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울
이상(李箱)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카톨릭 청년>(1934)
[시어, 시구 풀이]
거울 : 자아를 비추어 주는 물건
왼손잡이 : 진정한 자아에 거역하는 상반된 행위를 하는 존재
외로된 사업 : 잘못된 사업. 어긋난 사업. 주체적인 자아에 대한 음모. 홀로 하는 혼자만의 사업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 ‘거울’은 밀폐된 자아를 비춰 주는 자의식의 세계를 표상한다. 거울 속이 조용한 세상이라는 것은 거울 밖의 세계가 시끄럽다는 상대적 인식이 청각적 성격을 통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거울 밖의 세계와 거울 속의 세계가 단절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 :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 즉 현실 속의 자아와 내면의 자아 사이의 의사 소통의 단절 상황을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 : 나의 의도나 참모습과 상반되는 존재라는 뜻으로, 자의식에 의해 분열된 자아와의 대립을 표현했다. 즉 악수라는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결국 자아 상호 간의 단절, 자아 자체의 분열, 자아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한다.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오 : 거울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드러나 있다. 거울은 현실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 사이의 장벽이지만 그것이 없다면 현실적 자아는 내면적 자아를 인식할 수 없다. 왜곡된 자아에서 참된 자아를 찾으려는 존재의 역설적 행위를 보여 준다.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오 : 거울 속의 자아가 거울 밖의 자아와는 별도로 스스로 의식할 수 있는 상태로 나온 순간이다. 거울 속의 허상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분열이 극에 다달은 상태이다.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 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주제연이다.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대립 관계에 있으면서도 유사성이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 확인은 거울 속의 나를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음을 나타낸다. 즉 분열된 두 개의 모순된 자아의 모습을 나타낸 주제연이다.
[핵심 정리]
지은이 : 이상(李箱, 1910-1937) 시인이며 소설가.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 공대 전신) 건축과 졸업. 구인회에 가입(1934). 초현실주의 수법을 통해 분열된 자의식 세계의 탐구에 주력했고, 숫자와 기하학적 낱말, 관념적 한자로 구성된 특이한 작품을 썼다. 대표작으로 시 ‘오감도’, ‘가정’ 외에도 소설에 ‘날개’, ‘지주회시’, ‘종생기’ 등이 있으며, 수필로는 ‘권태’가 유명하다.
갈래 : 관념시, 초현실주의시
성격 : 주지적, 초현실주의적, 자의식적
어조 : 독백적 어조(자아 성찰적 어조)
표현 : 고도의 상징
구성 :
1연 거울 속의 밀폐된 세계
2연 의사 소통 단절
3연 자아 상호간의 단절
4연 거울 때문에 ‘나’와의 대면이 가능함
5연 자아의 이중화
6연 분열된 두 개의 모순된 자아
제재 : 거울
주제 : 현대인의 자아 분열과 그 갈등
▶ 작품 해설
이 시는 형태상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단어나 구절을 붙여 쓰는 등, 전통적인 문장 기법을 거부하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일상적인 자아와 본래적인 자아 사이의 갈등, 즉 자의식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거울을 매개로 두 개의 ‘나’를 설정하고 있다. 두 개의 ‘나’, 즉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두 개의 ‘나’를 가능하게 한 거울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한다. 이러한 공존과 대립 현상〔‘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의 공존과 대립〕은 인간성의 교류가 차단된 현대인의 분열된 내면 의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李箱)은 대부분 이와 같은 현대인의 자의식 분열을 주지적인 방법으로 포착하는 데 주력하여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사물 중의 하나가 바로 거울일 것이다. 누구나 유년 시절에 거울 속의 세계가 또 다르게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백설공주 이야기라도 주의 깊게 들어 본 사람이면 마녀가 거울에게 묻는 대화를 통해 거울 속 세계가 가지는 신비로움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거울은 그렇게 신비로운 것이다. 거울은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볼 수 있게 해 주는 연결과 접촉의 매개체이면서 악수를 불가능하게 하는 단절과 반접촉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거울의 모순성이 이 시의 창작의 단서이며 동시에 이해의 단서가 된다. 그것은 결국 심리주의적 해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즉 거울 밖의 세계가 있는 현실 속의 자아와 거울 속의 세계에 있는 또 다른 자아의 분열 현상, 그 분열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에 거울이 있으며, 결국 이 시의 ‘거울’은 윤동주의 ‘우물’, ‘호수’처럼 자아의 각성 및 확인을 뜻하는 이미지가 된다.
첫댓글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