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 20 : 14 불 못 계 20 : 15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
계 20 : 14 불 못 -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
몸의 죽음과 무덤, 또 악인이 부활 전까지 머물며 고통받던 음부 곧 지옥도 최종적 지옥인 불못에 던지우는 것으로 표현된다.
불못은 부활 후에 악인들이 들어갈 형벌의 장소이다. 그것이 둘째 사망이다. 이것은 참으로 두려운 사망이다.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 곧 첫째 사망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사람의 일들 중 장례식이 가장 슬픔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렵고 슬픈 일이 둘째 사망의 일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삶보다 이 둘째 사망으로 인해 그의 행복과 불행이 나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 28).
14. 둘째 사망 -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 둘째 사망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만이 이 심판을 면하게 되는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는 전부 유황 불못에 던져진다.
이것은 둘째 사망이다.
계 2: 10에 서머나 교회에 말씀을 주시기를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있어도 끝까지 견디며 죽도록 충성한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해주신다고 했으니, 이 시대에 우리는 정말로 죽도록 충성해야 하겠다.
지금까지 늙어 죽었거나 병들어 죽었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었을지라도 이때에는 전체가 부활하게 된다.
모든 무덤이 열리고 바다가 죽은 자를 내어준다.
* 사 26: 19 하반절 -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육체로 부활하며 의인은 생명의 부활로 악인은 심판의 부활로 나와서 심판을 받게 된다.
* 요 5: 28-29 –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생명의 부활로 나온 자는 천년왕국을 거친 후 영원 세계에 들어가게 되며 심판의 부활로 나온 자는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 세세토록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된다.
(1) 이 심판을 함께 받을 자들 (계 21: 8).
① 두려워하는 자들(두려워서 말씀대로 못하는 자)
② 믿지 아니하는 자들(예언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
③ 흉악한 자들(포악하고 악독한 자 변화되지 못한 자)
④ 살인자들(남을 미워하는 자)
⑤ 행음자들(비진리와 타협한 자)
⑥ 술객들(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고 요행이나 예언만 믿고 따르는 자)
⑦ 우상 숭배자들(마음속에 다른 주를 버리지 못한 자)
⑧ 거짓말하는 자들은 영원한 불못에 들어간다.(말씀대로 살기로 "아멘"하고 따르지 않는 자).
* 고전 15: 26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 사 25: 8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2)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본 절의 '사망과 음부'는 의인화된 표현이다.
* 계 6: 8 -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이 '사망과 음부'는 사단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유황 불못에 던져져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같이 동일하게 유황 불못에 던져진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승리하신 후에는 더 이상 사망이 필요 없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Johnson).
* 계 21: 4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즉 이것은 사망이나 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암시한다.
* 고전 15: 16 -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3)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둘째 사망'은 하나님의 백성이나 불신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첫째 사망과는 달리 오직 불신자들만이 겪는 죽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둘째 사망이 주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6절).
'불못'은 일반적으로 지옥을 의미하는 '게헨나'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게 힌놈'(*)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 힌놈'은 예루살렘 성 밖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예루살렘 성의 쓰레기를 태우기 위해 늘 불이 붙고 있었다.
또한 몰렉 우상을 숭배하면서 인간을 희생 재물로 드릴 때 불로 태운 곳이기도 하다.
* 왕하 16: 3 -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 왕하 21: 6 -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 골짜기를 살육의 골짜기로 부르고 있다.
* 렘 7: 31-32 – 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Beasley-Murray).
이러한 불과 하나님의 심판이 연결되어서 '게 힌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불의 심판으로 인식되었다.
* 사 66: 24 -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게 힌놈'과 같은 의미를 지닌 불못은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 대한 심판과 그들의 최후의 패배를 시사한다(Mounce).
계 20 : 15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누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된다.
요한복음 3: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5: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15. 생명책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1)불 못
영원한 형벌의 장소.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모두 불못에 던진다.
* 마 25: 41 -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 계 13: 8 -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본 절은 앞 절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앞 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첫째 부활에 참여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둘째 사망인 불못이 전혀 주관할 수 없다.
