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대상 / 김종천 편
1. 아! 우리 아버지
벌뫼 / 김종천
구릿빛 얼굴에 생전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우리 아버지
꼴찌에서 둘째로 표시되어있는 성적표를 봐도 무표정했던
우리 아버지
길산장 한산장 장날마다 주전부리를 사다 주고도
먹어보라고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던
우리 아버지
20리 길 걸어서 강 건너 군산으로 유학 보내주고
장리빚 얻어서 자전거 사주던
우리 아버지
장죽 끝에 달려있는 곰방대와의 호흡으로
볼우물에 움푹 파인 주름 밖에 생각나지 않는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벙어리가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가 되었어도 우리 아버지는 될 수 없나 보다
아! 우리 아버지
2. 배려
벌 뫼 / 김종천
우중충한 표정에 드리워진 침묵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가
함께 갈 수 없으면 혼자 가면 될 일을
속 깊은 울음에
내 가슴이 타는 이유를 모르겠다
혈류를 타고 오는 통증의 원인은 차치하고
시공을 타고 오는 전류 같은 사랑때문이라면
함께 하면 될 것을
같이 아플 수 없으면
나 혼자 아파줄게
제발 침묵만은 거두어다오.
3. 부엉이 사랑
벌뫼 / 김종천
진한 어둠 속
허공에서 울리는 부엉이의 울음소리
우는 걸까 노래하는 걸까.
밝은 빛을 뒤로하고 참았던 사랑 노래
밤만 되면
목놓아 부른다
청공에 드러난 통성기도
응답이 없어도 사랑은 사랑이다
4. 어머니의 반지
벌 뫼 / 김종천
사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하여
어머니 묘의 이장을 뒤로 미룬
불효
조심스레 유골을 추스르다 만난 금반지
왈칵 치미는 분노
세상이 노랗다
살아생전 해준 것 하나 없다
한 줌의 흙 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저 반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전신을 난타하는 신음
어머니!
이놈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재롱떠는 손주들 앞에서 눈을 뜰 수가 없다
속죄조차 더 큰 죄 다
5. 국어선생 40년의 추억
벌뫼 / 김종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헤아린다
구개음화 말음법칙 된소리 헛소리
측간과 측간을 모르고 지난 40년 세월
왜 나는 국어선생이 되어 있었나.
교과서가 바뀌고 정권이 뒤바뀌어도
바뀌어져서는 안 될 역사도 바뀌고
가끔씩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사람도 있다
새치가 흰머리가 되고
털 다 빠진 대머리가 되어가도
교단 위에 서 있는 국어선생
김종천은 당당하고 위대했다.
누군들 세월 앞에 경건하지 않은 자 있으랴
주마등처럼 흘러간 일순
기억의 주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영욕
스승의 날이면
수업시간 시귀(詩句) 한 구절에 눈이 퉁퉁 부어오르던
제자는 아기가 셋이 된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찍은 동영상을 보내온다
사는 일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시간들은 나를 살게 한다.
충남 서천산
서천고등학교. 건국대학교
고려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
천안장로교회 장로
고등학교 국어교사 40년
[등단 심사평]
"인문학의 정상에서 만난 진정한 휴머니스트"
인문학의 꽃은 문학이다. 문학의 정수는 시(詩)라고 역설한다. 우리는 한 권의 책을 통하여 뜨거운 감동의 블랙홀에 빠진다. 한 문장의 글이 누군가의 여정에서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한 줄의 시귀(詩句)에 운명의 지침을 돌리기도 한다. 문인의 자음과 모음의 조탁이 가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김종천 시인의 글을 5편 접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시인 등단 작품이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작품은 이미 기성문인의 수준을 능가했다. 하여 등단 심사평을 쓰면서 시인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무엇보다 작품 속에 녹아있는 시인의 인성을 통하여 사람 냄새가 풍기는 사람다운 사람을 만난 기쁨이 크다. 언어는 인격이요 언어는 품격이다. 우리는 입으로 뱉어내는 말과 문자로 기록한 글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을 여실히 나타내며 살고 있다.
