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백성의 금식1(마6:16-18)
여호와께서 율법을 선포하시자 이스라엘은
“우리가 지키겠나이다”
라고 서약함으로 시내산 언약이 체결된다(출24:1-11).
언약이 체결된 후에 여호와께서는 옛 언약의 질서 안에 이스라엘을 두시고 다스리신다.
따라서 모세 율법은 옛 언약의 법이며
이스라엘과 옛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질서이다.
이는 이스라엘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삶의 질서이다.
이는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나타내야 하는 윤리지침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거룩은 여호와께 속한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이다.
여호와와의 관계를 따라 언약 당사자로서 나타내야 하는 거룩함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종(머슴)으로서 나타내야 하는 거룩함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의와 윤리적 삶은 율법에 부착하는 것이다.
율법에 부착한 삶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개혁신학(칼빈주의 신학, 장로교 신학)의 가르침처럼
인간이 지킬 수 없는 하나님의 지고한 뜻과 구원의 기준이 아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율법에 부착하지 못하고 이방의 권세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종말에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율법의 통치는 종결되고 그리스도의 통치시대가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직접 대면하시는 새로운 교제 시대가 열린 것이다.
따라서 마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세례를 받은 후에는 천국의 왕에 취임하신다.
천국 왕에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고 산상수훈을 선포하신다.
예수께서는 천국을 설립하셔서 제자들을 하늘에 앉은 새 백성으로 세우신다.
약혼하게 되면 약혼 관계에서 서로를 알고,
결혼하였다면 부부관계를 따라 서로를 알고 누린다.
이처럼 서로 간에 맺어진 관계는 서로를 아는 앎을 결정한다.
신구약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신지식도 이와 같다.
신구약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신지식의 차이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인 다윗왕국 백성과 종말의 하나님 나라인 천국 백성의 차이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시면,
이스라엘은 모세가 증거한 여호와를 알고 섬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시면,
우리는 아들이 증거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긴다.
이스라엘이 알고 섬긴 여호와는 휘장으로 가린 하나님이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구원이며 생명이다.
따라서 모세 율법과 제도는 이스라엘을 가짜 하나님 백성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는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가 가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의 기도는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행한 기도이다.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는 여호와의 율법에 부착한 결과물이다.
율법을 따라 제정된 시행세칙 곧 장로들이 제정한 규례와 유전을 따라 기도한 결과이다.
이처럼 외식하는 자들은 율법에 부착하여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았다.
이는 모세 율법이 이스라엘의 삶의 토대이며 삶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언어나 언어개념, 가치관과 역사관, 세계관은 율법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
따라서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서 야기된 문제들을 가지고 나아오면,
장로들의 규례와 유전을 따라 판단하여 율법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지도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 전 영역에 율법의 통치가 이루어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다윗왕국은 모세의 말로 경영된 율법의 나라이다.
이처럼 여호와께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율법,
곧 육체에 상관된 육체의 예법을 따라 이스라엘을 경영하셨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에 있던 모세의 제자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외식함이 가능하였다.
그러면 율법 아래에서 금식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율법 아래의 금식 기초는 대 속죄일의 금식이다(레16:1-34).
대 속죄일에 여호와께서는 가나안땅의 소산물을 헌상케 하신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상에 드려진 제물들을 흠향하신 후에
제사장들에게 주셔서 먹고 마시게 하셨다.
이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의 식사 교제이다.
이는 제사장들은 이스라엘의 대표이며 머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사장의 먹고 마심은 성소 밖 백성들의 먹고 마심이다.
하나님과 제사장의 교제는 성소 밖 백성과의 교제이다.
그런데 율법 아래의 모든 제물은 반드시 죽음을 통해야 한다.
이는 죄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죄의 장벽은 성전제도를 통하여 설명된다.
여호와께서 임재하신 지성소와 제사장의 활동 공간인 성소 사이에 드리운 휘장으로 나타났다.
제사장은 물로 씻고 제물의 피를 뿌려서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이 나아갈 수 있는 한계는 휘장 밖 성소까지이다.
휘장 안의 영역인 이른바 지성소,
곧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하늘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대 속죄일 외에는 제사장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말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어둠 가운데 계셨다.
함부로 지성소에 들어가면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죽이셨다.
아무리 율법을 따라 물로 씻고 피를 뿌린다고 하더라고 죽임을 당하였다.
이는 여호와의 거룩함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이는 여호와의 통치질서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닫혀 있었다(히9:8).
이는 하늘이 열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대 속죄일은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자신에게 나아옴을 허락하신 날이다.
여호와께서 휘장을 잠깐 여시고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뿌리고 기도하도록 허락하신 기간이다.
이것은 구약백성인 이스라엘이 여호와와의 최후의 교제 목표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휘장을 여시고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도록 하셨을 때,
성전 밖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해야 하였다.
또 이날에 대제사장은 평상시에 입는 에봇이 아니라 세마포를 입어야 하였다.
평상시에는 제물의 피와 기름 외의 제물은 먹을 수 있으나
대 속죄일에는 어느 것도 먹는 것을 금하시고 진 밖에서 불사르게 하셨다.
이처럼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나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는 금식하였다.
이것이 대 속죄일에 이스라엘이 율법 아래에서 행한 금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맛보신 제물을 제사장의 양식을 내어주신다.
제사장은 제단에서 내어온 양식을 먹고 성전 안에서만 마실 수가 있었다.