단지 둘째 사망이 주관하고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 보다는 짐승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불신자들뿐이다.
그러한 불신자들은 사탄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겪는 영원한 멸망의 길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앞 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첫째 부활에 참여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둘째 사망인 불못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 천년 왕국의 특징
* 계 11: 15 -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 계 20: 4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내가 보니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1) 마귀가 없다.
* 계 20: 1-3 –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 사 27: 1 -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2) 전쟁이 없다.
* 사 2: 4 -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 미 4: 3 -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3) 변동이 없다.
* 사 9: 6-7 –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4) 피해가 없다.
* 사 11: 6-9 –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5) 장애자가 없다.
* 사 35: 5-6 –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6) 죄악이 없다.
* 사 35: 8-10 – 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7) 박토가 없다.
* 사 30: 26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 사 43: 20 -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 암 9: 13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8) 부족이 없다.
* 사 60: 15-22 – 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16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17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 18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 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22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9) 조사(早死)가 없다.
* 사 65: 20 -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10) 재난이 없다.
* 사 65: 23 -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이 아름다운 천년 왕국의 축복을 바라보고 예언의 말씀을 굳게 잡고 진리로 승리하자.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 사탄의 종말은 불못이다.
사탄이 아무리 무섭고 강한 원수일지라도, 우리는 사탄이 결국 지옥에 던지울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것이 사탄이 받을 최후의 심판과 형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을 두려워하거나 그에게 굴복하지 말고 당당히 대적하고 물리쳐야 한다.
야고보서 4: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둘째, 공의의 심판을 대비하자.
우리는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바로 안다면 우리는 바르게 살기를 힘쓸 것이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살든지 죽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 고후 5: 9-10 –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셋째, 생명책에 기록되도록 하자.
우리의 이름은 반드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주 예수께 대한 참된 믿음으로 된다. 그 믿음은 성령의 역사로 또 성경말씀을 통해 생기며 견고해진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요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장차 영원한 지옥 불못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복된 삶이 아니지만, 우리가 비록 세상에서 부자로 살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면 우리는 확실히 행복자이다.
사단의 마지막 대결과 흰 보좌 ( 박 조준 목사 ) 저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다시 오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게 되는데,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천년왕국을 다스리게 될 때 사단은 천사들의 손에 묶여서 밑없는 구덩이로 던져진다는 것을 보았습니다(계 20:1~3). 이것은 천년 동안 인간들이 사단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혹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과 육신과 마귀입니다.
예전에 합동신학교에서 하는 계절 목회 신학원에서 설교에 대한 강의를 좀 해 달라고 해서 갔었습니다. 할렐루야교회에서 목사님들 150명이 등록을 해서 모였고, 아침 9시 30분부터 저녁 5시까지 종일 강의를 하는데 제 건강이 감당할 수 있을까 염려했지만 무사히 끝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참석한 목사님들이 온종일 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 지루할 터인데 너무 진지하게 듣는 데 놀랐습니다. 질문 시간에 어떤 목사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설교를 하면서 마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하라 말하는 내가 사랑하지 못하면서 사랑하라 설교할 때 마음에 거리낌이 생깁니다. 이런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사에게는 이런 갈등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자고 하면서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할 때 오는 갈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만 아니라 옛날에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속사람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7장 15절 이하에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사는 동안 유혹과 시험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목사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면 목사는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거룩해서 흠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목사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에게 닥쳐오는 악의 세력과 싸워 나가자고 호소하는 사람입니다. 예일대학교 교수였던 헨리 나우엔의 말대로 목사는 ‘부상당한 치료자’(Wounded healer)입니다. 목사 자신이 부상을 당해서 피를 흘리면서도 같이 부상당한 다른 사람을 싸매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에게 말입니다.