김종천 시인의 이력을 듣고 무릎을 치면서 격하게 환호했다. 40여 년 간 국어교사로 재직했으며 80개에 가까운 나이테를 가진 아름드리나무와 같은 경륜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다. 시인의 시속에 녹아있는 것은 시인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종천 시인이 등단을 목전에 두고 80에 가까운 나이에 등단한다는 것에 망설임이 컸다고 전해 들었다. 염려마시라.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소포클래스가 오이디푸스를 쓴 것은 80세였고, 괴테는 파우스트를 80세가 넘어서 완성했다. 미켈렌젤로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70세에 완성하였고 불후의 명곡을 남긴 음악의 거장 하이든과 헨델이 있다. 김종천 시인은 이미 시인의 반열에 오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장담한다.
1. 아! 우리 아버지
구릿빛 얼굴에 생전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우리 아버지
꼴찌에서 둘째로 표시되어있는 성적표를 봐도 무표정했던
우리 아버지
// 중략 //
나는 아버지가 되었어도 우리 아버지는 될 수 없나 보다
아! 우리 아버지
시인은 아버지를 추억한다. 구릿빛 얼굴에 웃음기 없었던 아버지, 꼴찌에서 둘째로 표시된 성적표를 보고도 무표정했던 아버지. 시인은 아버지의 아버지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어 실토한다. “나는 아버지가 되었어도 우리 아버지는 될 수 없나 보다 아! 아버지” 어쩌면 시인의 아버지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소처럼 일하느라 살갗은 햇볕에 까맣게 타고 고단한 일상이 큰소리로 웃을 기쁨을 삼키고 허탈한 슬픔조차 느낄 겨를 없이 천수답에 청춘을 저당 잡힌 우리네 아버지. 주렁주렁 매달리는 자식을 어여쁘다 여기는 것보다 그 자식들 배고파할까 벌벌 떨었던 아버지. 시인은 그 아버지가 될 수 없음을 탄식하는 것이다.
2. 배려
우중충한 표정에 드리워진 침묵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가
함께 갈 수 없으면 혼자 가면 될 일을
속 깊은 울음에
내 가슴이 타는 이유를 모르겠다
혈류를 타고 오는 통증의 원인은 차치하고
시공을 타고 오는 전류 같은 사랑 때문이라면
함께 하면 될 것을
같이 아플 수 없으면
나 혼자 아파줄게
제발 침묵만은 거두어다오. //전문
시인은 시 <배려>에 깊은 철학을 담고 있는 듯하다. 우중충한 표정에 드리워진 침묵의 무게 전해진다. 함께 갈 수 없는 길을 혼자 가면 될 일이라고 하면서 내면으로 울고 있다. 혈류를 타고 오는 통증이 시공을 타고 오는 전류 같은 사랑 때문이란다. 시인은 같이 아플 수 없다면 혼자 아파줄 테니 침묵만은 거두어 달라고 애원한다. 시인에게 침묵은 결코 금이 될 수 없다.
3. 부엉이 사랑
진한 어둠 속
허공에서 울리는 부엉이의 울음소리
우는 걸까 노래하는 걸까.
밝은 빛을 뒤로하고 참았던 사랑 노래
밤만 되면
목놓아 부른다
청공에 드러난 통성기도
응답이 없어도 사랑은 사랑이다 // 전문
유명한 시인이 제자들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어보라. 저 새는 지금 울고 있을까? 아니면 노래하고 있을까?” 한 제자가 “교수님, 저는 저 새가 울고 있는 것 같이 들립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제자는 “교수님, 저는 저 새소리가 노랫소리 같이 경쾌하게 들립니다.”라고 말했다. 제자들의 답변을 들은 후 시인은 “새소리를 울음소리로 듣는 사람은 지금 울고 싶도록 슬픈 상황일 겁니다. 저 새소리를 노랫소리로 듣는다면 그 사람은 기쁜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뀐다면 정 반대로 들릴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김종천 시인은 부엉이 울음소리를 슬픈 감정에 묶어두지 않고 밝은 빛을 뒤로하고 참았던 사랑노래로 격상시킨다. 오호라! 이것이 詩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4. 어머니의 반지
사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하여
어머니 묘의 이장을 뒤로 미룬
불효
조심스레 유골을 추스르다 만난 금반지
왈칵 치미는 분노
세상이 노랗다
살아생전 해준 것 하나 없다
한 줌의 흙 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저 반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전신을 난타하는 신음
어머니!
