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온양 오일장에 갔다. 시장 옆 광장에는 노란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6.4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플래카드와 스피카에서 나오는 소리까지 더해져서 시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그렇게 시끄러워도 시장이니까 견딜만했다. 시장은 왁자지껄하고 활기에 넘쳐야 하는 곳이니까. 시장을 한 바퀴 돌며 해장국도 먹고 골동품도 보고 약장수 선전도 듣고 물 좋은 갈치와 푸성귀도 한보따리 샀다. 구경하는 재미, 흥정하는 재미 이런 재미가 있어 시장에 오면 잃었던 생기를 되찾곤 한다.
온양 장에 오면 다른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생명의 샘' 온천수에 손과 발을 담그고 즐기는 것이다. 온양이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이곳은 예로부터 온천이 유명하다 조선시대 임금님들께서도 이곳으로 행궁을 나왔을 정도였고 박정희 대통령께서도 도고온천을 자주 이용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 육칠십 년대 신혼여행지로 가장 촉망받던 곳이 온양온천이 아니었나 싶다. 온양 장에 오는 시민들을 위해 생명의 샘을 두 곳이나 마련해 두고 손과 발을 씻겨 주고 있다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런 것이 아마도 애민이지 싶다.
온천수에 발을 담갔다. 문득 옛 선인들이 했던 탁족이 떠올랐다. 탁족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굴원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이 강물에 발을 닦는 것은 그 사람의 허물이 아니라 강물의 흐림에 있듯이 모든 것은 상대의 허물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임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한가로움을 즐기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우리는 세월호 사건으로 마음이 뒤숭숭하다 이 사건으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우리나라는 지금 총체적 부실에 잠겨있다는 사실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막막함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통령, 정치인, 공무원 등 나 이외의 누구누구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그런 사람들을 뽑은 국민모두의 잘못이며 나 스스로의 허물임을 먼저 깨닫는데 있다. 우선 다음 달에 있을 지방선거부터 옳은 사람을 뽑자 그리하여 이 수렁에서 한 걸음 빠져 나오자. 온천수에 비친 나의 물그림자에게 말한다. ‘창랑에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모두가 내 탓이다.
내 옆에는 낯선 이방인이 앉아있었다. 그도 발을 담그고 우리나라에 대한 여행정보를 읽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러시아인이었다. 한국말로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물었더니 “블라디보스톡이 고향인데 일하러 왔다”고 하였다. 나는 문득 일제강점기에 먹고 살기 위해 떠났거나 가난에 못 이겨 연해주로 떠났던 조선인 ‘까레이스키’를 생각하였다.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처지가 뒤바뀌고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무엇을 영원하다 할 것이며 무엇을 유한하다 할 수 있을까. 러시아 청년에게 꼭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바란다고 인사를 건넸다. 청년은 까레이스키를 알고 있을까 나는 그것이 몹시도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온천수 옆에는 온양온천수의 우수성을 알리는 글이 대리석에 새겨져 있다. “우리네 오랜 설화 속에 다리를 절던 학 한 마리가 이곳 온양온천수에 사흘간 담그고 완치되어 휠 휠 날아갔다는 이야기기와 조선의 많은 왕들이 이곳에서 오랜 지병을 치유하고 쇄진한 심신을 회복했다는 소개와 1300년 이라는 긴 세월동안 샘이 마르지도 않고 식지도 않고 신비로운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며 그 위에 ‘건강의 샘’이 샘솟고 있으니 손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자신의 건강과 가족, 지인들의 건강을 염원해 보라”는 안내였다. 나는 안내대로 나와 인연 맺은 소중한 인연들을 떠올리며 그분들의 건강을 염원했다.
탁족을 마치고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대부분의 버스정류장에는 광고가 많은데 여기 정류장에는 아산을 빛낸 인물들과 아산에 오면 가봐야 할 곳들이 소개 되어있었다. 충무공 이순신, 고불 맹사성, 과학자 장영실, 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 개화파 김옥균, 윤보선 대통령, 현충사와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맹씨행단과 봉곡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분들이 모두 아산 출신이었다는 사실에 놀랍다. 나지막이 다시 한 번 그분들의 존함을 불렀다. 잊어버리지 않게.
어제 온양 장에서 사온 푸성귀로 아침상을 차렸다. 명이나물, 두릅, 자주양파, 부추겉저리, 된장찌개, 가자미튀김, 김치 등 푸짐한 상차림이다. 세 식구가 같이 먹은 휴일 아침이 달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