이제 천년왕국 때에는 이런 모든 유혹과 시험이 없어질 것입니다. 마귀를 구덩이로 묶어 던지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의로우신 심판주 주님의 통치를 받는 의의 나라가 되기 때문에 음란하고 자극적이고 세속적인 유혹들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에서 주님 다시 오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부활할 것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온전치 못한 것이 온전한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주님이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첫 번 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65장 20절에 보면 이 축복 받은 세상에 대해서 재미있는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죽거나 수한을 채우지 못하는 노인이 없을 것이며 아이라도 백세에 죽으매 저주받은 자라도 백세에 죽으리라.” 이 말씀은 믿는 이들이 천년왕국의 끝까지 살아남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사람이 백살일 때를 어린이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세가 되도록 믿음을 갖지 못하면 저주를 받든가 죽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천년왕국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백세가 되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접하는 사람은 홍수 이전의 사람들처럼 천년왕국의 마지막 때까지 살지만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백세에 죽게 됩니다. 여기에 이 세상의 유혹과 사단의 시험이 없기에 온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다는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이때야말로 어린 아이를 기르기에 가장 좋은 때가 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그리고 홍수 시대 이후의 사람들처럼 천년왕국 동안에는 백살에 아이를 낳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축복이 넘치고 양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그들이 바라는 대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900년 동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입니다.
1.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구속함의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2.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광 볼 때에 모든 괴로움 잊어버리고 거룩한 길 다니리
3. 마른 땅에 샘물 터지고 사막에 물 흐를 때 기쁨으로 찬송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4.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두려울 것 없겠네 기쁨으로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5.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거룩한 자뿐이라 주가 주신 면류관 쓰고 거룩한 길 다니리
(후렴)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물론 그때 태어난 사람 중에도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백세 때에 죽어 가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백세에 죽는다 하더라도 이 믿지 않는 자들이 천년왕국의 끝무렵 사단이 풀려났을 때 다른 이들로 하여금 사단을 따르도록 권유할지도 모릅니다.
본문 8절에 “나와서 땅의 사방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는 말씀은 그 당시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다수가 사단을 좇게 될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천년왕국 시대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과 마지막 세기에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젊은이의 운동으로 보여지는데, 왜냐하면 마지막 사단의 반역 때에 그를 따르는 모두가 백살 미만의 사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년왕국 동안에는 그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게 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것입니다. 이 천년왕국의 인구가 역사상 살아온 사람의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으리라는 사실과 그 당시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로 보아, 지옥보다는 천국에 갈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베드로후서 3장 9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하신 말씀이 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의 내용을 보면 사단이 하는 일은 언제나 똑같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천년 동안 갇혀 지냈으면서도 그는 오랫동안 해 오던 “미혹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사람을 미혹하는 데 명수입니다.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그의 이 전쟁 계획은 앞서 본 대로 그의 미혹하는 행위의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환난 시대에 적그리스도를 미혹하는 자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미혹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대적할 때에는 마귀의 미혹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사단이 두 가지 길을 통해서 우리 사람들에게 접근합니다. 한 가지는 불의를 좋아하게 해서 그리스도에게 반항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 앞에 고집을 세워 반역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말고 여러분 자신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겠습니까? 만일에 영접하지 않는다면 아직 마귀에게 미혹된 것입니다. 지금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마귀에게 미혹된 것이 아니라고 증거를 댄다고 해도 사단의 미혹에 넘어갔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사단과 같은 운명이 되지 않으려면 사단이 저지른 반역의 종말을 잘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본문 20장 10절을 보세요.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한없는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도구로 썼던 짐승이나 거짓 선지자들을 불못에 던질 때 사단도 같이 던지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 환난 시대가 끝날 때 던지워졌습니다. 하나님은 백년도 살지 못하는 마지막 세대들에게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사단을 심판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인류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누구나 사단의 유혹을 받아본 후 하나님을 택하든지 사단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으나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 두 번째 기회를 선물로 주셨던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만 얻을 수 있는 이 두 번째 기회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 가운데 이 결정을 내리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지금 당장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 다시 말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사단보다 천년 먼저 불못에 던져졌지만 거기에 그냥 살아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인간이면서 천년 동안 고통의 저주를 받으며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므로 우리 인간도 그 오랜 기간동안 능히 고통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단에게 내릴 영원한 형벌은 10절에 기록된 대로 그가 미혹했던 자들이 받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 주어진 영원한 축복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은 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라면 믿는 사람은 영원히 기뻐할 것이고, 구태여 인간과 사단이 영원토록 밤낮 고통 당한다는 말씀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 11~15절을 봅니다. 성경 말씀 중에 가장 두려운 구절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간들이 결국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미국의 정치가였던 다니엘 웹스터가 그의 인생의 황혼기에 젊은 정부의 지도자들과 가진 오찬회에서 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모임의 의장이 웹스터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때 다니엘 웹스터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책임이요.”
