에 드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
제품 출시 2주를 앞두고 한 사장은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 사장은 진로가 두산의 ‘산(山)’ 소주에 도전을 받고 있던 때에 진로라는 이름의 한자에 담긴 뜻을 푼 한글이름 ‘참이슬’을 찾아낸 인물이다. ‘처음처럼’은 손 사장이 한 사장에게 제안한 두 개의 이름 중 하나였다. 한 사장은 알칼리 환원수를 사용한 새 소주의 특징인 숙취해소 효과와 뜻이 닿는 처음처럼을 흔쾌히 선택했다.
하지만 처음처럼이라는 이름을 쓰는 데에는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있었다. 한 사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처음처럼이라는 이름과 독특한 글씨체의 원작자는 손 사장이 아니라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였다. 처음처럼이라는 이름과 자신의 글씨체를 소주 회사에 넘기는 것을 주저하는 신 교수를 설득하기 위해 두산은 성공회대에 1억 원의 장학금을 기탁하는 정성을 들였다.
처음처럼은 술집에서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한 정당의 대표가 처음처럼 소주가 출시된 이후 신 교수에게 ‘처음처럼’ 휘호를 부탁한 것이다. 신 교수의 휘호는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해당 정당의 당사에 걸렸고 그 모습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두산은 ‘공짜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소주업계에서는 최초로 미니어처 소주를 제작해 150만 명의 소비자에게 시음 기회를 제공하는 대대적인 판촉전도 벌였다.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은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한 20대와 30대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배종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