이놈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재롱떠는 손주들 앞에서 눈을 뜰 수가 없다
속죄조차 더 큰 죄다 // 전문
시인은 어머니의 산소를 이장하면서 시 <어머니의 반지>를 쓴다. 어머니의 유골 속에 있었던 금반지. 어머니 살아생전 효를 다하지 못한 시인을 노려보고 있는 반지. 어찌 반지가 노려보았을까마는 불효자라고 자책하며 왈칵 치미는 분노는 세상도 노랗게 보인다. 시인은 스스로 존재를 묻는다. 시인은 어머니께 못다 한 효도를 한탄하며 재롱떠는 손주들 앞에서 눈을 뜰 수 없다고 참회하고 있다. 5월, 어버이날이 있는 계절에 심사평을 쓰면서 시인의 참회 앞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문학은 공유다. 한 편의 시에 담은 시인의 경험을 공유하고 감동을 공유함으로써 작자와 독자는 울고 웃는다. 시인의 강한 필력을 감지한다.
5. 국어선생 40년의 추억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헤아린다
구개음화 말음법칙 된소리 헛소리
측간과 측간을 모르고 지난 40년 세월
왜 나는 국어선생이 되어 있었나.
// 중략 //
새치가 흰머리가 되고
털 다 빠진 대머리가 되어가도
교단 위에 서 있는 국어선생
김종천은 당당하고 위대했다.
// 중략//
시인은 <국어선생 40년의 추억>에서 국어선생으로 살아왔던 삶을 회고한다. 심사위원은 “김종천은 당당하고 위대했다.”는 문장에 방점을 찍는다. 서두에 했던 말을 반복한다. 누군가는 한 줄의 시귀(詩句)에 인생의 지침을 돌린다고 했다. 시인 김종천은 자신의 시귀(詩句)에 운명의 지침을 돌리기를 바란다.
시인이 엄처시하(嚴妻侍下) 운운했던 것이 기억난다. 5편의 시를 심사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전율하는 시인을 본다. 어머니께 불효한 죄를 참회하며 절규하는가 하면 대신 아파줄 테니 침묵만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시인을 보고 부엉이의 소리가 목놓아 부르는 사랑노래라고 시인을 본다. 40년 교단에서 국어선생으로 지낸 자신이 당당하고 위대하고 가까스로 용기를 내고 있다. 시인의 여리디 여린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시인을 평생 내조하기 위하여 아내가 엄처를 자처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그 아내의 빛나는 내조가 기치를 발하여 결국 시인에게 당당하고 위대하다고 외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을지 모른다고 결론짓는다.
김종천 시인의 작품은 이미 반열의 경지에 다다른 수준 높은 작품임을 거듭 역설한다. 5편의 작품 중에서 1. 아, 아버지, 4. 어머니의 반지, 5, 국어선생 40녀의 추억 등 3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시인 김종천, 위대한 승리자다. 노년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작가와 예술가들처럼 우리 국문학사에 굵은 발자국을 남기는 문인이 되기를 바란다. 진정한 휴머니스트를 만나서 흡족하다. 박수갈채를 보낸다. -끝-
[등단 소감]
벌뫼 / 김종천
80줄을 내다보며 솔로몬 왕의 절규를 생각해 본다. 삶이 모두 헛되고 헛된 것 투성이일까. 교회의 한쪽에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의 통성기도가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 천착해 본일이 있던가. 하느님은 왜 들어줄 기도만 들어주실까를 생각하며 통성기도가 통곡의 기도가 되었던 기억을 반추해 본다.
