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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출발.
비가 그쳐 땅이 촉촉해 걷기 편함.
1시간 쯤 걸을 때 남녀 2명 추월
아버지와 딸인 듯.
추월하며 '올라 부엔까미노' 하자 쳐다보며 응답.
나를 보더니 어제 자기를 문열어 준 분이라며 아버지에게 소개하고, 고마웠다고 굽신 인사.
독일에서 왔다함
아침부터 기분 상쾌
또산또스는
무성한 풀로 덮인 언덕이 있는 오까 산의 굽이치는 풍경 안에 자리 잡은 조그만 마을입니다.
마을에는 커다란 떡갈나무가 많으며,
거대한 바위를 파내어 만든 신비롭고 아름다운 성당인 라 뻬냐 성모의 성당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매년 9월 8일 또산또스에서는 라 뻬냐 성모를 기리는 축제가 열립니다.
사라센인들에게 성모상을 지키기 위해 동굴 안 종 밑에 숨겨놓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오랫동안 그 흔적을 찾지 못하였다가 동굴이 성소가 되면서 발견되었습니다.
라 뻬냐 성모 소성당 (Ermita de Nuestra Senora de la Pena)
바위를 파서 만든 소박한 성당으로,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모상을 기리는 의식을 드립니다.
비얌비스띠아 Villambistia
에스삐노사 델 까미노는,
부르고스 지역의 전통 가옥과 대중적인 건축물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이곳은 전원풍 목조 건축물이 많으며 그 중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문장으로 장식된 것도 있습니다.
8월 15일에는 성 로께의 성모를 기리는 축제가 열립니다.
성모 승천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la Asuncion de Nuestra Senora)
건물 대부분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설화석고로 만든 현관과 처마장식에서 성 인달레시오를 표현한 12세기의 채색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9세기경에 만들어진 이 수도원은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를 1킬로미터 남겨둔 까미노위에 세워졌습니다.
모사라베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오래된 수도원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서고트 양식을 따른 발굽 모양의 아치와 소성당의 잔해입니다.
이 수도원은 부르고스 시를 세운 돈 디에고 로드리게스 뽀르셀로스가 영원히 잠든 곳이라고 합니다.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 크리스탈 같은 개울, 노루와 늑대의 은신처가 되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곳은 로마 시대에는 아우까로 불렸으며 주교가 살던 곳이었습니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와 부르고스의 중간인 이 마을에는 신비로운 전설과 많은 전통이 남아 있습니다.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에서 오까 산으로 가는 오르막길은
중세 때 순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곳이었습니다.
도둑과 강도, 불량배가 많았습니다.
납으로 만든 동전에 도금을 한 뒤 순진한 순례자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잔돈으로 바꿔달라고 하면서 가짜 돈을 주고 진짜 돈을 받는 사기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도둑질을 하고 싶으면 오까 산으로 가라.”
산띠아고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
18세기 후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필리핀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세례반이 있습니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산 안톤 아바드 알베르게(오른쪽 노란 2층 집)
오까산 언덕을 1시간 이상 오르는 까미노에서
부모와 기저귀 차는 아이 그리고 5살쯤 보이는 아이 등
4명이 자전거 순례하는 것 목격.
아버지는 앞에서 자전거에 리어카 형식의 네모난 요람(앞면만 트임)을 매달고
힘들게 언덕길을 페달을 밟으며 오르고,
엄마는 모든 짐을 자전거 양쪽에 매달고 뒤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음.
뒤에서 밀어주자 고마움 표시.
까미노는 사랑이 넘치는 길.
남편이 앞서 가다가 부인이 뒤쳐지면 멈춰 서서
부인에게 달려가 자전거를 같이 끌고 오는 모습이
너무 다정하고 사랑스러워 보였음
아빠 뒤에 앉은 2명의 아이는 털털거리는 자갈길에서도
아빠와 말을 주고 받고 아이들도 서로 깔깔대는 모습이 너무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음.
아빠 엄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행복한 듯
쉼터에 이르자 아빠는 아이와 함께 기원하는 글을 써 놓고,
엄마는 옆에서 모유수유를 하면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미소로 응답.
후에 기저귀도 갈아줌.
그 가족을 보면서 정말 사랑이 넘치는 가정공동체를 봄
인터넷에서 보았던 다음 글이 생각남
가장 평화로운 그림
평화를 가장 잘 묘사한 그림을 선정하는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화가가 평화를 묘사했습니다.
그중 고요함과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그린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 풍경에는 투명한 호수,
부드럽게 흐르는 시내,
소와 양 떼들이 풀을 뜯는 풍요로운 목장의 푸른 들판,
나뭇가지 위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있는 무성한 나무,
그늘진 나뭇가지 아래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그려져 있었으며,
부드럽게 흘러가는 흰 구름은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가며 산허리에 그림자를 수놓고 있었습니다.
평화의 일반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상의 영광은 다른 화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은 기존 화가들이 묘사한 평화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림 한가운데 바다를 배경으로 바위 하나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 바위를 중심으로 거친 폭풍우가 몰아치고,
파도는 소용돌이를 만들며 성이 나 있습니다.
거칠게 성이 난 파도에 곤경에 처한 배 한 척도 보입니다.
하늘은 짙은 먹구름은 폭풍을 더 사납게 보이게 합니다.
그런데 바다의 중심에 있는 바위 꼭대기 조그만 틈새에
비둘기 한 마리가 조용히 둥지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비둘기 품에 새끼 비둘기들이
무슨 일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평온하게 어미 날개에 덮여 있습니다.
