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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의 유해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휴대전화 전자파의 발암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말 그대로 가능성에 불과하다. 수많은 실험과 연구에도 전자파와 암의 상관관계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선 전자파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자구책으로 전자파가 없는 외딴 지역을 찾기도 한다. 이들이 겪는 통증은 어디서 온 것일까? _편집자
모바일기기·송전탑 급증으로 스모그 수준의 공해 유발… 유해성 여부 결론 못 내려
현대인들은 전자파에 둘러싸여 산다. 그래서 전자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사는 사람도 많다. 단순히 근거 없는 염려에 불과할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전자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전자파에 노출될 경우에도 위험성이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휴대전화 전자파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막스 라우너 Max Rauner <차이트> 학술 매거진 편집장
안네 쿤체 Anne Kunze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자동차 내비게이션에도 표시되지 않은 깊은 산속 도로는 좁고 험했다. 협곡 사이의 도로에선 휴대전화마저 불통이었다. 독일 남서부에 있는 깊은 산속. 주변의 까만 숲과 대비되는 흰 복장으로 온몸을 감싼 한 사람이 서 있다. 울리히 바이너(36)다.
그는 전자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위아래는 물론 머리까지 감싼 작업복을 입고 있다. 은색으로 뒤덮인 얼굴에서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협소한 골짜기에 세워둔 자신의 낡은 캠핑카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바이너는 전자파를 피해 11년째 캠핑카에서 살고 있다. “전자파 민감증 환자는 카나리아의 운명과 다를 바 없다. 카나리아는 새 광산에서 가스가 누출되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됐다. 광부들은 카나리아가 죽으면 즉시 광산을 떠나야 했다. 전자파 민감증 환자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존재다.”
한 설문조사를 보면, 독일인의 약 30%가 휴대전화 전자파가 인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독일 연방방사선방호청에 따르면, 독일인의 약 2%는 자신을 ‘전자파 민감증 환자’라고 여긴다. 바이너는 공식 통계치에 집계되지 않은 전자파 민감증 환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면장애·시각장애·심장박동이상·두통은 물론 피로감 같은 번아웃증후군(극도의 피로감으로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 -편집자)의 증가에는 ‘전자스모그’(전자파 때문에 발생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오염 -편집자)도 한몫했다. 바이너는 전자파에 노출된 사람들은 시간 차이는 있지만 언젠가 번아웃 증상을 겪게 된다고 믿는다.
모바일 전자기기가 일상생활의 필수품이 되면서 학자들은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쥐와 햄스터를 전자레인지 전자파에 노출시키는 실험과 침실의 라디오 전자파 측정, 그리고 안테나 옆에서 취침하는 지원자의 수면 상태에 대한 실험 등이 이뤄졌다. 전자파 유해성 연구 프로젝트에 수백만유로가 투입됐다. 세계보건기구 등 관련 기구가 전자스모그를 주제로 회의를 열고 시민단체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자스모그에 대해 제대로 된 진실이 알려진 것은 여전히 없다. 그 때문에 휴대전화·고압송전선·컴퓨터의 전자파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유해할 것이라는 두려움 섞인 의혹만 널리 퍼져 있다.
일반인 30% 휴대전화 전자파에 두려움
전자파의 유해 여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전자파 민감증에 대한 명확한 원인을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편에선 전자파와 관련한 연구 결과를 날조해 거짓말을 퍼뜨린다며 손가락질하는 전문가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전자파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을 악용해 돈 버는 사람도 있는 게 현실이다.
바이너는 전자스모그 때문에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고 확신한다. 지금껏 전자파에 너무 많이 노출됐다는 것이다. 그는 14살에 아마추어 무전기사 시험에 합격한 최연소 독일인이다. 학창 시절엔 자전거에도 안테나를 달고 다닐 정도였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무전 울리’라고 불렀다. 졸업 뒤에는 프리랜서 통신기사로 일했다. 그의 하루 일과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고객을 방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휴대전화로 통화했다. 어느 순간부터 바이너는 만성피로와 집중력 저하에 시달렸다. 그 무렵 그는 모바일 신기술의 위험은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말한 직업학교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 뒤 바이너는 과감하게 휴대전화를 껐다. 그로부터 3년 뒤 바이너는 공교롭게 모바일 전자회의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갑자기 눈을 제대로 뜰 수 없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병원에서도 그의 정확한 병명을 특정하지 못했다. 그는 퇴원 뒤 본능에 따라 숲에서 살기 시작했고 몸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온갖 증상의 원인을 전자파로 지목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바이너는 캠핑카를 구입해 송전탑이 없는 시골에 가서야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 전역에 송전탑이 하나둘 늘어났고, 바이너는 불가피하게 은사로 만든 안전복을 구입해야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그에게 진단서를 써주는 의사도 점차 생겨났다. 그는 2004년부터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 이제 송전탑에서 자유로운 곳은 흑림(휴양지로 유명한 독일 서남부의 최대 산림 밀집 지역 -편집자) 중에서도 몇 군데에 불과하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송전탑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다수 독일인과 고용주들은 이동통신망이 독일 전역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독일 정부는 전국에 광대역망과 초고속통신망을 설치할 계획이다. 바이너가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추가로 인터넷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진 롱텀에볼루션(LTE)과 함께 관공서가 쓰는 모바일망까지 생겨났다. 연방방사선방호청에 따르면 새로운 안테나가 하나 생겨날 때마다 사방 1km에 전자파가 40~50% 증가한다. 법률이 정한 전자파 제한 수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바이너는 그 정도 전자파도 인체에 해를 끼친다고 믿는다.
