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행복
송언수
폐차 유감
새 차를 사면서 12년간 타던 차는 폐차했다. 중고차딜러가 꽤 험하게 탔다는 평을 하며 매입을 꺼렸기 때문이다. 운전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타던 차였다. 워낙 조심성 없는 성격 탓도 있다. 경차를 겨우 면한 기본 옵션의 차량이었다. 차 사방 모서리 안 긁은 곳이 없다. 군데군데 찌그러진 곳도 있다. 트럭 모서리에 심하게 찌그러져 새로 갈아 넣은 오른쪽 차문을 제외하고는 누가 봐도 헌차였다. 12년을 탔지만 처음부터 그 차였기에 불편해도 불편한 줄 몰랐다.
통영에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인천, 서울, 일산에서는 차가 필요하단 생각이 없었다. 집 근처에 지하철이 있었고, 버스 또한 사통발달이었다. 집 주변에는 필요한 모든 시설이 있었다. 병원이나 마트도 가까웠다. 일산에서는 자전거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러다 통영으로 이사했다. 시내가 아닌 외곽에 자리 잡은 터라 차가 꼭 필요했다. 당시 용남면에는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았다. 남편은 택시를 타라고 하였으나, 택시 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차를 사기로 하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안전공간으로 트렁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조건이었다. 그렇게 젠트라가 내 차가 되었다. 기본사양의 1,200cc의 소형차였으나 불만은 없었다. 그 차를 타고 꽤 많은 곳을 다녔다. 가깝게는 거제, 고성. 좀 더 멀리는 마산, 사천, 남해, 전주, 군산 등에 다녔고, 애들 수시 면접으로 대구며 서울까지도 그 차로 갔다. 친구가 그랬다. 차가 있다는 것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날개가 달리는 일이라고. 그 차로 나는 마음껏 날아다녔다.
새 차 유감
이번에도 소형차 중에서 고르기로 하였다. 선택을 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소형차 몇 대는 시승도 했다. 딱히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너무 작거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스포티하거나 뭐, 그랬다. 이런 저런 소형차 정보들 속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일단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차를 지우기로 했다.
조건 1. 전에 타던 차보다 스마트한 운전이 가능할 것. 그거야 선택사양으로 넣으면 되는 것이다. 2. 소형차지만 실내가 넓을 것. 근무를 하는 동안은 사람들을 태워야 할 때가 제법 있다. 전의 차는 사람들이 탈 때마다 차가 작다며 내가 먼저 너스레를 떨어야 했다. 3. 환경 친화적일 것.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지구를 좀 덜 아프게 하고 싶다. 전기차도 생각했으나, 아직 전기 충전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하이브리드로. 4. 모양이 남달랐으면 했다. 그냥 그런 차보다 좀 특별한 모양이었으면 했다. 그런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시킨 차가 기아 니로 하이브리드다. 다른 소형 하이브리드들에 비해 실내가 넓고 연비가 좋다. 가볍지 않은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안전에 관한 모든 사양을 추가했다. 차로 내(內) 주행이라서 차선에 가까워지면 경고음을 낸다. 깜빡이를 넣었는데, 뒤에 차가 달려오고 있으면 경고음을 울린다. 깜빡이 없이 차선을 넘으려고 하면 핸들이 빡빡해지면서 경고음을 울린다. 정차 후 앞차가 출발했는데도 모르고 있으면 앞차가 출발했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경고음을 낸다. 앞차와의 간격이 너무 좁다 싶으면 추돌위험 경고가 뜬다. 그동안 운전을 제법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이 차에게서 듣는 잔소리가 제법 많다.
새 차엔 스마트크루즈 기능도 있다. 국도에서 시속 80에 맞춰 놓으면 액셀이나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있어도 스스로 운행을 한다. 앞에 차가 밀리거나 신호등 앞에 차가 서 있으면 알아서 속도를 조절하고 서기도 한다. 커브길에서 어쩌나 보려고 핸들에서 손을 살짝 떼었다. 길의 각도에 맞춰 핸들이 알아서 움직인다. 자율주행이 가능한건가 싶어서 핸들에서 손을 완전히 떼었더니 경고음과 함께 핸들을 잡으라는 메시지가 뜬다. 자율주행까지는 아닌 거다. 핸들에 손만 살짝 올려놓고 있으면 알아서 속도조절까지 하니 운전하기 정말 편하다. 그동안 몰던 차가 열악한 조건이었던 탓도 있지만, 새 차가 그저 신기하고 기특하다. 사고는 물론 차모서리를 긁는 일도 없으리라 안심한다.
