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타자들 / 이졸데 카림
1장. 과거- 동질 사회라는 환상
* 일시: 2024년 10월 23일(수) 오후 8시.
* 형식: zoom 온라인
* 강사: 정혁현
* 참석자: 박성호, 박연옥, 서선미, 서은혜, 안태형, 정단희, 정명수, 염야사르, 김선아 (9명)
1장. 과거- 동질 사회라는 환상
다원화 이전의 서유럽 사회는 인종, 종교, 문화적 통일성을 비교적 이룬 동질 사회다. 동질 사회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다. 정치 개입, 폭력과 억압을 동반하여 민족을 형성했다. 이미 존재하던 다양성을 거슬러 성취했던 것이다. 동질 사회는 물질적 동질화(ex기차시간표)뿐 아니라 정서적 일치도 필요하며 핵심 개념은 영토다. 국경, 풍경, 도시, 강 같은 공간에 감정이 자리 잡았고 공간과 감정의 재결합을 통해 성취된 민족이라는 상상은 구체적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ex일기예보).
동질 사회라는 상상은 언제나 허구였지만 잘 기능하는 허구였다. 사람들은 민족을 실재라고 믿었다. 민족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대중을 결합하고 통일하는 유일한 정치 형태이며 이 상상된 공동체는 민족 구성원이 서로 잘 알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살기에 잘 작동한다. 상상된 공동체가 가능한 이유는 1언어, 시간, 공간을 동질화 한 물질적 동질화, 2 공간과 상징을 감정적으로 차지하는 정서적 동질화, 3 민족적 유형인 (대중) 문화적 동질화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동시에 일어난 사회 운동이 있는데 민주화와 민족 형성이다. 이 두 과정은 완전히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민주화된 민족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시민이자 국민인데 시민은 사인이고 개인이며 여성이며 남성이며 농부고 노동자다. 국민인 우리는 공인이고 동등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이자 유권자인 정치 주체 “보편적 개인”을 생성하고 법적 주체로서의 법인을 생성한다. 민주주의는 곧 사회의 개인화를 의미한다.
오늘날 개인주의는 오래된 개인주의와 다르며 이 차이는 중요하다. 개별 사인인 개인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구별되나 공인인 개인은 구별되는 특성들을 추상화함으로써 동등해진다. 일인일투표라는 산술 상의 동등함이 추상적 평등이다(클로드 르포르, 정치적 원자).
이 추상화의 보충물이 민족이다. 민족은 민주주의적 추상의 정확히 반대다. 민족은 주체에게 구체적이고 특수한 형상을 제공하는데 이는 민족의 형상, 또는 민족 유형이다. 민족 유형은 공인의 특징을 묘사하고 규정한다. 이 형상이 같은 민족 구성원을 모두 안다고 믿게 한다.
지배 서사로서의 민족은 개인의 정체성에 훨씬 더 폭넓게 개입했다. 모든 개인에게 탁월한 규정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민족은 남녀노소, 노동자, 예술가 등 모든 삶의 요소와 규정 등을 통일된 하나의 전체로 통합하는 핵심 정체성이 된다(ex한국 남자, 프랑스 여자…).
개별 시민들의 구체적 차이들이 민족 유형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이들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한 사회의 동질화는 단일화가 아니라 차이가 부차화되는 것이다. 상상된 공동체는 공통된 형상 속에서 민족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유사성의 사회다. 이런 의미에서 민족은 근대라는 조건 아래에서 공동체를 사회 속에 편입시키려는 시도였다. 동질 사회는 공적 정체성과 소속을 제공하며 자기 집=국가라는 환상이 추가된다. 자기 집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환경이다. 환경은 질문할 필요 없고 적응할 필요가 없이 직접 소속된 당연한 것이다.
동질 사회는 지난 20~30년 동안 천천히 사라졌다. 환경은 침식되고 경계가 약해지고 있다. 최근 브렉시트처럼 민족이 재등장하는 것은 모순되게도 민족의 침식을 가리키는 증거다. 민족은 외부의 국경에서 내부의 경계로 변화했다. 우리 모두를 포괄할 수 없고, 절반의 우리만을 형성한다. 민족이 더 이상 단 하나의 환경이나 유형으로 조직되지 않는다는 이 변화는 민족과 민주주의가 서로 떨어져 표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외관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