바이너의 임무는 은사 안전복을 입고 학교·경찰서·음모론자들을 대상으로 전자파의 위험을 알리는 강연을 다니는 것이다. “누구든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바이너는 누구보다 앞서 전자파의 위험을 알린다. 전자파 민감증 환자 중에는 직장과 친구를 잃은 사람이 많다. 심지어 모든 재산을 잃은 사람도 있다. 배우자와 자녀까지 등을 돌리기도 한다. 전자파 민감증 환자들의 요구는 전자파 자유지대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는 집주인의 허락 없이 누구도 자기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이른바 ‘주택 불가침권’과 맞닿아 있다. 최소한 주거지만큼은 전자파에서 안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전자스모그 문제는 민주주의 논쟁의 연장선에 있는 의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정당한지, 휴대전화·모바일기기·인터넷·전력선이 사람들에게 편익을 주긴 하지만 이로 인해 소수의 국민이 고통을 겪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다수의 이익을 내세워 국토 전역에 전력망이나 통신망을 세워도 되는지, 국회가 에너지 절약 정책을 내세워 주거지에 전력선이 지나가도록 결정해도 되는지와 같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전자파 측정기는 물론 전자파를 차단하는 벽지, 보호복, 전자파 차단용 금속 필라멘트가 부착된 불투과성 팬티 등 전자파 민감증 환자들을 위해 시장에 출시된 수많은 제품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자파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전자파 차단 제품으로 스티커·부적·칩카드·크림·동물장난감 등이 나와 있다. 그러나 제품 대부분은 실제 전자파 차단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 모든 전자파가 하늘에 흔적을 남긴다고 가정하면 유럽의 하늘은 중국 베이징의 하늘만큼이나 혼탁할 것이다. 전자스모그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전자스모그라는 표현이 되레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한다. 전자스모그는 인체에 전혀 다른 효과를 미치는 다양한 방사선을 모두 포괄한다. 모바일 통신과 고압선 자기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통 호소하는 고압전선 인근 주민들
따라서 전자스모그를 정확히 구별해주는 게 중요하다. 이는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X선이나 감마선 같은 이온화 방사선이다. 고주파에 해당하는 이온화 방사선은 DNA를 절단하거나 변형시켜 암을 유발할 수 있다. X선이 인체에 해롭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온화 방사선 외에 비이온화 방사선도 있다. 라디오파와 휴대전화 전자파, 무선근거리통신망(WLAN), 블루투스, 고압전선 근처의 전기장과 자기장이 여기에 속한다. 헤어드라이어와 커피머신도 자기장을 형성한다. 따라서 통상 전자스모그를 말할 때는 대부분 이온화 방사선을 일컫는다. 이온화 방사선은 고주파 방사선과 저주파 방사선으로 구분된다. 휴대전화, WLAN, 블루투스 등은 고주파다. 교류는 저주파다. 비이온화 방사선 역시 제한 수치를 훨씬 넘어설 경우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전자스모그 논쟁에서 가장 큰 쟁점은 바로 비이온화 방사선이 일정 기간 지속될 경우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다.