스마트한 세상
기술이 발전할수록 세상살이가 편해진다. 스마트한 세상은 사람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사람이 스마트하지 않으니 모든 사람을 스마트한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한 기술이 많아지는 것이겠지. 아침 기상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자명종부터 세탁기 청소기 식기세척기 등 주방용품들이 먼저 생겨났다.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계산기와 컴퓨터, 휴대전화까지. 내 삶을 풍요롭게 할 기기는 점점 늘어난다.
물질적인, 신체적인 편리함을 주는 쪽으로 발전한 세상이다. 사람들의 불편을 없애주고, 적은 시간으로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계가 쏟아졌다. 끼니를 챙기고 건강관리를 하며 위험신호를 감지해 경고를 울리는 세상도 곧 올 것이다. 세계여행도 무난히 가능할 정도의 통역도 가능해질 것이다. 진단 한 번으로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고, 다방면으로 완치를 위한 치료가 이루어지기도 할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유전자 정보로 범죄발생률을 감지해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할 수도 있게 되겠지.
심리적인 것까지 챙기는 세상도 머지않았다. 어쩌면, 정신적 위협이 될 사람이 접근하면 조심하라고 경고를 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집중하지 못하고 딴 생각이 많아지면 그러지 말라고 각성하게 하고, 게으름 피울 때 해야 할 일들과 방법을 알려주며 부지런 떨라고 경고를 해주기도 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좀 덜 아프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다 같이 행복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인공지능과의 공생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트에서는 계산원의 수를 줄이고 자율계산대를 늘리고 있다. 톨게이트에서는 수금원 대신 하이패스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식당에서는 주인대신 기계에 직접 주문을 넣는다. 공항 카운터 대신 공항 곳곳에 놓인 무인발권대에서 직접 탑승권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이 하던 일을 기계가 하는 세상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고, 소설을 쓰는 A.I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불편한 행복
그런데 그것이 과연 옳은가? 아니, 우리에게 정말 좋은가? 처음 새 차에서 느낀 그 편하고 기특했던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차에 올라 앞뒤좌우를 살피고 발로 속도 조절을 하고 손으로 핸들링하는 것이 진짜 운전이다. 세탁기가 있어도 손빨래를 해야 만족스럽다. 세탁기로 빤 옷과 손으로 빤 옷은 다르다. 기계가 하는 많은 일들 또한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공정이 있다. 하이브리드라서 공용주차장에서 50%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무인계산기로는 식별이 안 되니 출구에서 계산해야 한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프로그램으로 핀란드 청년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들은 핀란드에서 버섯을 따며 시간을 보내던 이들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그들은 각자의 컴퓨터를 들고 한 집에 모여 게임을 하곤 했다. 그런 그들이 서울에서 최첨단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그 안에서 음식까지 해결할 수 있음을 체험하며 마냥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었나보다. “우리가 여기서 살면 폐인 되겠다”는 우려의 말이 자연스레 나왔기 때문이다. 당장의 편리함에 저당 잡힌 중독의 유혹은 곳곳에 있다.
지구가 아프단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차량과 각종 가전제품의 사용이 늘어난다. 인도사람들이 에어컨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지구는 멸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편리함을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이용하는 것들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피폐해지고 있다.
신문물에 반응하는 얼리어답터도 많지만, 디지털에서 벗어나 아날로그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리틀 포레스트의 그녀처럼 계절에 맞춰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차가 주는 편리함을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 편리해서 행복한 세상에서 불편한 행복을 실천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있어 우리 지구가 그나마 연명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차보다 버스를 타는 날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손으로, 내 발로, 몸으로 살아가는 세상도 필요하다. 조금 불편해도 더 오래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행복. 그 아름다운 희생과 배려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