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롤모델]
셜리 / 혹시 흑인 밑에서 일하는 데 문제가 있나요?”
토니 / 아뇨? 며칠 전에도 아내와 유색인들을 초대해 음료를 대접 했는 걸요. 참고로 제 롤모델은 링컨이에요.
영민은 영화 속 주인공이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생각했다. 영화 속 토니는 셜리를 만나기 바로 하루 전에도, 흑인 노동자들이 집 수리를 마치고 물을 마신 컵을 곧장 쓰레기통에 버린 사람이었다. 그랬던 토니가 흑인 피아니스트 셜리의 운전기사가 되면 페이를 두둑히 챙길 수 있다는 말에, 자신의 본모습을 단 번에 지워버리고 그럴듯한 가짜 롤모델까지 내세우며 임기응변하는 모습이 불편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일까. 영민은 올해로 사업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각종 위선을 떨었던 자신이 생각나, 토니의 모습이 더 거북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아유 사장님이 제 롤모델이십니다” “제가 롤모델로 여기는 형님이신데, 같이 일 해보면 알거에요” 20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거래처를 뚫느라 영민의 롤모델은 우후죽순 넘쳐났고, 영민에게 롤모델 인사는 하나의 템플릿과 같았다. ‘하우 알 유? – 아임 파인 땡큐’와 같은… 그리고 영민은 그들 앞에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종이컵 믹스 커피를 홀짝이다, 차에 홀로 돌아와서는 있는 힘껏 종이컵을 찌그러트리길 반복했더랬다. 영민이 영화 속 토니의 허풍이 우스웠다가 불편해진 이유였다.
영민의 진짜 롤모델은 따로 있었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영민의 동생 영수였다. 어렸을 때는 형이 하는 건 다 따라하고 싶어 하는 어린 모습이었지만, 한 우물을 진득하게 파는 타고난 성격 덕에 지금은 스승님의 밑에서 전통 공예 장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타고난 손기술에 여러 유수의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영수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과감히 선택했다. 번지르르 하고 큰 기업의 높은 자리에 있는 가짜 롤모델들보다 영민은 우직한 영수가 가장 부러웠다. 영민도 억지로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당장의 이익을 따라 자신의 모습을 이리 저리 바꿔 온 나날들이 허상 같다고 자주 느낀 탓이었다.
너른 밭 한 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와, 그 허수아비를 둘러싼 수많은 허수아비들. 영민이 자신의 인생이 허수아비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가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가짜 롤모델과의 삶. 영민은 영화를 보다 문득 삶의 기로에 서 있었다.
첫댓글 그린북 영화를 가져와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는 생각. 영민이가 어떤 사업을 하는 지 구체적인 설명이 추가되면 좋을 것 같고, 영수의 삶도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추측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나와야 몰입이 잘 될듯. 사업도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업을 하면서도 허수아비라고 느끼는 지점이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풀어줬으면! 실적을 내고 있으니!
영민이가 허수아비라고 삶이라고 느끼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스토리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