▲ 고압전선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두통을 호소한다. 일부 연구에선 고압전선이 발암 위험을 29%나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압전선보다 전자제품이 더 많은 전자파를 배출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로이터
지난 2월 말 독일연방하원의 환경위원회는 이 주제를 놓고 최신 기술에 맞춰 전자스모그 규정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치열한 난상토론을 벌였다. 환경단체 BUND의 한 관계자는 이날 공청회에서 “전자스모그가 세포와 정자에 유전적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민당과 녹색당 역시 세계보건기구 자료를 인용해 학교·병원·침실의 전자파 제한 수치를 낮추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결국 입장을 관철한 쪽은 규정 강화를 거부한 기민당·기사련과 자민당의 연정이었다. 원래 계획보다 훨씬 약화된 전자스모그 규정 개정안이 조만간 발효될 계획이다. 프랑크 레핀(47) 가족은 정부의 태도가 미온적이라고 여긴다. 이 가족은 20년 전부터 베를린 북부에 있는 인구 8천명의 소도시 비르켄베르더의 고속도로 진입로 근처에 살고 있다. 레핀 가족이 거주하는 조그마한 집 옆으로 고압 송전선이 지나가고 있다. 독일 통일 뒤 레핀 가족은 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이주했다. 당시만 해도 220kV 전압선이 집 옆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5년 전부터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레핀은 고혈압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아내는 갑상선에 문제가 있다. “우리 가족이 병치레를 하는 게 고압전선이 집 옆으로 지나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압전선 발암 위험 30% 증가시켜
레핀의 집 옆으로 흐르는 전선의 전압은 조만간 380kV로 높아지게 된다. 독일연방하원이 에너지 전환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고전압 송전선을 늘리면서 그 가운데 하나가 레핀의 집 옆을 지난다. 추가로 설치되는 고압전선은 레핀의 집 지붕 위를 가로지르게 된다. 고압전선 추가 건설로 과거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송전이 가능하지만 정작 베를린 외곽 주민은 자신들이 사지로 내몰렸다고 생각한다. 레핀은 “우리는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결의에 차 있다.
얼마 전 전력회사 남자 직원 2명이 레핀의 집을 방문했다. 이들은 가져온 자기장 측정기로 작동 중인 헤어드라이어의 전자파를 측정했다. 19μT(마이크로테슬라)가 나왔다. 커피머신과 전력계량기는 각각 각각 30μT, 16μT의 전자파를 배출했다. 그러나 거실과 정원에서 측정한 전자파 수치는 1μT 이하였다. 고압전선보다 전자제품이 전자스모그를 더 많이 배출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레핀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헤어드라이어는 고압전선과 달리 24시간 틀어놓고 사용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기업체들이야 무조건 무해하다며 쉬쉬하려는 거죠.”
그렇다고 레핀이 전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베를린에서 전기기사로 일한다. 레핀은 5년 전 고혈압 증세가 나타났을 때 인터넷에서 전자스모그를 검색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고압전선이 먼지 입자를 이온화하고, 이온화된 먼지 입자는 아래로 떨어져서 인체 호흡기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고압전선이 발암 위험을 29%나 높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레핀은 이 내용을 주치의에게 보여줬지만 의사는 고혈압이 노화에 따른 증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주치의는 또 교대제 근무와 고속도로 소음이 그의 신체에 어느 정도 해를 끼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레핀은 주치의가 전자파의 인체 유해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 Die Zeit 2013년 35호 Verstrahlt 번역 김태영 위원
이코노미 인사이트(2013.10.1)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006
전자파 없는 마을 수베이를 아시나요
한때 전자파 민감증 환자들 몰려… 주민 반대로 백색지대 조성 실패했지만 관심 여전
스위스의 한 농부가 자기 동네의 열악한 통신망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백색지대’(전자파 자유지대)를 만들어 환자들이 정착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언론은 이를 전자파에 저항하는 몸짓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동통신망 기지가 철거될 것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로 계획은 무산됐다. 그럼에도 전자파 자유지대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는다.
부르크하르트 슈트라스만 Burkhard Strassmann <차이트> 기자
농부 니콜라스 바르트는 모두가 잠들고 두꺼비집의 계량기마저 멈춘 한밤중이 돼서야 노트북을 켰다. 전원 스위치를 누르자 노트북에서 ‘삐익~’ 하는 작은 신호음이 나왔다. 거의 동시에 고통을 이기지 못한 고함 소리가 위층에서 터져나왔다. 뒤이어 주방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세들어 살고 있는 마리안네가 소리를 질렀다. “대체 무슨 짓이에요.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나요?”
여기선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물론 바르트는 세입자들을 배려해 여태껏 세심한 신경을 써왔다. 그의 농가엔 마리안네를 비롯해 전자파 민감증에 시달리는 세입자 3명이 살고 있다. 바르트는 농가 전체의 전력을 차단하고 전기가 흐르는 선엔 따로 피복을 씌웠다. 그는 집에서 3km나 떨어진 마을회관 냉장고를 이용해야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코노미인사이트(2013.10.1)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8