아빠 뒤에 매달려 자갈길을 가면서도 즐거운 표정의 아이들이 그런 모습은 아닐까요
스페인 내전시 전사한 사람을 기리는 카이도스 기념비
산 후안 데 오르떼가(산토 도밍고의 제자)는,
12세기부터 17세기를 거치면서 교황과 주교, 왕과 귀족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까미노 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도시입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스페인의 외딴 마을은 안전하고 쾌적하며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했고,
순례자들은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는 오래된 삼림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로 로마 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 등의 우아한 건물이 있으며, ‘빛의 기적’ 처럼 지금도 눈으로 경험 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이 곳은 산세가 험해 순례자들이 넘어올 때 도적떼, 짐승의 공격, 험한 기후등으로 제자들과 함께 순찰을 돌고
아픈 순례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성인이 돌아가신 후에도 제자들이 순례자 보호활동을 계속했고
1차 대전 후까지도 본당에서 마늘 스프를 순례자들에게 제공하고 전쟁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합니다
빛의 기적
춘분(3월 21일)과 추분(9월 21일)은 선과 악의 상징이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입니다.
이 날이 되면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는 단순한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신기한 현상이 성당의 주두에 일어납니다.
오후가 되면서 약 10분 정도 햇빛이 성당 주두의 부조를 비춥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라고 성모에게 나타난 대천사의 부조부터 시작하여
예수의 탄생, 예수를 경배한 동방박사, 목동들에게 예수가 태어났다고 알려주는 장면을 차례로 비춥니다.
첫 번째 부조에서는 성모는 천사가 아니라 주두를 비추는 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빛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자연현상이자 잊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경험인 이 현상을 ‘빛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수도원 (Monasterio de San Juan de Ortega)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복잡하게 장식된 주두가 눈에 띄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인정되는 고딕 양식의 천개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조각된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성인의 석관이 있습니다.
산 니꼴라스 소성당 (Capilla de San Nicolas)
오래된 마을 아헤스는,
중세 시대 기독교 왕국의 패권을 뒤흔든 중요한 배경입니다.
또한 전원 속의 마을이라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까미노를 순례하며 사진을 찍은 순례자라면 이 그림 같은 풍경의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입니다.
죽은 왕의 경계석
아헤스와 아따뿌에르까 사이에 펼쳐진 평원에 2미터 높이의 거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평원은 중세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의 군대와
그의 형제 페르난도 데 까스띠야의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입니다.
이 전투로 가르시아 왕이 사망하고 나바라의 군대는 패배하게 되어
결국 이베리아 반도에서 나바라 왕국의 왕위 다툼이 끝나버렸습니다.
이 거석은 ‘죽은 왕의 경계석’이라고 불리며,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1054년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 여기서 죽다.”
내가 묵었던 알베르게
왼쪽 문으로 올라가면 숙소, 오른 쪽 문은 레스토랑
다음 날 새벽 왼쪽 문을 열지 못할 때, 앞으로 질긴 인연을 맺을 스페인 순례자가 열어줌
음악과 춤 정열적인 스페인
까미노길 외진 곳인데 힘든 오르막. 어디선가 들리는 기타소리
갑자기 힘이 나며 발걸음을 옮기면 그곳에는 그늘에서 기타를 치는 사람 발견됨
작은 소품이나 음료를 팔기도 하지만 봉사로 하는 경우도 있음
숙소 주변에서 저녁에 경쾌한 아코디언 기타 등의 앙상블로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면
침대에서도 몸이 들썩거려지며 하루의 피로가 풀림
결혼예식 마치고 성당 광장에 하객들이 무도복을 입고 모여와서 서로 키스하고,
말 탄 신랑 신부가 오자 오색 폭죽을 터트리며 즐김.
꽃가루와 오색종이를 마당에 남겨두고 모두 사라짐.
누가 청소를 하는지?
투우와 플라멩고는 못 봤지만 스페인은 정열적인 나라가 확실
스페인 식사는 하루 다섯 끼
아침(데사유노)은 간단한 빵과 커피,
오전 11시 전후 알무에르소는 보카디요 또르띠야 등 간단한 메뉴,
푸짐하게 먹는 점심은 꼬미다,
일과가 끝난 시간에 간단하게 타파스 류와 술을 곁들이기도 하는 메리엔다,
9시 이후 저녁식사인 세나로 간단히 타파스와 술을 마신다.
알베르게에서도 6시까지는 침대에 뒹굴다 밖에 나가 9시 이후 들어와 취침
오늘 저녁식사는 스파게티로
조그만 마을(아헤스)에 숙소가 5개나 됨.
옆 숙소에 스파게티가 맛있고 한국적으로 맵다고 강추 문구 발견.
물론 한국인이 남김.
주인이 주문 시, 매운 맛 4등급 중 어느 것 하겠냐고 물어 제일 낮은 것으로 했는데 입맛에 맞았음
또산또스 - 까르데뉴엘라 리오삐꼬 | 산티아고의 바람
♬ 배경음악: De Colores(데 꼴로레스) - Nana mouskouri ♬
첫댓글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값진 추억이란
얼마나 아름다우시겠어요
그런데
바다의 중심에 있는 바위 꼭대기 조그만 틈새에 비둘기 한 마리가 조용히 둥지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비둘기 품에 새끼 비둘기들이 무슨 일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평온하게 어미 날개에 덮여 있습니다.
아빠 뒤에 매달려 자갈길을 가면서도 즐거운 표정의 아이들이 그런 모습은 아닐까요
사진도 해설도,음악도 너무 좋았고..
배웠습니다."올라 부엔 까미노"('함께 갈까요'라는 의미네요)
감사합니다.
힘이 되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