40여 년 동안 교단에서 국어교사로서 우리말 교육에 전심전력을 하다가 정년을 맞이하였지만 이룬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연금의 노예로 전락이 되었다. 그나마 엄처시하에서 용돈 한 푼 넉넉하게 쥐어본 기억도 희미하다. 어려운 시절 보릿고개의 기억이 고개를 들 때마다 상대적 풍요를 누려야 한다는 죄의식도 한몫한다.
자식도 마누라도 손자 손주도 자기 몫을 하고 산다. 노후문제도 걱정거리가 없지만 왠지 메울 수 없는 공허감의 엄습은 세월이 주는 천형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과 이별? 문학과 서정? 우정과 신의? 부분 처방일 뿐 처방의 정수는 아니었다.
진한 우정은 아니더라도 귀한 우정이 많았다. 그는 학교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잘 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목요 문학방을 개강하여 매주 목요일이면 문학강의를 하고 있었고 고교시절의 우정에 심지를 돋우게 하였다. 내가 교단에서 詩를 강의하고 문학을 이야기하며 학생들을 심취하게 하였던 그 모습이 그에게 있었다.
“벌뫼 선생! 천안 시내를 가로지르는 원성천변에 벚꽃이 만개하면 천안시민 100만 명이 꽃구경을 온다네. 우리 문학회 주관으로 상춘 詩畵展을 한다네. 자네도 한번 생각해 보시게나.” 친구에게서 출품을 권장받았다. 내 유년의 기억을 동원하여 "첫사랑"이라는 시제로 걸개그림을 만들어 벚꽃밭에 걸어 보았다. 몸담아 있던 교회 식구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처음에는 립서비스쯤으로 여겼다. “장로님 대단하시네요.” 표정들이 진지하였다. 그래. 성경을 필사하는 시간을 줄여 다시 공부를 시작해 보자. 약간의 무리가 따르기는 해도 늦깎이 문학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학생시절 공부는 잘했지만 짓궂기만 했던 친구의 열정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벌뫼 선생! 어때. 신인 문학 대상을 받으면 기성시인으로 문단 데뷔를 하게 되는 코스가 있다네. 한번 해보시게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장수의 비결 그 첫째가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된다는 이야기에 실감했다.
내 나이에 등단은 무슨? 그래도 싫지 않은 권유였다. 컴퓨터 문자판이 아닌 육필 원고를 제출하였고 심사위원들은 모두 손뼉을 쳐 주었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나를 진정 사랑해 주셨을까? 아이큐 두 자릿수를 헤어나지 못하는 나를 구박했던 어머니 보다 따뜻한 구들장 같았던 아버지를 생각했다. 이장을 위해 어머니 무덤을 파 헤집었을 때 유골은 남은 거 하나 없이 금가락지 하나 남아있음에 복받쳐 올랐던 불효의 극치를 생각했다. 밤만 대면 청승맞게 울어대던 부엉이 울음소리를 생각했다. 어머니의 구박에 장애인처럼 살아야 했던 청소년 시절을 생각했다.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에 통학용 새 자전거를 사주었던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40여 년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교단을 지켰던 40여 성상을 생각했다.
아하! 문학이란 추억을 소환하고 추억 속의 애환을 빌미로 혹은 남의 삶을 빌어 내 삶과 비교하면서 정과 한을 승화시키는 것이구나. 어문학의 문법, 맞춤법과 철자의 수정이 얼마나 쓸데없는 진학용 수업이었나를 뼈저리게 절감하게 된 셈이다. 남은 생애 나를 지키는 일, 내 품격을 지켜 내는 일이 문학이다. 자식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물려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별로 달가워하지도 않는데 먹는 것 입는 것에 인색한 마누라에게도 일침을 주어야겠다.
덕향문학회의 회원 여러분, 지도교수 최기복 시인, 나를 지탱하게 해 준 마누라와 자식들 손주들아, 80 나이에도 나는 당당하고 건재하다. 지켜 주어서 고맙다.
교회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
부끄럽기는 해도 이제부터 시인으로 행세하렵니다.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