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19-26 (희망의 불꽃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이유)
성경본문 예레미야애가 3: 19-26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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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오정호 목사
2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과 선박이 충돌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잠수함은 심해(深海)로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많은 구조대원들이 그 소식을 듣고 바다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구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구조대원이 잠수함에 접근했을 때 잠수함안에서 선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모르스 부호로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소리를 해석해보니 ‘잠수함 속에 갇힌 우리 승무원들에게 희망이 있습니까?’였습니다. 희망을 찾는 소리였습니다.
우리에게 과연 희망이 있습니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 문을 두드리면 그들의 삶에 희망의 불꽃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겠는가 질문합니다. ‘당신들 정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에게도 그 희망의 떡을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 우리 교우들이 그 희망에 대해서 묻는 말들을 가슴에 담기를 바랍니다.
절망적인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애1:1절)
여기의 성은 환란을 당하고 멸망을 당한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많은 나라들에게 존중 받은 나라가 이제는 열방의 수치와 모욕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결과 예레미야 선지자는 ‘슬프다’란 말로 그의 마음을 토로합니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애1:2절)
위로 받고자 해도 위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위로할 사람이 사라진 것입니다. 지난날 친구처럼 지내던 자들이 오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시던 예루살렘이 열방에 손가락질 받는 처지로 전락을 했습니다.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륙을 당하오리이까 노유는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나이다 주께서 진노하신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살육하셨나이다”(2:20,21절)
바벨론 느부갓네살왕과 그 대적들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되고 보니 그 비참함이 입에 올릴 수 조차 없는 그런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3:18) 소망이 끊어진 것을 절망(絶望)이라고 말합니다. 희망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상태. 칠흑같은 절망이 그들의 삶의 현실이었습니다.
예고된 심판 예레미야 선지자가 쓴 이 내용들은 예고된 심판이었습니다. 사십년 동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 경고의 음성을 계속하여 들려주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선지자의 경고를 따르지를 않았습니다.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성전이 깨뜨려졌습니다. 주의 종들이 잡혀가게 되고, 많은 사람이 살육을 당하는 피비린내 나는 현장이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 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 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1:8절)
마치 예루살렘이 옷 벗겨진 사람처럼 그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남들의 손가락질 받는 조소거리가 되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마땅히 의지하고 경외해야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애굽 군대의 군사력을 믿고, 자기들의 재력을 믿고 하나님을 멀리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안중에 없이 자기들이 백성들을 인도하는 양 기고만장했습니다. 이렇게 오만방자한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대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형편이었습니다. 그들은 경고의 메시지를 여러 차례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줄 몰랐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성은 깨어지고 성전은 유린을 당했습니다.
희망의 불꽃을 살려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런 처절한 어려운 형편에서도 희망의 불꽃을 피우도록 다시 마음에 작정을 했습니다.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21절)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포기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잡고 계시는 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내가 경제적인 타격을 받고 인간관계의 깨어짐 때문에 내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치십니까? 매를 대십니까? 징계는 또 다른 주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올바로 순종할 때는 기쁨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불순종할 때는 아픔을 가지고 심판하시기도 합니다.
심판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입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22절)
주님의 사랑이 있는 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위로가 있는 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무를 베어도 뿌리는 남겨 두십니다. 그것을 그루터기라 말합니다. 다 뽑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루터기를 남겨두시고, 다시금 출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제2의 기회를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희망의 불꽃을 살려야 되는 이유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23절)
아침마다 새롭다고 했습니다. 내 심장의 박동이 멈추지 않는 한 주님은 나를 새로운 모습으로 다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새롭게 살아야 될 하나님의 분량을 허락하셨습니다. 매일 매일 새롭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도와주신다고 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마음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까지 연장되지 않도록, 과거의 아픔이 오늘을 이끌지 않도록 날마다 새 능력과 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주님 앞에 나가 주의 위로하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희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라.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24절) 바란다는 말은 기다린다 말과 희망한다는 말입니다. 나는 주님을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주님을 바라겠습니다. 시편의 기자는 말합니다. 주의 은혜가 무엇을 바라리이요. 나의 소망은 오직 주님께 있나이다. 주의 은혜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리이요 나의 희망은 나의 소망은 주님께 있습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라.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32-34절)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주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신뢰한 그 신뢰를 우리 주님 앞에 주님 나를 향한 주의 신뢰를 내가 믿습니다. 고백합니다. 믿음은 힘이 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라.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의 주님,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구체적인 결단과 변화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40,41절)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기를 위해서 우리는 여호와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나의 실패와 방황을 이제 종지부를 찍고 여호와께로 돌아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로 돌아서면 주님께서 받으시고 책임을 지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난 자체를 싫어하지만 어떤 경우는 고난이 인생의 큰 유익이 될 때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의 말처럼.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님께로부터 멀어져 있다가 어떤 때에 고난은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새로운 삶의 전환점이 됩니다. 고난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은총으로 알아 주님을 의뢰하고 주님을 사모하고 주 앞에 돌아가는 믿음의 역사가 사순절 기간을 지나는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고 절망스러운 상황일수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희망의 불꽃을 믿음으로 살려내자.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