이 말은 하나니 앞에서만 먹고 마실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먼저 식사하시고 물려낸 제물에 제사장이 참여하였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식사이다.
이러한 제사장의 먹고 마심에 이스라엘도 참여한다.
성전 밖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백성들도 참여한 것이다.
이러한 교제의 식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교제의 생명을 누린다는 말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구원이며 생명이다.
이러한 구원과 생명은 율법 아래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는 온전한 구원이나 생명이 아니다.
이처럼 대 속죄일에 제물을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은
성소 밖 백성들이 어떤 것도 먹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을 통해서만 죄가 사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음을 통해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정결케 하셨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서는 일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율법 아래의 금식을 통해서 자신에게 나아오게 하셨다.
그러므로 대 속죄일은 먹고 마시는 즐거운 잔칫날이 아니다.
대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 짐승들까지라도 굶는 날이다.
이러한 대 속죄일의 금식을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직 온전한 생명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나타내셨다.
이러한 대 속죄일의 금식은 구약에서의 금식 핵심이다.
모세 율법은 금식할 때에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서 금식하도록 한다.
외식하는 자들이 금식할 때에 슬픈 기색이나 얼굴을 흉하게 함은 율법 아래에서 금식하는 방법이다.
율법은 금식할 때에 얼굴을 흉하게 하고 재를 무릅쓰고 옷을 찢으며 행하도록 명한다.
만일 먼지나 재를 무릅쓰지 아니하고 옷을 찢지 아니한다면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금식이 아니다.
먼지나 재를 무릅쓰고 옷을 찢으며 금식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휘장 밖 죄 아래에 세워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금식할 때에
율법이 명하는 바를 따라 일정한 기간에 얼굴을 흉하게 하고 재를 무릅쓰고 금식하였다.
금식이 선언되고 금식의 기간이 끝나면
여호와께서 죄 사함을 선언하셔서 이스라엘의 죄가 용서되었다.
따라서 금식에 대한 상급이 죄에 대한 용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금식한 외식하는 자들은 이미 그들의 상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마6:16).
대 속죄일 외에도 이스라엘은 많은 금식을 하였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는 일 년에 네 번씩 정기적으로 금식하였다.
이는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음을 상기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죄를 범하였을 때마다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하였다.
따라서 백성들은 재를 무릅쓰고 옷을 찢으며 고개를 흔들면서 금식하였다.
이러한 정기적인 금식 외에 예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였다.
이처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 율법을 따라 금식함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금식을 예로 들어서 천국 백성의 금식을 가르치신다.
예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하는 금식을 금하신다.
이는 모세 율법과 제도를 따라 금식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는 율법의 통치와는 다른 새로운 통치질서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휘장으로 가리고 이스라엘을 대하셨으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의인은 가까이하시고 죄인은 멀리하셨으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죄인의 표상인 세리와 창기들과 함께 식사하신다(마9:9-13).
이제 예수께서는 모세 율법을 따라 금식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친히 접견하시고 교제하신다.
이처럼 예수의 오심에서 즐거운 잔치의 때가 시작되었다.
예수의 오심에서 휘장의 장벽이 사라지고 율법으로 경영하던 옛 시대가 끝났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에게 나아오면 참된 구원과 은혜를 받는 시대가 열렸다.
그러므로 신약시대는 여호와께서 가리셨던 휘장이 사라진 시대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당시 죄인의 표상인 세리와 창기와 함께 숙식하면서 먹고 마신 것이다(마9:9-13).
이는 구약의 제사장들도 누리지 못한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구약의 제사장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교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리와 창기는 하나님과 한자리에 앉아서 교제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한자리에 앉아서 교제한 것이다.
은밀한 중에 하나님께 보시는 금식은 무엇인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며 하는 금식이다.
이러한 모습은 잔치에 참여한 자의 모습이다.
구약에서 얼굴을 씻고 기름을 바른 모습은 잔치에 참여하는 자의 모습이다.
예수께서는 모세 언어와 틀을 따라 새 시대의 금식을 말씀하신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고 말씀하심으로 옛 제도를 완성하시고 폐하신다.
이는 새로운 질서에 의한 금식을 말씀하셔서 옛 금식을 폐하신다.
율법 아래에서는 아무리 굶고 금식하더라도
얼굴을 씻고 기름을 바르면 금식을 하지 않는 불의한 자로 판정된다.
그 결과 율법에서 약속된 여호와의 상을 받을 수가 없고 정죄가 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가르침은 모세 율법과는 상충이 된다.
이처럼 말씀하신 것은 율법과는 다른 새 시대가 도래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직접 대면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보내신 아들을 통해서 옛 시대의 금식을 종결하신다.
따라서 제자들은 율법 아래의 외식하는 자처럼 금식하면 안된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즐거운 잔치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 아래에서 행하던 방식의 금식은 끝났다.
우리는 중요한 일로 인하여 금식하며 기도할 수가 있다.
안디옥교회도 주를 위하여 금식할 때에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셨다(행13:1-3).
바울도 에베소 장로들을 불렀을 때 금식하면서 교회를 세웠노라고 말한다(행14:23).
그러나 우리는 죄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처럼 슬퍼하며 금식하지 않는다.
휘장 밖에 세워진 종(머슴)처럼 금식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은 하나님 아들(자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종말의 천국 백성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