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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 :6-11)
(6)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7)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 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요즘 어느 형제의 소개로 카톡 단톡 대화 방에서 말씀을 살펴(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대부분 지방교회에서 생활하다가 나오신 분들이라 말씀을 나눔에 있어서 지방 교회의 영(사상)을 버리지 못하신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쓰게됩니다.
장로교는 칼빈의 사상(교훈)을, 감리교는 웨슬레의 사상(교훈)을,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 또는 위트니스 리 의 사상(교훈)을 배우고 따르는 교파(당)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지방교회에서 왜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만나보지 못한 관계로 물어 보거나 설명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교훈)의 오류를 발견 해서일까요?
아니면 교회의 실행에 문제가 있어 서일까요?
하지만 교파 교회에서 탈출하였을지라도 갈 교회가 업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교회가 교파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부루하고 그 분들은 왜 나왔을까요?
(마 24 :15- 20)
(15)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16)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17)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이 말씀은 제가 감리교회라는 교파 교회를 다닌지 35년쯤 되어 그리스도(성령)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거룩한 곳은 어디일까요?
멸망의 가증한 것은 사람의 교훈의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성령)께서 이 말씀을 주셨을 때에는 제가 다니는 교회 한 교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이 가르침이 있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 23:8-15)
(8)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없음)
(15)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말씀이 이러할진대 랍비(선생)가 되어 가르치거나 지도자가 되어 다스리거나 신부(영의 아버지)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만 가르칠 권이 있다고까지 한다면 얼마나 잘 못된 것입니까?
이렇게 하는 자들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또한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여러분은 고전11:3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슨 말씀일까요?
머리라고 번역한 헬라어 켑할레(kefalhv)는 주인, 남편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주인이라는 의미는 여러분이 쉽게 이해하리라 믿지만 오늘 살펴볼 부분은 남편입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도……
남자와 여자는 육체의 성별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성별은 비유일 뿐입니다
남자는 씨(정자)가 있는 자로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자는 씨(정자)가 없는 사람으로 말씀을 배우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사람이 말씀을 가르치면 그는 남자이고 말씀을 배우면 여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편은 무엇일까요?
이번에는 남편과 아내를 살펴봅니다.
만일 남자가 여자에게 말씀을 가르친다면 가르치는 남자는 말씀을 배우는 여자의 남편이 되고 말씀을 배우는 여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가르치거나 배움에 있어서의 질서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말에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성경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로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라는 말씀을 해석해 봅니다.
남자의 머리(주인, 남편)는 그리스도요 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리스도에게 말씀을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여자의 머리(주인,남편)는 남자요 라는 말은 여자는 남자에게 말씀을 배워야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남자가 배우는 여자의 주인이며 남편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남자는 여자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너희는 랍비(선생)라 칭(부르게)함을 받지 말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계 21:1-2)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1-2을 보면 우리의 최종 목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이 어떻다고요?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아내)로 단장된 사람(모임)입니다.
그런데 요한 계시록21장과 22장의 새 예루살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계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계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21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시기 때문에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없어진 것이고 22장에서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시기 때문에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해나 달이 비취고 있거나 등불과 햇빛이 비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육체의 성별은 남자이거나 여자이지만 여의 성별은 말씀을 가르치면 남자이고 배우면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궁극 적인 목표는 어린양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도 그리스도에게 배워야 하고 여자도 한 남편인 어린양(그리스도)에게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몽학 선생으로 초등학문을 잠시 사람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남편으로서 가르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요 1:19-23)
(19)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세례 요한은 주(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또 한 사람을 봅니다.
(고후 11:1-2)
(1)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사도 바울이 우리를 한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중매하지 않고 자기 아내 삼는다면 어떨까요?
만일 세례 요한이, 그리고 사도 바울이 머리(켑할레(kefalhv)가 된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제 처음의 질문을 다시 드립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셨습니까?
목사와 신부, 그리고 형제라 할지라도 여자를 혹은 남자를 가르친다면 자기 아내 삼는 것이고 멸망이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입니다.
멸망이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도, 더 나아가 그곳에서 나와서 그들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주(그리스도)의 일을 한다고 한다면……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 3:28-30)
(28)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예수님의 제자 대부분이 세례 요한의 제자 이었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새 예루살렘이 어린양(그리스도)를 위하여 단장한 신부라면 남자이든 여자이든 말씀을 배워야 하는 대상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나가게 하거나 그리스도에게 말씀을 배우게 해야 하는 사람이 남편이 되어 가르치고 있다면?
만일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본고 산으로 도망한 것이 아니라 여자를 가르치려고 한 것이라면?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샬롬~

첫댓글 샬롬~
글을 전체적으로 수정 하였습니다.
읽으신 분들도 다시 읽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