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주년 광복절이다
아베의 제 5차 한반도침공(난 이렇게 본다 1차 삼국시대 임라일본부 침공, 2차 고려,조선초 왜구침공, 3차 임진왜란 4차 한일강점기)인 경제침략으로 뒤숭숭한 이때 문재인 대통령은 가장 가까왔던 일제강점기시대 역사의 한을 다시 한번 새기며 광복절 경축식을 내가 사는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며 의지를 다지는데 이곳에 와서 노닥거리는 내가 심히 반성이 간다
6시에 일어나 지리산둘레길을 가려고 처를 일으켜 세웠다
인월-금계 코스로 2시간 정도 다녀온 후 숙소에서 씻고 오늘 여행을 시작하면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더운 한낮에 움직이는 것보다 나은 선택일 것 같아 강행했다
아침이기도 하지만 오늘 일기예보대로 제10호 태풍 크로사가 일본대륙을 관통해 동해로 빠져나가는 시간이기에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선선하니 걷기에 최상이었다
인월의 넓은 논과 밭, 그리고 시골의 한적함까지 오감에 해당하는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인월에서 금계로 향해 20여분 걸으니 중군마을이 나왔다
중군민속마을은 지리산의 관문 1084호 지방도로 변 지리산 천왕봉 뱀사골 노고단의 입구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당시 군사 요새지로서 전투 군단 편성 중 전군·중군·후군과 선봉부대가 있는데 이중 중군이 주둔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군마을은 둘레길 유명코스로 집집마다 담벽에 민속그림들이 예쁘게 그려져 있다
중간에 주랑흙집으로 팬션도 있고 걷는내내 새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삼신암
수성대, 막걸리 반통을 물 속에 담가놓고 한사발 마시고 가란다 2000원은 알아서 놓고.
목구멍에서 군침이 꿀떡거리는데 어제 처한테 실상사 운전 맡겼다가 운전으로 인해 한바탕 신경전이 오늘까지라 꾹 참았다
백련사로 오르는 길 중간에 임도가 끝나고 계곡 산길로 접어든다
맑은 물에 아침 세수를 하고 길을 나선다 역시 막걸리는 이곳에서도 나를 유혹하는군
산길을 30여분 걷다보면 고갯길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10여 분 내려오면 장항마을이 나타난다
장항마을 뒷산 고사리밭 너머 삼봉산 아침 운무가 신선하고 멋있다
멀리 매동, 중기마을과 등구재가 눈에 잡힐 듯 하다
장항마을의 자랑거리 당산소나무
수령 400년 높이 18미터의 소나무가 용트림하듯 멋있게 뻗어있다
지난번 보았던 영월의 솔송과도 흡사하다
마을에서 북쪽의 허한 기운을 막기위해 심어 가꾸었다 한다
장항마을 당산제는 음력 1월 2일에 행해진단다 마을 뒷산은 덕두산으로 장성이씨들이 안녕과 평안을 바라며 산신께 올리던 제사이다
소나무 외에도 군데군데 노거수들이 마을 뒷산에서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안으며 보호한다
지리산 두레길은 이곳에서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함양으로 향했다
장항마을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탄 택시의 기사아저씨가 추천한 함양의 명승지 상림공원을 가기 위해서이다
함양길로 접어드니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이정표가 있어 잠시 들렀다
지안재이다
지리산으로 가는 마지막 쉼터인 오도재로 가는 길 초입이다
자전거 라이딩하는 한 무리의 동아리들이 겨우 올라와 그 희열을 맛보고 있다
자동차로도 쫄밋거리는데 자전거로 올라왔음에랴
다시 상림공원을 찾았다
상림공원 주차장은 만차이고 옆 산삼홍보관에 그나마 공간이 있어 주차하고 상림공원 중간부터 탐방을 시작한다
먼저 연꽃밭 상림 옆에 넓게 자리하고 있다 부여 궁남지와 비등할만한 연꽃연못이다
상림으로 들어서니 사운정과 고운 최치원의 신도비 문창후선생비가 나타난다
함양 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면적 205,842㎡. 함양읍의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渭川)가를 따라서 조림한 호안림이다.
이 숲은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崔致遠)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조림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위천은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며 매년 홍수의 피해가 심했으므로, 최치원은 농민을 동원하여 둑을 쌓고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서 지금의 숲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문창후선생비 옆으로 난 길을 따르면 역사인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먼저 반기는 것은 열녀박씨비이다
연암 박지원이 쓴 박씨전 소설의 모태가 되는 인물의 정려비이다
그외 함양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관리들의 비석이 30~40여기 도열되어 있다
그런데 그중 고부군수 조병갑의 청덕애민비가 눈에 띈다
조병갑이 고부군수가 되기 전 이곳 함양에서 관리로 지냈는데 그 때 선정을 했다며 세운 비석이다
조병갑이 선정을 했으면 얼마나 했을까? 그렇다 대개 이 비석들의 주인공들은 반 이상이 백성들을 쥐어짠 가렴주구한 인물들로 이 비석 또한 그 가렴주구의 한 흔적일 것이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최치원선생을 비롯 김종직, 정여창, 박지원 등 함양과 관련된 인물들 흉상 동상이 세워져 있다
상림 북쪽끝에는 함양과 관련있는 물레방앗간에 대해 홍보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있을때 최초로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실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경상도민들은 유별나도록 탁월한 역사적 관심도와 소유 의식이 있다
상림을 걷는 동안 다른 곳에 있었던 이런 이은리 석불 등을 옮겨놓아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 있고 지루하지 않은 최고의 관광명승지 상림으로 탈바뀜하게 해 놓았다
이 함화루도 원래 함양읍성의 남문으로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하여 망악루라 불리던 것이 일제강점기 이곳으로 이건하면서 '빛으로 새롭게 한다'라는 뜻의 함화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런 일들을 자화자찬한다는게 좀 그렇다 원래 그 자리로 옮기든가 망악루로 바꾸어야 본래 우리 민족의 유적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어쨋든 전라도 명승지와 다르게 호화찬란하고 넓고 쾌적한 장소, 시끌벅쩍한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관광하는 맛이 더욱 돋우워지는 이곳이다
상림 동쪽엔 새로 조성한 듯 새로운 그야말로 삐까번쩍한?(일본말인가?) 고운 최치원의 역사공원이 있다
역시 돈이 많은 지자체의 힘이다 돈에는 사람의 수와 권력도 같이 따라간다 그래서 부익부빈익빈이란 말이 실감나는 세상의 진리이다
공은 공을 낳고 안되는 이는 갈수록 안 되는 세상의 조화, 나도 잘 살려면 이런 시류에 편승해야 되는데...
참 복잡한 심경이다 경주최씨 시조 최치원은 신라시대 6두품 출신이라지만 사실은 성골 갑이다
고운역사공원과 산삼주제관 사이엔 모두애길이 조성되어 있다
모든 사람(장애인, 노인 등)도 오를 수 있도록 경사도 10도가 안 되는 데크길로 조성한데에서 나온 길 명칭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다보이는 상림 연꽃 연못은 멀리 보이는 산세와 더불어 그 경치도 역시 갑중의 갑이다
산삼주제관으로 내려오는 길은 조성은 잘 해 놓았는데 관리는 안 되어 풀 사이 헤짚고 내려오느라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