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볼 수 없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인가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듯 현자들은 역사를 배워 내일을 설계하라고 합니다. 과거 속에 미래의 궁금함을 풀어줄 열쇠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돌고 돌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로운 사건인가 싶은 것도 찾아보면 고사에 유사한 사건이 있었고, 새로운 제도인가 신선해하다보면 과거에 어느 나라에선가 시행됐던 제도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 전혀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늙은 부모를 깊은 산 속에 버리는 고려장이란 풍습이 있었습니다. 미개했던 시절의 일이요, 지금은 없어진 듯 이야기 합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전국의 요양병원에 누워있거나 요양시설에 보내진 노인들이 다름 아닌 현대판 고려장입니다.
망국풍조였던 조선의 당파싸움이 (훌륭한 대중교육 덕분에) 지금은 없어졌을까요? 역시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정치권 당파싸움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습니다. 깊은 산 속에 버렸던 고려장이 도심 속의 빌딩 속에 버리는 것으로 변한 것처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옛날 왕정시대에는 임금의 마음을 사려고 온갖 고사를 갖다 대며 갖은 설득을 다했지만 현대는 국민의 마음을 사려고 온갖 음모와 계략을 다 짜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만상(萬象)은 돌고 도는 것입니다. 초침은 1분에 한 바퀴 돌고, 분침은 한 시간에 한 바퀴 돕니다. 시침은 12시간에 한 바퀴, 하루는 24시간 단위로 돕니다. 세월이 흘러가는 것 갔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맴돌 뿐입니다. 인생은 흘러가지 않느냐 하실 건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윤회하기 때문입니다. 만나 사랑하다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다시 만나고 하는 것도 도는 현상입니다. 1년이 지나면 1년 성장한 모습으로 새로운 해를 맞듯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도 성장한 까닭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그렇게 살아있는 한 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돌아야 하는 이유는 도는 데서 에너지가 나오기 때문이며 그 에너지가 곧 생명입니다. 전기가 생산되는 것도 터빈을 돌려야 하고, 누구나 사용하는 컴퓨터에도 ‘파워’라는 모터가 돌아감으로써 활용을 가능하게 합니다. 전원을 넣으면 생물이 되고 전원을 끄면 그냥 물체로 남습니다.
굵게 보면 역사도 탄생과 성장 번영 쇠퇴를 반복합니다. 고대는 말할 것도 없고, 중세만 해도 수많은 국가가 일어났다 소멸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위지곤 했습니다. 힘이 있는 민족은 기록을 남겼고 힘이 없는 민족은 흔적 없이 커튼 뒤로 사라졌습니다. 어떤 나라는 8백 년, 천 년의 원을 그렸고, 로마 같은 나라는 보다 큰 원을 그렸고, 어떤 나라는 1백 년 안팎의 작은 원을 그렸습니다.
물론 이제는 국가의 존재, 민족의 가치가 새롭게 정립되고 영토 경계가 분명해졌고, 작은 원을 그리고 사라질 나라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사라지려고 해도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에 사라질 수 없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소수 민족이 그들의 발자취가 서린 터전에서 독립하는 신생국은 생겨나겠지요.
이쯤 되면 더 사례를 들지 않아도 그 원 속에는 문화라든가 풍습, 종교 따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원이 존재하고 있음을 아시겠지요. 원이 크면 그 원 속의 작은 원도 크고, 작은 원 속에 오밀조밀 박혀 있는 인생이라는 원도 풍요를 누리지만 원이 작으면 그 원 속의 작은 원은 더 작아지며 이 안에서 원을 그려야 하는 인생은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원의 크기가 변화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어떤 원을 그리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국가는 어떤 원을 그리고 있고, 민족은, 문화는, 또 그 속에서 내 인생은 어떤 원을 그리며 살고 있는지?
큰 원을 그리는 국가는 변화가 그리 빠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이 차분히 미래를 설계하고 예견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라야 신뢰가 뿌리를 내립니다. 국가는 되도록 국민과 더불어 커다란 원을 그리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의 거대한 원 안에 역사와 정치 문화 종교 풍습을 담을수록 크고 건전하고 모범적인 국가가 됩니다.
우리는 그 반대가 아닐는지요. 대통령이 된 사람부터 온통 저마다 독립된 작은 원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내후년이면 또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새 대통령이 들어서면 부처 이름을 모두 (황당하게) 또 바꾸겠지요. 왜냐하면 김영삼 대통령 이후 그래왔으니까요.
국회의원의 수가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은 나라는 세계에서 단 하나, 우리나라뿐입니다. 비례대표라는 국회의원이 있는 것도 우리니라뿐입니다. 지금 국회의원들이 또 그걸 바꾸려 당리당략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선거 방식도 선거를 할 때마다 바꾸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책임있는 자리에 앉는 것이 자기만의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라는 하늘의 뜻(?)인 줄 착각하는 것 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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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총리(예전에는 장관)는 또 대학입시 제도를 바꾼다고 합니다. 직전에 바뀐 제도 하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아직 대학입시를 치루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과와 문과 구분도 없앤다지요. 전통적인 주소 체계도 모두 도로명 주소로 바꾸었습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도대체 이 나라 국민은 고향은커녕 추억도 간직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근본이 되어야 할 큰 줄기들이 그렇게 확확 바뀌는 데 작은 줄기야 말할 것도 없는 일 아닌가요.
국민들이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삶을 살게 만드는 나라 ― 우린 지금 그런 불가측 한, 이상한 나라에서 용케도 가정을 이끌고, 덕화만발을 이야기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 살고는 있지만 참 힘들고 피곤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첫댓글 깊이 공감합니다.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아직 너무 부족합니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래도 70년 동안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 정도로 세웠으니
조금 봐주면 안되는가요? 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