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개토왕의 남정(南征)
고구려에서는 서진(西進)주의를 가지고 광대한 중국 토지를 엿보고 가까운 지라 연(燕)과 싸워 어느 해 전쟁이 쉬일 적이 없었다. 및 북위와 북연이 일어나 서로 전쟁이 어우러져 피차 손해가 불소한 중 고구려의 서진주의는 이로 인하여 중지되었다. 그리하여 고구려의 서를 가라치던 칼날이 다시 남으로 향하여 옥저 낙랑을 모조리 처 멸하고 죽령(竹嶺)과 조령(鳥嶺)까지 국경이 미치게 되니 백제는 이로 감당키 난하여 한산에 있던 도읍을 웅진(熊津) 공주(公州)로 옮기고 고구려를 막으려 하였다.
백제 근구수왕 때에 평양까지 들어와 고구려 왕 사유를 죽이고 국경을 확장한 후 여제의 국교는 해마다 험악하여지고 그 후 고구려와 계연은 백제 도성을 외어 싸고 백제와 개로를 죽이고 국수(國讎)를 보복하고 원수를 갚을 뿐 아니라 나라의 강토를 확장하여 이와 같이 용감하게 남정을 계속하였고 아들 장수왕(長壽王)이 또 그 아버지의 뜻을 이어 남진 주의를 쉬지 않았다. 다시 신라와 백제를 내리눌러 힘을 어찌 못하게 만들고 동에서는 소백산(경상도 慶尙道)과 중간 또 남쪽으로 속리산(俗離山)과 서쪽으로 아산만(牙山灣) 까지 국경 뻗쳤다. 그 위영이 바다 동쪽까지 미쳐 일본을 위협하고 고구려가 이렇게 가속도를 나아간 것은 다른 나라 문명을 속히 수입하여 지라 대륙 사람들과 상종하고 지라사람들은 해마다 전쟁에 전술에 익숙하여 신라나 백제의 미칠 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