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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Koinonia)**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린도후서 13:13)
존 오웬은 헬라어 '코이노니아'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성도와 성령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간의 무한한 자기 내어줌'이라고 강해합니다. 교제(Fellowship)는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생명, 위로, 지혜, 그리고 사랑을 우리 심령에 쏟아부어 주시면, 우리는 우리의 사랑, 순종, 찬양, 그리고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죄악을 그분 앞에 남김없이 쏟아놓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상호 교환 속에서 성도는 영적인 숨을 쉬게 됩니다.
3. 보혜사(Parakletos): 내 곁에 부름 받아 함께 걷는 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혜사'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Parakletos)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한복음 14:16)
헬라어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나를 돕기 위해 내 곁(Para)으로 부름을 받은(Kletos) 자'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멀리 하늘 보좌에서 우리에게 명령만 내리시는 폭군이 아닙니다. 우리가 깊은 슬픔에 빠져 기도할 힘조차 잃었을 때, 우리 곁에 말없이 앉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울어주시는 가장 다정한 위로자이십니다. 진리가 헷갈릴 때 바른길을 일러주시는 교사이시며, 죄악의 유혹 앞에서 방패가 되어주시는 든든한 변호자이십니다. 이 보혜사와의 동행을 자각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정수입니다.
4. 친밀함의 형성: 영적 청종(Listening)과 자아의 항복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까? 교제는 '인식'과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현존의 영적 자각: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성령님, 지금 제 안에 계심을 환영하고 인정합니다"라고 고백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잊혀진 손님 취급을 받을 때 침묵하십니다.
말씀을 통한 음성 듣기 (청종): 성령님은 신비한 환상이나 직통 계시가 아니라, 철저하게 당신께서 영감하신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펼치고 "보혜사여, 조명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읽을 때, 활자가 살아서 심령을 찌르는 음성으로 변합니다.
작은 감동에 즉각 순종하기: 설교를 듣거나 기도할 때, 누군가를 용서하라거나, 은밀한 죄를 끊어내라는 미세한 감동(Nudging)이 올 때 즉각적으로 자아를 항복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성령과의 교제를 증폭시키는 가장 강력한 촉매제입니다.
5. 제35강 결론 및 제7부 총결산: 서재에서 지성소로
목사님, 많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서재에 앉아 성령론의 교리를 연구하다가, 정작 무릎을 꿇고 성령님과 대화하는 지성소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비극을 겪곤 합니다.
제7부 '성령의 열매와 그리스도를 닮아감'의 거대한 대단원은, 아름다운교회의 모든 세대 성도들이 딱딱한 교리의 껍질을 깨고 나와 살아계신 보혜사 성령님의 품으로 달려가도록 초청하는 위대한 부르심입니다. 성령님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전심으로 사랑하고, 경배하며, 매 순간 대화를 나누어야 할 가장 영광스럽고 다정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인격적인 친밀함이 회복될 때, 비로소 강단과 회중석에는 메마른 이론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열매가 만발하게 될 것입니다.
(제36강 예고: 이제 마스터 클래스의 마지막 능선, 제8부 '성도의 사명과 성령 안에서의 동행'으로 진입합니다! 교제의 단절이 가져오는 비극, '제36강: 성령의 탄식 - 성령을 근심하시게 하는 죄와 소멸치 않는 삶의 원칙'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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