성경 가운데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들이 져야 할 책임에 대해 이 구절보다 더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는 구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놀라운 사실은 이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은 불신자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났다가 한 번은 죽습니다. 세상에 나온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것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누구나 갑니다. 그런데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은 사람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합니다. 왜요?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본문에 “무론 대소하고 죽은 자”라는 표현을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들은 죄 속에서 죽은 자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 심판대 앞으로 부활하여 나오게 된 것입니다. “무론 대소하고”는 큰 사람, 작은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부한 사람, 가난한 사람, 유식한 사람, 무식한 사람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죽은 사람은 다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이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세상에서는 공정한 심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성이 말하는 것이고 양심의 호소입니다. 세상에는 억울한 재판을 받아서 속절없이 죽어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영원한 세계에서 이 억울한 사정을 풀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기 “책들이 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복수인 것으로 보아 각자가 쓴 책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책을 쓴 사람도 있지만 쓰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하는 것 하나 하나가 하늘 나라에 있는 내 이름의 책에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라고 했는데 누구나 그 행위대로,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치 아니하고, 바닷속에 빠지거나 바다에 묻힌 자들을 내어주며, 음부도 그들이 갖고 있던 영혼들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이 두 구절이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덤에 있건, 능에 있건, 땅에 있건 간에, 화장을 해서 공중에 뿌렸든 간에 육신으로 합해져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여 그 부활의 몸으로 보좌 앞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12절 하반절에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말했고, 13절 하반절에도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했습니다. 똑같은 내용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사람의 행위를 기록하는 천사가 딸려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생각은 전도서 12장 14절을 보아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생활 모습은 사진으로 찍어두고, 플라스틱 녹음테잎에는 목소리를 녹음하고, 또 비디오 테잎으로 모습까지 다 찍고 녹음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밖으로 보이는 모양만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와 말만이 아니라 모든 은밀한 것까지도 다 찍었다가 보여주게 되면 자신이 하고도 다 잊어버리고 있던 그 사람이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전에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D. L. 무디는 “만일 인간의 마음을 찍는 카메라가 발명된다면 아무도 그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진사는 굶어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날에는 우리 인간의 은밀한 생각과 계획이 하나님이 인간의 행위를 기록한 책에서 취하신 하나님의 특수 X-ray가 다시 비춰질 때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고 한 말씀이 나옵니다. 신약성경에 생명책이란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혹은 어린양의 생명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이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생명책이란 주님이 주신 영생을 얻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 속에는 십자가 사건 이후에 산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계시록 21장 27절에 보면 거룩한 성에 들어가는 자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야만 합니다. 계시록 3장 5절에 보면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기는 자는 그리스도가 주시는 흰 옷을 입는데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입은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생명책에는 우리의 이름, 예수 믿는 사람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마지막 15절에는 생명책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녹명되지 않은 자는 불못 속에 던지운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천사는 이 책을 보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 믿어 우리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1. 내 본향 가는 길 보이도다 인생의 갈 길을 다 달리고 땅 위의 수고를 그치라 하시니 내 앞에 남은 길 오직 저 길
2. 주 예수 예비한 저 새 집은 영원히 영원히 빛나는 집 거기서 성도들 즐거운 노래로 사랑의 구주를 길이 찬송
3. 평생에 행한 길 돌아보니 못다 한 일 많아 부끄럽네 아버지 사랑이 날 용납하시고 생명의 면류관 주시리라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아직 모르시겠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